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10.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 11
오늘 밤, 데카라즈난 공작가의 밤공기는 지극히 어수선하기만 하였다. 사방에서 경보마법이 요란스럽게도 울려 퍼진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데카라즈난 공작가의 저택에 펼쳐져 있는 결계를 뚫고 이곳에 침입을 감행하였다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공작가의 기사들은 이 상황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지난 천 년간, 제국의 4대 공작가 중 하나로 이름이 높은 데카라즈난 공작가에 잠입을 할 정도로 간이 큰 침입자는 손에 꼽을 정도였으며, 수많은 마법사들이 항시 결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곳에 발을 딛을 정도로 능력이 있는 침입자는 더더욱 드물었다.
그런데 오늘, 데카라즈난이 자랑하던 불패의 신화는 깨지고 말았다. 복면을 쓴 침입자는 감히 더러운 흙발을 한 채로 데카라즈난 공작가에 잠입을 한 것도 모자라, 자신의 한 손에는 축 늘어져 있는 어느 여인을 마치 전리품인 것 마냥 그 음흉한 손길로 매만지고 있었던 것이다.
“...세르나드 영애!”
침입자의 손에 납치를 당한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본 공작가의 기사들이 비명을 내지르고 말았다. 경악스럽게도, 저 정체불명의 괴한은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아무런 힘도 없는 가녀린 아녀자를 납치한다는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르고야 말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사라 세르나드는 현재 데카라즈난 공작가가 맞이하고 있는 귀중한 손님 중 한 명. 이대로 그녀가 납치를 당하도록 두 손을 놓고 있는다면 데카라즈난 공작가의 명예는 땅바닥에 떨어지게 되고 말 것이다!
“쳐라!”
사라 세르나드를 납치한 채 유유히 사라지려 하는 납치범을 향해 기사들이 덤벼든다. 전후좌우, 침입자의 사각을 노리며 그의 측면을 노리는 합동공격은 실로 도망갈 길을 찾아볼 수가 없는 완벽한 협공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얕았다. 침입자의 실력은 실로 놀라웠다. 찰나의 순간, 한 손으로 검을 뽑아든 침입자는 자신의 좌측면을 노리는 기사의 검에 자신의 검을 마치 뱀과 같이 얽히게 하였다.
치륵-
“.....!”
마치 자석이라도 된 것 마냥 침입자의 검과 자신의 검이 달라붙어버린 것을 인지한 기사는 순간적으로 당황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흡사 채찍과도 같은 발차기가 기사의 관자놀이를 정통으로 가격하였다.
콰앙-!
침입자의 발차기에 정신을 잃은 기사가 저만치 나가떨어지는 것을 놓치지 않고, 침입자는 허공을 박차고 공중에서 두 번이나 신형을 뒤집는다. 그리고 1초 후, 그가 방금 전까지 있던 빈자리에 기사들이 내질렀던 검이 허무하게 허공을 스치고 지나간다. 기사 네 명이 펼친 필살의 협공은, 그렇게 무위로 되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이럴 수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침입자는 다시금 공중에서 몸을 한 차례 빙글하고 돌리더니, 마치 허공에 발판이라도 있는 것 마냥 두 다리를 굳건하게 박찼다. 다음 순간, 뒤로 팽팽하게 당겨졌던 침입자의 검이 기사들을 향하여 흡사 빛살과도 같이 폭사하였다.
콰아아앙-!
사특한 어둠을 불사르는 눈부신 빛의 궤적이 공중을 가로지른다. 푸르른 빛과 함께 강대한 질풍이 동반되며, 도저히 두 발로 서 있을 수가 없을 만큼의 강대한 충격이 기사들에게 전해진다.
“크아아악!”
침입자의 검에 담긴 파괴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기사들이 튕겨져 나가고 말았다. 그를 공격하던 기사들이 무력화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3초. 찰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 짧은 시간에, 그를 공격하던 기사 4명이 전부 무력화된 것을 깨달으며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신음성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한 자였던 것인가.”
틀림없었다. 방금 전, 침입자의 검에서 새어나오던 찬란한 빛은 무(武)의 극한에 도달한 자들만이 터득할 수 있다던 지고한 경지의 힘, 오러임이 분명하였다. 그제야 이 자리의 기사들은 자신들의 눈 앞에 서 있는 침입자가 실로 경탄할 만한 경지에 오른 무인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침입자는 자신이 펼치고 있는 이 기운을 오러라고 착각하고 있는 기사들의 오해를 굳이 교정해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 정체가 어떠하든, 자신이 펼쳐내고 있는 것은 오러와 상당히 비슷하기는 하였으니까.
“물러서지 마라! 적의 경지야 어찌되었든 저 자는 데카라즈난의 휘(諱)를 정면으로 거스른 자! 그대들의 등 뒤에는 데카라즈난의 명예가 달려 있음을 명심해라!”
기사들이 침입자의 가공할만한 무위에 주눅이 들어 뒷걸음질을 치고 있자, 그들의 등 뒤에서 호통이라도 치는 듯한 사나운 목소리가 기사들을 꾸짖는다. 침입자가 눈을 들어 바라보니, 기사들의 뒤쪽에는 데카라즈난 공녀, 노엘 폰 데카라즈난이 완전무장을 한 차림새로 침입자를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공녀인가.’
침입자, 그러니까 카인은 상당히 분노한 듯한 공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이런 일이 발생할지도 모르니까 빠르게 데카라즈난 저택을 빠져나가고 싶었지만, 예상 외로 기사단의 반응이 빨랐으며 결정적으로 공녀쯤 되는 인물이 이런 자리에 직접 나타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카, 카인...”
카인의 품 속에서 정신을 잃은 척 누워있던 사라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그를 바라보며 불안하기라도 한 듯 자신의 몸을 살짝 움츠리고 말았다. 카인은 아무 말 없이 사라를 자신의 품 안으로 끌어당기더니, 이내 그들을 향해 쇄도해나가기 시작하였다.
슈확-
“건방진! 물러서지 마라!”
그리 외치며 공녀는 자신의 허리춤에 있던 검을 뽑아들더니 자신이 앞장서서 침입자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하였다. 이에 힘을 얻은 기사들 역시 기세가 회복되어 일제히 검을 치켜든채로 공녀의 뒤를 뒤따르기 시작한다.
“흠.”
하지만 카인의 얼굴은 어떠한 미동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일이 조금 귀찮아졌다는 한숨을 내쉬었을 뿐.
- 아리아, 후방지원 부탁한다.
아리아를 향해 그리 송신을 보내며 카인은 자신을 목표로 삼은 채 어지럽게 허공에 수를 놓고 있는 여러 병장기를 보며 손에 들려 있던 검을 앞으로 쭉하고 내밀었다.
파지징-!
다음 순간, 카인의 검에 맺혀 있던 오러가 크게 세력을 확장하더니 이내 화염마냥 이글이글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이윽고 그가 한 발짝 앞으로 걸음을 내딛으며 횡으로 공간을 베어내자 그를 향해 덤벼들던 병장기들이 이내 깨끗하게 잘려나간다.
‘좌측에서 셋, 우측에서 다섯. 뒤쪽에서는 둘.’
굳이 시선을 돌려 적을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흐르는 별’을 통해 읽어내는 전장의 기류는, 그 어떠한 감각보다 더욱 정확한 정보를 그에게 가져다주고 있었으니까.
카인의 몸이 히끗하게 변화한다. 오른발을 축으로 시계방향으로 회전을 하며 검을 휘두르자, 그가 펼쳐내는 오러의 기운이 폭풍과도 같이 전장을 휘감는다. 이 자리의 어느 누구도 몰랐지만, 이는 카인이 ‘어스름한 달’의 역월(逆月)을 자기 식으로 변형을 가미해본 한 수였다.
키리링-
“크윽!”
실로 공방일체라고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는 그의 한 수에, 주위의 기사들은 그 기운을 감히 경시하지 못하고 주춤거리고 말았다.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흐름’을 응축시킨 후, 등 뒤편에 일순간에 해방한다. 와류(渦流)가 거세게 소용돌이치며 그의 몸이 포탄과도 같이 앞으로 쏘아져나간다. 기사들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그의 모습은 자신들의 코앞에 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카인은 손 안에서 검을 반 바퀴 회전시킨 후, 검의 손잡이로 자신의 주위에 있던 기사들의 턱을 강하게 요격한다. 조준은 하지 않았다. 흐름을 조절해, 딱 정신을 잃을 정도만의 타격을 그들에게 가하였다. 데카라즈난 공작가의 기사들에게는 어떠한 원한도 없었다. 그들을 죽일 필요까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풀썩.
카인의 주위에 있던 기사들의 신형이 차례차례 허물어져 간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 카인은 그저 그곳을 스쳐 지나갔을 뿐인데 기사들이 알아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 듯한 실로 기괴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침입자의 실로 놀라운 무위를 보며 주위의 기사들은 적의 실력에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적이었지만 저 자는 존경을 받을 가치가 충분하였다. 완벽한 상태도 아니고, 한 손으로는 납치한 여인을 품에 안고 있는, 한쪽 팔이 봉인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에서 저토록 놀라운 실력을 내보이다니!
‘이쯤이면 충분하겠지.’
어차피 카인의 목적은 이들과 검을 겨루는 것이 아니었다. 이 정도까지 했으면 사라의 주위를 맴도는 사냥개들 또한 정체불명의 괴한이 사라를 납치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도 남았을 터. 데카라즈난 공작가를 성공적으로 빠져나간 후야말로 본편의 시작이었다. 고작해야 이러한 곳에서 힘을 과도하게 뺄 필요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쉰 카인은 발끝에 살며시 힘을 주며 이 자리에서 도망치기 위해 슬쩍 주변의 상황을 살펴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때였다.
“모두 그 자에게서 물러서라!”
쐐애애애액-!
거대한 파공성과 함께 무언가 꾸불꾸불한 뇌전과 같은 것이 카인을 향해 쇄도한다. 그 속도가 원체 빠른지라, 한 발짝 뒤늦게 공격을 알아차린 카인은 자신을 덮쳐오는 검은 번개를 향해 급하게 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아앙-!
사방이 떨쳐 울리는 소리가 주위를 진동시킨다. 그가 고개를 들어 검은 번개의 정체를확인하니, 그것은 기형적으로 길다란 길이를 자랑하는 연검(軟劍)의 일종이었다. 다만, 보통의 연검과 다른 점이 있다면 기계적인 장치로 구성이 되어 있으며 검신 전체에 휘어져 있는 톱니 같은 칼날이 달려 있어 조금만 스치더라도 사람을 피투성이로 만들어버릴 것만 같은 무시무시한 흉기라는 점일까.
‘이게 그 유명한 데카라즈난 공작가의 흑룡편(黑龍鞭)인가?’
그러고 보니 들어본 적이 있었다. 데카라즈난 공작가에는 대륙 8대 기보 중 하나, 그 존재만으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무인이나 대마법사와 호각을 다투게 해주는 명검인 흑룡편이 존재한다는 소문을.
소문으로 들을 때는 그저 과장된 말이겠거니 하며 코웃음을 흘렸지만, 이제 보니 전혀 과장된 말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고작해야 무기 주제에 오러와 정면에서 맞부딪히고 있음에도 손상 하나 없는 내구도를 자랑하고 있는 것도 모자라, 흑룡편 안에 잠재되어 있던 막대한 거력은 그의 손을 아직도 쩌릿하게 만들고 있었다.
‘공녀는 분명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무인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고작 무기 하나 바꿔들었다고 해서 일시적으로 마스터에 근접한 무위를 자랑하는 그와 정면에서 맞부딪힐만한 힘을 손에 넣을 수 있다니! 실로 대륙 8대 기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놀라운 성능의 무기가 아닐 수 없었다.
좌우지간 흑룡편을 손에 든 공녀의 힘을 경시할 수는 없었기에 카인은 한층 진지한 눈빛을 하고 자세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야 이쪽을 바라보는군. 오러를 각성한 무인들이 오만하기 짝이 없다는 말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본 말이지만, 그 중에서도 네 녀석은 꽤나 특출 난 존재인 것 같구나. 네가 보기에, 나는 관심을 가질 가치조차 없는 버러지로 보였던 모양이지?”
공녀가 코웃음을 치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와중에도, 카인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공녀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만은 정말로 지양해야 할 사태였다. 그는 어디까지나 사라를 구하러 온 것이었지, 공녀와 무(武)를 겨루러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니었으니까.
“...나를 무시하는 건가.”
괴한이 자신을 무시했다 생각한 것인지 공녀의 눈썹이 한 차례 꿈틀거리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가공할 만한 소리와 함께 검은색의 해일이 카인을 덮쳐왔다.
콰앙-!
“큭!”
공녀의 흑룡편은 너무 강하고 빠른 나머지, ‘흐르는 별’로도 마지막 순간에야 궤도를 비틀어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공녀의 흑룡편은흡사 한 마리의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도 되는 것 마냥 몸체를 이리저리 구불거리며 카인을 재차 덮쳐온다.
촤라라라락-!
흑룡편이 활짝 펴진다. 검편(劍片)에 붉은 기운이 진동하기 시작하며, 세찬 소용돌이와 함께 마치 똬리를 튼 한 마리의 뱀인것 마냥 카인과 사라를 감싸 안는다. 만약 저 공격에 적중당한다면, 카인은 발에 짓밟혀 찌푸려진 토마토 같은 신세가 되어버리고 말테지.
‘이 여자가미쳤나.’
자신은 그렇다 쳐도 자신의 품 안에 사라가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런 광범위한 공격을 펼치다니! 아무래도 감추어둔 패 중 하나를 꺼내들지 않으면 이 순간을 모면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카인이 각오를 다지고 있을 때였다.
그 때, 공녀는 느끼고 말았다. 침입자가 서 있는 뒤편의 하늘에서, 무시무시한 마력의 파동이 터져 나오고 있다는 것을!
‘저격!’
콰아아아앙-!
허공을 격하고 덤벼든 순백의 섬광이 공녀를 덮쳐든 것과, 위협을 느낀 공녀가 흑룡편을 회수하여 방어태세로 전환한 것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주르르륵-
공녀를 향해 덮쳐든 섬광의 위력이 어찌나 강력하던지, 흑룡편을 둘러 대부분의 충격을 흡수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10여 미터나 밀려났을 뿐만이 아니라 반경 수 미터의 대지가 그대로 뜯겨나가며 뒤집어지고 말았다.
“...크윽!”
손이 쩌릿쩌릿하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의 눈앞에 있던 침입자와 사라 세르나드의 모습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아마, 방금 전의 소란을 틈 타 몸을 빼낸 것이 틀림없겠지.
“...공녀님!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다.그보다, 침입자를...”
서둘러 쫓으라는 말을 하려다가, 공녀는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사라 세르나드를 납치한 괴한은 그렇다 치고, 방금 전 그녀에게 저격을 감행한 마법사의 마법에는, 그녀를 향한 명백한 살기가 담겨 있었다.
‘아니, 살기가 아니었다. 그건 분명...’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방금 전 마법에는 단순한 살기가 아니라.
왠지 모를, 노엘 본인을 향한 사심이 담겨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치 그녀가 이대로 죽어 버렸으면 하는, 노엘에게 있어서는 정체 모를 악의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 노골적인 악의에, 노엘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고 말았다. 대체, 자신이 언제 누군가에게서 원한을 산 것인가 곰곰이 생각을 해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