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6화 〉8. 비앙카 델 카스타나 - 03 (66/201)



〈 66화 〉8. 비앙카 델 카스타나 - 03

“...마녀?”

방금 전, 결계 전체를 크게 뒤흔드는 광포한 살기를 터트림으로서 그녀를 이곳까지 오게 한 주인공이 누구인지 눈으로 담아내자마자, 비앙카는 자신도 모르게 얼간이 같은 목소리를 흘리고야 말았다.

그것은, 그저 너무나도 의외인 사실이었다. 그녀가 본신에 지니고 있는 마력의 절반 이상을 쏟아 부어 구축한 결계를 과자처럼 부순 것도 모자라, 치사량을 아득히 뛰어넘을 듯한 섬뜩한 살기를 내비춤으로서 그녀를  장소까지 초대한 장본인이 성녀도, 황녀도 아닌,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끝에 과거의 모든 힘을 잃어버린 것도 모자라 비참할 정도로 영락해버린 ‘겨울의 마녀’였다니!

“...하.”

비앙카는 자신을 향해 비장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하얀 머리 소녀를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녀는, 현 상황이 그저 우습기만 할 따름이었다.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날 비앙카에게 ‘백염의 탄식’을 얻어맞고서 40여일 간 와신상담의 심정으로 칼을 갈아온 듯 보였지만, 동시에 비앙카에게 패배한 직후 아리아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해야 40여일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기도 하였다.

비앙카 델 카스타나라는 여자는, 마법이라는 분야에 있어서 현 인류의 정점에 서 있는 여자였다.  날, 비앙카에게 손도 발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패배했던 아리아가 함부로 넘볼 정도로 만만한 여자가 아니었거니와, 마법이란 학문 역시 그리 만만한 학문이 아니었다. 고작 40여일 간 절치부심한 정도로 대마법사를 꺾을 정도의 마법을 익혀낼 수 있다면, 대마법사라는 존재는 길거리에 체이는 돌멩이 수준으로 흔한 존재가 되었을 테니까.

그렇기에 단언할 수 있었다. 저 하얀 머리 소녀가 지난 40여일간 뒷구멍으로 무슨 수작을 부렸던지 간에, 그녀가 숨기고 있는 비수가 비앙카에게 닿는다는 것을 결단코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그렇다고 해서 경시할 정도는 아닌가.’

비앙카는 아리아의 뒤편에 결계의 일부만이 무너진 어처구니가 없는 광경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공간 그 자체에 균열을 내어 결계의 극히 일부분만을 무너뜨리다니? 눈으로 보고는 있지만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광경이었다. 그녀가 지니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해 보았지만, 아리아가 구현해낸 현상은 그녀의 상식 밖에 있는 미지의 현상이었단 말이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현재 아리아가 뿜어내고 있는 살기도 살기였지만, 그녀의 몸에서 새어나오고 있는 마력의 출력량은 40일 전과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확실히, 이곳까지 비앙카를 찾아와 정면에서 한 판 붙어보자고 도발을 날리는 것에는 이유가 다 있었던 것이다. 현재의 아리아는 비앙카조차 섣부르게 움직이는 것을 자제하게 할 정도로, 전과는 비교도 할  없을 만큼 강해져있었다.

“비앙카 델 카스타나. 카인님은 어디에 계시지?”

아리아가 입을 열어 마치 옆집에 사는 개 이름이라도 부르듯 자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자, 비앙카의 눈썹이 꿈틀거리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자신을 향해 비앙카‘님’이라고 했었건만, 이제는 막나가자는 것인지 자신에 대한 존칭은 온데 간데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지도 알지 못할 비천한 계집이, 카스타나 후작가의 하나뿐인 후계자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무례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구나. 네가 현재 저지르고 있는 무례가, 네 하나 뿐인 주인의 명예에 먹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니? 너 같이 무례하고 멍청한 계집을 전속 시녀로 두고 있는 그 이가,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구나.”

까드득-

비앙카의 말에 아리아는 자신의 이를 갈고 말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저 여자의 입에서, 자신의 주인인 카인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을 도무지 참아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리아는 기어 다니는 벌레를 쳐다보는 듯한 경멸스러운 눈초리로 비앙카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어디를 어떻게 보아도, 타인에 대한 존중이라고는 눈곱만큼도 깃들어있지 않은 무례한 태도였다.

“그야, 당신한테는 존대를 할 가치가 없으니까.”

“...뭐?”

“나는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 카인님에게 사랑을 구걸하였다가 퇴짜를 맞으니까, 결국 카인님을 손에 넣기 위해 무력을 앞세워 그 분을 겁박한 것도 모자라, 강제로 납치하기까지 한 당신의 후안무치한 짓거리를, 나는 전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고. 그런 추악한 여자가, 그저 귀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다른 사람의 존중을 받아야한다 주장하는 것은 너무도 뻔뻔스러운 일이 아닌가? 안 그래?”

아리아의 신랄하기 그지없는 말에도, 비앙카는 입가에서 여유로운 미소를 거두지 않고 있었다. 비앙카에게는, 눈앞의 하얀 머리 소녀의 얼굴을 단숨에 일그러뜨릴 수 있는, 비장의 카드가 한 장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아리아가 날리고 있는 시시한 도발 따위는, 단숨에 짓뭉개버릴 수 있는, 비장의 카드가.

“글쎄,  생각엔 넌 네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내게 존댓말을 써야만 할 것 같은데?”

“...뭐라고?”

자신이 날린 폭언에도 비앙카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여유로운 태도를고수하고 있자, 그제야 아리아는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말았다. 그리고, 아리아의 그러한 모습을 보며 비앙카는 속으로 킥킥거리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앞으로 몇  후, 저 하얀 머리 소녀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질 것을 상상하니 그저 유쾌하기만  따름이었다.

“왜냐하면 그 이와 내가 함께한 지난 40여일간, 우리 둘의 관계는 참으로 많은 진전을 이루었거든. 그래, 어쩌면 나와 그 이의 결혼이 성사가 될 지도 모를 정도로 커다란 진전을 말이지.”

비앙카의 도발과도 같은  말에, 그녀를 바라보는 아리아의 두 눈에서 무시무시한 안광이 새어져 나왔다.

“...그건 또 무슨 정신 나간 헛소리지? 카인님 같은 분이, 당신 같이 제정신이 아닌 여자와 결혼 같은 것을 하실 리가 없잖아.

“글쎄, 과연 그럴까나.”

비앙카는 느긋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아리아를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이와 나는, 이미 한 차례 사랑을 나누었거든.”

“...뭐?”

비앙카의 말을 들은 그 순간, 아리아의 전신이 딱딱하게 굳어져버리고 말았다. 방금 전, 비앙카 델 카스타나가 내뱉은 말이 어떠한 의미였는지, 아리아는 도무지 그 말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해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이해하기가 싫었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지금 비앙카 델 카스타나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아아, 가엾어라. 정말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것일까. 아니면 알아듣지 못하는 척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느 쪽이든, 참으로 불쌍하기 짝이 없구나. 특별히 너를 위해,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해주도록 할게.”

비앙카는 싱긋하고 자신의 입가에 실로 자애로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이와 나는, 이미 몸을 섞은 사이란다. 자세한 것은  이와 나만이 공유하는 은밀한 이야기이니 말을 해주지 못하지만, 나는 그 이에게 모든 것을 보았으며, 그 이 또한 나의 모든 것을 보았지. 그와 함께한 시간은, 참으로 가슴이 벅차고, 황홀했어.”

비앙카의 말에 아리아의 얼굴이 핏기 하나 찾아볼  없을 정도로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그거 알고 있니?  이의 품이 어찌나 널찍한지. 그 이가 나를 꼭하고 안아주었을 때 내가 얼마나 따스함을 느꼈는지, 그리고  이와 하나가 되었을 때,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그, 런...”

“하긴, 너 같이 비천한 계집은 영원히 알지 못할 감상이기도 하구나. 비록 영락했다고는 하지만 카인은 제국에 단 넷 밖에 존재하지 않는 공작가의 후계자. 스스로의 존귀함을 위해서라도 출신조차 불분명한 비루한 여자와는 결단코 이어질 수가 없는 사이이지.”

“뭐, 한 때의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 수는 있겠지만, 너도 알다시피 그는 그런 성격이 아니지 않니? 자신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끝까지 책임지려하는 고지식한 성격이니, 아마 처음부터 너를 건드리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높단다.”

그리 말을 하며 비앙카는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게 있어서는 참으로 불행하기 그지없는 일이구나. 네가 아무리 그 이를 향해 온 몸을  바치더라도, 그 이는 결코 너를 품에 안아주지 않을 테니까.”

비앙카의 말은 확고한 진실이었으며, 동시에 그녀 나름대로의 진심이 담겨 있었기에, 아리아는 더욱더 비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실은, 그녀 또한 익히 알고 있었다. 자신과 그가, 그렇게 쉽게 이어질  없다는 것은, 진작부터 인지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녀가 섬기고 있는 주인인 카인 폰 에스텔은 장차 에스텔 공작 위를 계승 받을 존귀한 귀족이었으며, 그에 반해 자신은 기억을 전부 잃어 자신의 출신조차 알지 못하는 비루하기 이를 데 없는 천한 계집아이에 불과했다. 신분의 차이를 초월한 사랑 따위, 동화책에서 밖에 나오지 않는 공상 속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아리아 역시 잘 알고 있었단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사랑을 쉽사리 포기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있었다. 그에게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은 자신이 있었다. 그에게 헌신을 하고 싶은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끝에, 그로부터 사랑을 받기를 원하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아리아는 그러한 소망을 어느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은 채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두고 있기만 하였다. 어차피, 이루어질 리가 없는 소망이라는 것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아팠다. 그리고 미웠다. 자신과 그가 이어질 수 없는 이 현실이. 자신의 손에는 결코 닿지 않을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손에 넣어버린 비앙카  카스타나가. 그리고, 자신이 꼭꼭 숨겨두었다고 생각한 본심을 쉽사리 눈치 채고, 그를 빌미삼아 자신을 비웃고 있는 비앙카가, 너무도 밉기만 할 뿐이었다.

“뭐어, 그런 이야기란다.  카인의 전속 시녀였지? 머지않아 내가 카인과 결혼을 하게 된다면, 내가 네 안주인이 될지도 모르는 노릇인데 지금부터라도 존댓말을 하는 연습은 해두어야 하지 않겠어?”

비앙카가 실로 유쾌하다는  그러한 말을 내뱉자, 아리아는 고개를 푹하고 숙인 채 자신의 손을 부들부들 떨고 말았다. 참고, 참고, 또 참았지만, 아무래도 여기까지가 한계인 모양이었다.
사실,  결계 내부에 진입하고 나서 저 여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인내심 따위는 바닥난 지 오래였던 것이다.

“...짓말.”

“응?”

아리아가 아주 자그맣게 뭐라 속삭이는 바람에, 비앙카는 아리아가 대체 뭐라고 말을 한 것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하였다.

“얘는 대체 뭐라 그러는 거니. 말을  거면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게 크게 말하는 것이 예의...”

“...거짓말.”

그 때였다. 비앙카를 향해 고개를 쳐든 아리아의 얼굴이, 실로 표독스럽게 일그러져 있던 것이.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비앙카 델 카스타나. 네가 내뱉는 말은, 전부 거짓말이야-!”

그리고, 아리아의 입에서 실로 형용할 수가 없는 새된 목소리가 흘러나온 것이.

“있을 수 없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당신과 같이 제정신이 아닌 여자와, 카인님께서 사랑을 나누셨다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그래, 비앙카 델 카스타나. 당신이 무슨 이상한 수작을 부린 것이겠지? 내가 상상도 하지 못할 음흉하고 교활한 수작을 부려, 카인님의 이지를 흐트러뜨린 것이겠지?”

“...아니, 생각해보니까 정말 그렇네. 당신, 카인님의 기억에 함부로 손을 댔잖아. 그렇지? 나한테 했던 것처럼, 카인님의 머릿속에 장난질을 쳤잖아. 그렇지?”

아리아의 말에 비앙카의 몸이 순간적으로 움찔하며 흔들리고 말았다. 아리아의 말은, 틀림없는 진실이었다. 비앙카 자신에게 어떠한 뒷사정이 존재하였건 간에, 그녀가 카인의 기억에 수작을 부린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리고, 비앙카의 그러한 반응을 아리아는 놓치지 않았다. 아리아의 두 눈이 반짝하고 빛을 내뿜는다. 드디어, 저 증오스런 여자를 몰아세울 마법의 단어를 찾아낸 것이었다.

“...혹시나 해서 해 본 말이었는데, 정말이었네. 카인님의 기억에 장난을 친 후, 지난 40여일 동안 그 분의 옆에 있으면서 애정을 갈구했던 것이었구나.”

비앙카를 향한 아리아의비웃음 소리가 점점 커져만 간다. 그와 함께,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서로를 향한 살기도, 점점 커져만 간다.

“추악하고, 역겹기 그지없어. 비앙카  카스타나. 네가 한 일이 뭔지 내가 말해줄까?  그냥, 사람을 가지고 논 것에 불과해. 발상부터가 정상이 아니야. 사람의 기억을 강제로 없애버리고,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의 곁에서 연인행세를 하다니. 정말, 얼마나 우스운 촌극이었을까?”

방금 전과는 상황이 정 반대로 역전되고 말았다. 이번에는, 비앙카가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한 채 증오스런 눈길로 아리아를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비앙카를 힐끗 쳐다보며, 아리아는 그녀를 향해 결정타를 꽂아 넣는다.

“단언할게, 비앙카 델 카스타나. 넌, 정신 나간 역겨운 여자에 불과해.”

“너 같이 추악한 여자는, 카인님의 옆자리에 결코 어울리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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