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3화 〉8. 비앙카 델 카스타나 - 10 (73/201)



〈 73화 〉8. 비앙카 델 카스타나 - 10

비앙카 델 카스타나라는 여인은, 카인 폰 에스텔이라는 남자의 지닌 바 전력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가 어떠한 무예를 구사하는지, 그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아주 상세히도 알고 있었다. 그야, 모를 리가 없지 않겠는가. 원정대에 속해 있었을 당시, 카인이 황녀로부터 ‘흐르는 별’을 가르침 받을 때, 비앙카 또한 그 훈련에 여러 모로 도움을 주었으니 말이다.

흐르는 별. 시전자를 중심으로 하여, 그 종류를 불문하고 일정 반경 내의 모든 ‘흐름’을 뜻대로 조절하며, 그 흐름을 증폭한 끝에, 상대방에게 힘을 고스란히 되돌려주는 궁극의 카운터 기법.

비유하자면, 그것은 무적의 방패와 진배없었다. 제 아무리 강대한 공격이라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신체에 닿아야 효과가 적용되기 마련. 하지만 흐르는 별은 시전자에게로 이어지는 공격의 ‘흐름’을 차단해버림으로서, 공격 그 자체를 무위로 되돌려 버린다.

물론, 한계는 있었다. 지나칠 정도로 강대한 힘이나, 혹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의 피면적을 자랑하는 공격의 흐름을 조절하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따랐다. 방금 전, 카인이 스스로의  쪽 팔을 희생하였음에도 비앙카가 날린 ‘백염의 탄식’을 그녀에게 돌려주기는커녕 궤도의 일부를 바꾸는 것이 고작이었다는 점만 보아도 명확하지 않는가?

하지만 그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비앙카가 보기에 ‘흐르는 별’은 마법과 비교하더라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놀라운 기술임이 틀림없었다. 일정 지역 내의 모든 에너지를 시전자의 의지대로 통제하는 것이 가능하다니. 이는 현 세대의 마학으로도 재현이 불가능한 위업이었으며, 한낱 인간의 몸놀림의 연장선상이라 할 수 있는 검술의 힘이라는 점은 더욱 대단하기만  뿐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뿐이었다. 흐르는 별이 대단한 검술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결국에는 검술에 불과하였으며, 그 본질은 카운터에 지나지 않았다.

카운터란, 상대방의 선공을 전제로 하여 그 힘을 상대에게 고스란히 되돌려주는 기법. 즉,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것이 주목적인 검술인 주제에 정작 상대를 향해 적극적으로 공세를 펼칠 수가 없는 모순적인 결함을 지닌 검술이라는 말이기도 하였다.

결정적으로, 흐르는 별은 ‘검술’에 불과하였다.  아무리 용을 써봐야, 검이 닿는 사정거리만이 그의 공격 범위 내에 포함될 뿐이었다. 오러를 각성한 마스터라면 사정이 조금 달라지겠지만, 카인은 오러를 각성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를 상대하기 위한 대응책은 실로 간단하였다. 그와 일정 이상의 거리를 유지한 채, 원거리 공격만을 감행하는 것. 지극히 단순하고 교과서적인 대응책이기는 하였지만, 마법사가 검사에 대응하여 맞서 싸우는 일에 있어 그보다 효과적인 방법은 존재하지 않을 테지.

기이잉-

시동어도, 영창조차 생략한 채 비앙카의 손가락에서 호우와도 같은 빛의 광선이 발사된다. 파괴력보다는 물량에 중점을 두었기에 인간에 대한 살상력은 극도로 저하된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지간한 바위쯤은 손쉽게 으스러뜨릴 수 있는 위력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 수, 무려 열하나.

“큭!”

카앙-!

몇 개는 검을 휘둘러 광선을 튕겨내고, 몇 개는 후들거리는 왼손을 들어 궤적을 뒤바꾸며, 몇 개는 유려한 몸놀림으로 공격을 피해내가며, 카인은 비앙카와의 거리를 어떻게 해서든 좁히려고 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자면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쿵!

비앙카가 자신의 발을 들어 대지를 한 번 구르자, 그녀를 중심으로 강렬한 충격파가 발생하며 그녀 주변의 지면이 송두리째 박살나버리고 말았다. 지반 그 자체가 기울어버리자 카인의 움직임 또한 일시적으로 묶일 수밖에 없었으며.

기이이이이잉-!

카인의 움직임이 멈춘 틈을 타,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크기의 빛의 섬광이 카인을 향해 작렬한다!

콰아아아아-!

순간, 귀가 떨어져나갈  한 폭음과 함께 그들이 서 있던 근방의 대지에 하나의 협곡이 생겨나고 말았다. 비앙카가 쏘아 보낸 빛의 섬광이 대지를 가르고 지나간 흔적이었다.

하지만 마법을 쏘아 보낸 비앙카도, 카인의 신신당부에 의해 그들의 결투를 얌전히 관전하기만 하고 있던 아리아 역시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아니, 비앙카는 오히려 쓴웃음을 머금으며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파괴의 현장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안 죽은 거 다 아니까 죽은 척은 그만 하지 그래?”

“...다 들켰나?”

어떻게 들으면 느긋하기 이를 데 없는 대답이 돌아오자 비앙카는 끝내 코웃음을 치고 말았다.

“마지막 순간에 궤도가 빗나간 것을 누가 눈치 채지 못했을 줄 알고? 거기다가 섬광 계열은 ‘흐르는 별’이 흐름을 조절하기 가장 쉬운 에너지 종류잖아. 당신의 훈련을 누가 도와줬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것 참. 중요한 사실을 깜빡해 버리고 말았군.”

흙먼지가 걷히자, 비앙카의 시야에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카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느긋한 태도와는 별개로 현 카인의 상태는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방금 전, 비앙카가 쏘아 보낸 빛의 섬광은 위력이 너무 강한 나머지 마지막 순간에 궤도를 살짝 비트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마저도 흐름의 조절이 완벽하지 않아 그만 손에서 검을 놓쳐버릴 정도로, 빛의 섬광은 강대한 파괴력을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오른손바닥에서는 방금 전의 충격으로 인해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카인, 아무 소용없어. 이제 그만해. 당신의 전법을 전부 알고 있는 내가, 당신의 접근을 조금이라도 허용할 것이라 생각했다면 크나큰 착각이야. 당신에게 있어, 승산은 조금도 존재하지 않아.”

“...뭐, 그건 끝까지 해봐야 아는 법 아니겠어?”

그리 말을 하며 카인은 땅바닥에 떨어져 있던 검을 다시 손에 쥐었다. 아무리 보아도 카인에게는, 항복의 의사 따위는 전혀 비춰지지 않고 있었다.

‘...상황이 꽤 어렵게 돌아가는군.’

겉으로는 애써 여유로움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현재 카인의 속내는 초조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그에게 승산은 희박하기만 할 뿐이었다. 승산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믿는 구석이  가지 있었기에 큰소리를 떵떵 치며 나섰던 것이었다. 하지만, 최소한 그녀에게 접근을  수가 있어야 수를 쓰건 말건 할 것이 아닌가?

그렇게 카인이 비앙카로부터 어떻게 해서든 틈을 만들어내기 위해 자세를 바로 하는 그 모습을 보며, 비앙카는 그는 향해 질문을 던진다.

사실, 마지막까지 묻지 않으려고 했었다. 싸움 중에는 결코 이 질문을 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녀의 안에서 여인으로서의 자존심이 불쑥하고 일어난 탓에 묻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카인. 네게 마지막으로 물어보겠어. 저 여자를, 그렇게 해서까지 지켜주려는 이유가 대체 뭐야? 나와 이렇게 싸우면서까지, 저 여자를 보호해야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날카로운 살기를 내 비추며, 카인을 향해 그러한 질문을 던지는 비앙카의 얼굴은, 남자를 바라보는 여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도 싸우고 싶어서 싸우는 것이 아닌데.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너는 아리아와 끝을 볼 작정이 아닌가, 비앙카?”

카인의 그러한 대답에, 비앙카는 머리에 더욱 열이 뻗쳐오르는 것을 느꼈다. 지금 저 따위 말을 대답이라고 하는 것인가?

“그거 알아? 네 대답은 얼핏 들으면 논리적인 것 같지만 실상은 모순에 불과해. 네가 카스타나 후작가를 떠나던 날, 내게 이렇게 말했지. 너는 너만을 바라보는 영지민들을 위해, 나만을 바라봐  수는 없다고.”

“.....”

“그러면 그 여자는? 그 여자야 말로  미래에 네가 다스려야 할 영지민을 모조리 죽음으로 몰고  장본인이 아니던가? 그런데  여자는 그렇게 옹호하는 주제에, 왜 나는 밀쳐냈던 것이지? 대답해봐!”

비앙카의 말에, 카인은 쓴웃음을 머금고 말았다. 비앙카의 말이 옳았다. 지금 자신의 행동은, 너무나 위선적이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엉망진창이었다. 이래서야, 비앙카로부터 쓴소리를 듣는 것도 어쩔  없는 노릇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로서도 어쩔  없는 노릇이기도 하였다. 만일 그가 나서지 않았더라면, 아리아는 비앙카의 손에 죽었을 것이다. 그것이, 싫었다. 비앙카가 아리아를 죽이는 것도, 아리아가 누군가의 손에 죽는 것도, 싫기만 하였다.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더라면, 그는 후회를 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는 그저, 후회하기 싫었을 뿐이다.

또한, 그는 이미 아리아를 받아들였다. 그녀는 미래의 ‘겨울의 마녀’이기도 했지만, 현재는 에스텔 공작령의 시녀이자, 마법사이기도 했다. 그녀 또한 그가 책임지고 지켜야  영지민 중 하나였다는 소리였다. 그러니.

“미안하다. 비앙카. 논리고 뭐고 아무 것도 없이 엉망진창일 뿐이라서. 하지만, 나는 그저 너를 말리고 싶었을 뿐이야.”

“...카인, 너...”

“그리고 그녀가 만일 ‘겨울의 마녀’가 된다면, 그 전에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책임지도록 하지. 내가 직접, 그녀의 심장에 검을 꽂도록 하지. 하지만.”

그 날이 결코 오늘이 되게 하지는 않겠다며, 그는 다시금 비앙카를 향해 검을 들어올린다.

비앙카는 카인의 그러한 모습을 보며,  눈을 지그시 감고 말았다. 정말, 예나 지금이나 고집스럽기 이를 데가 없는 뻔뻔스러운 남자였다. 그리고,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자기 앞에서 다른 여자를 우선시 한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저 꼬락서니라니!

“좋아. 당신이 그렇다면 나도, 지금부터는 진지하게 가도록 하겠어.”

당신이 그렇게 나온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만큼은 나의 사랑보다 나의 감정을 우선시하도록 하겠다.

순간, 비앙카로부터 질식할 듯한 마력이 새어져 나온다. 그 압도적인 마력에, 카인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하고 넘어 삼킨다.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백야(白夜)의 대지.”

비앙카가 자신의 발로 지면을 살포시 밟자 사방 수백미터가 눈 깜짝할 사이에 빙판으로 바뀌어 버린다. 지면의 마찰력이 극도로 작아지자, 순간적으로 균형을 잡지 못해 카인은 자신의 몸을 비틀거리고 말았다.

“혹한의 가시.”

콰콰쾅-!

사방에서 얼음으로 이루어진 가시가 크게 솟구치기 시작한다. 카인의 주위가 순식간에 얼음의 숲으로 빼곡하게 메워진다. 얼음의 가시 하나하나가 인간의 몸통 따위는 가볍게 뚫고도 자랑할 날카로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것이라면, 그가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발을 묶어 둘 수 있으리라!

“...하?”

예상이 빗나갔다. 카인은 마찰력이 한없이 작은 빙판 위를 마치 평지를 밟듯 아무렇지도 않게 내달리고 있었다. 흐르는 별을 이용하여 전신의 균형을 바로 잡고 있던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앞을 가로 막는 얼음의 가시를 검으로 베고, 건너뛰며, 순식간에 그녀의 코앞까지 도달하였다. 사방이 빙판이었기에 달리는 속도에 가속이 붙은 감도 있었다.

“흥!”

물론, 비앙카가 그것을 쉽사리 허용해줄 리가 없다. 아리아와의 혈투 속에서 마력을 너무 많이 소모해버린 나머지 다중마력장을  여력은 없었지만, 굳이 그런 것까지 사용할 필요는 없었다.

“겨울의 정벽(晶碧).”

구우웅-

카인과 비앙카 사이에 두께만 해도 무려 1미터가 넘어가는 거대한 반원형의 얼음장벽이 생겨났다. 카인은 전신의 흐름을 집중하여 장벽을 향해 검을 휘둘렀지만, 장벽의 두께가 워낙 두터웠던지라 반도 부수지 못했다.

“무리야. 최소한 오러를 사용해야 이 장벽을 깨뜨릴 수는 있을 걸?”

그리 말을 하더니 비앙카는 손가락을  튕긴다.

그 순간, 카인의 주위에 있던 얼음의 가시가 급격하게 상전이(相轉移)되어 수증기로 변하더니 이내-

콰콰콰쾅-!

거대한 수증기 폭발을 일으키고 말았다. 전조고 뭐고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던지라, 카인은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 채 폭발에 휩쓸리고 말았다.

비앙카는 진심이었다. 그리고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리엘 티에르, 꼴 보기도 싫은 여자만 있으면 어지간한 부상은 전부 치유할 수는 있으니까.

“...나도,  때는 하는 여자라고. 설령, 상대가 당신이더라도.”

수증기가 서서히 그쳐간다. 뿌옇기만 했던 시야가 확보되어 간다. 그런데.

“....!”

없었다. 폭발에 휩쓸린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카인의 모습이, 어디에도 없었다!

“여기다. 비앙카.”

그리고 그녀의 옆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비앙카는 심장이 튀어나올  놀라고 말았다. 단 한 순간도 그의 행적을 놓친 적이 없는데, 어떻게?

물론, 흐르는 별의 응용이었다. 흐름을 조절, 자신을 향해 들어오는 모든 빛과 소리를 굴절시킨 끝에 일시적으로 자신을 세상에서 소실시켰던 것이다.

순간, 비앙카의 얼굴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인지도 하지 못한 사이에 이만큼의 접근을 허용할 줄은!

...하지만, 동시에 여기까지이다. 카인에게는  두터운 얼음장벽을 뚫어낼 공격 수단이 없다. 그녀가 이 장벽 안에 틀어박혀 있기만 하더라도, 그녀의 승리는 결코 변함이 없는 사실일터.

하지만 그 때였다. 카인의 검에서 푸른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 그 기운을  순간, 비앙카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오러?”

우우웅-

카인이 검을 고쳐 잡자, 청명한 하늘을 닮은 듯한 푸른 기운이 맥동하기 시작한다. 폭풍처럼 솟구쳐 오른 기운은 이내 카인의 의지에 따라 모든 것을 절삭할 듯한 하나의 칼날이 되어 섬뜩한 기세를 흘리기 시작한다!

“역월(逆月).”

카인이 입술을 달싹거린 것과 동시에, 그 뒤를 따르듯 허공에 무수한 참선(斬線)이 수를 놓는다. 육안으로는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참격. 그리고 잠시 후, 비앙카를 지키고 있던 두터운 얼음의 장벽이 수십 조각으로 산산이 조각나 흩어지고 말았다.

쿠구구궁-

“...카인, 설마, 너...”

자신을 지켜주던 최후의 보루가 흔적도 없이 무너져버린 것을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비앙카가 카인의 검에서 흘러나오는 푸른 기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자, 카인은 그저 어깨를 으쓱이며 이리 답을 할 따름이었다.

“설마 내가 너를 상대하는것에 있어 아무 대책 없이 나섰다 생각했던 것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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