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3화 〉11. 둥지 위로 날아간 새 - 05 (103/201)



〈 103화 〉11. 둥지 위로 날아간 새 - 05

“...그 더러운 입 닥쳐, 키리에.”

키리에의  말에, 아리엘은 입술을 꽉 깨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리엘의 두 눈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아니  전에, 아리엘은 증오로 인해 자신의 뇌가 새빨갛게 변하는 것을 느끼고 말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자신은 뭐든지 다 알고 있다는 것 마냥 입을 놀리고 있는, 키리에의 혓바닥을 뜯어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거세게 일렁이기만 할 뿐이었다.

“뭐든지  아는 척, 함부로 지껄이지 마. 네가 대체, 뭘 안다고.”

자신도 모르게 숨을 헐떡이고 만다. 얼마든지 반박 할 수 있었다. 키리에의 헛소리를 맞받아 칠 수 있는 반론 따위, 수십 개는 훌쩍 넘는다. 회귀하고 나서 지금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아리엘이 가장 많은 시간을 소모한 행위가 바로 자신이 저질렀던 행위에 대한 성찰 그 자체였으니까.

“그건, 내 탓이 아니야. 내 탓이 아니었다고.”

하지만 끝내, 아리엘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메아리조차 되지 못한 변명 뿐 이었다. 끝끝내, 아리엘은 키리에의 말에 어떠한 반론도 하지 못하였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키리에가 그녀에게 했던 말은, 아리엘 자신의 어둠이었기 때문이다. 키리에의 말이 옳았다. 자신은 남자 때문에, 사랑 때문에, 자신이 짊어지고 있던 모든 것에서 도망을 쳤으며, 그 결과 세상은-

- 아리엘. 나는, 나의 과오를 정면에서 마주하고 싶어. 속죄하고 싶어. 그러니...

멸망해버리고 말았다. 다, 죽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 그저 방관하고만 있던 자신이 있었다. 이제는 자신의 일이 아니라며, 모든 것에서 눈을 돌리고 있던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세상은 멸망하였고  끝에 모든 것은 파멸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과오는 전부.

“...나는.”

자기 탓.

전부, 자기 탓.

“...나는, 그러니까 나는...”

돌아갈 길을 잃은 채, 스스로가 어떠한 말을 해야 하는 지조차 잊어버린 아리엘을 앞에 둔 채로, 키리에는 그저 까르르 웃기만 하고 있었다. 그렇게 처량한 모습이야말로, 실로 네게 어울리는 광경이라 비웃기라도 하는  마냥.

“그래,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그동안 참으로 역하기 짝이 없었단다. 실상은 누구보다 음흉하고, 추악하며 자신만 생각할  아는 여자가 나를 향해 존댓말을 쓴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가식적으로 느껴졌었는지.”

“...뭐?”

아리엘이 자신을 어떠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건간에, 키리에의 말은 하나의 예인(銳刃)이 되어 그녀의 마음을 차갑게 베어나간다.

“아리엘 티에르. 여신의 지상대리자이자 여신으로부터 자신의 아이임을 증명하는 ‘권능’까지 하사받은, 만인으로부터 여신의 현신이라 불리 우는 자. 인세의 어떠한 성직자보다 월등한 신성력을 자랑하며, 아주 어렸을 적부터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는 등의 여러 가지 ‘기적’을 행사한,  시대의 성녀의 재림.”

키리에의 노래를 읊조리는 듯한 그 말은, 아리엘의 귀를 어지럽혀 나간다. 그것은 마치 죄인을 처형하기 직전, 죄인의 죄목을 상세하게 읊는 하나의 의식과도 같이 여겨졌다. 적어도, 아리엘에게는 그리 느껴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야. 적어도, 너와 나는 네가 그리 고결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 대해 충분히 파악할 만큼, 오랜 시간 알고 지내온 사이이니 말이야. 시간의 윤회(輪廻)속에 갇혀, 같은 시간을 쳇바퀴 돌  빙글빙글 돌아온 우리는, 서로의 속내를  이상 감출 것이 더는 남아있지가 않을 뿐이니.”

그래, 내가 너무도 오래 산 나머지 정신이 돌아버린 여자라는 사실을 네가 잘 알고 있듯, 나 또한 너라는 여자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너는 사실 성녀도, 여신의 현신도, 뭣도 아니다. 그저 애정에 목말라하고, 사랑으로 말미암아 다른 이들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았으며, 그 사실을 끝내 인정하지 못한 끝에 아픔에 몸부림치고 허덕이고 있는 한 명의 계집에 지나지 않는다.

그저, 태어나는  순간부터 너무 많은 것을 짊어져 왔기에  자신만이 깨닫고 있지 못하는 것일 뿐.

키리에는 입가가 마르기라도 한 것인지 자신의 입술을 혀로 할짝거렸다. 언제나 자신은 속세와는 상관 없다는 듯 빙그레 웃음만을 짓고 있던 그녀가,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말았을  어떠한 표정을 보여줄 지 실로 기대가 되었다.

“한 가지 알려줄까? 넌, 단순한 겁쟁이에 불과해. 여신을 향한 믿음도, 숭앙(崇仰)도, 신앙심도 전부-”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不信)에서 우러나오는, 그러한 겁쟁이 같은 여자에 불과하지.  여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야. 그저, 의지할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기만 할 뿐.”

“거기다, 자기 밖에 알지 못하는 한심한 여자이기도 하지.  과정이 어찌되었건 간에,  여신으로부터 권능을 하사 받은, 현세의 유일한 성녀였을 터.”

...키리에의 말은 더 이상, 그녀를 상처 입히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지 않았다. 그저, 단순한사실을 나열하고 있을 뿐이니까. 다만 냉혹하기까지  진실의 칼날은, 그 어떠한 인정도 없이 아리엘의 가슴을 도려내고 있을 뿐.

“하지만 넌 도망쳤어. 자신을 향한 세상 사람들의 기대가 어떠하건 간에, 하늘에서 내려온 여신의 신탁이 어떠하건 간에, ‘겨울의 마녀’로 인해 세상이 멸망하건 말건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그를 향한 후회와, 죄책감에 범벅이 된 끝에 세상이 멸망하는 것에 일조를 한, 그런 멍청한 여자에 지나지 않아. 그렇지?”

키리에의 웃음소리가 점점 커져만 간다. 그녀의 웃음소리는 곧, 그 둘이 서있는 이 공간을 가득 메워간다. 그 불쾌하기 짝이 없는 웃음소리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끝에,아리엘은 키리에의 말에 어떠한 반박도 할 수가 없음을 깨닫고 말았다.

...왜냐하면 키리에의 말은, 전부 사실이었으니까. 자신은, 자신이 생각해도 비겁한 겁쟁이에 불과한, 철없는 여자에 불과했으니까.

그녀는, 성녀(聖女)였다. 성녀로서 지음을 받았으며, 성녀로서 길러졌고, 그 끝에 성녀로서 추앙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을 해왔었다. 그것만이, 그녀가 살아가는 세계였으며, 그녀가 살아가는 이유였다. 그녀를 둘러싼 세상에서는 오직 여신만이, 그녀의 버팀목이 되어주었을 따름이었다.

여신의 이름 아래, 끝없는 평화를. 여신이 인도하는 아래 만인에게 완전한 평등을.

성전에 적혀 있는, 여신의 첫 번째 가르침.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여신의 지상대행자이자, 성녀라고 불리는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이라 생각하며 아무 망설임 없이 움직여 오기만 했었다. 그것이 고통이라고는, 자신에게서 흘러나온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챌 틈새도 없이, 그저 계속 앞만 보고 걸어오기만 했었다.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을 걸어가는 것 같은, 아픔  자체였다.

“...아.”

...하지만 자신은 바뀌고 말았다. 그와 함께한 1년, ‘겨울의 마녀’를 토벌하기 위한 원정 속에서, 그녀에게는 소중한 사람이 생겨버리고 말았다. 그를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그와 나누는 시시한 이야기조차 시간 가는  모르겠으며, 그와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느껴지는, 소중한 사람이 생겨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어느덧,  사람이야말로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해서는 아니  생각이긴 하지만, 어쩌면 자신이 섬기는 여신보다도, 그를 훨씬 더 사랑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아.”

‘겨울의 마녀’의 심장에 검을 꽂은 후, 시간은 과거로 되돌아갔다. 10년 전으로 돌아왔음을 깨닫고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모든 것을 버리는 일이었다. 그와 함께하기 위해, 그녀는 자신이 짊어진 모든 것을 버렸다. 흡사 도망이라도 치듯, 전부 내 팽겨 치고 그와 함께하는 길을 택하였다.

파직, 하는 소리와 함께 추억이 떠오른다. 꿈에서조차 잊지 못할, 그 때의 그 광경을 다시 한 번 떠올리고 만다.

언젠가의 그리운 초원. 끝없는 푸른 하늘. 그림으로 그린 듯한 아기자기한 오두막. 자신을 사랑해주는, 자신만을 바라봐주는 그의 모습. 그와 함께 했던 모든 시간. 그리고.

‘나의 아가.’

마음이 아팠다. 이제는 결코 돌아갈 길이 없다는 한 때의 과거라는 것을 너무도  알면서도,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자신이 존재하고 있었다.

아무 것도 없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곳에는 자신을 지탱하는 전부가 존재하고 있었다. 사랑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실이, 존재하였다.

그러니, 아리엘은 키리에의 말을 부정하지 않는다. 아니, 결코 부정할 수 없었다.

만약 그녀가 키리에의 말에 부정을 표한다면,  결과 자신이 행하였던 모든 행위를 부정하게 된다면.  때의 맹세도, 카인을 향한 사랑도, 전부 거짓이 되어버리고 마니까.

...그러니 후회하지 않는다. 이제 와서  따위 도발에 넘어가 얼굴을 붉힐 필요 따위는 없었다. 자신은 이미 모든 것을 각오하고, 마음에 품은 채로 대수림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던 것이다. 애당초 처음부터 바랐던 것은 오직 하나. 그것은 바로-

“...키리에.”

“...응?”

이제야 마음이 바로 선다. 더 이상은 망설일 필요 따위 없었다. 키리에 엘 데나리스와 낯짝을 마주한다는 불쾌감을 감수하면서까지 이곳에 온 목적을 다시   상기한다.

“다른 누구라면 몰라도, 네게서 만큼은 그 따위 말을 듣고 싶지는 않은데.”

내가 남자에 미처, 사랑에 미처 세상을 멸망시킨 것이 맞긴 하지만,  또한 그 세상이 멸망하는 것을 가만히 관조하고 있지 않았던가.

나와 너희들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 마냥, 마치 재미난 연극이라도 관람하는 관객처럼 행세하던 네게, 과연 나를 탓할 자격이라는 것이 갖추어져 있던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그 더러운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지 않는 편이 좋을 거야. 특히, 내 가족에 대한 일이라면 더더욱.”

너 따위가, 흥미단위로 입에 올리는 것이 허용된 사람들이 아니니까.

“싫다면?”

아리엘의 말에 키리에는 실로 재미있다는  미소를 짓기만 한다. 그 말에, 아리엘은 더 이상 어떠한 대꾸도 없이이리 응수하기만 한다.

“이렇게 하려고.”

...그것은, 어떠한 전조도 없었다. 마지막 순간, 아리엘이 자신을 향해 ‘무언가’를 했다는 것만큼을 가까스로 알아차렸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키리에의 목숨을 부지시켜 주었다.

주르륵-

“...어?”

스윽-

키리에는 자신의 뺨을 매만진다. 그녀의 잡티하나 없는 뺨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것은, 바로 피였다.

‘...어떻게?’

키리에는 손가락에 묻어 있는 자신의 피를 잠시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내 혀를 내밀어 피를 살짝 핥아보았다. 키리에의 새빨간 피에서는 청량한 풀내음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자신의 피였다. ‘겨울의 마녀’와의 전투 외에는, 그녀의 인생에서 피를 볼 일이 없었건만. 설마 원정대의 멤버 중 공격력이 가장 약하다고 생각되던 저 아리엘이 자신에게서 피를  것이라고는,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었단 말이다.

‘...재밌는데.’

순간, 키리에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고 만다. 정말로 재미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설마 그 아리엘이 자신에게 의외의 일면을 보여줄 줄이야.

정말로 제법이었다. 꼴에 감추어  한 수 정도는 있다는 것일까. 그래, 다른 계집들과는 달리 회귀는 겉멋으로 두 번이나 한 것이 아니란 말이지-

“너, 꽤나 강해졌구나. 아리엘.”

약간의 빈정거림과, 상당한 진심을 담아 키리에가 그리 말을 하자, 아리엘은 담담하기 이를  없는 표정을 유지하며 이리 말을 할 뿐이었다.

“원래 엄마는 강한 법이니까.”

특히, 자신의 자식이 관련되어 있는 문제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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