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11. 둥지 위로 날아간 새 - 10
이스타드에서 개최되는 축제는 대략 일주일이라는 시간에 걸쳐 지속된다. 이스타드에서 축제가 벌어지게 된 배경을 살펴보자면 정말로 별 거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 초대 황제였던 데브하르트가 이 일대의 압제자를 몰아내고 이스타드를 자유 교역 도시라 선포를 했던 것을 기념하는, 실로 시시하기 짝이 없는 일화에서 비롯된 축제에 불과하였다.
그 유래야 어떠하건 간에 천 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교역 도시로 번성을 하게 된 이곳에서는, 그를 기념하기 위해 축제가 개최되었으며, 축제가 시작한 지 닷새째가 되는 오늘로서 그 절정에 이르게 된다. 물론, 그래봐야 이곳에서 매년 축제가 개최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게 된 카인에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는 사실이었지만.
“축제라...”
사실, 카인 또한 지금까지 살면서 제대로 된 의미의 축제를 즐겨본 적은 없었다. 정말 유감스럽게도 에스텔 공작령은 구질구질할 정도로 가난하기 짝이 없던 동네였던지라, 이스타드와 같이 대규모 축제가 개최되기는커녕 내일 목구멍으로 넘길 식량 걱정부터 해야 하던 곳이었으니까. 가끔 영지민들과 기사들을 모아다가 대규모 술판을 벌였던 적은 몇 번 있지만, 그것을 ‘축제’라고 칭했다가는 이스타드의 주민들이 전부 그를 비웃을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축제날, 그것도 여자와 단둘이서 데이트라...”
이제 와서하는 말이지만, 카인은 오늘 난생 처음 축제라는 것을 즐기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데이트 또한 난생 처음으로 겪어보는, 미지의 영역에 걸쳐있는 무언가임이 분명했었다.
물론, 카인의 인생을 통틀어보자면 그와 인연을 맺은 여인의 수는 제법 되었으며 개중에는 깊은 관계까지 간 여인 또한 적지 않았다. 다만, ‘데이트’와 같이 알콩달콩 하면서 가슴을 간질거리는 듯한 이벤트를 함께했던 여인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었단 말이다.
우선 사라와는 가문과 가문 사이의 공인된 약혼으로 맺어진 연인 사이였다만, 동시에 정략적인 약혼에 지나지 않았기에 데이트는커녕 서로 간의 손을 잡은 적조차 극히 드문 사이에 불과하였으며, 비앙카나 황녀, 성녀 등에 이른다면 더 이상 말할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비앙카, 황녀, 성녀, 그리고 키리에와 일차적인 교류가 존재했던 시절은 다름 아닌 ‘겨울의 마녀’를 토벌하기 위해 전 대륙에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필사적으로 헤치며 북상을 하던, 원정대에 속해 있던 시절이었다. 제 아무리 로맨스라는 녀석이 극한의 환경에서 꽃을 피우는 잡초 같은 녀석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극한의 추위를 자랑하는 엄동설한 속에서 사랑 놀음이나 할 정도로 한가한 여정은 더더욱 아니었단 말이다.
...특히, 비앙카는 사람의 속을 뒤집어 놓기 바쁘며, 황녀는 두 주먹으로 그를 쥐어 패는 것에만 열중하며, 성녀는 시커먼 속내를 감춘 채 키득키득 웃기만 하고, 키리에는 너희들이 뭘 하건 간에 상관없다는 달관한 눈빛을 하고 있는, 실로 엿 같은 환경 속에서 로맨스나 ‘데이트’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 녀석이 있다면 그개자식의 머리뚜껑을 열어 필시 정신 상태를 확인해봐야만 할 테지.
결국 태어나서 지금까지 ‘데이트’라는녀석에 대한 일체의 경험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해서 그를 향해 오늘 있을 데이트에 대한 유용한 팁을 던져주는 사람은 더더욱 존재하지 않았으니,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평소에 입던 옷을 그대로 입은 채로 약속 장소로 어슬렁어슬렁 기어 나오는 것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소공작으로서의 정복을 갖춰 입고 나오는 방안도 잠시 생각해보기는 했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그것은 너무 과한 일이 아닌가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는 축제를 즐기러 나온 것이었지, 이곳에 있는 시민들에게 에스텔 소공작으로서의 신분을과시하러 나온 것은 아니었으니까.
데엥- 데엥-
“...조금 늦는데.”
그가 아리아와 만나기로 약조했던 이스타드의 중앙광장. 그 한 가운데 설치되어 있는 시계탑에서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진다. 어느덧 시간은 오후 2시에 가까워져가건만, 아리아는 아직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여자들이 스스로의 치장에 엄청나게 공을 들인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의 눈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조차 스스로를 꾸미는 것을 주저하지않는 생물이 바로 여자라는 존재가 아니던가.
과거, 텐트 밖으로 나올 생각하지 않고 꾸물럭 거리는 비앙카를 향해 ‘어차피 보여줄 사람도 없는데 대충 꾸미고 그만 출발하자’라는 말을 꺼냈다가 미간에 예쁜 구멍이 뚫릴 뻔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이 정도 지각쯤은 충분히 허용 범위 내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게 멍하니 흘러가는 구름을 감상하거나, 혹은 지나가는 사람이나 구경하며 열심히 시간을 죽이고 있을 무렵, 카인의 뒤편에서 너무도 익숙한 목소리 한 줄기가 그의 귓가에 와 닿는다.
“...카인님. 늦어서, 죄송해요.”
그 목소리에 카인은 한숨을 푹하고 내쉬며 목소리가 들려온 뒤편을 바라보았고-
“...아리아?”
그대로, 숨이 멎어버리고 말았다.
카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광경은, 흡사 백금을 그대로 녹여서 뽑아낸 듯한 새하얀 머리카락이 청광(淸光)에 젖어 사금파리같이 눈부신 빛을 발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때마침 어디에선가 불어온 바람에 아리아의 새하얀 머리카락이 살짝 나부끼는 그 몽환적인 광경은, 찰나의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모습을 발하고 있었다.
아리아는 현재, 자신의 새하얀 어깨가 그대로 노출이 되어 있는, 우아한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아니, 노출되어 있는 것은 아리아의 어깨뿐만이 아니었다. 어깨를 위시로 해 팔뚝, 등, 심지어 옆트임까지 약간 나 있어 아리아의 유려한 각선미까지 노출이 되어 있는, 축제날이 아니라 어딘가의 무도회장에서나 어울릴법한 너무도 고급 진 드레스였다.
‘사라, 쓸데없는 짓을.’
아리아에게 이러한 드레스를 입힌 범인은 너무도 쉽게 유추가 가능하였다. 애당초, 카인은 아리아에게 저런 드레스를 선물했던 적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카인이 아리아에게 선물한 드레스는 저렇게 고급지고 우아한 느낌의 드레스가 아니라 소녀가 입을 법한 귀여운 느낌의 드레스였단 말이다.
“...카, 카인님. 저, 어때 보이시나요...?”
아리아는 무언가 수줍은 듯한 어조로 그리 말을 하더니, 카인을 앞에 두고 스스로의 자태를 뽐내기라도 하는 것 마냥 몸을 한 차례 빙그르르 돌았다. 마치, 무도회장에서 왈츠라도 추는 듯한, 유려한 움직임이었다.
“.....”
아리아의 그러한 모습에, 카인의 심장이 왠지 모르게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무언가가달랐다. 왠지 모르게, 지금까지 두근거렸던 것과는, 다른 의미로 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아리아의 새하얀 어깨가 눈에 들어온다. 잡티 하나 없는 새하얀 팔뚝이 눈에 들어온다. 너무도 하얀 나머지 석고가 연상되는, 가녀린 등이 눈에 들어온다.
자신을 바라보는, 온화한 자색의 눈동자가 보인다. 그 자색의 눈동자 안에는, 오직 카인의 모습만이 담겨 있을 뿐이다. 폭포수가 되어 흘러내릴 듯한 새하얀 머리카락은, 그녀가 입고 있는 하얀 드레스와 지독하게도 잘 어울릴 뿐이었다.
“...아리아.”
어째서일까. 대체, 어째서일까. 지금까지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일이었는데. 어째서 자신은 지금 이 순간.
“예쁘구나.”
아리아가, 어여쁘다는 생각을 해버리고 만 것일까. 그것도, 무척이나 선명하게.
“...정말로요?”
대체, 어째서.
“정말로.”
카인의 그 말에, 아리아는 환하게 웃음을 지어 보인다. 사라의 조언을 듣고 이리 치장을 하기 까지 실로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자신을 향하는 카인의 부드러운 눈빛과, 진심이 담긴 칭찬을 듣고 나니 가슴 속에는 뿌듯함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아리아는, 그가 자신을 향해 ‘예쁘다’라는 말을 해준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행복할 따름이었다.
...한편, 카인 역시 현재 자신이 느끼고 있는 이 감정에 놀라버리고 말았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아리아와 처음 마주하였을 무렵, 그녀는 그저 평범한 소녀에 지나지 않았다. 10년 뒤, 대륙전체에 끝나지 않는 겨울을 불러올 ‘겨울의 마녀’라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을 정도로, 무력하기 그지없던 소녀였다. 기억상실에 걸려 어떠한 지식과 지혜도 남아 있지 않으며,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좌절감에 빠져 있어, 매사에 주눅이 든 기색이 역력하던, 카인이 지켜주어야만 했던 가녀린 소녀였다.
그리고 그 때로부터 고작해야 1년이라는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건만, 아리아의 모습은 많이 변해 있었다. 언제까지고 그 때 그 시절의 무력했던 소녀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건만, 어느새 그녀는 한 명의 여인이 되어 있었다. 고작해야 난생 처음 보는 드레스를 걸친 것만으로, 그가 이렇게 흠칫하고 놀라버릴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아리아의 모습을 보며 나는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정말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어느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을 감상이긴 했지만, 1년에 걸친 긴 원정 끝에 이 두 눈으로 ‘겨울의 마녀’를 직접 목도하였을 때 내가 느낀 감상은, 다름 아닌 그녀가 지독히도 쓸쓸하며, 외로워 보인다는 것이었다.
겨울의 마녀를 둘러싸고 있던 그 세상은 그저 새하얀 눈으로 표백이 되어 있으며, 주위에는 눈송이 말고는 어떠한 곳도 존재하지 않는, 고독한 세상이었다. 그저 눈 밖에 존재하지 않는 외롭기만 한 하얀 세상 속에서 홀로 주인으로 군림을 한다는 것이, 어떠한 일인지 나는 평생토록 이해를 할 수가 없을 테지. 다만 그녀와 처음 눈을 마주하였을 무렵, 나는 왠지 그녀가 울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결국 이해에는 이르지 못했다. 다만, 그녀가 품고 있는 그 거대한 고독과 외로움을, 내가 조금이나마 덜어주었으면 좋겠다, 라는 시시한 감상을 품어버리고 말았다.
아직까지도 화인(火印)으로서 남아 있는 광경이 있다. 전투가 끝이 나고 모든 것이 끝을 맺은 바로 그 순간, 겨울의 마녀는 내 검에 심장을 찔렸음에도 나를 향해 빙그레 웃어주었다. 나를 향해‘고맙다’라고 인사를 했었다. 그 때의 그녀는 정말로-
“.....”
하지만 지금의 아리아는 다르다. 이제 세상에 ‘겨울의 마녀’는 존재하지 않는다. 9년 뒤, 대륙에는 모든 것을 얼려버릴 혹독한 겨울이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분명 미래에 필연적으로 닥쳐올 절망을 대비하고자, 그리고 도구로 사용하고자 겨울의 마녀에게 ‘아리아’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있을 곳을 마련했던 것이 분명했을 텐데. 그러한 이유에서 나는 아리아를 거둔 것이었을 텐데.
어째서 나는 지금, 아리아를.
“...아.”
한 순간이나마 그녀를, 한 명의 여인으로서 바라보았던 것일까.
대체, 왜.
“...카인님?”
걱정과 염려로 가득 찬, 아리아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그 목소리에, 카인은 비로소 정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미안하구나, 아리아. 잠시, 다른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어.”
그래, 무엇이 상관이랴. 내 눈앞에 있는 여인은 그저 아리아일 뿐이다. 내가 귀애(貴愛)하며, 내가 끝까지 보살펴야만 하는 나의 하나 뿐인 가신이다. 그러니, 다른 감정은 잠시 옆으로 치워둔 채, 오늘 하루는 온전히 그녀를 위해서만 사용하도록 하자.
“그래, 혹시 가고 싶은 곳은 있니? 하고 싶었던 것은?”
카인의 질문에, 아리아는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내흔든다. 그녀는 애초에, 이 따위 축제 따위에는 흥미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그저, 그와 이 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에 마음이 들떴던 것일 뿐.
“...우선, 이곳을 걷고 싶어요. 카인님과 함께.”
그것 하나면, 아리아는 너무도 충분하였다. 그 이상은, 바라지 않는다.
아리아의 그 담백한 말에, 카인은 아주 잠시지만 쓴웃음을 머금더니, 이내 그녀를 향해 한쪽 무릎을 살짝 굽히며 다른 한 손을 그녀를 향해 내밀었다.
“...카, 카인님...?”
“아가씨와 함께 하는 것은 기사의 역할이니까. 오늘 하루 에스코트 하겠습니다. 부디, 허락해주시길.”
카인의 정중한 그 말에, 아리아는 무언가 떨리는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더니, 이내 그가 내민 손을 살포시 마주 잡고 말았다. 혹시라도, 그의 손을 놓치지 않도록. 아주, 꼭.
“...이런 저라도 괜찮다면, 기꺼이.”
아직, 축제의 끝인 전야(前夜)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만의 작은 축제는, 지금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