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8. 비앙카 델 카스타나 - 08
사실상 승리선언이나 다름없는 아리아의 저 발언에, 비앙카는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머금고 말았다. 방금 전, 아리아는 자신을 향해 오만하다고 말하였지만, 실상 이 자리에서 오만하기 짝이 없게 굴고 있는 것은 아리아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방심하다가 한 방 제대로 먹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벌써부터 다 이긴 기분을 내는 것은 조금 이르지 않아?”
비앙카의 말이 끝나는 순간, 그녀의 몸에서 방금 전과는 차원이 다른 영기(靈氣)가 새어나오기 시작한다. 비앙카와 아리아가 있는 이 공간 전체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질식할 정도의 엄청난 마력량에, 아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설마 아직도 여력을 감추고 있던 건가?”
새파랗게 질린 듯한 안색을 하고 있는 아리아를 향해, 비앙카는 싱긋 웃으며 순순히 대답을 해주었다.
“그야, 힘을 감추고 있던 것이 당연한 노릇 아니겠니? 상대방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않았는데 시작부터 전력을 내는 얼간이 같은 마법사가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참으로 귀여운 의견이 아닐 수가 없구나.”
비앙카가 딱하고 자신의 손가락을 튕기자 그녀의 전신에 묻어 있던 피얼룩이 사라지고 말았다. 비록 겉모습은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비앙카의 내부는 엉망진창이라는 말도 모자랄 만큼 정상이 아니었다. 방금 전, 아리아가 날린 필살의 일격은 비앙카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었던 것이다.
그녀에게 남아 있는 마력량은 평소의 3할 정도. 하지만 그 정도만 있더라도 눈앞의 상대를 압도할 수 있노라 자신할 수 있었다. 이미, 아리아에 대한 분석은 끝마친 지 오래였다.
“적을 구속하라. 비탄의 사슬이여!”
촤르르륵-
순간, 허공에서 수십 갈래의 사슬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그대로 아리아를 속박하기 위해 공간을 질주한다.
“...이건 또 뭐야?”
파지직-!
아리아가 다시금 스스로의 몸에 뇌전을 두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자신을 구속하려드는 쇠사슬을 회피하려 하였다. 하지만, 비앙카가 불러낸 쇠사슬은 마치 스스로의 의지가 있는 것 마냥 공간을 이리저리 유영하며 아리아를 향해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흥!”
쇠사슬은 아음속에 달하는 속도로 전장을 내달리는 아리아를 뒤쫓기에는 그 속도가 너무나도 느렸다. 하지만, 동시에 쇠사슬의 존재로 말미암아 아리아의 행동이 조금이나마 제한을 받는 것만은분명한 사실이었으며.
“칠두룡의 포효.”
그것이야말로, 비앙카의 노림수였다.
비앙카는 자신의 가느다란 검지를 아래로 내리그으며, 다시금 새로운 마법을 자아내었다. 방금 전에 아리아가 행하였던 것과 같은, 더블 캐스팅이었다.
구오오오-!
비앙카의 전면에, 일곱 머리를 가진 화룡이 출현한다. 비앙카의 마력에 의해 구성된 화룡은, 주인의 명령에 따라 마치 살아있는 생물인 것 마냥 날뛰며 적을 참살하려드는, 흉악하기 그지 없는 마법의 결정체였다.
“자, 이것도 어디 한 번 재주껏 피해보렴.”
무자비한 여주인의 사냥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마치 번견(番犬)이 달려드는 것처럼 일곱 머리의 화룡이 살아 있는 뱀과 같은 불규칙한 궤도를 그리며 아리아의 향해 덮쳐들었다.
“크으으윽!”
퇴로가 쇠사슬로 가로막힌 상태에서 일곱 머리의 화룡이 자신을 향해 덮쳐오자, 어디로도 회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아리아의 입에서 신음성이 흘러나오고 말았다.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정면 승부 밖에 없었다.
“천상의 비뢰(飛雷)여, 지금 이곳에서 명동(鳴動)하소서!”
파지지직-!
아리아의 전신에 다시금 격렬한 뇌전이 깃들기 시작한다. 방금 전에 일으킨 뇌전은 회피를 위한 용도였지만, 지금의 뇌전은 적과 맞서 싸우며 상대방을 참살하기 위한 용도였다.
“...간다.”
아리아의 전심이, 일곱 머리의 화룡과 비앙카의 절멸에 집중된다.
크아아아-!
일곱 머리의 용은 단말마를 내지르며, 아리아를 향해 덮쳐든다. 어느새 눈앞까지 닥쳐온 화룡의 이빨을 보면서도, 아리아는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화룡을 향해 한 발짝 다가선 후, 정면으로 파고 들어간다-!
콰앙-!
아리아의 뇌전을 두른 수도(手刀)가, 화룡의 첫 번째 머리를 그대로 관통하여 산산조각 내버린다. 피처럼 붉은 화염이, 꽃이 흩날리는 것 마냥 환염(幻炎)이 되어 흩어져 간다.
그와 동시에, 아리아는 공중으로 신형을 날리더니 몸을 살짝 비튼다. 그 직후, 화룡의 머리 세 개가 아리아의 몸을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간다.
휘릭-
아리아의 몸이 공중에 무방비의 상태로 놓여있자, 화룡 하나가 아가리를 쩍하고 벌리며 아리아를 향해 달려든다. 허나 아리아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공중에서 몸을 그대로 반전시키며, 오른발을 휘둘러 화룡의 머리통을 박살내버렸다. 그녀를 친딸처럼 예뻐한 에스텔 공작에게서 얻어 배운 호신술 중 하나였다.
하지만아리아가 화룡의 머리를 부수고 있는 틈을 타, 남은 머리 두 개가 그녀의 몸을 침범하기 시작한다. 아리아의 왼팔과 오른쪽 다리를 꽉 하고 깨문 두 녀석은, 이내 불타오르는 쇠사슬의 형태가 되어 그녀의 몸을 구속하기에 이르렀다.
“...처음부터 상대방을 구속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마법이었던가?”
아리아의 몸에 플라즈마가 번뜩이더니, 아리아의 몸을 구속하고 있던 화룡의 대가리 둘이 순식간에 터져나가고 만다.
거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1초. 하지만, 그 시간은 비앙카에게 있어 ‘다음 수’를 마련하기에 충분히 긴 시간이기도 하였다.
“.....!”
아리아를 바라보던 비앙카의 두 눈이 번뜩인다. 이제 더 이상을 방심하지 않는다. 적을 얕잡아보다가 피를 토하는 경험은 한 번이면 족하였다. 비록 ‘겨울의 마녀’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 현재의 아리아 역시 강자라고 불릴 만한 자격이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러니, 전력을 다한다.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총동원하여 적을 쓰러뜨린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호적수에 대한 예의였으며, 동시에 상대방에 대한 찬사가 되어줄 것이니!
비앙카는 자신의 오른팔을 하늘로 뻗은 후, 아주 작은 목소리로 주문을 읊조렸다.
“백염의 탄식.”
비앙카의 손끝에서 백색왜성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상공 저 높은 곳에서 눈부신 백색의 빛이 유출된다. 마력이 끊임없이 집속된 끝에, 임계에 달한 그 모습은, 태양의 플레어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쿠르르르-
안 그래도 반쯤 짓뭉개져 있던 지표면이 복사열로 인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다. 일대의 대기가 고온의 열기로 인해 미쳐 날뛰기 시작한다. 그리고, 지상에서 비앙카의 마법에 구속이 된 채 ‘백염의 탄식’이 완성되는 것을 바라봐야만 했던 아리아의 얼굴이 차츰 일그러져 간다.
“그 마법은-!”
아리아가 어떻게 저 마법을 잊어버릴 수가 있겠는가. 설사 지옥에 떨어진다고 할지라도 그녀는 선명히 기억해낼 수 있을 것이다. 40일전부터 지금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아리아에게 카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악몽을 선사해준 저 끔찍한 마법을!
“여기까지야. 넌 충분히 잘했어. 그러니, 이만 스러지듯 잠 들으렴.”
비앙카가 손가락을 아래로 내리긋는 것과 동시에, 태양이 낙하하기 시작한다. 저것을 회피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남아있는 방도는 오직 하나.
최강의 일격에는, 마찬가지로 최강의 일격으로 대응한다.
...순간, 아리아의 체내의 시간이 멈추었다. 태양이 지상에 낙하하기까지 2초 전. 아리아는 자신의 뇌리를 스쳐지나가는 죽음을 떨쳐내며, 현 시점의 그녀가 구사할 수 있는 최강의 마법을 자아낸다. 지난 시간, 그녀가 행했던 모든 수련과 노력은 전부 이 순간을 위해!
파지지직-!
그녀가 전신에 두르고 있던 뇌전과 플라즈마가 한 점에 수렴하며 생성된 파괴의 빛이, 이내 현세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반으로 갈라버릴 듯한 절대적인 파멸의칼날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지난 40일간, 절치부심 끝에 ‘백염의 탄식’에 대항하기 위해 개발한 아리아의 고유마법.그것의 정체는 바로-
“뇌신(雷神)의 칼날!”
순간, 서로가 서로를 부수기 위한 두 갈래의 빛이 교차하며, 눈부신 빛이 세상을 뒤덮어간다.
콰아아아아아-!
거대한 두 힘이 충돌하며, 무시무시한 굉음이 울려 퍼진다. 막대한 진공파가 동심원을 그리며 사방에 있는 모든 것을 휩쓸어나간다. 충돌의 여파로 생명의 생존 그 자체를 불허하는 광풍이 휘몰아친다.
“아아아아아아아-!”
뇌신의 칼날을 펼치고 있는 아리아의 전신이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다. 비앙카에 대한 일격일탈 전법을 사용하며 아리아의 체력과 마력은 생각 이상으로 소진되어 있었으며, ‘백염의 탄식’은 그녀의 예상 이상으로 강대한 위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튕겨나갈 듯한 전신을 억지로 붙들고 있었지만, 이제는 한계에 봉착하고 말았다. 찰나의 순간, 아리아는 자기 자신의 죽음을 머릿속에 그리고 말았다.
“...카인님...”
죽음 따위,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다만, 카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기만한 저 여자를 끝내 단죄하지 못했다는 사실 하나만이 사무칠 뿐이었다. 언제나 자신을 향해 웃음을 지어주던 그가,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끝이야. 겨울의 마녀. 이번에야말로 너를 구해줄 사람 따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아.”
하지만 바로 그 때, 어딘가에서 비앙카의 말에 대한 대답이 들려온다.
“...아니. 여기에 있는데.”
“.....!”
무뚝뚝한 말과 함께, 아리아의 바로 옆에 어느 인영이 출현한다. 그는 어느새 아리아의 코앞까지 닥쳐온 새하얀 백색의 태양을 향해,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자신의 손을 뻗는다. 어느 누가 보아도 자살행위라고 밖에는 비춰지지 않는, 무모한 행동이었다.
“...아, 안 돼!”
그 광경을 보며 아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새된 비명을 내지르고 말았다. 금방이라도 그가 넘실거리는 백색의 화염에 불타 죽을 것만 같이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우려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손과 백색의태양이 마주하는 순간, 태양은 마치 그래서는 아니 된다는 명령이라도 받은 것 마냥 그의 손에서 궤도를 바꾸더니 아리아에게서 저 만치 떨어져 있는 곳으로 흘려졌다.
쿠우우우우우-!
태양은 그들이 서 있던 공간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공간에 떨어지더니, 이내 저 만치에서 대폭발을 일으키고 말았다.
‘흐르는 별’을 극한까지 전개한 결과물이었다. 만물의 ‘흐름’을 보고, 이를 조절할 수 있는 흐르는 별은, 비앙카가 구사한 최강의 마법인 백염의 탄식마저 다른 곳으로 흘려버릴 수 있는 위력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만한 위업을 달성한 그도 그리 멀쩡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의 왼팔에서는 살이 익어가는 듯한 매캐한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으며, 백염과 간접적으로 닿았던 손가락 끝에서는 화상으로 인한 진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의 왼팔은, 그의 몸통에 간신히 붙어있는 상태에 지나지 않았다.
“...이럴, 수가. 카인님. 팔이, 팔이...!”
카인은 자신을 향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아리아를 향해 손을 뻗어 그녀를 위로해주려 했지만, 이내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왼팔은, 이미 주인의 명령을 거부하고 있었으니까.
“괜찮다. 아리아. 네 목숨에 비하면, 이 정도는 헐값에 지나지 않으니까.”
너를 구할 수 있었으니 나의 팔 한 짝 따위는 전혀 아깝지 않다며, 자신을 상냥한 어조로 위로해주는 카인을 향해, 결국 아리아는 눈물을 쏟아내고야 말았다.
“울지 마렴. 실로 오랜만의 재회인데, 그런 표정은 네게 어울리지 않으니.”
카인이 그나마 움직이는 오른팔을 들어 아리아의 눈물을 닦아내어주자, 아리아는 멍한 얼굴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대체, 어째서...?”
어째서 비앙카 델 카스타나와 자신이 싸우는 장소에 난입한 것이냐는 그 질문에, 카인은 당연하다는 듯한 얼굴로 대답을 해주었다.
“아리아, 그야 당연히 너를 데리러 온 것이지 않을까.”
카인은 오른손으로 아리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준 후, 이내 그를 멍하니 쳐다보기만 하던 비앙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비앙카. 너도 마찬가지다. 내게 아무런 언질도 없이, 홀로 밤 산책에 나선 너를 마중나온 것이기도 하니까.”
그리 말을 하며 카인은 비앙카와 아리아의 사이를 가로막듯 우뚝 서더니, 이내 단호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두 사람 모두, 여기까지다. 더 이상의 싸움은, 결코 허락하지 않겠어. 만약, 아직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지금부터는 이 내가, 대신 어울려 주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