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12. 흐르는 별 - 07
그리하여, ‘겨울의 마녀’를 토벌하기 위한 원정대는 본격적으로 북상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아이리스 또한, 결국에는 남은 시간동안 카인을 원정대에서 쫓아낼 구실을 만드는 것에 대해 실패를 해버리고 말았다. 아이리스를 제외한 다른 여자들은 카인이 원정대에 참가하는 사실에 대해 아무런 반대를 표하지 않았으니, 실로 유감스럽게도 카인 또한 원정대의 한 명의 구성원으로서 인정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으리라.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가고 말았다. 다 함께 허리까지 쌓인 눈을 헤치고 눈보라를 뚫으며 북상을 하는 동안 아이리스는 좋든 싫든 하루 중 상당한 시간을 카인과 함께 해야만 하였으며, 그 결과 그녀는 카인이라는 남자와 관련된 여러 사실에 대해 알아버리게 되고 말았다.
에스텔 공작, 그러니까 카인 폰 에스텔이라는 남자는 아이리스가 생각했던 대로 한심하며, 참으로 별 볼일 없으며 시시하기 짝이 없기까지 한 남자에 지나지 않았다. 원정대의 다른 여인에 비하면 무력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며, 제국의 4명 밖에 존재하지 않는 공작으로서의 위엄은커녕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어리숙하기 그지없는 모습만을 보이기만 할 뿐이었다. 좋게 말하자면 소탈하고 유한 성격이었지만, 정곡을 찌르자면 참으로 미더운 모습을 보이지 않는 남자에 지나지 않았다.
특히, 자신과 처음 마주하였을 때 그 박력은 어디로 간 것인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배알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과거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것인지 비앙카 델 카스타나에게 휘둘리는 모습 또한 그녀의 눈에는 참으로 한심하게만 비추어질 뿐이었다. 뭐,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사정에 지나지 않는 일인지라 둘 사이의 일에 간섭할 생각은 추호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종합하자면, 카인 폰 에스텔이라는 인간은 좌우지간 출세는 하지 못할 것 같은 인간임이 분명하였다. 실력우선주의를 표방하는 아이리스의 눈에는 결코 들지 않을 남자라는 것 또한 움직이지 않는 사실이었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아이리스는 카인이라는 남자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에는 부정을 할 수가없었다.
일찍이, 그는 자신에게 이리 말을 했었다. 당신께서 부디 나라는 인간을 써달라고. 나는 그 어떠한 일이라도 수행할 수 있다고.
그의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그에게 전투적인 측면을 기대할 수 없던 지라 아이리스는 그에게 단순한 짐꾼의 역할을 맡기었음에도 그는 단 한 마디의 군소리도 없이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금방 나가떨어진 끝에 제도로 도망가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카인은, 끝까지 자신의 입으로 내뱉은 말을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적어도 그것 하나만큼은, 마음에 드는 남자였다.
그리고 대체 어느 날이었을까. 추위를 막는 결계를 쳐져있음에도 느껴지는 한기에 도저히 잠을 청할 수 없어 잠시 바람이라도 쐬기 위해 그녀가 텐트 밖으로 나섰던 바로 그 때.
쐐액-
그녀의 귓가에, 어딘가에서 공기를 베어내는 듯한 희미한 파공성이 들려왔다.
“...음?”
가장 처음에 든 생각은, 결계를 뚫고 마물이 침입을 했나,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그럴 리가 없었다. 자신조차도 이 결계를 뚫어내기 위해서는 제법 힘을 소모해야 했으니, 한낱 마물들 따위가 결계를 뚫고 이곳에 들어왔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살짝 호기심이 생긴 아이리스는 기척을 죽인 채 살그머니 파공성이 들려오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갔으며-
“...에스텔 공작?”
그 끝에, 자그마한 공터에서 검을 휘두르는 것에 열중하고 있던 카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찌나 수련에 열중하고 있는지 주위에 은은한 한기가 맴돌고 있음에도 온 몸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으며, 근처에 자신이 다가왔음에도 눈치조차 채고 있지 못하는, 그의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어쩐지, 최근 들어 얼굴에 피로가 가득 쌓여 있고, 손에 점차 굳은 살이 배기어 가더니, 매일 밤마다 검술을 수련하고 있어서 그랬던 것이었나. 너는 전력(戰力)이 되지 못한다는 나의 말에, 자극이라도 받아 검을 휘두르고 있었던 것이었나.
검을 휘두르는 카인의 표정은 지극히 엄숙하기만 하였다.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아이리스의 귓가에는, 카인의 근육이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며 파열해나가는 소리가 똑똑히 들려왔다. 장난으로서, 혹은 치기 어린 마음에 검을 휘두르는 것은 아닐 성 싶었다. 적어도 본인은, 지극히 진지한 태도로 검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무의미하군. 아니, 무가치하다고 해야 하나.’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으며, 본신의 검술 실력이 절정에 오른 검사인 아이리스는 카인의 수련을 보며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그가 행하고 있는 노력은, 그 행위 자체에는 의미가 있을 지라도, 그의 노력을 포함한 모든 것이 끝끝내 무의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리라는 것이, 똑똑히 보이기만 할 뿐이었다.
아이리스는 현재 카인이 휘두르고 있는 검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의 검술은, 에스텔 공작가를 상징하는 검술인 명신(明神). 그 어떠한 변칙도 없이 극단적인 기본기만을 강조한 검술로서, 제 아무리 범재라고 할지라도 끊임없는 필사의 노력만 기울인다면 절정의 경지정도는 능히 넘볼 수 있는, 인간 본연의 극기(克己)와 불요(不撓)를 끊임없이 시험하는 검술이었다.
...허나 동시에 그 말은, 지금까지 평생을 문인으로서 살다가 뒤늦게 검에 열중하고자 하는 카인이 검의 끝을 볼 수 없다는 말과 동일한 의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검의 끝을 볼만한 자질이 존재하지 않았다.
어쩌면, 하늘이 내린 자질을 가지고 태어난 천재라면 원정 기간 동안에 걸쳐 검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가능성이 있었겠지만, 유감스럽지만 카인은 아무리 잘 쳐봐야 수재에 지나지 않는 인물이었다.
확언할 수 있었다. 그가 이곳에서 구슬땀을 흘려가며 검을 휘둘러봐야, 그의 검이 ‘겨울의 마녀’에 닿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가 휘두르는 검은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일이리라-
그 안쓰러움에 가볍게 혀를 찬 뒤, 아이리스는 몸을 돌려 자신의 텐트로 돌아가고자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리하려고 했지만, 어째서인지 자신의 발은 마치 땅에 뿌리라도 내린 것 마냥 땅바닥에서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니, 그것이 아니었다. 현재의 자신은, 저 남자를 저리 가만히 놔두기 싫은 것이었다. 저 우직하며 멍청한 수련 광경을 바라보며, 왠지 모르게 그를 가만히 놔둘 수가 없는 자기 자신이 존재하고 있었다.
‘...왜?’
아이리스는, 자신이 왜 이런 감상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카인이 검을 수련하건 말건, 헛된 것에 땀을 흘리건 말건 대체 자신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래, 자신은 그와 어떠한 상관도 관련도 없을 텐데.
- 저는 그들의 공작이니 말입니다. 그러니, 저를 써주십시오.
대체 어째서, 나는 그 때의 네 모습이 떠오르는 것일까.
대체 왜 자신은, 저 사람의 노력이 쓸모없어진다는 것을 생각하니, 어찌하여 이리도 무언가가 마음에 걸린 듯 여겨지는 것일까.
모르겠다. 아무 것도 모르겠다. 자신이 지금 대체 무슨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무엇을 하려 하는 것인지 정말로 모르겠다. 하지만.
터벅-
“...저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행하고 있는 노력이 어떠한 보답 받지 못한 채 아무렇지도 않게 스러지는 것이, 싫었다. 그냥, 그랬다.
“에스텔 공작.”
그녀의 입이 제멋대로 열린다. 그 끝에, 그녀의 혀가 시키지도 않은 말을 멋대로 자아내기 시작한다.
“나에게서 검을 배워보도록 하겠나?”
끝끝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을 것이라는 잘 알면서도, 무의미한 소꿉놀이에 동참하고자 하는 자신이 존재하고 있었다.
****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의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하지만, 동시에 완벽하게 빗나가기도 하였다.
스승 역할을 자처하며 그에게 검을 가르친 지 어연 일주일, 아이리스가 깨달은 사실은 카인이라는 남자는 결코 천재라는 인종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설사 자신이 그를 구도(求道)한다고 할지라도, 이대로라면 그는 원정대의 전력이 되기는커녕 그저 짐덩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재차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을 뿐이었다.
...결국, 고심 끝에 아이리스가 택한 방법은 단순하였다. 설사 검술의 숙련도가 낮다고 할지라도, 적절한 상황과 운만 뒤따라준다면 적에게 결정적인 일격을 가할 수 있는 상승의 검술을 알려주는 것.
그것이, 아이리스가 그에게 ‘흐르는 별’을 알려준 계기가 되었다.
‘...나도 완전히 미쳤나보군.’
그에게 ‘흐르는 별’을 전수하면서도, 아이리스는 자신이 카인에게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황족이 아닌 자에게 ‘흐르는 별’을 가르친다는 의미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자신이, 어찌하여 이런 감상적인 판단을 내려버린 것일까.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이 되는 점이 있다면, 그는 자신이 보기에도 썩 괜찮은 제자였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표현을 하자면, 그는 악착같은 남자였다. 그는 아주 묵묵히, 자신의 훈련을 따라오기만 할 뿐이었다.
그의 하루 일과는 무척이나 단조로웠다. 그나마 눈보라가 덜한 낮에는 북쪽을 향해 행군, 그리고 밤이 찾아오면 밤을 세는 한이 있더라도 그는 스스로의 손에서 결단코 검을 놓지 않았다.
때로는 훈련용으로 데려온 마물에게 정통으로 가격을 당하고, 또 어쩔 때는 자신이 휘두른 주먹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못한 채 바닥을 나뒹굴더라도, 그는 결단코 약한 소리를 내뱉지 않았다.
때로는 검을 휘두른 끝에 손아귀가 찢어져 검을 놓치거나 추하게 바닥에 주저앉아 버리고는 했지만, 아이리스는 그의 그러한 모습을 보며 결단코 비웃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괴로워도, 고통스러워도, 포기하지 않은 채 다시금 묵묵히 일어나 검을 휘두르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이리스는 알 수 없는 감상을 느끼고 말았다.
대체, 무엇이 그를 저렇게 움직이게하는 것일까. 무엇이 그를 저토록 절박하게 하는 만드는 것일까. 이렇게 바라보기만 하는 자신이 알고 있듯, 그 또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행하는 노력의 끝은, 무의미함으로 끝을 맺게 될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내뱉었던 말을 관철하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손에서 검을 놓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녀는 왠지 모르게 깨닫고 말았다.
그리고 어느새, 아이리스는 그의 모습을 넋이 나간 것처럼 바라만 보고 있었다. 네 아픔을, 네가 행하는 노력을, 네 강함을, 세상의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오직 나만은, 네가 행하는 노력을 여기에서 바라보고 있다. 나는 너라는 사람을 알아줄 것이다.
그래. 오직, 나만큼은.
...시간은 무심한 듯, 고요하게 흘러간다.
처음에는 그저 무늬뿐이었던 사제 관계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정말로 진실 된 관계로서 변모하고 말았다.
처음에는 그저 검술과 관련된 이야기만을 나누었을 뿐인데, 언제부터인가 검술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점차 늘어나게 되었다.
때로는 서로의 소중한 추억을 토로하기도 하며, 때로는 스스로에게 아팠던 기억을 공유하며 씁쓸한 미소를 짓기도 하며, 때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너털웃음을 터트리기도 하였다.
그렇게 점차,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서서히 늘어나게 되었다.
햇수로 따지자면 1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었건만,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다’라고 생각하는 자신이 있었다.
아아, 그렇다.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자신이 왜 이렇게 된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1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만에, 자신이라는 사람은 참으로 많이 바뀌어버리고 말았다.
어느새, 그에게 검을 가르치는 시간이 소중한 시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어느새, 그와 함께 하는 시간만을 기다리게 되고 말았다.
어느새, 그와 함께 하는 매일이 일상이 되는 것을 꿈꾸게 된 자신이 존재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둘러싸고 있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아직까지도도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나는 이제, 너라는 사람이 그리 싫지만은 않게 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