〈 118화 〉12. 흐르는 별 - 09
그것은, 신화의 재림이나 다름이 없는 광경이었다.
하늘이 갈라지고 지반이 무너지며, 천지가 그대로 부서질 듯한 굉음이 사방을 떨쳐 울리고 있는 중이었다. 현 인류의 정점에 이른 초월자 넷과, 현세에서 가장 강한 절대자의 격돌이란, 그 정도의 무게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마녀-!”
황녀의 ‘하늘의 검’이 마녀를 향해 휘둘러지며, 머리 위에서는 비앙카의 ‘백염의 탄식’이 마녀의 머리 위에서 그대로 그녀를 향해 내리 꽂힌다. 그리고 그들의 뒤를 따르듯 정령의 힘이 가득 담긴 9연발의 소사(掃射)가 흡사 빛살과도 같이 마녀를 물어뜯기 위해 공간을 미끄러지듯 유영한다.
그것은 톱니바퀴와 같이 딱딱 들어맞는 연계였으며, 어느 것 하나 필살의 일격이 아닌 것이 없었다. 지난 1년, 원정대의 일원들은 북상을 하며 그저 아무 의미 없이 시간을 죽이며 놀고만 있지 않았다. 인세에 다시없을 절대자일지도 모를 ‘겨울의 마녀’와의 전투를 대비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합을 맞추어 왔었단 말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은, 다름 아닌 이 한 순간을 위해!
하지만, 자신을 향한 필살의 의지가 담긴 공격을 정면에서 마주하면서도 ‘겨울의 마녀’는 그저-
“재밌네.”
웃고만 있었다.
“...어?”
그리고 뒤에서 그들의 전투를 바라보고 있던 나의 입에서 저절로 얼빠진 소리가 흘러나오고 말았다. 순간, 내가 본 장면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이해하기가 싫었다. 방금 전 겨울의 마녀는, 모든 이들이 혼신을 다해 짜낸 일격을-
“...그리고, 너무 가벼워. 솔직하게 평을 내려 보자면, 상당히 실망스럽구나. 고작해야 이 정도밖에 되지 않다니.”
그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는 것만으로도 전부 무(無)로 되돌리고 말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겨울의 마녀’는, 우리의 상상을 가볍게 뛰어넘는 강자였다는 것을.그리고, 실로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고작해야 서로 간의 일수(一手)를 교환했을 뿐인데 이 자리의 모두는 알아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겨울의 마녀’를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아아아아아아-!”
두려움을 떨쳐내기라도 하는 듯, 황녀는 주눅 들지 않고 재차 검을 휘두른다. 비앙카의 손끝에서 마법이 피어나고, 성녀의 축복이 모두를 감싸며, 키리에의 탄환과도 같은 화살이 겨울의 마녀를 급습한다. 그리고 그들의 공격에, 겨울의 마녀는 자신을 향한 공격을 하나하나 응수하며 제대로 된 방어를 선보이기 시작하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팽팽해 보이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결코 ‘싸움’이라 부를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애당초 저쪽은 우리와 ‘싸운다’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으니까. 그녀에게 있어, 이것은 그저 유희에 불과할 따름이겠지. 아까처럼 공격을 모조리 무효화시키지 않고 정직하게 응수를 해주는 것이 바로 그 증거일 터.
“...빌어, 먹을...”
나도, 나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 알고 있다. 저들이 싸우는 전쟁터에 끼어드는 행위는, 그저 자살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아니, 오히려 저들에게 민폐만 끼칠 뿐, 나 따위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렇다고 해서 저들의 싸움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것은 싫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수십 년간 가족과도 같이 지내온 사용인들도 죽었고, 나의 하나 뿐인 여동생 또한 죽고 말았다. 전부, 나를 살리기 위해 죽고 말았다. 그러니, 그들의 죽음을 개죽음으로 만들 수는 없다. 나는, 그들을 위해서라도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하지만 내가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상대는 인세에서 가장 강한 검사인 황녀의 공격조차 무효화시키는 괴물이다. 나 따위가 저런 괴물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 때였다.
“아아아아아악-!”
찢어지는 듯한 여인의 목소리가, 전쟁터의 한 가운데를 가로지른다. 놀라 그 쪽을 바라보니, 두 발과 오른손이 완전히 으스러진 끝에 전신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황녀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오고 말았다.
“네 검은, 내게 너무나도 거슬리기만 하는구나. 미안하지만 너는 여기서 퇴장해줘야겠어.”
죽음의 선고가 떨어진다. 파직, 하며 스파크가 튀는 소리와 함께 황녀의 머리 위쪽에먹구름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쿠르릉-!
저것은 위험하다. 본능적으로 느끼고 말았다. 만약 저것을 정통으로 맞는다면, 황녀는 흔적도 없이 증발하게 되고 마리라-!
“잘 가렴. 제국의 황녀. 네 역할은, 이것으로 끝이야.”
마녀의 손가락이 위에서 아래쪽으로 내려온다.그리고 그와 동시에.
콰아아아아앙-!
어지간한 건물의 몸통보다 더욱 거대한 벼락이, 그녀를 향해 내리 꽂히려는 그 순간-
“아이리스-!”
황족을 향한 존칭이고 나발이고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이름을 외치며, 그녀의 앞에 끼어든 나 자신이 있었다.
다행히, 늦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희생자가 한 명에서 두 명으로 늘어날 뿐이다. 절대적인 죽음의 뇌전이 나를 향해 내리 꽂히고 있었다. 앞으로 1초 후의, 죽음을 보고 말았다.
“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찰나의 순간, 등 뒤에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는 아이리스의 모습을 힐끗하고 바라본다. 이를 악문다. 나는, 이곳에서 절대로 물러날 수 없다-
다음 순간, 나의 손에 들린 검이 원을 그려내며 하나의 흐름을 그려낸다. 흐르는 별. 종류를 불문하고 일정 영역 안에 모든 에너지의 흐름을 통제할 수 있는 검술.
‘흐르는 별’은 당연하다는 듯 성공해, 마녀가 쏘아낸 벼락을 주위로 흘려내고 결과적으로 나와 아이리스의 죽음을 회피해내었다.
그리고 동시에.
“끄아아아아아아아아-!”
전신이 그대로 부서지는 듯한 격통이 전신을 엄습하고 말았다. 그것은, 내가 수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한계량을 훌쩍 넘은 ‘흐름’을 다루려고 한 오만의 대가였다.
“크, 아우... 하, 아...”
뇌에 산소가 너무 부족한 나머지 머리가 핑하고 돌았다. 자신도 모르게 개처럼 헐떡거리고 말았다.
일격. 단 일격에 나의 몸보다 정신이 먼저 무너지고 말았다. 겨울의 마녀가 나를 향해 쏘아낸 마법에 정면으로 맞선 것도 아닌, 그저 공격을 옆으로 흘려낸 것에 불과한데, 꼴사납게도 그 일격에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미치지 못한다. 카인 폰 에스텔의 힘으로 ‘겨울의 마녀’에 대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말, 한심한 남자로구나. 이런 남자가 이런 곳에는 대체 왜 있는 것인지.”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며 나를 바라보는 마녀의 시선에, 그대로 다리의 힘이 풀려버리고 말았다. 그녀가 나를 향해 보내온 좁쌀만한 살의에 겁을 집어먹은 거북이 같은 나 자신이 있었다.
“걱정 마렴. 고통 없이 보내줄 테니.”
마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나를 가리킨다. 그 간단한 동작만으로, 나는 죽음을 직감하고 말았다.
“...아.”
그리고 다음 순간.
콰앙-!
“뭐해, 이 멍청아! 그 여자를 업고빨리 뒤로 달려!”
바로 옆에서, 전신에 뇌광(雷光)을 두른 채 마녀를 옆구리를 향해 주먹을 내지른 비앙카가 있었다-!
“어머, 마법사 주제에 야만스럽게 주먹질이라니.”
“하, 상관없지. 이 자리에서 너만 죽인다면 목격자도 자연스레 없어질 테니까!”
정면에서의 화력승부는 ‘겨울의 마녀’에게 도저히 미치지 못한다는 판단을 내린 것인지, 비앙카는 전신에 번개를 두르고,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육신의 붕괴는 성녀의 축복을 받아 무마해가며 설원을 내달리고 있었다. 아마 비앙카는 속도의 우위를 무기로 삼아, ‘겨울의 마녀’에게 타격을 누적시켜가려는 계획임이 틀림없을 터.
...하지만, 결국에 비앙카의 저러한 전법은 시간벌이에 지나지 않는다. 초월자 네 명이 한 번에 덤벼들었을 때도 마녀에게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 비앙카와 성녀가 둘이서 아무리 분발해봐야, 우리의 승리로는 결코 이어지지 않겠지.
승패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제 남아 있는 것은, 싸움의 허울을 뒤집어 쓴 패잔병의 처리 뿐. 아마 우리는 전부 이곳에 죽을 것이다. 겨울의 마녀의 손에 전부 죽게 될 것이다. 그래, 한 명도 남김없이, 전부 다.
“...이런, 사태가 생각보다 더욱 심각한 걸.”
등 뒤에서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흠칫하며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 키리에가 서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녀 또한, 결코 정상적인 상태라고는 말하기 힘들었다. 전신은 피투성이였으며, 한 쪽 팔과 귀가 어디론가 달아나고 없는 끔찍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부상 따위는 정말 대수롭지도 않게 생각하는지 평소와 변함없는 나른한 어조로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대로라면 아마, 전부 죽을 지도 모르겠네. 정말로 예상외야. 그녀가 이토록 강했던 적은 없었는데, 대체 무엇이 변수로 작용했던 것일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늘어놓는 키리에. 나는 그녀의 말을 태반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단 한 가지, 그녀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 것 인지만큼은 잘 알 수 있었다.
“...죽는 건가? 전부?”
나 같은 놈보다 훨씬 강한 키리에조차 모든 항전의 의지를 포기한 채 주저앉아 있었다. 내가 아는 키리에는 자신을 죽이려는 적에게 순순히 목을 빼고 기다려줄 만큼 나약한 여자가 아니니, 지금 그녀가 이리 행동을 하는 이유는 한 가지 뿐이겠지.
저항을 해봐야, 이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그녀는 내게 고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 이대로라면, 말이지.”
사실상의 사형 선고나 다름이 없는 그 말. 하지만 나는 키리에의 그 대답 속에서 미묘한 뉘앙스를 읽어낼 수 있었다.
“...이대로, 라고? 그렇다면 타기책이 있는 건가?”
나의 다급한 질문에, 키리에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있어. 딱 한 가지 방법이, 아직 남아있기는 하지.”
“그게 뭔데? 그 방법이라는 게, 대체 뭔데?”
“기적.”
“...뭐?”
그건 대체 무슨 헛소리냐며 그녀를 향해 반문을 하려 하던 그 순간, 나는 깨닫고 말았다. 키리에의 말은 그 어떠한 비유가 아닌, 말 그대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
겨울의 마녀는 우리의 힘으로 도저히 넘을 수가 없는 죽음의 구현 그 자체였다. 마녀를 이기기 위해서는,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닿을 수가 없는 결말을 위해서는, 말 그래도 기적이 필요하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닿을 수가 없는 구원을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대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굳이 키리에가 나를 향해 이러한 말을 늘어놓고 있다는 것은, 아마-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많은 것을 희생해야만 해. 그 끝에, 너는 죽게 될 거야. 아마도.”
키리에의 말은 진실이다. 그녀가 시도하려는 방법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만, 그 끝이 나의 죽음이라는 것만은,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인 듯 하였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가는 모두가 확실하게 죽게 될 것이다. 모두가 파멸을 맞이한다. 에스텔 공작령에서 내가 구해내지 못했던 사람들처럼, 죽게 될 것이다.
카인 폰 에스텔. 너는 정녕, 그러한 결말을 되풀이되기를 원하는가.
“.....”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저, 각오가 필요했던 것일 뿐.
나의 뒤쪽에 정신을 잃은 채 누워 있는 황녀의 모습을 힐끗하고 바라본다. 그녀는 현재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얌전히 쓰다듬으며, 이리 중얼거렸다.
“나의 스승이시여. 언제까지 이렇게 주저앉아있기만 할 것입니까. 그렇게 가만히 주저앉아 있다가는 우리는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녀에게 들려주는 말이 아닌, 나의 각오를 다지기 위한 말이었다.
아이리스 엘 데브하르트, 나의 위대한 스승이여. 나는 당신이 살았으면 한다.
지난1년, 모든 것을 잃었던 내게 소중한 사람이 생기고 말았다. 나는, 살았으면 한다. 나에게 검을 가르쳐주고, 나에게 미소를 지어주고, 나와 많은 것을 나누었던 당신만큼은, 끝까지 살았으면 한다.
...그래, 그것이면 충분했다.
키리에를 향해 한 발짝 걸어간다. 모든 것을 각오한 눈빛을 하며, 나는 그녀의 두 눈을 꼿꼿하게 바라본다. 나의 각오를 읽어내었는지, 키리에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각오해. 지금부터, 끈의 ‘연결’을 강화할거야. 머릿속에 과거와 미래, 50년치 기억이 쑤셔 박힐 테니까, 부디 미치지 말도록 해.”
그렇게 키리에의 자그마한 손길이 나의 머리를 어루만졌으며-
다음 순간.
세계가 무너졌다.
****
문득, 정신을 차리고 말았다. 그녀가 다시금 눈을 떴을 때는, 주위를 그토록 떨쳐 울리던 굉음도, 공간을 가볍게 으스러뜨리는 살기로 가득 찬 공격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저 멀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비앙카와 아리엘이 설원 한복판에 쓰러져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다행히, 얕게나마 가슴의 기복이 보이는 것을 보아할 때 죽지는 않은 것 같지만, 저 둘은 더 이상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이 설원 위에 두 발로 땅에서 있는 자는 오직 한 사람, ‘겨울의 마녀’ 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 전투는 이미 전부 막을 내린 것이었다. 그것도, ‘겨울의 마녀’의, 완전무결한 승리로서.
“...으으...”
일어나려 했지만, 자신의 두 발목은 이미 전부 으스러지고 말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하고 말았다. 자신은 이미,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원통했다. 마음은 아직 꺾이지 않았거늘, 육신이 고장이 나 말을 듣지 않는다니. 정녕, 이대로 모든 것이 끝이란 말인가. 인류는, 이대로 추위 속에서 얼어 죽어 나갈 운명이었단 말인가.
하지만, 바로 그 때-
터벅-
그녀의 바로 옆에서, 어떠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이제야 정신을 되찾으신 것입니까. 벌써부터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황녀님께서는, 현재 죽기 직전의 환자나 다름이 없단 말입니다.”
“...카인.”
대체 네가 왜 아직까지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이란 말인가. 어서 도망쳐라. 나는 이제 너를 도와주지 못한다. 너마저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할 이유는 없다. 그러니 어서 도망가라. 너까지, 개죽음을 당하기 전에. 어서.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뭐라고?”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란 말인가. 네가 알아서 하다니.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란 말인가. 저것은 괴물이다. 내가 모든 힘을 쏟아 부어도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던 괴물이란 말이다. 그러니, 제발 이상한 소리는 그만하고 어서 도망치란 말이다. 카인, 제발-
“...그거 아십니까? 저는황녀님을 많이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끝까지 지켜봐주십시오. 이것이, 제가 당신에게 보여드리고자 했던 것이니 말입니다.
이상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아는 카인이 맞는데, 동시에 카인이 아닌 것만 같이 느껴졌다. 나 같은 것은 구해주지 않아도 괜찮으니 빨리 도망가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왠지 모르게 말이 나오지 않는다.
두려웠다. 네가 이대로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멀리멀리 이대로 날아가 사라질 것 같았다.
하지만 끝내, 아이리스는 카인의 뒷모습을 붙잡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터벅-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리스의 시선을 뒤로 한 채, ‘겨울의마녀’에게로 한 발짝, 또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선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마녀의 시선에, 이채가 띠고 말았다.
“...당신, 대체 누구지?”
그의 존재는 그녀의 이해 바깥의 존재였지만, 왠지 모르게 어렴풋하게나마 깨닫고 말았다. 방금 전의 꼴사나웠던 남자와, 현재의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에 대해.
“...아리아. 이렇게 보니 정말, 많이 성숙해진 모습이로구나.”
카인의 그러한 말에, 마녀의 두 눈이 자신도 모르게 크게 떠지고 말았다.
“...뭐? 당신, 지금 뭐라고-”
허나 카인에게서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그녀는 자신의 적이니까.
카인의 오른손에 들린 검이, 무언가를 그려내기 시작하며 어떠한 흐름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흐르는 별이 아니었다. 명신(明神)도 아니었다.
그가 지금 휘두르고자 하는 검은 ‘모든 순간의 자신’이 일생에 걸쳐 추구했던 것이며, 앞으로도 추구해나갈 무의 결정체.
그가 바란 환상이자, 마음의 구현 그 자체였다.
순간, 아이리스는 환상을 보고 말았다. 지상에, 한 줄기의 반짝이는 별이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는 아득한 환상을. 그 별빛은 너무도 찬란하고 고귀한 나머지, 자신은 앞으로 평생토록 저 빛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 것이라는 것을.
“간다.”
검이 휘둘러진다. 도저히 피할 길이 없는 한줄기 섬광이 자신을 관통하기 직전에 놓여서야, 겨울의 마녀는 깨닫고 말았다. 자신 앞에, 대체 누가 서 있는 것인지.
“...카인, 님-”
“...아.”
아이리스는 속으로 감탄을 하고 말았다.
마치 기척처럼, 모든 것이 순식간에 끝을 맺어버렸으니까.
마녀의 복부 한 가운데에, 카인의 검이 박혀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당신이.”
마녀의 입에서는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허나 그녀는 오히려 카인을 향해 은은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카인의 얼굴을한 차례 쓰다듬을 뿐이었다. 마치, 세상에 비할 데 없는 귀중한 보물을 쓰다듬듯.
“당신이 제, 끝이었던 것이네요.”
그 말과 함께 마녀는 자신의 두 눈을 감았으며, 그와 동시에 모든 힘을 소진한 듯 카인의 신형 또한 허물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모든 이야기는 끝을 맺고 말았다.
대륙을 뒤덮었던 겨울은 그렇게 끝이 났고, 세상에는 다시금 봄이 찾아오고 말았다.
해피엔딩.
...하지만 아이리스라는 여인에게 만큼은, 봄이 찾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그가 존재하지 않는 끝이보이지 않는 겨울의 한 가운데에 홀로 외로이 서 있기만 할 뿐이었다.
길고도 긴, 혹독한 겨울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