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11. 둥지 위로 날아간 새 - 08
“...이제 에스텔 공작가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인가?”
“데카라즈난 공작가에서의 제 용무는 전부 끝마쳤으니, 이제 돌아가야만 하겠지요. 더군다나 시기가 시기인 만큼, 이대로 식객 노릇을 계속 한다는 것 또한 염치가 없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데카라즈난 공작을 향해 공손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제국의 최고 권력자 중 한 명을 눈앞에 두고도 당당하기만 한 태도를 유지하는 카인의 모습을 보며 그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공작은 카인을 이대로 보내는 것이 상당히 아쉽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요 근래에 찾아보기 힘든 당당하고 예의가 바른 젊은이였다. 마음 같아서는 데카라즈난 공작가에 계속 머물게 하며 소공작인 페르젠이나 노엘과 더욱 깊은 교류를 맺게 하고 싶었지만, 카인의 말마 따라 현재의 데카라즈난 공작가는 공작의 개인적인 감정을 앞세울 만큼 주위의 상황이 그리 녹록치가 않았으니까.
“...그렇군. 소공작, 그대의 말이 옳다네. 내가 너무 내 생각만을 앞세운 것 같군. 확실히, 현재의 데카라즈난 공작가는 자네가 마음 놓고 이곳에 체류하기에는 썩 좋은 환경이라고는 할 수 없지.”
그러한 공작의 푸념을 몸소 증명이라도 하듯, 지금 이 순간조차 공작의 뒤편에서는 여러 인원이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사방을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광경이 카인의 눈에도 아주 잘 들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어디 그 뿐이랴. 카인은 저들이 저렇게 뛰어다니고 있는 지 그 이유에 대해서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허어, 그런 괴이한 사건이 하필이면 데카라즈난 공작가에서 일어나다니...”
공작이 푸념을 늘어놓는 ‘괴이한 사건’이란 말할 것도 없이 공작가에 체류하고 있던 세르나드 백작가의 일원들이 흔적 하나 남기지 않은 채 모조리 실종되어 버린 사건을 뜻하였다. 그것이 괴이한 사건이 아니라면 대체 어떠한 사건을 가리켜 ‘괴이하다’라고 표현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을 만큼, 하나부터 열까지 납득이 가지 않는 사건이었단 말이다.
우선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무인이 데카라즈난 공작가의 저택의 철통같은 보안과 경비를 뚫고 기사단을 농락한 끝에 세르나드 백작가의 하나 뿐인 여식을 납치한 것도 모자라, 데카라즈난 공작가의 뒤편에 위치한 숲에는 현 시대의 마법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힘든 공간 왜곡 결계가 설치되었으며, 뒤이어 세르나드 영애를 호위하던 일행들마저 흔적 하나 남기지 않은 채 실종이 되고 말았다.
덕분에 세르나드 영애가 이곳에 머물러 있는 동안 그녀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던 데카라즈난 공작가는 실로 환장할 것 같은 기분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납치범을 찾아 협상을 하건 조지건 간에 우선 납치범을 찾아내야만 사건이 진척이 될 텐데, 정작 세르나드 영애를 납치한 납치범은 어떠한 요구도, 해명조차 남기지 않은 채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유유히 사라지고 말았단 말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세르나드 영애를 납치하는 것 그 자체가 자신의 목적이었던 것 마냥.
“...흉수의 정체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라네. 어찌나 치밀한 녀석들인지 범행 현장에 증거 하나 남겨 놓지 않았더군. 아무리 생각해도 녀석들의 정체는 이런 범죄를 밥 먹듯 저질러온 극악무도하고 잔인하기 짝이 없는 범죄자집단일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일세.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깔끔하기 짝이 없는 솜씨로 타인을 납치하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지 않겠는가?”
“...음. 듣고 보니 실로 타당한 추리가 아닐 수 없군요. 각하.”
데카라즈난 공작이 말하는 ‘극악무도하고 잔인한 범죄자집단’의 리더격이라고 할 수 있는 카인은 공작의 말에 실로 오묘한 표정을 지어보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카인 본인이 생각하기에 자신이 저지른 일은 납치가 아니었거니와 극악무도한 범죄는 더더욱 아니었기에 스스로가 떳떳하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마다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약간의 견해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쯤은 이해할 수 있는 대범한 남자이기도 하였다. 더군다나데카라즈난 공작가는 이번 사건에 어떠한책임도 가지고 있지 않은 순수한 피해자의 입장이 아니던가?
“그리고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추측에 불과한 사실이지만, 아무래도 흉수들은 사악하고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고대 흑마법을 사용하는 무리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네.”
“흑마법!”
카인은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공작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 말았다. 자고로 타인과의 대화에서 터져 나오는 적절한 호응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대화를 이어나갈 의욕을 솟구치게 하는 법이 아니던가?
“물론, 내가 말하는 것은 현대의 정형화된 흑마법이 아닌, 아주 머나먼 과거에 사람을 산제물로 바쳤다고 전해지는 원시적이고 끔찍한 흑마법을 일컫는 것이라네. 돈을 바라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이쪽과 협상할 의지도 지니고 있지 않은 녀석들이 구태여 세르나드 영애를 납치한 이유를 추측하자니, 저절로 그 쪽에 혐의가 가는 것만은 어쩔 수가 없더군.”
“산제물!”
카인은 사라를 납치하여 산제물로 써먹으려고 한다는 정체불명의 범죄자 집단의 잔인하고 야만적이기 이를 데 없는 손속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고 말았다. 카인의 귓가에는 사악한 흑마법사들에게 납치된 끝에 산제물로 바쳐질 자신의 운명을 직감하여 지금 이 순간에도 애타게 자신의 이름을 외치고 있을 사라의 가련한 목소리가 메아리치고 있을 뿐이었다. 사라의 그런 모습을 상상하니 카인의 손은 덜덜 떨려오고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사라를 납치한 극악무도한 흉수를 찾아내 몸통을 반으로 찢어버림으로서 정의를 구현하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각하. 자고로 옛말에 이르기를 하늘의 그물은 크고 넓어 성긴 듯 보이기는 하지만 악인은 결코 빠져나가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세르나드 영애를 납치한 그 끔찍한 흑마법사들 또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그들이 신출귀몰하기 짝이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제국의 4대 공작가 중 하나인 데카라즈난 공작가가 진심을 다해 그들을 찾아내려 한다면 기필코 마각을 드러낼 것이라 믿습니다.”
지금 이 순간, 어딘가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을 사라의 가련한 모습을 떠올리며 카인이 진심을 다해 그리 말을 하자 데카라즈난 공작은 카인을 향해 실로 감명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흉수를 눈앞에 두고서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한 무력한 우리를 향해 그리 위로를 던져주다니.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네의 반만 같았어도 오늘과 같은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네. 고맙군, 에스텔 소공작.”
“무얼요, 정말 제게는 정말 과찬일 따름입니다. 각하.”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리 답을 하는 카인의 모습을 보며, 데카라즈난 공작은 무언가 마음을 굳힌 듯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그건 그렇고, 혹시 나의 딸아이로부터 그 이야기에 대해 전해들은 적은 있는가? 만일 들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내게 답을 되돌려줄 수는 있겠는가?”
“...어떤 이야기 말씀이십니까? 저는 데카라즈난 영애로부터 별다른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만...”
카인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리 답을 하자, 데카라즈난 공작은 자신의 뒤쪽에 서서 그들의 말을 얌전히 경청하고 있던 노엘을 향해 손짓을 하였다.
“이리 오거라, 노엘.”
“...예, 아버님.”
노엘이 실로 요조숙녀와 같은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데카라즈난 공작의 옆에 서자, 지금까지 말없이 카인의 뒤에 시립하고 있던 아리아의 표정이 대번에 사나워지기 시작한다.
‘가증스럽기는.’
다른 누구를 속인다면 모를까 아리아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카인의 명을 받고 모습을 감춘 채 사라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때,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모르는 것인지 카인을 향해 꼬리를 치는 것도 모자라 홍등가의 창녀 마냥 자신의 육체를 한 점의 거리낌 없이 그에게 들이대던 가증스러운 여자가 아니던가. 그런데 이제 와서 자신은 아무 것도 몰랐다는 것 마냥 저리도 수줍은 표정을 지어보이다니. 실로 가식의 극치를 달리는 모습이 아니던가!
‘역시, 카인님 곁에는 내가 있어야 해.’
그렇게 아리아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쓰임새에 대해 확신을 해버리고 말았다. 만약 자신이 없다면 카인은 저런 앞뒤가 다른 재수 없는 여자의 간교한 계략에 홀딱 넘어가실 지도 몰랐다. 그러한 생각을 해버리니 아리아는 그 때 더욱 강력한 섬광을 쏘아내어 저 계집의 머리통을 산산조각 내지 않은 그 때의 자신의 지나치게 자비로운 손속에 대해 한탄을 해버리고 말았다.
“딸아이가 워낙 수줍음이 많아 자네에게 제대로 된 이야기를 전하지 못했던 것 같군. 내가 자네에게 제안하고 싶은 것은 자네와 내 여식의 약혼 관련 문제였다네. 내가 전해 듣기로 자네는 어느 누구와도 약혼을 맺은 상태가 아닐 터. 자네가 괜찮다고 한다면 자네와 내 여식을 하나로 묶어주고 싶은 마음이라네. 이에 대해 자네는 어찌 생각을 하는가?”
데카라즈난 공작의 그러한 발언에 노엘은 자신의 얼굴을 살며시 붉혔으며, 아리아는 노엘의 그러한 꼬락서니를 가만히 바라보며 한 가지 유혹에 시달리기 시작하였다.
‘지금이라도 데카라즈난 공작가를 통째로 무너뜨려 버릴까?’
데카라즈난 공작의 질문에 카인이 아직 대답을 내놓지 않은 바로 지금이 적기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이 근방에는 마법을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광범위한 대(對)마법 결계가 쳐져 있기에 쉬운 일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없이 진심이 된 아리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정 방법이 없다면 까짓 거, 이 근방에 거대한 운석 하나 떨구면 되는 쉬운 일이 아니던가?
그렇게 아리아가 번민에 휩싸여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인은 데카라즈난 공작과 노엘의 얼굴을 한 번씩 번갈아가며 보더니, 이내 단호한 목소리로 그들을 향해 답을 하였다.
“제게 있어 실로 과분한 제안입니다만, 죄송하지만 공작님의 제안은 듣지 못한 것으로 하겠습니다.”
카인이 공작을 향해 내놓은 대답은, 명백한 거절의 의사였다.
“그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해줄 수 있나?”
카인의 거절을 예상이라도 했던 것 마냥 공작이 담담한 목소리로 그에게 그 이유를 묻자, 카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이리 말을 할 뿐이었다.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은 아닙니다만, 제게는 미래를 약속한 여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긴, 그러고 보니 자네는 대륙을 떠들썩하게 한 염문의 주인공이었지.”
그리 말을 하며 데카라즈난 공작은 카인의 뒤에 얌전히 시립하고 있는 아리아를 향해 잠시 시선을 가져다 대었다.
“저 아가씨 또한 자네와 얽힌 염문설의 주인공 중 하나인가?”
“...뭐, 틀린 말은 아니군요. 맞습니다.”
카인이 공작의 말에 순순히 긍정을 하며 고개를 끄덕인 그 순간, 아리아는 자신의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끼고 말았다.그 내막이 어떠하건 간에 지금 이 순간, 카인은 아리아를 자신이 보살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한 명의 ‘여인’이라 인정을 해준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여자와는 달리, 아버지는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이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들떠 오른 아리아는 데카라즈난 공작가에 자비를 베풀어 주기로 결심하였다. 데카라즈난 공작의 발언이 아니었다면 카인의 입에서 저러한 말이 쉽사리 나오지는 않았을 테니까.
“자네의 의견이 그리 확고하다면 이 이상으로 권유하는 것 또한 예의가 아니겠지. 나의 무례를 용서해주게나. 에스텔 소공작.”
“아닙니다. 저야 말로 과분한 제안을 받은 것에 비해 무례한 답변을 드린 것 같아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의외로 공작은 카인을 향해 두 번 권유하지 않고 선선히 물러났으며, 카인 또한 공작을 향해 예를 갖추며 뒤로 물러났다.
“...아, 공작님. 어디까지나 사족에 불과한 말입니다만, 따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만...”
“무엇인가?”
공작의 질문에 카인은 아주 자그마한 목소리로 무언가를 속삭이더니, 이내 다시금 고개를 숙이며 뒤편에 준비되어 있던 마차에 올라탔다. 이윽고 마차의 문이 닫히는 것과 동시에, 카인을 태운 마차는 빠른 속도로 작은 점이 되어 시야에서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점점 사라져가는 마차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며, 데카라즈난 공작은 실로 애석하다는 듯 입을 열고 말았다.
“정말로 아쉽구나. 저런 올곧은 청년은, 요즘 세상에 참으로 드문데 말이지. 한 가족이 되었다면 정말 좋았을 것을.”
“...그러게 말이에요. 정말로, 아쉽네요.”
마찬가지로 멀어져가는 마차의 뒷모습을 보며 왠지 모르게 눈을 뗄 수가 없는 노엘 또한 공작의 그러한 말에 쓸쓸히 맞장구를 치고 말았다.
왠지 모르게, 그녀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나오고 말았다. 원래, 첫사랑이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옛 격언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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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작님, 이대로 곧장 에스텔 공작가로 돌아가실 예정이신가요?”
나와 아리아가 앉은 마차좌석의 건너편에, 흑발에 흑안을 하고 있는 왠지 모를 생소한 얼굴의 여인이 나를 향해 그러한 질문을 던져오고 있었다.
그녀의 정체는 두말 할 것도 없이 사라였다. 그녀는 현재 세간에서는 행방불명으로 처리가 된 만큼, 아무래도 그 모습을 쉽게 드러낼 수가 없는 처지다보니 아리아가 마법으로 그녀의 눈동자와 머리카락 색을 바꾸어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과거의 사라 세르나드의 인상은 온데 간데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여인은 에스텔 공작가의 새로운 사용인인 사라뿐.
“아마도? 뭐, 다급할 것까지야 없지만 이 근처에서는 더 이상 볼일이 없으니까 말이지.”
“그렇다면, 바로 에스텔 공작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이스타드에 들러도 괜찮을까요?”
“...이스타드? 거기는 왜?”
이스타드는 제국 중부에 위치한 교역도시중 하나로서, 에스텔 공작가로 돌아가는 여정의 중간에 반드시 지나쳐야만 하는 도시이므로 사라의 제안을 들어주지 못할 바는 없었다. 어차피 에스텔 공작가로 돌아가는 것이 그리 서두를 일도 아니었고.
“제가 전해 듣기로, 얼마 뒤에 이스타드에서는 축제가 열린다고 해서 말이에요. 마차가 지금 이 속도를 유지하며 내달린다면, 축제 기간에 딱 맞춰서 도착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혹시 허락해 주실 수 있나요?”
그리 말을 하며사라는 실로 간절한 눈빛을 한 채로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뭐, 크게 상관이 없기는 한데.”
어차피 지나가는 길목에 있는 도시니까. 며칠 간 그곳에 머무르며 한가로이 축제를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안이겠지.
그런데, 그 때였다.
“...카, 카인님...”
내 옆에서, 아리아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로 나의 옷깃을 콕콕 잡아당기고 있었다.
“왜 그래?”
내가 어리둥절한 기색을 하며 그녀를 향해 질문을 던지자, 아리아는 어째서인지 방금 전보다 고개를 더욱 숙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리 말을 하였다.
“...저, 카인님께서 제게 그러셨잖아요. 저번에 그 일을, 성공적으로 끝마치게 된다면 제 소원을 한 가지 들어주신다고...”
“...아, 그랬었지.”
이제 기억이 난다. 아무리 그래도 자유 시간 하나 없이 사라의 호위를 맡긴 것도 모자라, 세르나드의 사냥개를 토벌하게 하는 일까지 부탁하였으니 이번 일이 끝나면 아리아가 원하는 소원 하나를 들어주겠다고 그리 약조를 하였었다.
“괜찮아. 내가 들어줄 수 있는 내용이라면 뭐든지 들어줄 테니까. 부담 없이 말해도 돼.”
내가 아리아를 향해 피식 웃으며 그리 말을 하자, 그제야 조금이나마 안색이 정상으로 돌아온 심호흡을 크게 하더니 결연한 기색으로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데이트요.”
“응?”
“이스타드의 축제날, 카인님과 단 둘이서, 데이트를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