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화 〉12. 흐르는 별 - 03
“...정말로 돌아버리겠군.”
나는 자신도 모르게 관자놀이 쪽에 손가락을 가져다대며 그런 말을 중얼거리고 말았다.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려보니 머리가 다시금 지끈지끈하고 아파오기 시작하였다. 나는 어째서 내 집에서조차 마음 편히 쉴 수가 없는 것일까.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집에서만큼은 평온하고 안락한 휴식을취할 수 있다는데 나는 대체 왜 내 집에서조차 견원지간이라는 단어쯤은 사이가 좋다 못해 우애로운 관계로 전락시켜버리는 여자들 때문에 이리 마음고생을 해야 하는 것일까. 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저질렀기에.
“...후우.”
본성 바로 앞 쪽에 예쁘게도 나있는 참혹한 대지의 흉터를 다시금 떠올린다면 아직까지도 가슴이 벌렁벌렁하고 떨려온다. 만일 황녀가 조금만 더 빡이 돌았거나 혹은 조금만 더 자제력이 부족했더라면 에스텔 공작가의 본성까지 그 참격이 닿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일 일이 그렇게 돌아갔더라면 에스텔 공작가는 물리적인 의미로 두 쪽으로 갈라져버렸을 것이란 말이다.
총관의 말에 의하면 내가 없는 동안 황녀와 아리엘이 이렇게 으르렁 거리며 부딪혔던 것은 처음이 아니라고 한다. 어쩐지 본성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폭음을 듣고도 총관은 지독히도 무덤덤한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그 이면에는 그러한 연원이 숨어있던 것이었다-
“이거 알아? 그 여자들 말이지. 네가 없을 때 하루가 멀다하고 으르렁거리면서 싸우더라고. 마치 목줄이 없는 투견처럼 말이야. 그 모습이 어찌나 교양 없어 보이고 눈살이 찌푸려지던지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겠다,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라고. 하여간, 고작해야 남자 하나 때문에 무슨 소란들을 피우는 건지.”
그리 말을 하며 참으로 고아한 태도를 유지하며 차를 홀짝거리는 비앙카. 그 모습이 어찌나 우아하고 기품이 있어 보이던지 나는 그제야 비앙카라는 여자가 이래 뵈어도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카스타나 후작가의 여식이라는 의외의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너도 거기에 끼어들어 한몫했잖아.’
나는 다소 어이가 없는 눈초리로 비앙카를 바라보고 말았다. 다른 누구라면 몰라도 비앙카만큼은 저런 말을 내뱉을 자격이 없었다. 타인을 향한 배려나, 싸가지가 없기로는 제국의 일절을 다툴 수 있는 여자가 바로 비앙카가 아니었던가? 총관이 내게 넌지시 알려준 사실에 따르자면, 내가 데카라즈난 공작가로 떠났던 사이 비앙카 또한 황녀나 아리엘과 충돌해 에스텔 공작가를 어지럽힌 장본인 중 한 명임이 분명할 터.
그런데 양심에 찔리지도 않는지 자신의 입으로 저렇게 뻔뻔스러운 말을 잘도 내뱉을 수가 있다니. 역시 비앙카는 아이와같이 순진무구한 마음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내가 감히 측정할 수가 없을 정도의 거물임이 분명하였다-
“그나저나 너는 대체 아버지와 함께 어디를 다녀 온 거야?”
내가 우아한 태도로 차를 홀짝이고 있는 비앙카를 향해 그리 질문을 던지자 비앙카는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로 내게 답을 해주었다.
“뭐, 별다른 일은 아니었어. 아버, 아니 공작님께서 그러시는데, 에스텔 공작령에 위치한 농토들의 지력(地力)이 회복되는 속도가 작년보다 훨씬 빨라졌다는 보고가 들어왔다고 하시더라고. 마침 할 일도 없던 찰나에 아버, 아니 공작님과 함께 확인 차 근방을 한 번 둘러보고 온 거지, 뭐.”
“...뭐?”
이건 대체 무슨 소리인지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는다.
“너한테는 좋은 소식 아니야? 이 추세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만 있다면 에스텔 공작령 또한 다른 영지와 마찬가지로 농사가 가능한 땅이 넓어지게 될 거야. 그 말인 즉 슨, 에스텔 공작령 또한 천 년 전의 영화(榮華)를 재현하는 것까지는 무리더라도 여타 영지와 같은 위엄 정도는 갖추게 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지. 어쩌면, 제국의 4개 밖에 없는 공작가 다운 모습을 회복하는 것 또한 시간문제일지도 모르고.”
“.....”
아무리 들어도 비앙카가 내게 전해준 소식은 희소식임이 틀림없었다. 무려 천 년이라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지만, 몰락하고 영락한 끝에 가문의 이름값만이 남아있는 작금의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나, 한 때 4대 명문가로서 손이 꼽혔던 과거의 명성을 되찾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겨난 것이라는 말과 진배없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비앙카의 말에 도저히 대놓고 기뻐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이상하고, 논리적으로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지력이라는 것이 어쩔 때는 회복이 되고, 어쩔 때는 회복이 안 되는 변덕스러운 요인이었던가?’
이래 뵈어도 나는 에스텔 공작령의 단 하나뿐인 후계자로서, 이 영지 내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그 어떠한 것이라도 훤히 꿰뚫고 있는 총책임자의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내가 기억하는 미래, 그러니까 회귀 전에는 에스텔 공작령에 위치한 농지들이 점차 지력을 회복해나가고 있다는 희소식 따위, 들어본 기억이 어디에도 없었단 말이다.
그런데 지금, 미래가 바뀌어 버리고 말았다. 물론, 내가 과거로 돌아오며 해온 일이 적지 않은 만큼 이제와 내가 기억하는 미래를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우습기 짝이 없는 일 일테지만 이것과 그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내가 알기로 농지의 지력(地力)을 회복시키는 것은 마법으로도 절대 불가능한 일 중 하나였다. 만일 마법으로 그런 일이 가능했더라면 에스텔 공작령의 전대 공작들은 마법사를 불러다가 황무지가 되어가는 농지를 어떻게 해서든 되살려보려고 애를 썼었겠지.
현 시대에서 농지의 지력이 회복시키는 방법은 오직 하나, 그 땅에서 농사를 짓지 않은 채 오랜 시간 가만히 놔두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제반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비앙카나 다른 사람들은 그저 때가 되었기에 지력이 회복되었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은데, 미래에서 회귀를 하였기에 앞뒤 사정을 전부 꿰뚫고 있는 내가 보기에는 이보다 괴이한 일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단 말이다.
...확실했다. 내가 인지하지 못한 무언가로 인해, 내가 알던 미래는 크게 뒤틀리고 말았다. 더욱 골치가 아픈 것은, 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정보가 너무도 부족했다. 이 상황에서는 어떠한 추리를 해봐야 억측 밖에 되지 않겠지.
하지만 희소식임이 분명한 이 이야기에 대해 뭐라 불평을 하는 것도 우스운 노릇이 아닐 수 없었으므로 나는 우선 농지와 관련된 이야기는 머릿속 한 켠으로 치워둔 채 이야기의 주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로 하였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네게 물어볼 것이 하나 있는데.”
“뭔데?”
나를 향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비앙카를 향해, 나는 품속에서 반지 하나를 꺼내보였다. 그 날, 제도의 테라스에서 사라가 내게 준 그 반지를.
“데카라즈난 공작가에 갔다가 세르나드 백작가의 친구들과 마주했는데, 녀석들 중 일부가 이 반지에 새겨져 있는 문양에 대해 아는 바가 있는 듯 하더라고. 특히 어떤 녀석은 이 반지를 보더니 마치 어릴 적에 없어진 자기 어머니가 살아 돌아온 것 마냥 유난을 떨더군.”
“...흐응.”
“데카라즈난 공작가로 떠나기 전, 네가 나를 향해 이리 말했었지. 세르나드 백작가는, 카스타나 후작가의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쥐새끼들과 한 패거리임이 분명하다고. 그러니몸조심하라고.”
“...그래, 그랬었지.”
“네가 어째서 지금까지 내게 말을 아끼고 있는 것인지는 짐작이 간다. 아마, 너에 비하면 무력이 한참이나 모자란 내가 괜히 설치고 다니다가 녀석들의 표적이라도 될까봐 우려라도 했던 것이겠지. 네 생각이 그런 이상, 나 또한 네게 억지로 추궁할 생각은 없었어. 그래, 내가 이렇게 사건의 당사자가 되기 전까지는, 말이지.”
“.....”
“이제는 상황이 다소 달라졌어. 물론 그 날, 그 숲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떠들어댈 입 따위는 어디에도 남겨두지 않았지만 세르나드 백작가, 아니 그 뒤에 있는 녀석들은 이미 날 주시하기 시작했을 거다. 적어도, 용의자 선상에 올려두기는 했을걸. 이제는 단순히 나를 아이마냥 꽁꽁 감싼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나의 말에 비앙카는 실로 우울한 눈초리로 나를 말없이 바라보더니 이내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리 쉬었다. 마치, 정말로 하기 싫은 이야기를 억지로 하게 된 사람인 것 마냥.
“...그래, 가급적이면 당신은 평생 동안 몰랐으면 했는데 결국 일이 이렇게 돌아가고 말았구나. 그것도, 그 기분 나쁜 여자 하나 때문에 당신은 스스로를 혹시 모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구나.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야. 정말로.”
비앙카는,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하였다.
“유감스럽지만 나 또한 그들에 대해 그리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야. 다만, 두 가지 사실에 대해서만큼은 확실하게 알고 있긴 하지.”
“그게 무엇이지?”
“하나는 세르나드 백작가나 카스타나후작가에 숨어 있던 쥐새끼들은 놈들에게 있어 살짝 아픈 손가락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비앙카는 왠지 모르게 무심한 분노가 담긴 시선으로 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들이 가까운 미래에 불어 닥치게 될 ‘끝나지 않는 겨울’과 모종의 연관이 있다는 것.”
비앙카의 그 발언에, 나는 그만 스스로의 눈썹을 꿈틀거리고 말았다. 그러니까, 잠깐이지만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다는 의미였다.
“...끝나지 않는 겨울을 불러온 주범은 어디까지나 ‘겨울의 마녀’가 아니었던가?”
무려 천상에 거하는 여신께서 인간들에게 신탁까지 내려가며 보증까지 시켜준 사항이다. 그 사실에 오류 따위가 있을 리가 없다.
“음지에 숨어 다니는 쥐새끼들이 겨울을 불러온 주범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어. 그런 추레한 쥐새끼들 따위가 그런 대단한능력을 갖추고 있을 리가 없잖아? 내 말은 어디까지나 그들이 전 대륙에 불어 닥친 겨울과 모종의 연관이 있다는 의미였을 뿐이야.”
“넌 그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된 것이지?”
내 질문에 비앙카는 씁쓸한 미소만을 지어보일 뿐이었다.
“원정대가 출발하기 직전, 황제가 너를 제한 다른 사람들에게말해주었거든. 물론, 네게는 입도 뻥긋하지 말라는 신신당부와함께 말이지.”
“...나만 왜 빠뜨려 놓았던 건데?”
내가 그 음흉한 영감한테 무언가 특별히 잘못을 한 기억은 없는 것 같은데.
“알아봐야 좋은 사실은 결코 아니니까. 그리고 마녀 토벌이 끝난다면 그것들을 일망타진하려는 계획이 서 있었거든. 미래의 너는 전력(戰力)으로 활용할 만한 무력이 갖추어지지 않았으니 보안을 유지하려는 목적 또한 존재했었지. 그리고-”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비앙카의 얼굴은, 어딘가 모르게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카인, 혹시 기억이 나니? 지금으로부터 9년 뒤, 결코 끝이 보이지 않는 겨울이 닥쳐왔을 때 실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우리들의 일상에 대하여. 한여름에 수많은 사람들이 극한의 추위 속에서 벌벌 떨며 얼어 죽어가며, 제국의 모든 사람들이 식량이 부족해 굶어 죽어가는 그 때의 아픔에 대해, 너는 아직까지도 기억을 하고 있니?”
“.....”
비앙카의 그러한 질문에 나는 스스로의 눈을 지그시 감아버리고 말았다. 왜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냐면, 나를 향해 그러한 질문을 던지는 비앙카를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볼 자신이 도저히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기억하고 있다. 그것도, 지독할 정도로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내가 어찌 잊어버릴 수가 있겠는가. 대륙의 전체가 눈으로 뒤덮이고, 이 땅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살을 그대로 베어내는 듯한 지독할 정도의 추위가 한시도 쉬지 않고 불어 닥치던, 당시의 아픔에 대해 나는 아직까지도 모든 것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끝이 나겠지. 조금만 더 기다린다면 이 겨울 또한 끝이 나고 봄이 찾아오겠지, 라는 기대가 무색하게 끝나지 않는 겨울을 불러온 ‘주범’이 따로 존재한다는 여신의 신탁은,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안겨다주고 말았다.
‘겨울의 마녀’만 쓰러뜨린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과, 마녀를 쓰러뜨리기 직전까지 모든 사람들을 괴롭히는 이 아픔이 계속될 것이라는 절망은 이내 분노가 되었고, 분노는 오갈 데 없는 원한이 되어 속죄할 희생양을 찾기에 이르렀다.
그들이 요구한 번제(燔祭)는 다름 아닌 ‘겨울의 마녀’를 배출한 영지의 주인, 카인 폰 에스텔 공작이었다. 군중들이 요구하던 죄목은 겉으로 보자면 ‘겨울의 마녀를 배출한 죄’였지만 그것이 한낱 핑계거리에 불과함은 황제도 알고 있었고, 군중들도 알고 있었으며, 나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저, 화풀이할 대상이 필요 했던 것이다.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나쁜 짓은 어떠한 것도 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이리도 아파야만 하는 것이냐며 내뱉는 절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나 또한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단 말이다.
평소라면 아마 절대로 먹히지 않을 요구였겠지만, 상황이 너무도 좋지 않았다. 끝나지 않는 겨울로 말미암아 제국의 각종 시스템이 붕괴가 되었으며, 각종 물자가 너무도 부족해진 나머지 치안은 제대로 유지가 되지 않았다. 그러한 극한의 상황 속에서, 제국은 결국 에스텔 공작을 민심을 진정시킬 사석(捨石)으로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 그저, 그것뿐인 단순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단지, 내게 있어 아주 지독한 이야기였던 것에 불과할 뿐.
하지만-
“아니. 그 때 네가 겪어야만 했던 일들은, 결코 우연이 아니야.”
비앙카는, 그런 나를 향해 고개를 내젓는다. 내가 알고 있던 모든 것은, 거짓으로서 점철이 되어 있었노라고.
“황제가 우리에게 진실을 밝혔어. 군중들의 뒤에 숨어 혼란을 조장하고, 에스텔 공작에게 모든 죄과가 있노라고 선동한 놈들의 주체가 바로, 그 개자식들임이 틀림없다고. 대륙의 모든 사람들이 네게 책임을 묻게 된 그 배후에는, 분명히 그들이 존재하는 것이노라고.”
“.....”
“그렇기에 난 그것들을 결코용서할 수 없어. 너는 네가 하지도 않을 일에 대해 마치 죄인인 것 마냥 모든 사람에게 지탄을 받고, 그토록 수모를 겪으며, 손가락질을 겪어야만 했지. 너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어떠한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오직 너만이, 그런 비참한 꼴을 당해야만 했다고.”
비앙카의 말은 지독히 싸늘했지만, 그 기저에는 도저히 숨길 수 없는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것이 내게도 똑똑히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니 나는 네가 데려온 그 여자가 싫어. 그 여자가 세르나드의 피를 물려받은 이상, 그 여자 또한 네게 혈채를 빚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
“...사라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어. 그녀 또한, 어떻게 보면 피해자에 불과해.”
나의 변명과도 같은 변호에, 비앙카는 그저 소리 없는 웃음을 드높일 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나를 향한 조롱과도 같이 느껴졌으며, 어떻게 보면 나를 향한 분노와 같이 여겨지는 웃음이었다.
“그 때, 너를 반드시 죽여야 한다며 뒷구멍에서 목청을 드높이던 쥐새끼들 또한 그리 생각을 했겠지. 네게는 어떠한 잘못도 없다. 다만,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너는 죽어야만 한다. 너는 단지 재수가 없었을 따름이다. 그래. 그런, 사소한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미안하지만 카인. 나는 ‘겨울의 마녀’의 심장을 터트리고 과거로 돌아왔을 무렵, 스스로에게 한 가지 맹세를 했었어. 다른 무엇이라면 몰라도, 너를 건드리고, 아프게 하며, 네게서 웃음을 빼앗아가는 이들을 전부, 내 손으로 잘라내어 버리겠노라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노라고. 설사, 이 세상을 적으로 돌리더라도, 나는 너를 지켜내겠노라고. 그리 맹세를 했었다고.”
“...비앙카.”
비앙카는 나의 뺨을 아주 살며시 어루만지며 내게 슬프다는 듯 속삭였다.
“그러니 나는, 그 여자가 정말로 싫어. 그 여자는, 지금까지 너를 아프게 했으며, 앞으로도 아프게 할 가장 큰 아픈 부분임이 틀림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