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8화 〉10.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 16 (98/201)



〈 98화 〉10.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 16

“...건방진...!”

카인의 발언에 중년인은 자신도 모르게 이를 으득하고 갈고 말았다. 실로 오만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 아닐  없었다. 지금 카인이 중년인에게 하는 말은, 방금 전 저 숲 속에서 자신들의 목숨을 거두는 일을 마치 곡식을 추수하는 것과 같이 여기던 하얀 머리 소녀의 태도와 하등 다를 바가 없지 않던가.

“이 따위 싸구려 적선 따위, 내가 넙죽하고 받을 줄 알았더냐? 카인  에스텔?”

그리 말하며 중년인은 카인이 자신에게 내던진 포션을 세차게 내던졌다.

쨍그랑-

중년인이 내던진 포션이 바닥에 부딪혀 박살이 나고 말았다. 그리고 그의 그런 행동을 충분히 제지할  있었음에도 가만히 지켜보고 있기만 하던 카인은 피식하고 웃음을 지어 보였다.

“같잖은 자존심이나 앞세울 때는 아닌 것 같은데?”

“그건 내가  말이다. 이렇게 된 이상, 수단과 방법은 가리지 않도록 하겠다!”

그리 말하며 중년인은 자신의 잘린 발을 주워든 후 발목의 절단면에 가져다 대며 무언가를 읊조렸다.

[나의 도움은 겨울을 지으신 여신에게서 임하는 것이로다.]

다음 순간, 중년인의 전신에서 빛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마치 시간을 거꾸로 되감는 것 마냥, 그의 전신에 나 있던 상처들이 빠른 속도로 아물어가기 시작한다. 그의 발목의 절단면에서 새하얀 빛이 꿈틀거리더니, 이내 근육과 근육이 이어지고 새살이 돋아가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마냥 절단된 발목이 원상복구 되기에 이르렀다.

“...그건?”

“신은(神恩)이다. 외부인에게 결코 들켜서는 아니 되지만, 이곳에서 너를 죽여 버린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

중년인의 으르렁거리는 듯한 대답에, 카인은 이해가 되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틀림없었다. 저것은 분명, 신성력이었다. 다른 것이라면 몰라도 카인이 신성력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지 않겠는가. 원정 기간 내내, 허구한 날 황녀한테 얻어터진 뒤 성녀가 행하는 치유를 받는 것이 일상  자체였었는데.

‘...아니, 성녀의 신성력과는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고.’

그 안에 깃들어 있는 힘의 형태는 성녀 아리엘이 구사하는 신성력과 굉장히 흡사하였지만, 결정적인 무언가가 다른 것 같았다. 굳이 표현을 해보자면, 중년인이 구사하는 힘이 신성력은 맞는 것 같은데 자신이 알고 있는 신성력은 아니라고 해야 할까?

‘어떻게?’

당연한 말이지만, 신성력은 그저 여신을 믿는다고 해서 개나 소나 다룰  있는 힘이 아니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망설임 없이 여신께 번제(燔祭)를 올릴  있을 만큼의 광신적인 믿음과,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결코 흔들림이 없는 신앙심을 갖추고 있는 이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에게서만 발현되는 것이 바로 신성력이라는 힘이었다.

카인이 너무도  알고 있는 성녀 아리엘 또한 겉으로 보기에는 무척이나 음흉하며 도무지 속내를 알 수가 없는 사이비 같은 여자이긴 하였지만, 그럼에도 그는 아리엘의 내면에 여신을 향한 굳건한 믿음과 신앙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카인은 눈앞에서 일어난 현상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신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무장한 성직자들도 발현하기 힘든 신성력을, 어찌 저런 개자식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한다는 것인가?

하지만, 지금은 한가로이 그런 의문점에 대해 고찰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닌  같았다.

“내 비록 죽을 때 죽더라도 네놈만큼은 저승길 동무로 함께 데리고 가겠다. 카인 폰 에스텔!”

파지지직-

중년인이 든 검에서 거대한 뇌전이 솟구치기 시작한다. 뇌전검 카르벨라. 검을  주인으로 하여금 막대한 힘과 뇌력을 안겨다 주는, 전설적인 위명을 지닌 명검.

현재 중년인이 들고 있는 뇌전검에서는, 도저히 경시할  없는 위력의 번개가 검신을 휘감고 있었다. 스스로의 생명기를 담보 삼아, 뇌전검에 깃들어 있는 모든 능력을 강제로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분쇄해 버릴 듯한 그 번개를 바라보며, 사라는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로 카인의 이름을 읊조리고 말았다.

“...카, 카인.”

사라 또한, 저 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저 검이 얼마나 위험천만하며 강대한 물건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단 말이다. 저 검이 뿜어내는 번개 앞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는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산조차 무너뜨리고, 거대한 호수조차 증발시키는 저 번개 앞에서, 한 인간의  따위는 무력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그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카인.”

...무서웠다. 일찍이 숙부에 대항했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숙부가 휘두르는  검 앞에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녀를 감싸 안는다. 그가 자신을 위해 저리 나서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정작 그가 다친다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않는가.

대체 어째서 일까. 카인은  숙부와 정면 대결을 고집한 것일까. 그에게 뇌전검을 안겨다주면서 까지, 모든 것을 결판내려고 하는 것일까.

...아팠다. 지난 세월 그토록 갈망해  자신의 자유 따위보다,  남자의 안위가 너무도 신경이 쓰여 어쩔 줄 몰랐다. 혹시 네가 나 때문에 다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너무나도 아려 미칠 것만 같았다.

“...사라.”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로 한 발짝 다가서자, 카인은 팔을 뻗어 자신을 가로막는다.

“거기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어.”

그의 등이, 자신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그가 왜 이런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인지. 미련하게, 적에게 무기를 던져준 것도 모자라, 굳이 검을 섞으려고 하는 것인지. 그것은 전부-

“...카인.”

결국, 사라는 그를 향해 손을 뻗지 못했다. 그가, 자신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으니까. 지금  순간에 이르기까지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해준 저 남자의 노력을 결코 무산시킬 수는 없었기에.

...응. 그러니 난  말을 따라야만 하겠지. 네가 그러라고 했으니, 나는 얌전히 따라야만 하겠지. 여기까지 와서, 네 짐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대신, 이 자리에서 나는 너의 싸움을 지켜보도록 하겠다. 나는 너를 믿는다. 너는 반드시 내게 승리를 가져다  것을, 나는 굳게 믿고 있다. 그러니, 나는 네가 행하는 싸움을, 마지막 순간까지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겠다.

그것이,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싸우는 방식이다.

터벅-

그러한 사라의 의지를 뒤로 하고, 카인은 다시금  발짝 앞으로 나선다. 어차피, 질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짊어지고 있는 것이 있는 이 자리에서만큼은, 패배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우우웅-

카인이 들고 있는 검에서, 푸른색의 오러가 새어나오기 시작한다. 허나, 완전한 오러는 아니었다. 그는 아직, 스스로의 생명기를 각성시켜 구현시킬 만큼의 깨달음에는 온전히 닿지 못하였다. 이제 한 발짝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지만, 그를 둘러싼 벽은 높고도 단단하였다.

그렇기에 부족한 깨달음은, 스스로의 수명으로 보충한다. 다시금 생명을 불태운다. 그렇게 그의 의지는 오러가 되어, 자신을 위협하고 있는 적에 대항해 주변을 환하게 비추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의 오러 따위 중년인이 들고 있는 뇌전검의 번개에 비하자면, 실로 어린아이의 장난과 같다. 중년인이 스스로의 생명을 저당삼아 휘두르고자 하는  검은, 일찍이 유래가 없을 정도로 세찬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하늘이 떨리고, 사방에 천둥이 울려 퍼지는 소리와 함께, 중년인은 드디어 카인을 향해 검을 내리 긋는다-

“죽어라!”

꽈르르르릉-!

뇌전검의 검신을 타고 극한까지 압축되어 있던 번개가 터져 나오며, 사방 천지에 뇌전의 폭풍이 공간을 침식하기 시작한다. 소용돌이치는 번개의 폭풍우가숲의 공터를 무참하게 유린한다!

“...오는가.”

번개를 휘감은 폭풍우를 바라보며, 카인 또한 자세를 잡는다.허나 부질없다. 그의 검에서 새어나오는 오러 따위, 흡사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이 미약하기 그지없을 뿐이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는다. 그에게는, 그만의 싸우는 법이 있었으니까.

“끼어들지 말거라. 아리아. 아직 미완성이지만, 시험해보기에는 괜찮은 상대 같으니.”

누구에게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낮게 중얼거리며, 검을 치켜든다.

우우웅-

카인의 오러를 휘감은 검이 미친 듯 진동한다. 1초 뒤에 다가올 폭풍을 눈앞에 두고, 그는 기억의 이드에서 물을 길어 올린다. 자신의 것이 아닌, 자신과 연결된 가느다란 실선을 타고, 다른 누군가에게서 흘러들어온 기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도달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한 가장 위대한 무인인 동시에 초월자. 고고하고 아름다웠던 나의 스승.

홀로 겨울의 마녀와 대적하였던  때의, 아이리스 엘 데브하르트를.

- 너만은 꼭 살아줘, 카인.

...그것은, 대체 언제의 그녀였을까. 금방이라도 흘러넘칠 것만 같은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스스로의  안에 ‘무언가’를 담아낸다.

다음 순간, 카인의 의념(意念)이 불완전하나마 하늘과 땅을 이었다. 그의 의지가 세계를 변혁시켜간다. 아득히 먼 하늘의 잔향을 향해, 그 때 그가 느꼈던 그 감동을 재현하고자 한다.

‘벤다.’

자신이 행하고자 하는 사실에  한 점의 의심도 없었다. 자신이 재현하고자 하는 것은 아이리스의 ‘하늘의 검’. 자신이 진정으로  때의 그녀를 재현한다면, 세상에 베지 못할 것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다음 순간, 카인의 뒤에 서 있던 사라는 환영을 보고 말았다. 태양이 반짝이며, 달이 스쳐 지나가고, 별이 쏟아진다. 천체를 구성하는 세 요소가  자루의 검에 담기는 그 순간.

하늘이, 둘로 갈라졌다.

“크아아아악!”

그가 휘두른 검의 궤적 안에 있는 모든 것이 갈라져 버리고 말았다. 하늘도, 구름도, 대지도, 그를 위협하던 번개의 폭풍도, 뇌전검도, 그리고 그 끝에  있던 중년인조차도.

전부, 반으로 갈라져 버리고 말았다.

카인이 내리그은 일참은, 그의 시야 내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베어내는데 성공했던 것이었다.

"...후, 우..."

...그리고 그런 일참을 내리그은 카인 또한, 멀쩡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의 오른팔은, 뒤틀리고 박살나버린 끝에 뼈가 살갗을 뚫고 나온 끔찍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자신이 내리그은 검격의 위력을 미처 감당하지 못하고, 그 여파가 스스로의 오른손에까지 미쳤던 것이다.

하지만 오른손에서 격통이 밀려오고 있음에도, 카인의 얼굴에서 고통으로 인한 표정의 변화는 없었다. 그저 언젠가의 그녀가 자신에게 보여주었던 그 검을, 온전히 재현하지 못했다는 아쉬움만이 남아 있을 뿐. 만약 자신이 그녀의 검을 제대로 구현했더라면, 이러한 부상은 애초에 입지 않았으리라.

그러한 감상을 뒤로 흘려 넘기며, 카인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중년인에게로 걸어 나간다.

“...으, 으...”

그는 아직, 살아 있었다. 비록 상반신이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잘려나간 끝에, 죽는 것만도 못한 신세가 되어 있음에도, 그는 여전히 생을 부지하고 있었다. 아마, 중년인이 구사하던 그 신성력과 유사한  덕이겠지.

“...카인, 폰 에스텔...”

카인을 바라보는 중년인의 눈동자에는, 이제 두려움만이 깃들어 있었다. 그 역시 한 명의 무인 나부랭이였다. 방금 전의 그 일참이,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깨달을 정도는 되었단 말이다.

그러한 중년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카인은 그나마 멀쩡한 왼손으로 검을 치켜 올린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그의 심장에 검을 꽂아 모든 것을 끝내려고 한  순간, 사라가 그의 손을 덥석하고 붙잡는다.

“...왜?”

카인의 질문에 사라는 자신의 뒷목을 한 차례 톡톡 두드리더니, 이내 작은 목소리로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반지.”

“네가  때 준, 그 반지?”

끄덕.

사라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카인은 자신의 품속에서 그녀가 그 때 준 반지를 꺼내들었다. 사라는 그 반지를  차례 바라보더니, 이내 바닥에 누워있는 중년인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너, 설마.”

카인은 그제야 사라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눈치를 채고 말았다. 그리고 바닥에 누워 오직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던 중년인 또한 사라의 의도를 알아채고 말았다.

“...그렇군. 정보, 정보를 필요로 하는 것이로군. 내가 알려주겠다. 전부 알려주겠다.  계집이 저주 때문에 밝히지 못하는 것을, 나는 네게 전부 알려줄  있다. 그러니 살려다오. 나는 아직 이런 곳에서 죽어서는 아니...”

퍼억!

“커헉!”

유감스럽게도, 중년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카인이 그의 턱을 걷어차 버리고 말았기에.

“더럽게 시끄럽고, 추하기 이를 데 없군. 그딴 정보, 몰라도 상관없어.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나는 널 살려둘 생각 따위 처음부터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그러니 너무 억울해하지 마라. 지난 세월, 네가 쌓아온 모든 업보를 되돌려 받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

그리 말을 하는 카인의 눈초리는 너무도 싸늘하고 차가워, 중년인은 자신이  숲에서 살아서 나갈  없음을 깨닫고 말았다. 억울했다. 대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렇게 버러지처럼 생을 마감해야만 하는 것이란 말인가?

“네가 대체 무슨 자격이 있어 나를 죽이겠다는 것이냐! 카인 폰 에스텔!”

중년인의 외침에, 카인은 그만 어처구니가 없어 웃어버리고 말았다.

“개소리를 아주 당당하게도 하는군.”

푸욱-!

그리 말하며 카인은 망설임 없이 그의 심장에 검을 꽂아 넣었다.

“...커, 허...”

중년인의 두 눈에서 생기가 빠르게 사라져가더니 이내 허무한 표정을 지으며 숨을 거두는 그 광경을, 카인은 그저 싸늘하기만  태도로 내려다보기만  뿐이었다.

“요즘은 쓰레기를 치우는 것도 자격이 필요했던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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