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4화 〉10.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 12 (94/201)



〈 94화 〉10.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 12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암중에서 카인과 데카라즈난의 기사단의 전투를 지켜보던 이들이 있었다.

“데카라즈난이 실패하였다. 결국 사라를 납치한 흉수를 놓치고 말았다.”

사라의 숙부, 게일 세르나드는 세르나드 백작가의 모든 사용인들을 모아 놓고서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읊조리고 있었다. 중년인의 앞에는, 각양각색의 복장을 입은 세르나드의 사용인들이 고개를 숙인  그의 말을 얌전히 경청하고 있었다.

데카라즈난 공작가가 알고 있는 이들의 공식적인 신분은 사라 세르나드의 편의와 시중을 위한 시종, 마부, 요리사 등이었지만 그들의 비공식적인 신분을 살펴보자면 세르나드 백작가에서 암암리에 길러낸 ‘사냥개’야말로 그들의 진정한 정체라 할  있었다.

세르나드 백작을 비롯한 직계혈통의 명령만을 들으며, 무력(武力)이 필요한 일에 동원이 되곤 하는 암중의 비수. 겉으로 보이는 세르나드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기 위하여, 뒷구멍으로 온갖 더러운 일들을 대신 처리해주는 것에 동원이 되곤 하는, 세르나드 백작가가 사역하는 비천한 들개 무리가 바로 그들이었던 것이다.

“흉수의 정체는 불명이다. 또한, 흉수가 사라를 납치한 이유 또한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흉수가 우리 측에 대한 사정과 정보를 거머쥐고 있다는 점이다.”

공교로웠다. 하필이면, 자신의 사랑스런 조카와 데카라즈난 소공작이 합방(合房)을 치르게 될 지도 모르는 이 역사적인 순간에 사라가 납치 되다니? 이것을 단순한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시기가 너무도 공교로웠단 말이다.

‘...굳이 따지자면 에스텔의 꼬맹이 측이 의심되기는 하는데...’

중년인은 아직까지도 잊지 않고 있었다. 카인이 데카라즈난 공작가에 당도했던 그 날, 사라와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딱딱하게 굳어져 버리던 그의 표정을. 마치 오래전에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나게 된 듯 애틋한 눈빛을 던지던 카인의 얼굴을.

...그리고, 자신이 평상시에 하던 것처럼 무심코 사라를 대하는 것을 보며 지극히 분노한 듯한 표정을 지어보이던 소공작의 색다른 일면까지. 굳이 용의자를 특정 지으라면, 에스텔 소공작이야 말로 가장 커다란 혐의점을 지닌 인물임이 틀림없겠지.

하지만, 중년인은 이내 자신의 그러한 생각을 고개를 내저으며 부정해버리고 말았다. 우선, 방금 전 데카라즈난의 기사단과 정면에서 맞서 싸운 의문의 흉수는 실로 대단한 무위를 떨쳐보였다. 전투 중간 중간에 오러로 추정되는 빛을 뿜어낸 것으로 미루어보아, 아마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무인으로 추정이 되었다.

‘그 등신 같은 찌질한 놈이 설마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무인일 리가 없지 않겠는가?’

중년인의 기억 속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카인 폰 에스텔은 사라의 얼굴을 바라보며 치근덕대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실로 찌질하고 한심한 등신에 불과하였다. 그런 카인이, 무인으로서 극에 도달했다 일컬어지는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하였을 리가 없었다.

거기다 결정적으로 에스텔 소공작은-

“하암, 무슨 일이지? 이렇게 오밤중에 대체 무슨 소란이야?”

아직도 상황파악이 덜 된 듯한, 마치 자다 깬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언제나 곁에 항상 데리고 다니는 하얀 머리 소녀와 함께 그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보아도 방금 전의 놀라운 무위를 자랑하던 정체불명의 침입자와, 졸려 죽겠다는 표정을 지은 채로 하품을 하며 입이나 쩍하고 벌리고 있는 소공작이 동일인물이라고 하기에는 무리수가 너무나도 많았단 말이다.

‘...그래, 아마 아닐 것이다.’

중년인은 카인에게서 의심의 시선을 거두며 자신 앞에 모여 있는 ‘사냥개’들을 향해 마지막으로 명령을 내렸다.

“지금부터 사라를 회수하러 간다. 귀중한 ‘상품’이니 회수 과정에서 어떠한 흠집이 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사라를 납치한 흉수는 죽여도 괜찮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인지 한 번 물어보고 싶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손속에 자비 따위는 두지 않아도 되니 일처리를 확실히 해야 함을 명심해라.”

중년인은 엄포에 사냥개들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기만 할 뿐이었다.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무인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냐 징징거리는 인간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일대일 결투라면 몰라도,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전쟁터에서‘사냥개’들을 감당해낼 인간은 그리 많지 않다. 사냥개 개개인은 그리 강하지 않았지만, 대신 그들은 끈질기고, 집요하며, 독하였다.

그리고 사냥개들은 기척조차 없이 하나  모습을 감추기 시작하였다. 납치범이 데카라즈난 공작가를 벗어난 지 시간이 꽤나 경과하였다. 지금부터 그들을 따라잡으려면 서둘러야 할 것이다. 그렇게 사냥개들이 전부 자취를 감추고  후, 중년인은 에스텔 소공작이 있는 곳을 마지막으로 힐끗 쳐다보며 자신 또한 모습을 감추었다.

그렇게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눈치를 채지 못하였다. 에스텔 소공작의 곁에 있는 하얀 머리 소녀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의미심장한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다는 사실과.

이 자리에 있는 에스텔 소공작에게는, 그림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

데카라즈난 공작가의 저택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한적한 숲. 카인은 아직까지 사라를 양손으로 끌어안은 채 숲의 한복판을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방금 전, 공녀를 비롯한 데카라즈난의 기사들과 한바탕 칼춤을 춘 탓인지 체력이 생각 이상으로 급격하게 소모가 되고 말았다.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한다면 쉬어둘 수 있을 때 최대한 쉬어둠으로서 체력을 회복해두는 편이 좋았다. 조금 뒤부터는, 방금 전과는 비교도 할  없을정도로 날뛰어야 하는 일들이 발생할 테니까.

...어차피, 카인은 이 숲을 빠져나갈 생각 따위는 추호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숲이야말로 그가 이번 계획에서 최후의 전쟁터로 삼기로 결심하고자  장소였으니까. 세르나드가 기르고 있는 ‘사냥개’들과, 사라의 숙부라는 그 개새끼를 끌어들이기 위해 마련한 연회장이 바로  숲이었다는 의미였단 말이다.

카인은 방금 전의 충격으로 인해 자신의 품 안에서 정신을 잃고 있는 사라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살짝 스러 넘겨주었다. 앞으로  시간,  시간 뒤면 모든 것이 결판나고 말 것이다. 네가 그동안 감내해와야만 했던 모든 불합리한 일들이 끝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네가 그동안 흘려야만 했던 눈물만큼, 앞으로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지금  순간부터 행하고자 하는 싸움은, 너의 자유를 위한 싸움이며, 동시에 지난 20년간 너의 아픔을 알아차려 주지 못했던, 나의 속죄를 위한 싸움이니까. 회귀 전에는 네가 루시안 폰 투르니젠 같은 얼간이와 결혼을 하도록 놔둘 수 밖에 없었지만, 이번에는 네가 사랑하는 사람과 이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도록 하겠다.

...루시안 그 새끼가 얄미워서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 절대로.

그 때였다. 카인이 지니고 있던 통신용 마도구에서, 아리아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 카인님. 세르나드 백작가의 사냥개들이 추적을 시작했어요. 앞으로, 몇 분 뒤면 카인님이 현재 계신 곳에 당도할 것 같아요.

- 그래 알려줘서 고맙다, 아리아.

안 그래도 그것들이 언제쯤 이곳에 당도할 것인지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던 찰나였다. 이제 슬슬 손님을 접대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카인은 발걸음을 아까보다 조금 더 빠르게 한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여유가 남아 있던 지라 카인은 생각난 김에 아리아에게  가지 질문을 던져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있지, 아리아.

- 예, 카인님.

- 방금 전, 공녀에게 사용한 마법 말이야. 위력이 너무 강했던 것 아니야?

아리아의 시기적절한 저격 덕에 아무런 피해 없이  자리를 이탈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솔직히 말해 그 빛의 섬광은 위력이 강해도 너무 강하였다. 일반적인 사람, 아니 일반적인 기사가 그런 공격을 사각에서 맞았더라면 그대로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렸을 정도로 고화력의 마법이었단 말이다. 아마, 공녀에게 흑룡편이 없었더라면 죽지는 않았더라도 팔다리 중 한 짝이 실종되어 버린다는 불상사가 일어났을지도 모를 만큼, 아리아의 마법은 너무도 강하였다.

- 당시 상황이 워낙 급박해서 말이에요. 위력에 대한 조절을 실수한  같아요. 그리고, 그 정도로 강한 마법을 날려야만 공녀가 겁을 먹고 추격을 단념할 것이라 생각했었어요. 만약, 제가 주제가 넘었던 것이라면 사죄드릴게요.

아리아의 실로 막힘없는 대답에, 카인은 대체 뭐라 답을 해야 할지 머뭇거리고 말았다. 애당초, 앞에서는 위력조절을 실수했다 했으면서 뒤에서는 일부러 고화력의 마법을 사용한다는 저 말은 모순된 것이 아닌가?

“아니, 뭐, 주제넘었다고 할 정도는 아닌 것 같고... 네가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긴 하니까...”

카인이 머뭇거리며 아리아에게 답변을 하자, 마도구 너머에서 아리아의 기색이 환하게 변한 것이 여기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 제가 잘했다는 의미인가요? 그런가요? 아니, 그런 거 맞죠? 그렇죠?

“...뭐, 그런 것 같은데.”

카인이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이자, 아리아는 다시 이해할  없는 추궁을 해온다.

- 그럼 비앙카님과 비교를 하면요?

“...뭐?”

갑자기 여기서 비앙카의 이름은  튀어나오는 것이란 말인가?

- ...음, 그러니까 비앙카님도 저도, 같은 마법사잖아요. 제가 최근들어 생각을 조금 해보았는데, 비앙카님과 저의 포지션이 조금은 겹치는  같아서 말이에요. 물론, 그런 남을 살상하기 위한 마법만 잔뜩 익히고 있는 그런 무서운 분과 카인님을 곁에서 보좌하기 위한 여러 유용한 마법을 익히고 있는 제가 함부로 비교대상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굳이 비교를 해보자면 누가  도움이 되는가 궁금해서 말이에요.

“.....”

아리아의 말을 가만히 듣자하니, 아무래도 아리아와 비앙카의 숨이 막히는 혈투가 끝을 맺으려면 멀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중 하나가 숨을 멎는 그 순간까지 이 싸움은 끝이 나지 않을 지도 모르겠지. 그 날 그렇게 피가 터지토록 싸워놓고서도 아직도 뭔가가 부족했던 것일까.

하지만 이 자리에 아리아가 있었고 비앙카가 존재하지 않았으니 카인이  수 있는 말은 오직 하나 밖에 없었다. 카인은 이 자리에 없는 비앙카에게 잠시 애도를 빌어준 후 뻔뻔스레 입을 열어 아리아에게 답을 해주었다.

“...음, 네가 더 잘한  같아.”

제, 제가  카인님께 도움이 된다는 말씀인가요? 그런 의미로 제게 말씀하신 거 맞죠?

“그래, 맞아. 최근 들어 네 도움을 무척이나 많이 받았으니까.”

그에 반해 회귀 이후 비앙카가 카인에게 해준 것이라고는 사기, 납치, 인위적 기억상실, 마법으로 몸에 예쁜 구멍을 여러 개 뚫어주는 일 밖에 해주지 않았으니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이번만큼은 아리아의 압승임이 틀림없었다.

‘...미안하다. 비앙카.’

이것도 전부 평소에 쌓은 업보가 돌고 돌아 이런 식으로 네게 돌아온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내가 이겼어.’

지금 이 순간, 아리아는 무척이나 고양된 기분을 맛보고야 말았다. 에스텔 공작가로 돌아가 비앙카 그것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준다면 어떠한 표정을 지을 것인지 참으로 기대가 되기만 할 뿐이었다.

“...으음, 카인?”

 때였다.줄곧 정신을 잃고 있었던 사라가 의식을 되찾은 것인지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자신이  이곳에 있는 것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말았으며, 아직까지도 카인이 자신을  안에 끌어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말았다.

“...카, 카인...”

“왜 그래, 사라?”

사라가 무언가를 머뭇머뭇하며 제대로 말을 이어나가지 못하자, 카인은 약간 어리둥절한 기색을 하며 그녀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 그게...”

자신의 인생에서 외간 남자의 품에 이토록 오랜 시간동안 안겨 있었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모든 것이 신경 쓰이고 거슬렸다. 자신을 품에 안으며 카인이 무겁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자신에게서 풍기는 체향을 맡으며 카인이 인상을 찌푸리지는 않았을까 하는 이상한 생각만이 그녀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킁킁-

‘...체, 체향은 그대로 인 것 같은데.’

다행히 자신에게서 이상한 냄새는 나지 않는 것 같았다. 이럴  알았더라면  방에서 나오기 전에 향수라도 뿌리고 오는 것을-!

“...갑자기 코는 왜 킁킁 거리는 거야?”

“...가, 감기에 걸린  같아서.”

사라가 새빨갛게 변한 얼굴로 애써 변명을 하고 있자, 수신기 너머에서 아리아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온다.

- ...카인님, 지금 이상한 생각 같은 거 하고 계신 거 아니죠? 그렇죠?

“.....”

머리가 아파온다. 카인은 벌써부터 에스텔 공작가의 자신의 아늑한 방이 그리워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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