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0화 〉12. 흐르는 별 - 01 (110/201)



〈 110화 〉12. 흐르는 별 - 01

제국의 최상단에 위치한 북부 지방, 그곳에서도 가장 척박한 영토와 소수의 인구수를 자랑하는 에스텔 공작령은 언제나 고요하고 평온한 분위기가 맴도는, 평화로운 분위기가 일품이라 할 수 있는 한적하고 조용한 지역이었다. 물론, 좋게 포장해서 고즈넉하고 아늑한 분위기인 곳이지, 실상을 따져 보자면 정말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개털과 같은 동네이기에 외부인이 잘 드나들지 않은 끝에 강제적으로 조용하고 아늑해진 것에 지나지 않지만.

그런데 오늘, 에스텔 공작가는  동안의 조용하고 평온했던 분위기에서 벗어나 실로 오랜만에 떠들썩한 분주함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유를 따져보자면 매우 단순하였다. 수개월 전, 데카라즈난 공작가로 떠났었던 에스텔의 유일한 소공작, 카인 폰 에스텔이 다시금 에스텔 공작가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소공작이 공작가로 귀환을 하였는데 공작가의 사용인들이 그저 두 손을 내려놓은 채 바라보고만은 있을 수 없는 법. 공작가로 오랜만에 돌아온 소공작을 위한 만찬준비나, 기사단의 열병 준비 등으로 인하여 에스텔 공작가는 그간의 고요함을 잃어버린  어느새 소음으로 가득 찬 시끌벅적한 곳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정작, 그들이 영접준비를 하려 하는 소공작께서는 그런 소음이 못마땅하시기라도한 것인지 한숨을 푹하고 내리 쉬고 있었지만.

“돌아오셨습니까, 소공작님. 실로 오래간만에 소공작님을 다시 뵙는 것 같군요.”

총관이 그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덤덤하게 받아 넘기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오래간만이로군. 총관. 내가 없는 동안 에스텔 공작가에 별다른 일은 없었겠지?”

“애초에 에스텔 공작령은 별다른 일이 발생할 만큼 대단한 곳이 아니지 않습니까? 굳이 따지자면 소공작님께서 오래간만에 복귀하신 것이야말로 별다른 일이라고  수 있겠군요.”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로군.”

총관의 농기어린 말에 카인은 키득하고 웃음을 지어버리고 말았다.

“공작가에 이리 다시금 복귀하였으니 우선적으로 아버지를 뵙고자 하는데, 지금 아버지께서는 어디에 계시지?”

“공작각하께서는 현재 영지 순찰 중에 계십니다. 아마, 내일 중에 돌아오실 것이라 생각됩니다만.”

“영지순찰?”

카인은 현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자신의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년 전쯤, 그러니까 자신이 미래에서 회귀를 하였을 무렵에 이미 순찰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하건만 어째서 또 다시 순찰을 자처하시는 것이란 말인가?

“저도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다만, 무언가 확인하실 것이 있으시다며 비앙카 아가씨와 함께 순찰을 나가셨다는 것만 알고 있을 따름입니다.”

“...비앙카와 함께?”

혹시 비앙카를 보디가드 용도로 데려가신 것인가? 확실히, 무력으로만 따진다면 대륙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괴물 같은 계집애이니까. 설사 산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천재지변이 닥쳐오더라도 비앙카의 앞에서는 어떠한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다. 성격이 더럽고  같다는 치명적인 단점만 제한다면 비앙카는 현세에서 가장 강력한 마법사  한 명임이 분명하니까. 물론, 어디까지나 규격 외라 칭할  있는 아리아를 예외로 놓았을 때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음...”

비앙카에 대해 걱정을 하는 것 그 자체가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카인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내 자신이 총관과 얼굴을 마주하기로 했던 본래의 목적을 상기하고 말았다.

“뭐, 그건 그렇고,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말씀하시지요.”

“내 기억이 틀림없다면 현재 공작령의 재무관 자리가 하나 비어 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카인의 그러한 질문에 총관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공작령 전체의 예산을 조율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니고 있는 재무관의 자리에 어중이떠중이를 앉혀놓을 수도 없는 지라 현재 곤란하기가 말로 다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한숨을 푹하고 내리쉬며 그리 답을 하는 총관의 모습을 바라보며, 카인은 씩하고 웃음을 지어보이고 말았다.

“그거 잘됐군. 내가 마침, 재무관 자리에 걸맞는 인재 한 명을 데리고 왔는데 말이지.”

“그게 정말이십니까?”

카인의 말에 총관은 자신도 모르게 눈이 번쩍하고 뜨이고 말았다. 본디 에스텔 공작가는 대륙 전체를 따져보아도 별 볼일 없는 영지였던지라 기본적으로 고등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그리 선호하는 직장이라고는  수 없었다. 현재 공작가의 대소사를 처리하고 있는 이들은 오갈데 없는 고아들 중 일부 똑똑한 아이들을 총관이 직접 교육시킨 끝에 관리로서 길러낸 이들이었다. 평균적인 일처리 능력만 보자면 그럭저럭 쓸 만하긴 하였지만 아무래도 고등교육을 받은 인재들과는 비교를 할 수조차 없었다.

그렇게 인재난에 허덕이고 있던 찰나에, 소공작께서는 그러한 사정을 전부 훤히 꿰뚫고 있기라도 하셨던 것 마냥 재무관에 걸맞는 인재를 데리고 와주시다니!

그렇게 총관이 눈을 빛내고 있자니, 카인은 자신의 뒤편에 서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흑발에 흑안을 지니고 있는 여인 한 명을 자신의 앞으로 불러 세웠다.

“소개하지. 그녀의 이름은 사라. 에스텔 공작령의 새로운 재무관이 될 똑똑하고 유능하며 신선하기까지 한 대단한 인재이지. 뭣들하고 있어, 초면인데 서로 인사들 나누지 않고.”

“처음 뵙겠습니다, 총관님. 사라라고 합니다.”

사라가 총관을 향해 고개를 꾸벅하고 숙이자, 그녀를 바라보는 총관의 눈길이 황망하게 변화하고 말았다. 지금 이게 도대체 무슨 연극놀음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라 아가씨?”

어찌 그녀를 몰라볼 수가 있겠는가. 사라 세르나드가 카인의 약혼녀로서 이곳을 들락날락 거린지가 수년을 훌쩍 넘겼건만, 고작해야 머리카락 색과 눈동자 색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더욱 이상한 노릇이었다. 더군다나 사라 세르나드는 데카라즈난 공작가에서 괴한에게 납치를 당한 이후 그 종적이 묘연해진 상태. 그런데 어째서 지금 카인과 함께 이 자리에  있는 것이란 말인가.

“소공작님. 이건 대체 무슨...”

“총관.”

카인은 총관의 말을 중간에서 딱하고 자르며 끊어버렸다.

“내가 전해 듣기로 과거 나의 약혼자였던 사라 세르나드는 데카라즈난 공작가에서 그만 행적이 묘연해진 나머지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도저히 알 길이 없다더군. 그리고 이곳에 있는 여인은, 출신지가 불명확하긴 하지만 셈에 대해 뛰어난 재능을 지닌, 뛰어나고 이지적인 여인이기에 그 재능을 썩히는 것이 아까워 내가 직접 스카웃한 사라라는 이름의 여인일 뿐이다. 그것 하나면 충분하고,  이상은 어떠한 것도 거론할 필요는 없을  같군. 그렇지 않나?”

카인의 말에 총관의 눈동자가 아주 잠깐 동안 흔들리더니, 이내 잔잔한 미소를 띠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실로 그 말이 옳습니다. 소공작님.”

그리 말을 하더니 총관은 사라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예를 표하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사라 아가씨. 저는 미흡하나마 에스텔 공작가에서 총관직을 맡고 있는 보잘 것 없는 늙은이입니다. 아가씨께서 앞으로 공작가의 재무관의 역할을 맡게 되신다면 저와 얼굴을 마주할 일이 많을 터. 아가씨의 역할이 실로 막중할 따름이니 이렇게 미리 예를 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신을 알 수 없는 평민 여성에게 대하는 예라고할  없는 총관의 그 정중한 태도에, 카인의 미간이 살며시 찌그러지고 말았다.

“...총관, 지금 뭐하는 것이지?  말을 알아듣기는 했던 것인가?”

“잘 알아들었습니다. 소공작님. 눈앞의  분이 제가 익히 알던 사라 아가씨가 아니라, 그저 이름과 얼굴이 닮았을 뿐인 다른 분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런데 왜?”

“저는 그저 앞으로 에스텔 공작가의 재무관 역할을 맡게  여성분을 향해 예를 표하는 것뿐입니다. 문제가 되는 행위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만.”

사라를 향해 예를 표하겠다는 자신의 뜻을 결단코 굽히지 않겠다는 총관의 말에 카인은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차고 말았다. 하여간, 고집불통인 영감 같으니. 하긴, 9년 뒤에 남들은 전부 제도로 피신을  때 끝까지 이곳에 남아 죽음을 맞이하겠노라고 당당히 외치던 영감이다. 이제와 그 성격이 어디를 갈 리가 있나.

“...좋아. 어디  번 마음대로 해보라고.”

카인이 혀를 끌끌 차며 총관에게 사라를  부탁한다는 말을 하려던 그 찰나.

콰앙-!

실로 거대한 폭음이, 에스텔 공작가 전체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이건 도대체 무슨 소리지?”

도저히 영문을  수가 없는 그 소리에 카인이 질문을 던지자, 총관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은 태연한 태도를 유지하며 이리 답하기만 할 노릇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소공작님. 곧 익숙하게 되실 것입니다.”

총관은 한숨과 함께 말한다.

“한동안 조용하다 싶더니, 결국 다시 일상이 되어버리고말았군요.”

****

“...그래도, 제 시간에 맞춰 도착을 하기는 했군.”

에스텔 공작가의 정문 앞, 아이리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작은 목소리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카인이 데카라즈난 공작가로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도에 있는 황제가그녀를 호출하였기에 아이리스는 카인이 없는 틈을 타 재빠르게 제도로 달려가 급한 일을 몇 가지 처리한 후 곧장 에스텔 공작가로 돌아왔다.

허나 그럼에도 제도와 에스텔 공작가의 거리가 원체 멀었으며, 제도에는 처리해야만 하는 일이 산적해 있었기에 예상 외로 시간이 지체되고 말았다. 혹시 자신이 없는 사이를  타 다른 계집들이 그에게 꼬리를 쳐댈까 얼마나 걱정을 하였던가!

하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카인 또한 방금 전에야 데카라즈난 공작가에서 복귀를 했다고 한다. 그 말인  슨, 다른 계집들 또한 자신과 마찬가지로 카인과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여유 따위는 없었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이로서 혹시 다른 계집들 보다 한 발짝 늦춰진 것이 아닐까하는 불길한 망상은 이만 접어두어도 괜찮을 듯 싶었다.

“...아주 괜찮군. 그를 조만간 루멘티움으로 강제로 끌고 가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겠어.”

그리 말을 하며 아이리스는 실로 흡족한 미소를 띠우고 말았다. 마침 에스텔 공작가에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는 비앙카조차 자리를 비운 상태이니 더더욱 호재가 아닐 수 없으리라. 이번 기회를 틈타아예 도장을 찍어두는 것도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닌 선택일 테지. 그렇게 아이리스가 그와 함께하는 미래에 대한 행복한 망상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 때였다.

“...어머, 이게 누구신가요. 공사다망하기로는 대륙 일절을 다투는 고귀한 황녀 저하 아니신가요? 루멘티움으로 떠난다고 해서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되어 속이 시원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카인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귀신 같이 전해 듣고 다시금 돌아오신 것인가요?”

그런데 그 때, 아이리스의 귓가에 사람의 신경을 무척이나 거스르는 짜증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더욱 짜증이 나는 사실이 무어냐면, 저 짜증나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황녀인 아이리스조차 무시하지 못할 신분의 여인인지라 저 헛소리를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다는 점이었다. 뭐, 저 여자에게서 저 따위 헛소리를 듣고도 가만히 있을 생각은 애당초 요만큼도 없었지만.

“...아리엘 티에르.”

아이리스는 한기가 뚝뚝 떨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그리 중얼거리고 말았다.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구겨지고 말았다. 세상에서 꼴도 보기 싫은 면상에 대한 랭킹을 매겨보라면 가뿐히 세 손가락 안에는 들 정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여자였다.

“성직자라는 직업은 요즘 불경기인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의 집에서 무위도식을 하는 것이 성직자의 기본 소양인 것인가? 거머리마냥 에스텔 공작가에 계속해서 눌러 붙어 있는 꼬락서니가 참으로 눈에 거슬리는군.”

그리 말을 하며 아이리스가 실로 사나운 눈초리로 아리엘을 쳐다보자 그녀는 피식하고 비웃음을 머금으며 자신의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이런, 가벼운 안부 인사를 한 것뿐인데  없는 사람 하나를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것 같은 눈빛이네요. 아니다, 루멘티움으로 카인을 납치할 흉계를 꾸미고 있는 분께 참 어울리는 눈빛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디서부터 들은 거지?”

“그야, 처음부터가 아닐까요? 황녀 저하?”

그리 말하며 아리엘은 싱긋 웃음을 지어보일 뿐이었지만 그녀의 표정을 본 아이리스의 눈초리는 더욱 사나워질 뿐이었다. 그녀는 아주 예전부터, 뒷구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한 아리엘의 저 웃음이 꼴도 보기 싫었다. 아니, 대충 다섯 살 무렵부터 아리엘이라는 이름 그 자체가 싫었던 것 같기도 하다. 왠지 모르게 재수가 없는 이름이라 생각을 해왔던 것이 분명했다.

“...경고 하나 하지. 선은 넘지 말거라, 아리엘 티에르. 네가 그와 ‘과거’에 친밀했던 사이라는 것까지는 부인하지 않지만, 지금부터 내가 행할 일은 온전히 그와 나 사이의 일이니까. 그러니, 만약 섣부르게 나선다면-”

“한심하네요.”

“뭐?”

그리 말을 하는 아리엘의 입가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만큼은 결코 웃음을 짓고 있지 않았다.

“황녀 저하께서는 장차 제국의 황제가 되실 지도 모르시는 분이 아니셨나요? 그런 고귀하기 짝이 없는 분이, 고작해야 남자 하나 때문에 저를 향해 경고 운운을 하시다니. 이거, 자칫하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객사 ‘당할’지도 모르는 노릇이라 무섭기만 하군요.”

아이리스를 향한 아리엘의 말투는, 아무리 좋게 봐도 조롱이 어린 말투였다.

“하기야, 전하께서는 언제나 그러셨죠. 자신 하나의 행복을 위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짓밟는 것쯤은 서슴지 않아하셨죠. 아아, 그렇죠. 예를 들어, 겨울의 마녀를 토벌하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사랑하는 남자 하나를 아무렇지도 않게 희생시킨다던가...?”

허나 유감스럽게도 아리엘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콰앙-!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참격이 아리엘의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갔으니까.

“...입 닥쳐라. 아리엘 티에르.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주제에,  입을 나불거리지 마.”

내가 어떤 심정으로 그를 보내야만 했는지 아무 것도 모르는 년이.

그리 말하며 아이리스는 아리엘의 앞으로 성큼 다가간다.

“경고하지. 만약  번만  다시 그 때 일을 거론한다면-”

아이리스의  눈에서, 태양과도 같은 안광이 이글이글 불타오른다.

“너를 죽여 버릴 것이다. 아리엘 티에르.  기필코, 반드시.”

아이리스의 전신에서, 숨이 막힐 듯한 살기가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아리엘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아마, 공간을 가득 매우고 있는 살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숨이 가빠져오는 것일 테지.

그런데 그 때,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으, 흑...!”

아리엘의 입가에서 서러운 울음소리가 울려퍼지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다. 마치, 아이리스라는 여인이 아무런 힘도 없는 평범한 여인을 핍박했던  마냥.

“...저하, 너무하세요. 제게 어찌 그런 심한 말씀을...”

“...뭐?”

당연하지만 아이리스로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 것이란 말인가. 갑자기 뜬금없는 눈물을 뚝뚝 흘리다니. 드디어 아리엘이 미쳐버리기라도 한 것이란 말인가?

그리고 1초 후, 아이리스는 아리엘이 왜 이 따위 되도 않는 연극을 펼친 것인지 깨닫고 말았다. 그것도, 매우 유감스러운 형태로서.

“...황녀 저하.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누구를 죽이신다니요? 그리고 아리엘은 대체 왜 울고 있는 것입니까?”

그녀의 등 뒤에서 어떤 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녀가 아주  알고 있는, 어느 한 남자의 목소리가.

“.....”

순간,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은 아이리스가 아리엘을 바라보니 그녀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 있는, 실로 울화통이 터지는 모습이 두 눈에 들어오고 말았다.

선즙필승.

동서고금, 먼저 즙을 짜는 사람이 유리하다는 것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유구한 진리임이 틀림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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