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9화 〉10.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 07 (89/201)



〈 89화 〉10.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 07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린 끝에, 사라가 도망쳐  곳은 아무도 없는 곳이었다. 이곳이 대체 어디인지, 사라조차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별로 상관이 없을  하였다. 어차피, 지금 그녀는 다른 어떠한 누구와도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사라는 문득,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 바라보았다. 하늘은, 청명하고, 화사했으며, 하얀 구름이 떠다니는, 언제나의 하늘과 같았다.

하지만, 사라에게는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있어 하늘은, 마치 넝마주이와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추레하고, 볼품이 없게만 느껴졌다. 그래, 마치 현재 그녀의 모습 마냥.

“...하, 아...”

슬펐다. 가슴이 아파,  이상 하늘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이대로,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이곳에, 더는 있고 싶지 않았다. 데카라즈난 공작가에는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이토록 아프게 한 이곳에 더는 있고 싶지 않았다. 그를 자신에게서 빼앗아간, 데카라즈난 공녀가 살고 있는 이곳에 더는 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라는 이곳을 떠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그녀는 결코 이곳을 떠날  없었다. 왜냐하면, 이곳에는 그가 머무르고 있었으니까. 자신이 그토록 애달파하고, 가슴 저려하고, 지금 이 순간조차 보고 싶어 하는 그가, 현재 데카라즈난 공작가에 머무르고 있었으니까.

결정적으로, 그는 사라와 한 가지 약속을 맺었다. 그는, 사라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기필코, 너를 구해주겠노라고. 너를 둘러싼 악몽을, 내가 반드시 끊어주겠노라고. 그러니, 조금만 더 견뎌달라고.

...모순이었다. 사라 세르나드라고 하는 여자에게 있어, 그것은 실로 모순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을 이토록 아프게 하는 절망도, 슬픔도, 가슴을 도려내고 있는 현실의 차가움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자신을 살아가게 하는 기쁨도, 행복도, 유일한 희망도, 전부 그에게서 비롯되고 있는 이 꼬락서니란-

...마치,카인 폰 에스텔이란 남자가, 사라 세르나드라고 하는 여인의 모든 것을 구성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카인.”

다시금 눈에서, 눈물이  방울  하고 떨어진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울보가   같다는 시시한 감상을 품어버리고 말았다.

...아아, 실은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전부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은, 자신의 잘못이었다. 자신의 업보였단 말이다. 현재 자신이 느끼고 있는 모든 아픔은, 자신이 초래한 결과물에 불과했다.

지금으로부터 수년 전, 그와 처음 마주하였을 때부터, 몇 개월 전 그와 정식으로 파혼을 하게  그 순간까지, 자신은 그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 일말의 애정을 느끼지도 못하였다. 사라 세르나드에게 있어, 카인  에스텔과의 약혼은 그저 ‘일’에 불과했다. 사무적인행사에 불과했다. 개인적인 사감에 섞일 여지 따위,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하였다.

카인이, 자신을 향해 애정 이상의 감정을 품고 있다는  따위, 너무도  알고 있었다. 애당초, 그는 자신을 향한 사랑을 감출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단 말이다. 자신의 행동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그 모습은, 어린 사라에게 있어 실로 피에로와 같다 생각이 들 뿐이었다.

그렇기에 외면했다. 그가 자신을 향해 건네는 사랑을, 애정을, 헌신을, 전부 무시하였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어떠한 사감도 가지지 않는 것이, 결과적으로 볼 때 서로를 위한 길이라 굳게 믿었었다.

...그리고, 그 뒤로 많은 일이 있었다. 제도(帝都)의 황궁, 한밤중의 테라스에서 그와 은밀한 밀어(蜜語)를 나눈 적이 있었다. 데카라즈난 공작가, 오랜만에 마주한 그의 앞에서 숙부에게 핍박을 당한다는 광경을 들키고야 말았다.

무서웠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만큼은, 사실은 자신이 이토록 초라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하필, 다른 누구도 아닌 네 앞에서, 자신의 본모습을 보이게 될 줄은 몰랐다. 자신의 초라한 본질을 보며, 나를 향해 비웃음을 흘리지는 않을까, 그것이 너무도 두려웠다.

그러나, 너는 그렇지 않았다. 너는나를 보며, 화를 내주었다. 분노해주었다. 지금껏 내가 살아왔던 인생에 대해, 함께 슬퍼해 주었다.

...처음이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았던 것은. 처음이었다. 다른 누군가가 자신을 위로해주었던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한 자신을 보며, 내가 너를 구해주겠노라고, 당당하게 선언을 하던 사람은. 나의 모든 처음에는, 언제나 네가 곁에 있어 주었다.

지금 이 순간, 나를 구해주겠다고 하는 네 선언은, 실로 무모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현실을 제대로 내다보지 못하는 철없는 어린아이의 치기와도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느껴졌다. 어떠한 이해타산도 없이, 순수하게 나를 위하고 있는 너의 마음이, 그만큼 내게는 절실히 와 닿았던 것이다.

그렇게 어느 샌가, 너를 바라보는 나의 심장은 두근거리고 있던 것 같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한다. 그러니, 남녀 사이의 따스함도, 애절함도, 그리고 애정도,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허나 그럼에도, 한 가지만은 분명히  수 있었던 것이 있었다. 이 순간, 너를 바라보기만 하면 이리 세차게 맥동하고 있는 나의 심장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세차게 두근거리고 있는 것임이 틀림없노라고.

...하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모든 것은, 옛날 옛적에 끝이 나고 말았다. 나의 이러한 마음은, 이제 네게는 결코 닿지 않는다.

너는 알고 있을까. 여기까지 와서야, 나는 너를 마음에 품고, 너만을 바라보게 되었지만, 정작 너는 단 한 번도 나를 돌아보지 않고 있다는 것을.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에서는, 단 한 점의 사심도 비춰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그래, 그가 자신의 입으로 이리 말하지 않았던가. 자신들의 사이는, 이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노릇이노라고. 엎어진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고, 깨어진 거울은 다시 하나가 될  없는 것 마냥.

...아팠다. 무엇이 아팠냐면, 모든 것이 아팠다.

한 때, 자신에게 전심(專心)을 다하던 그의 사랑이, 더는 자신에게  닿지않는다는 것이 아팠다. 이제 다시는, 네가 과거와 같이 나를 귀애해주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 아팠다.

그리고, 다시는 나를 돌아보지 않을 너를 바라보며, 혹시 나를 향할지도 모르는 너의 사랑을 애걸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도 아팠다.

그랬었구나. 과거의 너는, 나를 바라보며 이러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구나.

너는 대체, 이러한 감정을 어떻게 참아낸 것일까. 나는 가슴이 이렇게 아픈데. 지금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이 아픈데. 심장이 너무도 욱신거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데-

너는 어떻게, 수 년 간이나 이러한 아픔을, 참아낼 수 있었던 것일까.

...어째서, 나는 네 감정을 몰라준 것일까. 어째서,  마음을 외면했던 것일까.어째서, 네 마음을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헤아리지 않았던 것일까.

자신도 모르게 쿡하고 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리고 납득하고 말았다. 아, 나는 참, 나쁜 년이었구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았던, 그런 지독한 여자였던 것이구나.

...응. 그렇다면, 자신이 이렇게 아픈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신기하게도, 자신이 벌을 받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급속도로 안정이 되어간다. 그래, 그를  년 간이나 그토록 아프게 했으니, 자신 또한 이토록 아파야 비로소 공평해지는 것이 아닐까.

짝사랑이란, 이토록 애달프고, 아픈 것이었구나-

쿠르릉-

하늘에, 먹구름이 낀다.

쏴아아-

이윽고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고 말았다. 아마, 한 때의 지나가는 소나기인 것 같았다.

“.....”

우산 따위, 애초에 없었다.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조차 모르는데, 우산을 챙겨올 정신머리 따위, 없는 것이 정상이었다.

빗방울은 여과 없이, 그녀의 몸에 정통으로 쏟아졌다. 순식간에 그녀의 전신이 흠뻑 젖어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그 따위 것은 상관없다는 듯 멍하니 땅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추웠다. 흠뻑 젖어버린 그녀의 연약한 몸은, 고작해야 비를 조금 맞았다고 해서 한기를 느끼고 있었다. 몸이 오슬오슬 떨렸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붙박이마냥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기만 할 뿐이었다. 더 이상은, 어느 곳으로도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사라는 살며시, 자신의 두 눈을 감았다. 차라리 이대로, 어디론가 사라져버릴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해서 더 이상 아프지 않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

그런데 불현 듯, 깨닫고 말았다. 비가, 더 이상 내리지 않는다. 그녀의 몸에 빗방울이 더 이상 쏟아지지 않고 있었다.

쏴아아-

아니, 아니다. 비가 그친 것이 아니었다. 비는 지금  순간에도 끊임없이 내리고 있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사라.”

자신이 더 이상 비를 맞지 않도록 우산을 씌워주고 있는 누군가가,그녀의 곁에 와주었다는 것이겠지.

“...카인?”

사라는 자신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있는 그를 바라보며, 멍하니 그의 이름을 되뇌고 말았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째서, 어째서 그가 이곳에 있는 것일까.

아까까지만 해도 공녀와 함께 후원을 거닐던 그가, 공녀와 단 둘이서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야할 그가, 대체 어째서-

“한참 찾았어. 이렇게 비가 내리는데, 넌 우산도 없이 대체  이런 곳에 있는 거야.”

어째서, 자신 따위를 찾으러  것일까. 대체, 어째서.

“...왜?”

한참을 고르고 고른 끝에, 가까스로 입 밖으로 꺼낼  있었던 말은, 바로 그것이었다.

“왜냐니.”

카인은 당연하다는 듯한 어조로 답을  뿐이었다.

“걱정되니까. 이렇게 바깥에 비가 쏟아지는데, 네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말을 듣고 어떻게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어?”

그의 답은, 무척이나 심플했다. 그저, 자신을 걱정했을 뿐이라는, 그런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그런데 어째서.

“...아.”

그가 해주는 말에, 이리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일까. 마음이 이리도 놓이는 것일까.

그제야, 사라 세르나드는 알아차리고 말았다.

그래, 무리였나 보다. 아무리 노력하고 노력해도, 나는 너를 미워할 수가 없었다. 너를 향한 이 마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이성적인 판단 없이, 그저 마음이 가는대로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가장 혐오하는 행위였는데, 나의 마음이 흐르는 곳의 끝에는, 너라는 사람이 있었나보다.

너라는 사람 때문에 내가 이토록 아픈데, 내가 이렇게 비참하게 되었는데, 모든 것을 후회하고 있는데도.

그래도, 나는 널 미워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감수해야지. 그리고, 널 용서해야지. 네가 나를 이렇게 아프게 할지라도, 나는  사랑해야지.

언젠가, 네가 나를 다시 돌아봐주고, 나를 용서해줄 그 때까지, 기다려야지.

비록 할머니가 될 지라도,  생이 끝나는  순간까지 끝끝내 용서 받지 못할 지라도-

나의 죄가 사해질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지.

“...아.”

어느새, 비는 그쳐 있었다. 그저, 단순히 지나가는 비였던 것 같았다.

문득, 하늘을 바라보았다. 비가 한 차례 내리고 맑게 개인 하늘은, 높고 탁 트여있어, 참으로 푸르기만 하였다.

어째서일까. 분명, 아까와같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지금 이 순간 그녀의 눈에 비춰지고 있는 하늘은, 전혀 다르게 느껴지고 있었다.

굳이 필설로 표현하자면, 그 모습은 그저, 아름다울 뿐이었다.

그래, 사라 세르나드는 앞으로 잊지 않을 것이다. 이토록 청명하고 아름다운 하늘을 바라보며 느낀 감동과 함께라면, 그녀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 믿어왔으며, 앞으로도 믿어나갈, 지금의 자신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그에 대한 마음은, 하나의 잊지 못할 감동이 되어 영겁토록 그녀의 마음속에서 살아 숨 쉬게 되겠지.

그것이야말로, 사라 세르나드라고 하는 여인에게 있어 하나의 구제가 되었을 따름이다.

“...고마워.”

구름이 개이고, 햇살이 내비춰 온다. 아까와는 다르게, 그를 바라보며 살포시 웃음을 지어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순수했었던 언젠가의 소녀의 얼굴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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