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9화 〉11. 둥지 위로 날아간 새 - 11 (109/201)



〈 109화 〉11. 둥지 위로 날아간 새 - 11

이스타드에서 개최되는 축제는 제국 내에서도 상당한 유명세를 가지고 있는 축제이다. 또한, 무려 일주일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지속이 되는 축제이다 보니, 제국 각지에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기 위해 몰려들곤 하였다. 즉, 축제 현장을 돌아다니다보면 지체 높으신 귀족 나으리들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쯤은 별 대수롭지도 않은 흔한 일에 불과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중에서도 지나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이들이 존재하였다. 시끌벅적 하기가 일로 말을  할 수가 없는 축제의 한복판에서, 마치 세간의 번잡함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듯, 고아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를 내뿜고 있는 이들이 존재하였다.

흡사 백금을 연상시키는, 소복이 쌓인 새하얀 눈과 같은 머리카락을 지닌 아름다운 여인과, 그녀를 곁에서 호위라도 하듯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는 검은 머리의 남성은, 일대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고 말았다.

두 사람은, 축제를 즐기러 나온 여느 관광객들과는 확연히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주위의 시선을 신경 쓰지도 않으며, 마치목적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발걸음을 옮기며, 인파에 휩쓸려 도착한 곳을 구경거리로 삼곤 하였다.

애당초, 그들에게는 목적지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고, 딱히 관광을 하고자 하는 마음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걷는 것 그 자체가 그들의 유일한 목적이라 외치는  마냥.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속 걷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쩔 때는 발걸음을 멈추고 카페의 테라스에 마주 앉아 여유롭게 차를 마시기도 하였으며, 어쩔 때는 길거리의 악사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감상하기도 하였으며,  어쩔 때는 고즈넉한 돌담길에 걸터앉은 채로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구경하기도  때도 있었다.

그렇게 둘은, 실로 축제의 소음에 섞여든 채로 이 거리의 모습을 지켜보기만  뿐이었다. 그리고 둘은, 함께 하는 시간 내내 서로의 손을 맞잡고 있었다. 팔꿈치로 팔짱을 낀 상태로, 서로의 손과 손을 꽉 하고 부여잡은 그 상태로, 발걸음을 내딛으며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아.”

아리아는, 자신의 심장이 크게 두근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카인의 손의 감촉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의 팔꿈치가 자신의 몸에 맞닿고 있는 감촉이 느껴지고 있었다.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대로, 현재의 자신은 그의 옆자리를 독차지한 상태로, 그와 나란히 앞을 향해 걷고 있는 중이었다.

...이 어찌나 황홀하고 눈부신 일이란 말인가. 이것이 바로, 인간들이 흔히 말하던 여신의 기적이라는 녀석이 아닐까.

참으로, 근사한 일이 아닐  없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곁에서, 그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그와 같은 곳을 향해 걸으며, 그의 숨결이 자신에게  닿는 것을 느낀다는 것은, 어찌나 가슴이 벅찬 일이란 말인가.

그 탓인지, 아리아의 두 눈에는 이 도시의 축제 따위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자신의 옆에 있는 그의 옆얼굴에서, 도저히 시선을 뗄 수가 없었기에.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소음 따위,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그와 손을 마주잡고 있는 탓일까, 두근거리는 심장의 박동 소리가 너무도 커다란 나머지 이제는 아무 것도-

“...아아.”

...충분했다. 이것만으로도, 그녀는 모든 보수를 받은 것과 같이 느껴졌다. 이것 하나면, 충분하고도 남았다.  이상은, 바라지도 않았으며 바라서는 아니 된다고 생각한다.

흔히들 말한다. 사랑은, 쌍방통행과 같은 것이노라고.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행위는, 그것이 빙글 하고 돌아와 자신에게 다시금 사랑이 보충되기에, 다음의 사랑이 만들어지는 것이노라고. 그러니, 그저 일방통행에 지나지 않는 사랑은, 보충이 존재하지 않아 금방 힘이 다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노라고.

...하지만, 적어도 아리아에게는 아니었다. 그녀는 결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다른 어떠한 것도, 필요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오늘과 같이, 한바탕의 백일몽을 꾼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그거 하나면, 충분하고도 남는다. 설사 이 사랑의 끝이 보답 받을 길이 없는 무언가라고 할지라도-

그저, 그가 옆에 있어주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래, 그거 하나면... 충분했다. 아마도.

축제는 계속된다.

“...맛있어요.”

아리아의 양 손에는 현재, 꼬치가  개씩 들려 있는 중이었다. 길거리를 나다니던 와중, 노점에서 팔고 있는 꼬치를 신기하다는  쳐다보던 아리아를 위해 카인이 구입해 준 것이었다. 혹시 몰라 좌판에 존재하는 꼬치를 종류별로 하나 씩 다 사주었기에, 이미 아리아의 손에는 빈 꼬치가 뭉텅이로 존재하는 중이었다.

“음... 나는 생각보다 별로인데.”

카인은 꼬치에 꿰인 고기 하나를 빼어 씹으며 그리 중얼거렸다. 사실, 축제날 길거리 노점에서 판매하는 음식 종류는 맛을 따지며 사먹기 보다는 분위기에 취해 사먹는 것이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꼬치의 맛은 썩 좋다고 평가 할 수가 없었다.

‘제대로 된 것을 사주었어야 했는데.’

괜히 분위기를  이런 싸구려를 먹이는 것이 아니라 조금 돈이 들더라도 값비싼 레스토랑에 데려 갔어야 했다며 카인이 후회하고 있을 무렵, 아리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 흔들며 이리 말을 하기 만  뿐이었다.

“...정말로, 맛있는 걸요.”

아리아에게 있어 이미 맛 따위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하나, 카인이 자신을 생각해 이것을 사주었다는 의미 그 자체뿐이었다. 그러한 사실 하나만으로, 아리아에게 이 꼬치는 세상 그 무엇보다 맛있는 음식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축제는, 계속된다.

거리를 걷다보니 문득, 여성을 위한 장신구를즐비하게 모아놓은 가게  곳이 눈에 들어온다. 카인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돌려, 그 흔한 귀걸이 하나, 목걸이 하나도 착용하지 않은 단출한 차림새의 아리아를 바라보고 말았다. 물론, 그 따위 장신구의 착용 여부에 따라 사람의 격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장신구를 가지고 있는데도 착용하지 않는 것과, 하나도 가지고 있지 못해 착용을 하지 못하는 것에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하고 있었다.

“하나 사줄까?”

카인의 입에서 그러한 말이 새어나오자, 아리아는 아주 잠시 동안 망설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별다른 의미는 아니었다. 그저, 그에게서 선물이라는 것을 받아보고 싶다는 충동에서 비롯된 열망이었을 뿐.

“...네. 부탁드려요.”

아리아의 허락이 떨어지자, 카인은 아리아의 손을 붙잡고 장신구가 놓여 있는 좌판을 향해 천천히 걸어간다. 아리아는 어딘가 모르게, 자신의 얼굴에 열이 오르는  같다는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가 자신을 생각해준다는 사실  자체가, 이로 말을 할 수 없을 만큼 기쁘기만 하다. 그것도, 너무나.

“어떤 걸로 할래?”

카인의 질문에 아리아는 놓여 있는 장신구들을 힐끗하고 쳐다보더니, 이내 새침한 어조로 이리 대답 할 뿐이었다.

“아무 거나요. 카인님께서 골라주신다면 전 어떠한 것이라도 상관없어요. 정말이에요.”

“.....”

오늘이 인생에서 처음 마주하는 데이트이며, 남녀 사이의 오묘한 밀당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는 그였지만, 이러한 ‘특정 상황’과 관련된 오지랖에 대해서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보았기에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여자가 ‘아무거나’ 고르라고 해서 정말로 아무 생각 없이 아무거나 골랐다가는, 나중에 피를 볼지도 모른다는 교훈에 대하여는 더더욱.

허나 유감스럽게도 카인이 들어왔던 오지랖에는 이런 상황과 마주하였을 때 어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행동 강령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카인의 머릿속을 둥실둥실 떠다니는 생각은 오직 하나, 여자와관련된 문제는 ‘사랑의 힘’으로 극복하라는 기생오라비 같은 녀석의 쓸모없는 조언 뿐.

“...음.”

결국, 지금  순간 그가 택할  있는 방법이라고는 정공법 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무엇이 아리아에게 어울릴지 끊임없이 생각하며, 카인은 장신구 하나하나를 세심히 살펴가며, 신중하게 물건을 고르기 시작하였다. 이런 방면에 대한 안목이 존재하지 않는 그였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장장 2시간이 넘는 사투 끝에, 카인이 고른 것은 한 가운데에 눈꽃 문양이 그려져 있는, 자그마한 팔찌였다. 왜 눈꽃 문양이 그려진 팔찌를 고른 것이냐 묻는다면, ‘그냥’이라고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아리아와 눈꽃이, 잘 어울릴 같다는 생각을 무심코 해버리기도 하였고.

“마음에 드니?”

솔직히 말하자면, 장신구를 고르느라고 진이 다 빠져버렸지만, 그럼에도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감사합니다. 정말로, 마음에 들어요.”

선물 받은 팔찌를 손에 찬 아리아가, 저리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으니까.

그래, 그것으로 된 것이다. 그것 하나면, 충분하다.

...그렇게 축제는, 계속된다.

그렇게 그들은 하루라는 시간에 걸쳐, 많은 것을 보았고, 많은 것을 즐겼으며, 많은 것을 함께하였다.

...즐겁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순간 중, 가장 즐거운 시간임이 분명하였다. 즐거웠던 순간만큼, 빠르게 다가올 축제의 끝이, 두렵기만 하였다.

아아, 슬프다. 어째서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은, 이토록 빠르게 흘러가고 마는 것일까. 참으로 안타까우며, 야속하기만 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그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 지속되었으면 하건만-

어느새, 해는 저물어 버리고 말았다. 캄캄한 밤의 장막이 하늘에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도시 곳곳에서는 마법으로 인한 조명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둘만의 축제는 끝을 맺고 말았다. 마법이, 깨지고 말았다. 이제는 백일몽에서 깨어날 시간이 도래하고 말았다.

“.....”

“.....”

도시의 가장 높은 곳, 카인과 아리아는 그곳에서,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인해 빛을 발하고 있는 도시의 야경을,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순간이 바로, 카인과 아리아, 그 둘의 자그마한 축제의 종착점이었다.

“...오늘 하루 즐거웠니, 아리아?”

그리 말하며 카인은 그녀에게서  발짝 뒤로 물러나더니, 무릎과 허리를 약간 숙이며 그녀를 향해 예를 표하였다. 오늘 있었던 축제에서만큼은 주인과 시녀의 관계였던 것이 아니라, 한 명의 여인과 그를 에스코트하였던 기사였노라고 말하는 것 마냥.

그의 마음 씀씀이가, 나의 마음에 이토록 절실히 와 닿는다. 그것이, 너무도 기쁘기만 하다.

“...네. 즐거, 웠어요.”

말이 떨려나오지 않게, 마음을 다잡는다. 여기까지 와서, 끝을 멋없이 장식할 수는 없었기에.

아아, 그래. 정말로, 즐거웠다. 모든 것이 백색으로 가득 차 있던  세상, 나의 모든 것을 받아준 너와 함께 과거로 돌아온 이후, 나는 처음으로 안온함을 느꼈다. 애정을 느꼈다. 사랑을, 느끼고 말았다. 그 끝에, 사람이 좋아지고 말았다. 더욱더 사랑을 갈구하게 되고 말았다.

차라리, 이 순간이 그대로 멈춰버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 말로... 즐거웠어, 요...”

아리아가 바라보는 세상이, 점차 흐릿해지기 시작한다. 그녀의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하나 둘 지워지고 사라진 끝에, 오직 그의 모습밖에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카인, 님.’

나의 하나 뿐인 주인, 그리고, 나를 이 억겁의 굴레에서 해방시켜 줄지도 모르는, 하나 뿐인 남자.

당신을 바라보는 나는, 정말로-

호흡을 삼키며, 떨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빛나는 야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너무도 선명하게 비춰지고 있을 뿐이다. 참회를 갈구하는 죄인인 것 마냥, 아리아는 카인을 올려다보며, 자신의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카인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요.”

최고의 순간, 이토록 행복한 순간, 나는 네게 고하고 싶은 것이 있다. 밝히고 싶은 것이 있다. 더 이상, 네게 감추고 있는 것을 남기고 싶지 않다. 그러니, 나는.

“사실, 저는...”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모든 것을 밝히려고 하던 바로 그 때.

“...아.”

카인의 손가락이, 그녀의 입술을 살며시 매만진다.

“...카, 인님...”

...그의 맛. 그의 체취. 그것이, 아리아의 머리를 새하얗게 만든다.

“말하지 않아도 돼.”

“...네?”

“오늘 너와 나는 데이트를 하였고, 오늘의 나는 널 에스코트하는 기사였지. 그러니, 오늘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해.”

마치 처음부터 전부  알고 있다는 듯, 카인은 그녀를 살며시 감싸 안아 주었다. 서로의 등을 쥐어뜯을 듯, 으스러뜨릴 듯, 끌어안는다. 서로의 새하얀 숨결이 서로에게 맞닿으며.

“...아, 으.”

끝내 조용히, 그녀는 스스로의 두 눈을 감고 말았다. 그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고 찬란한 나머지,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기에.

“...저, 는.”

숨이 벅차올라, 이제 더 이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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