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8. 비앙카 델 카스타나 - 02
그리고, 그녀는 눈을 뜨고 말았다. 사방은, 아직 어둡기만 하였다. 눈동자를 굴려 주위를 살펴보니, 카인이 옆에 곤히 잠들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비앙카는 눈을 감고 있는 카인의 얼굴을 보며 자신의 몸을 살짝 일으키려고 하다가, 아랫배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리고 말았다.
‘...아,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나버리고 말았다. 어젯밤, 자신은 그와 함께 침대에 누운 후, 몸을 겹쳤었다. 남녀 간에 이루어진 정사(情事)는, 처음이라 그런지 아픔을 동반하는 행위이긴 했지만 그 이상으로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아니, 행복한 일이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여자에게 있어,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것보다 행복한 일이 있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아, 읏...”
비앙카는 아랫배에서 느껴지는 아픔을 애써 참은 채 자신의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덮고 있던 이불이 아래쪽으로 사르르 흘려 내리며, 그녀의 나신이 이 자그마한 오두막에 그 자태를 드러내고 말았다.
하지만, 정작 비앙카는 곤히 잠들어 있는 카인의 옆에서 자신의 나신을 드러냈다는 것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을 뿐이었다. 어차피,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카인 앞에서 이 몸의 구석구석까지 전부 보여주었거늘 이제 와서 부끄러움을 느낄 이유 따위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방금 전까지 자신이 누워있던 자리를 힐끗하고 쳐다보니 침대 시트 위에는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비앙카는 그 핏자국을 보며,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고 말았다. 저 핏자국이야말로, 비앙카 델 카스타나라는 여인이 카인 폰 에스텔이라는 남자에게 처음을 헌납한 확실한 증거임이 틀림없을 테니까.
비앙카는 그들이 사랑을 나누기 직전, 카인이 자신의 몸에서 거칠게 벗겨내었던 드레스를 몸에 대충 두른 채 오두막의 문 밖으로 나섰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오늘따라 밤하늘의 달과 별이 더욱 밝은 빛을 내비추고 있는 것과 같이 느껴졌다. 분명, 자신은 예전과 똑같은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건만, 그녀의 눈에 비추어지고 있는 풍경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 이유는 아마,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그녀 자신의 의식이 변화했기 때문이겠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녀는 이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 카인과 사랑을 나누며 비앙카가 느낀 감동은 그녀의 의식을 조금이나마 변화시키는 것에 성공하였다.
무려 30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쌓여 있던 응어리인 만큼 단 한 번에 해소가 될 리는 없겠지만, 지금 이 순간 비앙카 델 카스타나라는 한 여인에게 있어, 심중의 변화가 생기고 말았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임이 아닐 수 없었다. 아마도 이러한 것이야말로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닌가하며, 비앙카는 자신의 눈을 살며시 감고 말았다.
그리고, 그 때였다.
“...음?”
무언가가 느껴진다. 비앙카가 카인과의 안락한 보금자리를 형성하기 위해 쳐놓은 결계를 강제로 해체시키고, 더러운 흙발로 이곳에 침범한, 무례하기 그지없는 침입자의 존재가 그녀의 감각에 들어온다.
‘...아니, 침입자'들'이었나.’
감각을 집중해보니 결계 안으로 침입한 이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거기다가, 그들에게서 풍기는 기세 또한 결코 경시할만한 것은 아니었다. 현 대륙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무력을 지닌 비앙카 델 카스타나에게 경각심이라는 것을 일으킬 정도의 힘을 갖춘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다. 거기다가, 겉으로는 ‘밀월여행’을 떠난 자신과 카인의 행적을 뒤쫓아 이곳까지 찾아올 사람이라면 세 명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성녀, 아리엘 티에르. 그리고 제국의 황녀인 아이리스 엘 데브하르트. 아마, 이 둘이겠지.”
처음에는 침입자 중 한 명이 키리에 엘 데나리스가 아닌가 하고 의심을 하기도 했었지만, 키리에가 이곳을 찾아올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비앙카와 키리에는 세계수에 대고 몇 가지 맹약을 서원(誓願)하였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서로의 행방을 타인에게 비밀로 하기로 한 조항이 있었으니 키리에가 굳이 이곳을 찾아올 가능성은 극히 드물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나저나, 그 여자들도 참 대단한 여자들이네.”
비앙카는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머금으며 그리 중얼거리고 말았다. 카인을 납치하여 이곳까지 끌고 온 자신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밀월여행’이라는 말에 이성을 잃고 끝내 이곳까지 뒤쫓아 온 그들 또한 정말 어지간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 오밤중에 다른 사람의 보금자리에 쳐들어온 무례한 손님들을 어떻게 대접해야 할까나.”
어지간한 밤손님 같았으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그녀가 직접 나서서 손님의 접대를 맡았을 테지만, 아쉽게도 오늘 그들의 보금자리를 찾아온 ‘손님’들은 비앙카 또한 결코 만만히 볼 수가없는 거물들이었다.
그들은 신분도 신분이거니와, 일신의 무력 또한 경시해서는 아니 될, 강적임이 틀림없었다. 더욱이, 견원지간이라는 말조차 매우 돈독하고 우애 깊은 사이로 보이게 할 만큼 사이가 좋지 않은 아리엘과 아이리스가 힘을 합쳐 여기까지 찾아온 것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그 둘은 그녀를 향해 화가 잔뜩 난 것으로도 모자라 눈이 뒤집혀버린 것 같았다. 자칫하다가 오늘 이곳에서 뼈를 묻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만큼, 커다란 위기감이 그녀를 엄습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의 판단이 정확하다고 치하하기라도 하듯, 흉악하고도 광포한 포효가, 사방에 울려 떨쳐진다.
“...초대장, 이네.”
방금 전, 결계 내부를 크게 진동시킨 이질적인 살기는, 틀림없는 초대의 신호였다. 쥐새끼마냥 카인의 옆에 숨어있지 말고, 이쪽으로 다가와 목숨을 건 사투를 한 번 벌여보자고 속삭이는, 노골적인 유혹이기도 하였다.
“...흥.”
그녀는 짐짓 코웃음을 치면서도 방금 전, 거대한 살기가 요동친 근원지로 순순히 발걸음을 옮겨갔다. 어차피, 저쪽에서 다가오지 않는다면 이쪽에서 치고나갈 계획이었다. 카인의 근처에서 다른 여자들과 사투를 벌이다가 그에게 불똥이 튀기는 일만은 사양하고 싶었다. 아내 된 이로서의 ‘내조’란, 단순히 집안일을 처리하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 비앙카의 지론이었다.
그렇게 오두막 앞의 탁 트인 초원을 넘어, 그녀와 카인이 머무르던 보금자리를 지켜주던 결계의 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공간 그 자체가 과자처럼 균열이 나 있는 곳 바로 앞 쪽에, 어느 여인이 비앙카를 향해 무시무시한 살기를 내비추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하?”
그 여인의 모습을 눈에 새긴 순간, 비앙카의 입에서는 당혹스런 목소리가 새어나오고 말았다. 비앙카가 카인과의 아늑한 보금자리를 계획하며 설치해놓은 결계를 과자처럼 부순 것도 모자라,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를 향해 섬뜩한 살기를 내뿜고 있는 주인공은 그녀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비앙카의 눈앞에 서 있는 여인은 ‘휘광의 수호’로 인해 인세 최강의 방어력을 자랑하는 여신의 첫 번째 종이자 방패, 성녀 아리엘 티에르도 아니었거니와 ‘하늘의 검’을 지녀 인류가 자랑하는 가장 날카로운 검인 아이리스 엘 데브하르트도 아니었다. 여인의 정체는, 비앙카가 단 한 순간도 자신의 계산속에 넣지 않은 존재였던 것이다.
햐얀 머리에 자안(紫眼)을 지닌 어느 소녀의 모습을 보며, 비앙카의 입에서는 얼빠진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말았다.
“...마녀?”
****
아리아와 비앙카가 서로 얼굴을 마주하던 때로부터 대략 15분 전.
“찾았습니다. 이곳이야말로, 비앙카 델 카스타나가 쥐새끼마냥 숨어있는, 근거지임이 틀림없어요.”
아리아는 싸늘하기 그지없는 얼굴을 하며 얼핏 보기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한적한 벌판의 한 가운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아리아의 왼손에는 키리에로부터 받은 세계수의 가지가 들려있었으며, 오른손에는 백금으로 만들어진 화려한 넥타이핀을 들고 있었다.
아리아가 들고 있는 넥타이핀이란, 말할 것도 없이 비앙카 델 카스타나가 에스텔 공작에게 뇌물이랍시고 건넨 선물 중 하나였다. 비앙카 델 카스타나는 에스텔 공작에게 넥타이핀을 선물하던 당시, 그녀는 자신의 예비 시아버지를 위하여 넥타이핀에 보존마법과 청결마법을 비롯한 갖가지 마법을 걸어놓았으며, 어찌나 수많은 마법을 중첩해 놓았던지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 넥타이핀에는 그녀의 마력 잔유물이 남아있을 정도였다.
넥타이핀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비앙카 델 카스타나의 깜찍함을 느꼈던 아리아는, 키리에로부터 세계수의 가지의 효능을 들은 그 순간, 바로 그 넥타이핀을 이용할 생각을 떠올리고 말았다. 안 그래도 그 여자가 에스텔 공작 앞에서 온갖 아양을 떨어대는 것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던 찰나였다. 또한, 비앙카 델 카스타나의 마력이 아직까지 생생하게 남아 있는 물건이 그것 말고는 어디에도 없기도 하였고.
그렇게 넥타이핀 속에서 잔유하고 있는 비앙카의 마력을 역추적, 아리아와 아이리스는 드디어 비앙카 델 카스타나의 목덜미를 붙잡는 것에 성공하고 만 것이었다.
“...허, 이것 참. 대담하기 이를 데가 없구나. 정말 대담하기 이를 데가 없어.”
아이리스는 비앙카 델 카스타나가 카인을 납치하여 대체 어디로 숨어버렸던 것인지 깨닫고 연신 혀를 차기만 할 뿐이었다. 놀랍게도, 비앙카 델 카스타나가 쥐새끼마냥 스스로의 몸을 감추고 있던 장소는, 에스텔 공작령의 본성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지지 않은 한적한 벌판의 한가운데였던 것이다.
제 아무리 범인은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던 장소에 다시 나타나는 법이라고 하지만, 납치라는 대담무쌍한 일을 벌여놓고서 에스텔 공작성의 코앞에서 스스로의 몸을 기거하고 있었다니. 일이 이쯤 되니 아이리스는 비앙카가 배짱이 두둑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제정신이 아닌 것인지 슬슬 헷갈리기 시작할 따름이었다.
“...흥. 그 음침한 여자는 그저 카인님과 함께 신혼집 분위기를 내고 싶었던 것이 분명하다 생각해요. 처음 보았을 때부터 느꼈던 사실이지만, 그 여자는 정말 사갈과도 같은 시궁창 냄새가 나는 여자에 지나지 않아요.”
“.....”
아이리스는 비앙카를 향해 온갖 악담과 저주를 퍼붓는 아리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분명, 루멘티움에서 아리아를 처음 보았을 때만 하더라도 순수함이 물씬 풍기던 귀여운 여아였건만, 요 몇 달 사이에 입이 굉장히 거칠어진 것 같지 않은가. 거기다가 초롱초롱하고 순수하던 두 눈에는 독기와 살기만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무래도,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은 크게 틀리지 않은 것 같았다.
“어쨌건, 비앙카 그 계집이 이곳에 결계를 쳐둔 채 카인을 납치감금하고 있다, 이 말이로군?”
“예, 맞아요. 현재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대기를 굴절시켜 비가시적 탄성을 지닌 결계를 구축했지만 말이에요.”
“...쉽게 말하자면, 비앙카 델 카스타나가 이 근방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결계를 설치했다, 이렇게 이해를 해도 되겠느냐?”
“예, 맞아요.”
아리아가 아이리스의 말에 수긍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리스는 무언가가 곤란하기라도 하듯 미간을 살며시 찌푸리고 말았다.
“흠, 결계 파훼는 내 전문이 아닌데... 거기다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결계라니, 까다롭기 짝이 없구나.”
아이리스가 구사하는 ‘하늘의 검’은 현세에 현존하는 모든 물질을 절삭할 수 있는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의 심상 그 자체가 구현된 의념(意念)이 일순간이나마 세계 그 자체에 간섭함으로서, 참격의 범위 내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에 자신만의 법칙을 강제한다는, 실로 반칙적인 권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아이리스가 구사하는 힘은 너무도 강대하였기에, 결계를 부수는 등의 섬세한 일은 그녀와는 정 반대의 영역에 위치한 일이기도 하였다. 자칫 검을 잘못 휘둘렀다가, 결계 안에 있을 카인조차 두 동강이 나버린다면그것이야말로 본말전도인 격이 아니겠는가?
“결계 파훼는 비앙카 델 카스타나, 그 계집이 전문적으로 하던 일인데 말이지. 헌데 이번에는 그 계집이 이런 결계를 설치하고 이 안에 굼벵이 마냥 쳐 박혀 있으니 꼬락서니가 아주 우습게 되었구나.”
그렇게 아이리스가 대체 어떠한 수단으로 이 결계를 어찌 뚫어내야 하나 고심에 빠져있던 찰나였다.
쩌적-
어디선가,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유하자면, 과자에 힘을 너무 주어 으스러트리고 말았을 때의 소리와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아이리스가 눈을 돌려 소리의 진원지를 살펴보니, 아리아의 정면에 유리창이 부숴진 것 마냥 공간에 균열이 나 있는 모습이 보이고 말았다.
“...하, 꼴에 꽤나 튼튼하게도 설치해 놓았네?”
아리아는 빈정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그리 중얼거리더니, 마치 파리라도 때려잡는 것 마냥 균열이 나 있는 공간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쨍그랑-!
아리아의 주먹이 닿자마자, 무언가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흩뿌려지며, 공간 그 자체가 박살이 나고 말았다. 그에 따라, 결계의 일부분 또한 저절로 붕괴해버리는 것과 동시에, 사람 한 명이 왕래할 수 있을 듯한 구멍이 생겨나버리고 말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아이리스는 자신의 눈앞에서 일어난 현상을 보며 신음성을 흘리고 말았다. 아이리스는 마법에 대해 그리 잘 알지 못하지만 방금 전, 아리아가 한 짓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짓인지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있었다.
결계란 섬세하기 이를 데가 없는 마법적 구조물이었다. 거대한 충격을 주어 결계 그 자체를 무너뜨리는 행위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아리아가 한 것처럼 결계의 일부분만 파손한다는 행위는 듣도 보도 못한 기사(奇事)임이 틀림없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뒤, 현세 최강의 마법사라고 불리던 비앙카 델 카스타나에게도 결계의 일부분을 파손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단 말이다!
“황녀님. 이제 됐어요. 어서 들어가도록 하죠.”
아이리스가 자신을 향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든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는 아리아는, 냉기가 풀풀 날리는 듯한 어조로 그녀를 향해 손짓을 하였다. 하고 싶은 말이야 무척 많았지만, 현 상황에서는 그것이 중요한 일이 아니었기에 아이리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리아의 뒤를 따라 순순히 결계 내부로 진입하였다.
그렇게 아리아와 아이리스가 결계 내부로 진입하자, 결계의 안에는 밖과는 다르게 탁 트인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아무래도, 비앙카 델 카스타나가 카인과 함께 살기 위해 결계 세공에 참 많은 공을 들인 듯 하였다.
“결계 내부의 공간은 대략 10km를 훌쩍 넘을 것 같네요. 여기서부터는 둘로 갈라져서 서로의 목적을 우선시 하는게 더욱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자신이 목적하던 바를 이루었으니 더 이상 황녀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고 선언하는 듯한 노골적인 그 말에, 아이리스는 쓴웃음을 머금고 말았다. 어차피, 자신 또한 더 이상 아리아의 도움이 필요 없었으니 피차일반이긴 하였지만.
“그렇군. 그대의 말이 옳다. 그렇다면 나는 카인의 행적을 찾아내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도록 하마. 아리아, 그대는 어찌할 방도인가?”
“제가 이곳에서 할 일은 오직 두 가지 뿐입니다. 한 가지는 카인님을 이곳에서 구출하고 안전한 곳으로 모셔다 드리는 것.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아리아의 두 눈에서 무시무시한 귀기가 불타오르더니, 이내 섬뜩하기 그지없는 살기가 결계 전체를 진동시키고 말았다.
“쓰레기 청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