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12. 흐르는 별 - 08
어렸을 적, 아이리스는 자신에게 검을 가르쳤던 스승으로부터 이러한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무(武)란, 그 인간이 거쳐 온 인생의 형태이자, 삶의 증명이며, 마음의 구현이기도 하다고.
물론, 그러한 이야기는 무도(武道)에 있어서 마음가짐에 지나지 않는 지극히 원론적인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지만, 적어도 ‘흐르는 별’을 구사하는 당대의 계승자들에게는 통용이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였다.
스스로의 검과 신체를 통로로 삼아 상대방의 힘을 흘려보낸 뒤, 그것을 고스란히 상대에게 돌려주는 궁극의 카운터 검술이라 할 수 있는 ‘흐르는 별’은, 형태가 정해져 있지 않은 무형의 검술이었다. 그것은 즉, 형태가 존재하기 않기에 사용자가 일생에 걸쳐 자신만의 형(形)을 만들어가야만 한다는 소리였으며, 결과적으로 흐르는 별은 사용자의 심상 그 자체를 반영하는 거울과도 같은 검술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러한 사실은, 흐르는 별의 당대 계승자라고 할 수 있는 아이리스와 카인만 보더라도 쉽사리 알 수 있었다. 그 둘 모두 같은 흐르는 별을 익혔지만,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 그 둘을 본다면 실은 전혀 다른 검술을 구사하는 것이 아닌가 착각을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둘의 검은 그 지향점이 확연히 다르기만 하였다.
고귀한 피를 이어받은 자에게는 어느 누구보다 가장 먼저 죽음을 맞이할 권리가 있다고 믿고 있는 아이리스는, 스스로가 휘두르는 검이 상대방을 베어 넘기는 패도(覇道)의 검이 되기를 바라였다. 이러한 그녀의 심상은 긴 세월에 걸쳐 그녀가 구사하는 흐르는 별에 반영되었으며, 그 결과 아이리스가 구사하는 흐르는 별은 검술의 본질이 사실은 카운터였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 정도로 공격적인 검술로 변모하고 말았다.
아이리스의 흐르는 별은 스스로를 중심축으로 삼아 주위의 모든 에너지를 일정 영역으로 수렴시킨 뒤, 그것을 자신의 검에 실어 상대방을 그대로 베어낸다는 원리를 지닌 패도적인 검이었다. 적을 철저하게 제압하고, 베어 넘기는 것에 특화되어 있는 공격적인 검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그녀가 구사하는 흐르는 별이야말로 적을 효율적으로 죽이는 법에 대해 궁리를 해온 ‘검술’의 의의에 가장 적합한 것일지도 모르겠지.
한편, 카인이 구사하는 흐르는 별은 아이리스와는 그 모습이 확연히 달랐다. 그가 사용하는 흐르는 별은 아이리스가 구사하는 것처럼 패도적이지 않았으며, 상대방을 향해 위협적인 공격을 내포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결정적인 무언가가 달랐다. 카인이 휘두르는 검에는, 아이리스에게는 없는 무언가가 내재되어 있었다. 적어도, 그에게 검을 가르친 장본인이자 그의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아이리스는, 그러한 사실에 대해 확신할 수가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미숙하기 짝이 없다 생각을 하였다. 그 다음에는, 자신의 적을 향하여 제대로 된 살의를 품지 못하는 한심한 남자라고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착각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카인의 흐르는 별은, 그저 유려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는 아이리스가 그러는 것 마냥 힘의흐름을 ‘통제’하려 들지 않았다. 그저 자신에게로 향하는 힘의 흐름을 뒤바꾸고, 그 끝에 모든 것을 순리가 흐르는 대로 놓아주려는 무심한 검일 뿐.
그의 검 속에는 아무 것도 깃들어 있지 않다 생각을 했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검에 아무 것도 깃들게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내려 한 것이었다.
...이 어찌나 오만방자한 남자란 말인가. 아직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주제에, 자신은 벌써부터 뛰어다닐 수 있다며 사방 천지에 호언장담하는 꼴이 아니던가? 절대의 경지에 오른 무인인 아이리스조차 스스로의 검 안에 자기 자신 밖에 담아내지 못하였거늘, 그는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스스로의 심상 속에 그토록 많은 것을 투영하였던 것일까.
아이리스는 카인이 휘두르는 검을 보며 참으로 무모하다는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모든 것을 버리고, 비워낸 끝에 그 안에 신(神)을 깃들게 하는 것이 무(武)의 끝이자 종착점이었지만, 카인은 그러한 가르침과는 정반대로서 스스로의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무슨 미련이 그토록 많기에, 얼마나 짊어진 것이 많기에 그는 어찌하여 그 모든 것을 끌어안은 채 묵묵히 검을 휘두르고 있는 것일까.
...검이, 너울거린다. 하늘 아래에서 한 자루의 검이 춤을 추고 있었다. 인고의 끝에 극천(極天)을 넘어 천상에 도달하겠다는 향상심이 담긴 무(武)가 아닌, 그저 한 명의 인간으로서 이 땅 위에 남아 있겠다는 일념으로 가득 찬 의(意)가, 하나의 검무(劍舞)가 되어 지상을 가득 매우기만 할 뿐이었다. 그것이야말로, 그가 스스로의 일생에 추구하고자 한 단 하나의 대답임이 분명할 터.
“...아.”
눈이, 부셨다. 이대로 눈이, 멀어 버릴 것만 같았다. 그의 검은, 참으로 아름답기만 하였다. 그래, 마치 밤하늘에 수놓인 무수한 별빛과 같이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흡사, 지상에 은하수가 놓인다면 이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무심코 해버리고 말았다.
...허나 동시에 야속하기만 하였다. 그의 검은 아름답고 찬란하였지만, 동시에 쓸모가 없고, 무력하기만 하였다.
그가 휘두르는 검 안에 어떠한 의(意)가 담겨 있다 할지라도, 정작 검에 실린 힘은 지극히 미약하기만 할 뿐. 설사 대의(大義)를 추구한다 할지라도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무의미하기만 한 노릇이었다. 당장 아이리스 자신만 하더라도 카인의 흐르는 별 따위, 금세 파훼하고 제압할 능력이 있었다. 하물며 ‘겨울의 마녀’는, 더 이상 말할 것도 없겠지.
그가 어떠한 검을 휘두르더라도, 최소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지 않는 이상 그에게 ‘겨울의 마녀’와의 결전에 참가할 자격은 주어지지 않는다.
필경은 헛수고. 지금 이 순간, 그가 흘리는 모든 노력은,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전부 무로 돌아가 버리고 말겠지.
하지만-
“...그것이, 자네의 검이로군. 카인.”
그가 행하는 노력을 향해 ‘쓸데없다’라고, 단정 지어 말을 할 수가 없는 자신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가 휘두르는 검이, 너무나도 눈이 부셨기에.
결국 그녀는, 최후의 순간까지 카인을 향해 어떠한 진실도 고하지 못한, 겁쟁이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는 끊임없이 검을 휘두르고.
그녀 또한 그러한 그의 쓸모 없는 노력을, 그저 아무 말 없이 지켜보고 있기만 할 뿐이었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간다.
북상을 하면 할수록 눈보라는 더욱 거세지고, 추위는 더욱 매서워진다.
허나 원정대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북상을 하였으며 북쪽의 끝, 에스텔 공작령에 도달한 끝에.
그들은 눈과 같이 새하얀 머리카락을 지닌 어느 여인과, 드디어 마주하고 말았다.
그래, 그녀야말로 인류의 적이자 이 모든 악몽의 시작.
‘겨울의 마녀’였다.
****
온통 백색으로 물들어 버린 세상, 흡사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이 꽃과 같은 눈송이가 흩날리는, 지독할 정도로 새하얗기만 한 세상. 그렇기에 어떠한 생명체의 생존도 허락하지 않는 외롭고 쓸쓸한 세상.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백색 왕국의 한 가운데에, 눈과 같은 새하얀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는 어느 여인은 홀로 군림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머, 실로 오래간만의 손님이로구나. 그런데 이걸 어쩌나. 너무 갑작스럽게 이곳을 방문해준 나머지, 미처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끝나지 않았는데 말이지”
자신을 향해 흉흉한 살기를 내뿜고 있는 이들과 마주하고 있음에도,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실로 가볍기만 하다. 마치, 가볍게 마실이라도 나온 것 같은 여유로운 태도.
허나,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말았다. 하얀 머리를 지닌 여인의 태도는 이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기에 지을 수 있는 여유로운 미소라는 것을.
가슴 한 쪽 구석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두려움을 애써 억누르며, 아이리스는 모든 것을 떨쳐내고자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도록 하겠다. 네가 바로, 이 대륙에 끝없는 겨울을 불러온 그 장본인, ‘겨울의 마녀’인가?”
실은, 물어볼 필요조차 없는 질문이었다. 생명체의 생존 그 자체를 불허하는 극한의 추위 속에서, 실로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를 유지한 채 서 있는 저 여인이 수상쩍지 않다면 대체 어느 누가 수상쩍은 사람이란 말인가. 원정대가 북상을 하는 동안, 그들은 이 추위 속에서 생존을 할 수 있던 사람을 단 한 명도 찾아내지 못하였단 말이다. 단순한 소거법에 의거하더라도, 저 여인이야말로 이 모든 사태의 원흉임이 틀림없을 터-
아이리스의 그러한 질문에, 여인은 살며시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한다.
“겨울을 불러와? 글쎄. 나는 그저, 이곳에 존재하고 있었을 따름이란다. 그래,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지.”
“...존재하고 있었다고?”
“그래. 그러니 내가 이곳에 서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라는 의미란다. 마치 사람이 숨을 쉬지 않으면 살 수 없고, 물고기가 물 밖에서는 살 수 없는 것과 같은, 아주 당연한 이야기.”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키득거리며 말을 이어나가는 여인의 손끝에서는, 조사단의 보고대로 새하얀 눈송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틀림없었다. 눈앞의 저 하얀 머리 여인이야말로, ‘겨울의 마녀’임이 분명하겠지.
“그래, 네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겠구나. 대륙 전체에 휘몰아치는 이 추위와, 그로 인해 파생되는 아픔을, 너희는 ‘겨울’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로구나.”
“그래,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추위로 인해 몸을 떨고 있으며, 끝이 없는 겨울로 인해 죽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다름 아닌, 네가 불러온 겨울로 인하여-!”
자신도 모르게 약간 흥분하고 만 아이리스가 목소리를 드높였음에도, 하얀 머리의 여자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단 한 점의 미동조차 생겨나지 않았다.
“그런데?”
“...뭐?”
하얀 머리의 여인은 아이리스의 말을 심드렁한 태도로 듣더니,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어조로 스스로의 입을 열어 보였다.
“이 대륙에 끝이 없는 겨울이 다가왔다, 라. 그래, 네 말이 옳구나. 그것은 비록 내가 원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긴 하지만, 내가 원인이 되어 일어난 일이 맞단다. 또한, 설사 내가 죽음을 맞이한다고 해도 모든 것이 끝나지는 않을 테지만, 겨울 그 자체는 분명히 끝을 맞이하게 되겠지.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너희들의 분명한 적이라고 할 수 있을 터.”
"그러한 상황 속에서 이러한 대화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지? 설마 여기까지 와서 모든 것을 대화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니?"
"....."
"너희도 알고 있지 않니? 너희들과 나 사이에 남겨진 길은, 오직 폭력에 의거한 대화 뿐이라는 것을. 너희들은 나를 죽이고, 이 겨울을 끝낸다. 봐, 아주 간단한 이야기잖아? 그러니 어서 검을 들으렴. 검을 들어, 나의 심장을 찌르렴. 그것으로, 모든 것을 끝내버리는 거야. 그래, 모든 것을 말이지."
그리 말을 하며 하얀 머리의 여인은 한 발짝, 앞으로 걸어 나온다. 그 단순한 동작에, 원정대에 속한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고 말았다.
“너희들은 나를 모르지만, 나는 너희들을 알고 있단다. 아니, 알고 있었다, 라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려나. 나도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너희들이야말로 이 지긋지긋한 운명의 수레바퀴를 멈추게 할 장본인이라는 사실만은 기억하고 있지.”
하얀 머리의 여인에게서 거센 마력의 파동이 올올이 풀려 나온다. 현세에서 가장 강한 마법사라 할 수 있는 비앙카의 수배는 훌쩍 넘길 것 같은 그 마력에, 모두가 질식할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말았다. 지금부터는 순간의 방심조차 사치였다. 눈앞의 저 여인이야말로, 고금을 통틀어 가장 강대한 마법사임이 틀림없을 터-!
“실로 기대가 되는구나. 운명이 정한 나의 대적자들이여. 과연 너희들이 나의 숙명이 되어줄 수 있을지, 이곳에서 몸소 시험해주도록 하겠다.”
“...너희들은 부디, 나의 종언이 되어 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