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8. 비앙카 델 카스타나 - 07
쿠구구구-!
꽈르르릉-!
카인과 비앙카가 머무르던 오두막 앞의 탁 트인 초원은, 곳곳에 심어진기화요초와 아름다운 화단으로 말미암아 나름대로의 멋을 자랑하던, 제법 운치가 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아리아와 비앙카의 격돌로 말미암아 그들이 서 있던 초원은 완전히 파괴된 끝에, 이미 과거의 형태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현재 그들이 서 있는 공간을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인세의 지옥이라는 표현이 가장 걸맞을 테지.
전쟁터의 곳곳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쉴 새 없이 뇌성벽력이 울려 퍼지고 있었으며, 둘의 격렬한 싸움의 여파로 말미암아 지층이 박살나고 대지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그들이 서 있는 지표면 그 자체는 뇌전을 두른 플라즈마와 초고열의 백염에 노출된 영향으로 융해 되어버린 끝에, 흐물흐물한 곤죽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한 때의 푸른 초원은, 어디를 보아도 사람이 정상적으로 나다닐 수 없는 공간으로 변모해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한 편의 지옥도 사이로, 가열 찬 황금빛 섬광이 상공을 질주한다. 전신에 황금빛 뇌전을 몸에 휘감은 채 하늘을 내달리는 그 모습은, 흡사 천상을 관통하는 한 줄기의 유성을연상시킨다.
“아아아아-!”
전신에 뇌전과 플라즈마를 두른 채로, 아리아는 아음속에 육박하는 속도로 전장을 누비고 있었다. 그 속도는, 인간의 육안으로는 도저히 뒤쫓을 수가 없을 정도로 빨랐다. 심지어, 안구에 강화마법을 건 비앙카조차 아리아의 모습을 시인(是認)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저, 아리아가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 남아있는 잔광(殘光)만으로 그녀의 현재 위치를 추측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마법사를 자칭했던 주제에, 야만스럽게 굴기는!”
아리아를 향해 수많은 마법을 퍼부었지만 결국 그녀의 옷자락 하나 스치지 못한 비앙카는 결국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불평을 늘어놓고 말았다.
비앙카는 현재 상공에 떠 있는 상태로 자신의 몸 주위에 십수 겹의 마력방벽을 쳐놓음으로서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는 중이었다.
비앙카 델 카스타나라는 여인은 현 인류의 정점에 서 있는 마법사로서, 그녀가 구사하는 마법들은 통상적인 마법사들이 구사하는 마법보다 한 단계는 수준이 높고, 두 단계 정도 효율이 뛰어날 정도의 격차가 있었다. 현재 그녀가 구사하고 있는 ‘다중마력장벽’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다중마력장벽’이란 현존하는 모든 전투마법사라면 누구나 구사할 줄 아는 마법으로서, 말 그대로 자신의 마력을 이용해 스스로를 보호할 방어막을 쌓아올리는, 지극히 기초적인 마법 중 하나였다. 실로 단순한 용법이긴 하지만, 본신의 마력량에 따라 장벽의 두께와 개수가 결정이 되기에, 세상의 그 어떤 마법보다도 개인의 역량에 따른 수준 차가 극심하게 나타나는 마법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비앙카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그녀는 다른 이들처럼 무식하게 마력을 쌓아올려 장벽을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장벽과 장벽 사이를 연결시키는 통로를 만들고, 그 사이로 마력을 효율적으로 순환시키는 방법을 구사함으로서 스스로의 방어력을 극대화시키고 있었다.
현재 그녀가 전신에 두르고 있는 마력장벽의 개수는 무려 열여섯. 10년 뒤, ‘겨울의 마녀’조차 비앙카가 두르고 있는 마력장벽을 한 번에 깨뜨리는것이 불가능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현재 이 자리에서 아리아가 비앙카에게 상처를 입힐 방법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겠지.
...그래, 그들의 싸움이 통상적인 마법사들의 대결과 같았다면, 상황은 분명 그렇게 흘러갔을 것이다.
하지만 아리아가 택한 방법은 달랐다. 그녀는 비앙카처럼 상대방을 향해 마법을 난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몸에 마법을 휘감은 채 전쟁터에 임한다는 방법을 택하였다.
공격용 마법을 따로 구사하지 않는다. 아니, 그럴 필요도 없었다. 모든 물질을 융해시켜버리는 플라즈마를 전신에 휘감은 시점에서, 아리아의 신체는 고위 마법의 그것과 필적하는 위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스스로의 몸을 하나의 화살로 만든 채, 아리아는 공간을 이리저리 누비며 비앙카의 사각을 찔러간다...!
쩌엉-!
“...크윽...!”
방금 전 또 하나, 사각지대에서 이루어진 아리아의 기습에 의해 마력 장벽 하나가 부숴 지고 말았다. 물론, 마력 장벽을 복구하면 그만인 일이지만 그에 비례해 마력의 급격한 소모가이루어진다. 거기에, 언제 사각에서 기습을 받을 지도 모른다는 부담감에 집중력이 깎여나가고 만다.
일격일탈. 눈에 보이지 않을 스피드로비앙카의 측면을 습격하며, 아리아는 비앙카가 두르고 있는 마력 장벽을 부숴나가고, 그녀의 정신력을 착실하게 갉아먹어 간다.
이것이야말로 아리아가 자신보다 마학의 경지도, 마력량도, 순간출력량도 전부 압도적인 상대에 대항하기 위해 마련한 회심의 한 수. 오직 비앙카 델 카스타나와의 결전을 상정하고 만들어낸 전법의 결정체...!
“...과연, 영락했다고는 하지만 ‘겨울의 마녀’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실력이로구나.”
비앙카의 입에서, 아리아를 인정하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만다. 아니,이 정도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의 아리아는, 강했다. 10년 뒤와 비교하자면 ‘겨울의 마녀’의 힘에 2할에도 미치지 못하는 부스러기 같은 힘이었지만, 고작 그 정도의 힘으로 비앙카와 대등하게 겨루고 있다는 시점에서 아리아는 칭찬받아 마땅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리라.
“.....”
당연하게도, 아리아에게서 대답은 없다. 그녀는 현재, 비앙카 델 카스타나를 죽여 버리기 위해 모든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상태였기에 비앙카의 말에 대답할 여유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흥, 칭찬을 해주었는데도 어떠한 답례도 하지 않다니, 정말로 야만스럽고 무례하기 짝이 없는 언동이로구나.”
아리아를 향해 악담을 퍼붓던 것도 잠시, 현재 아리아가 구사하고 있는 전법을 유심히 살펴보던 비앙카의 두 눈에 이채가 띠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런 이상한 전법, 왠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현재 아리아가 구사하고 있는 전법은 10년 뒤, ‘겨울의 마녀’가 사용하던 전법이 아니었다. 원정대와의 격전 당시, 겨울의 마녀는 아리아와 같이 천둥벌거숭이마냥 전장을 헤집고 다니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겨울의 마녀’가 구사하는 전투법은 비앙카와 거의 유사하였다. 스스로의 몸을 수 겹의 마력 장벽으로 감싼 채 상대방을 향해 고화력의 마법을 융단 포격한다는, 흡사 움직이는 이동요새와 같은 전술을 구사했었단 말이다.
헌데 현재의 아리아는 ‘겨울의 마녀’와는 정 반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스스로가 마법사인 주제에, 마법사의 허점과 약점을 아무렇지도 않게 찔러오고 있었다. 이런 이상한 전법,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그렇게, 비앙카는 전투 중에 해서는 아니 될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일순간이지만 눈앞에 있는 호기심에 집중하느라,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을 죽이기 위해 쇄도하고 있는 적으로부터 눈을 돌린다는 멍청한 짓을 저지르고 만 것 이었다!
‘아차!’
다음 순간, 비앙카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지만 때는 이미 늦고 말았다.
‘허점!’
비앙카가 허점을 드러냈음을 깨달은 아리아의 두 눈이 반짝하고 빛난다. 찰나의 순간, 가속에 가속을 더한다. 아리아가 몸에 두르고 있던 뇌전이 격렬하기 이를 데 없을 정도로 미쳐 날뛰었지만, 그 모든 힘의 흐름을 강제로 통제한 채 일점으로 수렴시킨다!
“비앙카 델 카스타나-!”
1초 차이로 아리아의 모습을 놓친 탓에, 아리아는 비앙카의 측면으로 돌아갈 기회를 얻었다. 사방천지에서 고위력의 플라즈마가 발광(發光)하며, 비앙카의 시야를 가리고 행동을 제한시킨다. 만물을 그대로 융해시키는 파멸적인 위력의 뇌격이, 비앙카의 옆구리에 정통으로 꽂히고 말았다.
콰콰콰콰쾅-!
“꺄아아아악!”
유리창이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비앙카가 전신에 두르고 있던 열여섯 개의 마력장벽 중 일곱 개가 그대로 박살이 나고 말았다. 거기에 더해, 마력장벽이 뇌격의 파괴력을 온전히 흡수하지 못해, 충격파가 비앙카에게 까지 전달되고 말았다.
“커, 흑...!”
충격파를 전달받은 비앙카의 몸이 기역자로 꺾이고 말았다. 결국 비앙카의 입에서 한 줄기 선혈이 흘러내리고 만다. 아주 잠깐이지만 적을 눈앞에 두고 방심을 한 대가는, 그토록 참혹했던 것이다.
“이 빌어먹을 마녀가!”
비앙카의 두 눈에서 쌍심지가 켜지고 말았다. 적에게 방심해서 한 대 얻어맞은 것보다, 연적이나 다름없는 여자에게 한 방 먹고 말았다는 사실이 비앙카의 화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었다. 아리아를 죽이기 전에 산 채로 붙잡아 저 반반한 얼굴에 싸대기를 몇 대 날리지 않는다면 분이 풀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 혼자서 고아한 척, 우아한 척 하던 꼴이 얼마나 우스웠는지 알아? 너 같은 여자한테는 그런 얼굴이 어울려. 비앙카 델 카스타나!”
아리아는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진 비앙카의 얼굴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그리 말을 하며 아리아는 비앙카의 정면을 향해 덤벼들고 있었다. 수없는 공방 끝에 겨우 붙잡은 기회였다. 이런 천재일우의 기회를, 결코 놓칠 수는 없다!
“큭!”
일순간이었지만, 방금 전의 충격파로 인해 마력의 흐름이 꼬여 있는 상태였다. 그에 더불어, 자신을 향해 흉흉한 살기를 내뿜는 아리아는 코앞까지 다가와 있는 상태였다. 실로 절체절명의 위기라고 할 수 있는 상태.
하지만 당황하지 않는다. 이 정도 위기 따위, 원정대에 속해 있을 무렵 수도 없이 넘겨온 위기 중 하나에 불과하다. 비앙카의 천재적인 두뇌가, 이 상황을 타파해내기에 가장 알맞은 마법을 도출해내고, 연산하여, 손끝에서 마법을 자아낸다.
“천권(天權)을 수렴하라, 빛의 섬광이여!”
다음 순간, 아리아는 세상이 둘로 쪼개지는 듯한 착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실로 무시무시한 파공성과 함께 수십 미터는 훌쩍 넘어 보이는 거대한 빛의 칼날이 그 궤적에 닿아있는 모든 것을 베어 가르며 아리아를 향해 날아든다.
“흥!”
하지만 아리아는 금방이라도 자신을 둘로 쪼개버릴 듯한 빛의 칼날을 보며 비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분명 대단한 위력을 내포한 마법이긴 하였지만, 동시에 자신의 돌진을 막아내기 위해 급조한 마법이기도 하였다. 고작 이 정도의 위력이라면, 얼마든지 정면에서 받아칠 수 있다!
“오라, 심판의 벼락이여, 동토(凍土)의 냉기여!”
아리아의 한 손에는 뇌성벽력이, 다른 한 손에는 모든 것을 얼릴 듯한 북풍설한이 깃든다. 더블 캐스팅. 타고난 연산력과 마학에 대한 극고의 이해가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행할 수 없는 기예 중의 기예.
헌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아리아는 전신에서 마력을 끌어올리며, 손 안에 깃들어 있던 뇌전과 빙설을 하나로 합쳐나갔다.
“이신합성(二神合成).”
결코 섞일 수 없는 뇌전의 빙설의 마법이, 아리아의 손끝에서 하나로 수렴되어 새로운 에너지로 화한다. 그 무시무시한 마력의 파동은, 비앙카조차 감히 경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위력을 내포하고 있었다. 저것은, 위험하다!
“빙뢰(氷雷)의 군무(群舞)!”
거대한 빛의 칼날과 얼음과 뇌전의 폭풍이 서로 격돌하는 그 순간, 천지가 그대로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콰아아아아아-!
거대한 충격파가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실로 가공할 정도의 폭발이 동심원을 그리며 사방 수백 미터를 휩쓸어 간다. 폭발과 함께 동반된 막대한 양의 열풍이 주변의 온도를 후끈하게 만들었다. 안 그래도 곤죽이 되어 있던 지표면에 상상을 초월하는 압력이 폭발하며 인근의 지축 그 자체가 통째로 뒤집어지고 말았다.
“아흑, 하아, 하아, 빌어, 먹을...”
그 폭심지의 한 가운데에, 어느 가녀린 체구의 여인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겨우 몸을 가누고 있었다. 방금 전, 하마터면 정말로 죽을 뻔했다. 최후의 순간에, 마력 장벽에 대부분의 마력을 쏟아 붓지 않았더라면, 이미 비앙카 델 카스타나라는 여인은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으리라.
“하아, 하아...”
아리아는, 비앙카의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로 위험하다.
아리아는 피투성이가 된 비앙카를 그저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만의 대가는 어땠어, 비앙카 델 카스타나? 이제야 이 장소가 네 묫자리라는 것이 실감나기 시작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