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4화 〉8. 비앙카 델 카스타나 - 11 (74/201)



〈 74화 〉8. 비앙카 델 카스타나 - 11

“...카인, 너 그거, 설마...”

비앙카는 카인의 검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푸른 기운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현재 그녀의 눈에 떠오른 감정은 놀라움이나 당혹이 아니었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은 오직 하나, 경악이었다.

“당신 설마, 스스로의 생명 에너지를 오러의 형태로 변환해서 사용하고 있는 거야?”

그렇다. 오러란, 극고의 고된 수련 끝에 체내의 생명 에너지가 현세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 정도의 물질적인 형태로 변모한 힘. 그것은 바꿔 말하자면, 설사 오러를 각성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스스로의 생명 에너지를 끌어낼 수만 있다면 누구나 오러와 비슷한 힘을 사용할  있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많은 검술의 유파에서는 현재 카인이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의 잠력(潛力)을 격발시키는 기술이 하나둘쯤은 있기 마련이었다. 현재 카인이 하고 있는 짓은, 그러한 방식을 ‘흐르는 별’을 응용하여조금 더 세련된 형태로 바꾼 것에 지나지 않았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현재 카인이 저지르고 있는 짓이 정상적인 행동이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었다.

‘나중에 황녀님께 엄청나게 혼나겠군.’

우선, 현재 카인이 발현하고 있는 푸른 기운은 오러와 비슷하였지만 동시에 오러는 아니었다. 진짜 오러와 비교하자면 격이 굉장히 많이 떨어졌으며, 생명 에너지는 배로 소모를 하는 주제에, 파괴력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오러를 각성한 이는 오러를 사용한다고 해도 스스로의 생명 에너지가 소모되지 않았지만, 이 수법을 사용해 편법으로 오러를 발현한다면 소모된 생명 에너지는 결코 돌아오지 않았다. 즉, 스스로의 수명을 깎아먹기만 하는 미친 짓에 불과했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그에게  수법을 가르쳐준 황녀 또한 죽기 직전까지 몰린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절대 이것을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고 신신당부까지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만일 이러한 편법이라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그와 비앙카의 싸움은 애초에 성립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도 좋아서 이런 방법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었단 말이다.

“...어쩔  없었어. 이런 방법이라도 사용하지 않는 이상, 나는 너와 같은 전장에 설 자격조차 없으니까. 비앙카 너와 대등하게 싸우기 위해서는 이런...”

“너 진짜 미쳤어?”

카인의 말을 중간에 끊으며, 비앙카가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그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현재 그녀의 얼굴은, 그를 향한 걱정과 염려로 가득 차 있기만 할 뿐이었다.

“정말 죽고 싶어서 환장이라도  거야? 대체  이 따위 멍청한 짓을 저지르고 있는 거야? 이건 정말 미친 짓이야. 방금 전, 그 공격  번에 네 수명이 얼마나 소모 되었는지 아무도 몰라. 하루? 일주일? 아니면 일 년? 넌, 네 생명이 그렇게 싸구려처럼 느껴지는 것이니? 너 그러다가 정말...”

비앙카는 자신의 손을 부들부들 떨더니, 이내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듯 바닥에 털썩하고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정말로, 그러다가 죽을 수도 있다고...”

“.....”

그녀의 말에 카인이 입을 꾹 다물고만 있자, 비앙카는 스스로의 입술을 꽉하고 깨물며 이리 중얼거렸다.

“넌, 정말 바보야. 등신 같은 놈이라고. 나를 말리기 위해, 스스로의 생명을 무기이자 방패로 삼기까지 하는구나. 그럼에도 지금의 네게는,   점의 후회도 비춰지지 않고 있구나. 카인.”

저 남자는, 참 개 같은 놈이었다. 비앙카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헷갈리기만 하였다. 저 남자는 어째서 이렇게 나서는 것인가. 어째서 자신에게 맞서고 있는 것인가. 스스로의 수명을 깎아먹으면서까지,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면, 여기서 그만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나? 네가 순순히 물러난다면, 나 또한 여기서 멈추도록 하지.”

하지만 다음 순간, 비앙카는 카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말에 머리에 열이 확하고 도는 것을 느꼈다.

“...너, 지금 네 목숨을 가지고 나와 협상이라도 하자는 거야?”

비앙카의 말에 카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의 그러한 태도는, 비앙카에게 있어 무언의 긍정으로만 비춰질 뿐이었다.

“...개자식.”

화가 난다. 마음  깊은 곳에서, 증오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싫었다. 그리고 너무나 미웠다. 지금 자신 앞에 이렇게 서 있는 카인이 싫었고, 자신을 생각해주지 않는 카인도 싫었다. 그토록 사랑스러웠던 남자가, 너무도 밉게만 보였다.

“...비앙카.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야.”

쉼 없이 요동치고 있는 자신의 감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인의 입에서  따위 말이 흘러나오는 순간, 비앙카의 이성은 뚝하고 끊겼다.

“...나쁜 새끼.”

저 남자는, 정말 개자식임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런 개자식을 이토록 사랑하고 있는 자신 또한 미친년이 틀림없었다. 이젠 지긋지긋하고 싫기만 했다. 이런 상황에 놓여있음에도 여전히 그를 사랑하는 자신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그도, 모든 것의 원흉이라고 할 수 있는 아리아도, 전부!

“...싫어.”

잘 알고 있었다. 여기서 멈추어야만 했다. 이 이상으로 자신의 뜻만을 고집하다가는, 그의 수명이 깎여나간 끝에 정말로 죽을 지도 몰랐다. 이지적이고 냉철한 그녀의 이성은, 여기서는 그녀가 한 발짝 양보를 해야만 한다고 충고를 던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결코 그렇지 못하였다. 지금 이 순간, 비앙카는 깨닫고 말았다. 이 세상에는, 어리석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택할 수밖에 없는 선택지도 있다는 것을.나중에 미친 듯이 후회하게 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순간의 감정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때도 있다는 것을.

지금 이 순간, 여인으로서의 본능이 그녀의 귓가에 요사스럽게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비앙카는 스스로의 입을 열어 지독히 이기적인 말을 자아내고 말았다.

"싫어, 싫어. 싫다고!"

"이번만은 절대 양보  해. 아니 못 해. 이번에는, 절대로 내 뜻을 굽히지 않을 거야."

“...그래, 비앙카. 너의 그런 뜻 또한, 존중한다.”

비앙카의 그러한 폭언에도, 카인은  하나 깜빡이지 않고 그녀의 말에 수긍을 해준다. 그녀에게 있어 그의 그러한 반응은, 너무도 비참할 따름이었다. 차라리 화라도 내주었으면, 이리 비참하지는 않았을 텐데. 네게 있어 나라는 여자가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않는 것인가, 아프기만 할 뿐이었다.

비참함은 슬픔이 되고, 슬픔은 분노가 된다. 비앙카는 자신도 모르게 이를 갈며, 전신의 마력을 사납게 끌어올렸다.

“...그래, 어디 한 번 끝까지 가보자. 카인.”

지금 이 순간, 나는 네가 너무나도 미울 뿐이다.

그리고 카인 또한 비앙카의 그러한 모습을 보며, 다시 한  스스로의 각오를 다진다.

이제는, 서로 간에 얽혀 있던 모든 것을 끝낼 시간이었다.

****


쿠구구구궁-!

전장에, 벼락이 쏟아지고 있었다. 초고열의 백염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매서운 광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모든 것을 얼릴 듯한 혹독한 추위가 불어 닥치고 있었다.

하지만, 카인에게 있어 그녀의 마법은 닿지 않는다. 지금  순간, 스스로의 생명을 불태우는 대가로 막대한 신체능력을 얻은 그에게, 그녀가 쏟아내는 마법은 닿지 않았다. 아니, 닿지 않는다, 라는 말은 옳지 않은 말이었다. 어쩌다가 그에게 마법이 직격하더라도, 그는 다시금 오뚜기마냥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금 그녀를 향해 덤벼들었다.

“...어째서.”

어째서 닿지 않는 것일까. 내 화염이,  뇌전이,  빙결이, 내 섬광이, 어째서 네게 닿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너는 어째서, 쓰러지지 않는 것일까.

“대체, 어째서.”

무엇이 너를 그렇게 움직이게 하는 것일까, 두려움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그의 얼굴은, 진지하기만 하였다. 단  점의 흔들림도 없는 눈동자를 한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온 몸이 찢겨지고, 불타고, 부상을 입더라도, 그는 결코 멈추지 않고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적당히 해. 거기까지야. 제발, 멈춰. 멈추라고, 카인!”

스스로가 어떠한 목소리를 내지르고 있는 것인지 인지조차 하지 못한 채, 결국 비앙카는 그녀가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패를 내밀고 말았다.

백염의 탄식. 비앙카  카스타나가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고유 마법. 현재 그녀에게 남겨진 마력은 본래의 1할에도 미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현재 남은 마력을 총동원하여 쏘아진 백염의 탄식은 그를 가볍게 산산조각 내고도 남을 위력을 내포하고 있었다.

“...드디어 오는가.”

그리 중얼거리던 카인은 쥐고 있던 검에 다시금 힘을 주며,자신을 향해 닥쳐오는 백색태양을 향해 흔들림 없이 쏘아져간다.

우우웅-

생명 에너지의 흐름이 검신에 집중된다. 정제되고 또 정제된 끝에, 오러와 맞먹는 위력을 내포한 푸른 기운을 바탕으로 하여 그가 구현하고자 하는 기술의 이름은 삭월(朔月). 루시안  투르니젠을 어르고 갈군 끝에 운용법을 알아 낸, 현 시점의 그가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기술이었다.

“간다.”

카인의 두 눈이, 저 너머에서 그를 향한 분노와 죄책감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비앙카의 두 눈을 똑바로 직시한다.

...미안하다. 사실, 나는 나를 향한 너의 마음이 어떠한지 어림짐작하고 있었다. 어쩌면, 네가 나를 좋아할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너를 다치게 하기 싫었다. 어차피, 우리는 이어질 수가 없는 사이라고 생각했었다. 설사 우리가 사랑하게 된다 하더라도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수많은 장애물들을 뛰어 넘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렇기에, 나는 모른 척 했었다.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한 척 하였다. 필사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속이기만 하였다. 그것이, 너를 위한 최선의 길이라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하지만 내가 틀렸다. 내가 말도  되는 고집을 부린 끝에, 우리는 서로 다치고 말았다. 상처를 입고 말았다. 우리 둘 다, 어딘가가 망가져버리고 말았다.

그래서는 아니 되었다. 내가 어리석었다. 나는 그렇게 행동하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나는 네게 상처를 입히는 한이 있더라도, 나의 마음을 똑똑히 전했어야 했다. 너를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홀로 놔둔 끝에, 망가지도록 놔두어서는 아니 되었단 말이다.

나는 너를 안았다. 너와 사랑을 나누었다. 하지만, 그것은 동정심이 아니었다. 나는 온전한 나의 의사로서, 너를 품에 안았다.

너와 함께한 지난 40여일은, 나쁘지 않았었다. 비록 시작은 강압적이었으며, 나의 의사가 섞여 있지는 않았더라도, 이렇게 돌아보니 그럭저럭 괜찮은 추억이 되었던 것 같았다. 나와 함께한 모든 시간 속에서, 너는 나를 사랑하기만 하였고, 나는 네 사랑을 받아들였다. 그 끝에, 나는 너와 사랑을 나누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나보다. 네가 홀로 보내야만 했던 끔찍하게 기나긴 밤에비하면, 너와 함께했던 어젯밤은 지독하게 짧기만 했나보다. 그렇기에, 지금이라도 벌충을 하려한다. 살짝 늦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를 옭아매는 모든 것을 벗어던진 채 너만을 바라보려 한다. 그리고 그 끝에, 너를 사랑해 주려한다.

콰아아아앙-!

카인이 쏘아 보낸 삭월이, 비앙카의 백염의 탄식을 둘로 갈라내고 있었다. 한낱 인간의 검 한 자루가, 태양  자체를 반으로 베어낸 것이다. 눈으로 보고도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광경에, 비앙카는 자신도 모르게 호흡을 멈추고 말았다.

그제야 비앙카는 깨닫고말았다. 카인의 검 속에는, 그녀를 향한 모든 것이 깃들어 있었다. 그것은 증오도 아니었고, 살기도 아니었으며, 분노도 아니었다. 그저, 그녀를 향한 연민과, 위로와, 사랑만이 담겨 있을 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 그의 전심은 오직 그녀만을 향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올곧은 두 눈을 마주하는  순간, 그녀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방금 전, 카인이 쏘아 보낸 일격은, 그가 자신의 생명을 담아 자신을 향해 보내온 그 일격은, 이 세상에서 오직 그녀만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사랑을 건네준 것이었다. 그 사실이, 그녀를 환희에 젖게 만들었다.

“...아아.”

눈물이 맺힌다. 지금 이 순간, 그는 자신이 짊어지고 모든 것을, 그리고 자신이 짊어지고자 하는 모든 것을 잊어버린 채, 오직 자신만을 바라봐주고 있었다. 그것이, 그저 기쁘기만 할 따름이었다.

다가온다. 백염의 탄식을 반으로 갈라버린 그의 검이, 자신을 향해 다가온다. 그의 검이 목적하고자 하는 곳은 아마도, 자신의 심장. 하지만 피하지 않는다. 아니, 피할 수가 없었다. 지난 30년에 걸친 기나긴여정의 끝. 그를 향한 자신의 사랑이 보답 받는 순간이 바로 지금이었다. 그러니 그의 검을, 어찌 피할 수가 있겠는가.

“...카인.”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꼭하고 감아버렸다. 스스로의 죽음을 상상하고 말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은 그에게 나쁜 짓을 많이 해버렸으니까. 아리아,  계집애가 말한 대로, 자신은 나쁜 여자이니까. 그러니, 벌을 받아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이렇게 끝을 맺는다고 할지라도, 그리 나쁜 결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마지막 순간, 자신은 그에게서 사랑을 듬뿍 받았으니까. 자신이 누군가에게 이토록 사랑을 받았으며, 누군가를 절실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으니까.

문득, 언젠가 나누었던 어린 시절의 약속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어른이 된다면, 함께하자는 그 약속. 자신은, 그 약속을 지킨 것일까, 아니면 지키지 못한 것일까.

“...아.”

...하지만 검은, 그녀에게 꽂히지 않았다. 검은 그녀의 몸에 닿기 직전, 그 움직임을 멈추었고.

떨그렁-

이내, 그는 자신의 검을 마치 쓰레기를 버리듯 바닥에 내팽겨 쳤다.

“...어째서?”

그녀는 묻는다. 자신은분명, 그를 죽이려고 했는데, 그를 상처 입히려고 했는데, 그에게 못된 짓을 많이 했는데, 어째서 죽이지 않는 것이냐고.

“...처음부터 네게 말했잖아. 나는 너를 말리려고 했을 뿐이라고. 애당초 너와 진심으로 싸울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난 너를 안았어. 그러니까,   여자야. 내가일평생 책임져야 할, 내 여자라고.”

그리 말을 하며 카인은 마치 소중한 보물을 쓰다듬듯, 그녀를 부드럽게 껴안았다.

“...미안했다. 비앙카. 네 아픔을, 미처 알아채지 못해서. 그리고 고마워.  줄곧, 사랑해줘서.”

그의 말을 들은 순간, 그녀의 뺨을 타고 따스한 눈물이 흘러내리고 말았다. 가슴 속, 응어리진 무언가가 해소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구원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세상 어느 곳 하나 오갈  없는 그녀를 향해, 이곳으로 오라며 손짓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너무도 따스한 느낌이었다.

아니, 지금 이 순간, 그녀는 분명 구원을 받은 것이리라. 자신 같은 것이 이 세상에 살아도 된다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것이리라.

“...미안해,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카인...”

비앙카의 울먹이는 소리에, 카인은 그녀의 눈물을 천천히 닦아내준다.

“난 괜찮아. 그러니, 울지 마. 비앙카.”

그의 서투른 위로에, 비앙카는 자신의 가슴이 따뜻해지고, 평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을 향해 해준 말을 떠올리기만 해도, 그가 자신을 사랑해주고 있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말았다.

그렇게, 그녀는 살포시  눈을 감은 채 그의 품에 스러지듯 안겨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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