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7. 호접지몽(胡蝶之夢) - 14
“...카인.”
“비앙카.”
눈을, 살짝 감는다. 살며시 그녀를 향해 다가가, 비앙카의 얼굴을 감싸고 그녀의 입술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나의 입술에, 부드러운 감촉이 와 닿는다.
“...아.”
마치 한 쌍의 음탕한 뱀과 같이, 입 안에서 내 혀와 비앙카의 혀가 서로를 끈적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서로의 혀를 통해, 서로의 타액이 상대방의 입 속을 침투한다. 처음에는 매우 잔잔하기만 하였지만, 이내 우리는 처음부터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격렬하게 서로의 혀를 탐하기 시작하였다.
“...아, 읍...”
그렇게, 서로의 숨결이 서로의 얼굴에 와 닿고, 서로의 혀가 서로의 입 안 구석구석을 미친 듯이 유린한 끝에야, 우리는 가까스로 뒤로 물러설 수 있었다.
“...하, 아.”
입술 사이로 살짝 내밀어진 서로의 혀에는, 반투명하며 가느다란 타액이 한 줄기의 실이 되어 우리 둘 사이를 잇고 있었다. 비앙카가 가느다란 숨을 몰아쉬자, 타액이 뚝 하고 끊기며 그녀의 목덜미 쪽에 달라붙었다. 비앙카의 새하얀 목덜미에 거미줄과 같은 한 줄기의 실이 매달려 있는 그 모습은, 실로 형용할 할 수가 없을 만큼 고혹적이고, 또 야해 보이기만 하였다.
“...카, 카인...”
그렇게 격렬하기만 했던 키스를 끝내고 나니, 나의 시야에는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채 나를 향해 바라보고 있는 비앙카의 모습이 비추어졌다. 아까 나를 향해 대담하게 유혹을 하던 여인은 이미 온데 간데 사라지고 없었으며, 그 자리에는 고작해야 끈적한 키스 한 번을 했다고 몸서리치고 있는 부끄러움이 많은 여인 한 명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 이건 반칙이야... 반칙이라고...”
비앙카는 마치 쥐구멍에라도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그리 중얼거렸다.
“뭐가 반칙인데?”
내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쳐다보자 안 그래도 홍당무 같았던 그녀의 얼굴이 곧 폭발할 것 같이 더욱더 붉게 달아오른다.
“...나는, 너만 보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는데, 너와 함께 있으면 심장이 이리도 세차게 두근거리는데, 너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잖아. 마치, 이런 일은 수도 없이 겪어본 것처럼 담담하기만 하잖아. 넌, 정말로 나쁜 사람이야.”
마치 아이가 투정을 부리듯, 비앙카가 나를 향해 그리 칭얼거리자 나는 그녀의 귀를 살짝 깨물며 이리 속삭였다.
“그럼, 하지 말까? 여기서 멈출까?”
나의 짓궂은 질문에 비앙카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간다. 그리고 이내, 자신의 머리를 좌우로 미친 듯이 내저었다. 누가 보아도 격렬한 부정의 반응이었다.
“...싫어, 그런 말하지 마아...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그만 둔다는 말만은 제발 하지 말아줘...”
그리 말을 하는 비앙카의 눈망울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내 딴에는 장난삼아 한 번 해본 말이었지만, 비앙카는 나의 말이 진심이라고 생각을 했는지 정말로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비앙카의약하고, 왠지 모르게 애처로운 듯한 그러한 표정을 보니, 왠지 모르게 나의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 가학적인 욕망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끼고 말았다.
생각해보니, 비앙카가 내가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상황에 대한 주도권은 언제나 비앙카가 쥐고 있었다. 그야 그럴 것이, 비앙카라는 여인이 겉으로 보기에는 찻잔 하나 제대로 들지 못할 정도로 가냘프게 보였지만 사실 어지간한 장정 몇 명쯤은 마법을 사용할 것도 없이 맨주먹 하나로 제압할 수 있을 만큼 강한 힘을 지닌 여인이기도 하였다.
어디 그 뿐이랴. 비앙카 델 카스타나는 현존하는 인류 가운데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무력을 지니고 있는 강대한 마법사이기도 하였다. 내가 만약 그녀와 일대일로 정면승부를 벌인다면, 그녀에게 상대도 되지 않을 것이 당연지사였단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비앙카의 앞에서 알게 모르게 주눅 들어있던 적이 많았다. 20년전,어린 시절의 나와 비앙카가 서로를 향해 투닥거렸을 때 변변찮은 반항도 못해보고 그녀에게 몇 대 쥐어 박힌 것부터 시작해서, 원정대에서 함께 했던 시절 그녀에게 찍소리도 못하고 부림을 당했던 것에 이르기까지, 나는 단 한 번도 비앙카라는 여자를 제대로 이겨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비앙카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수가 없었다. 오늘 밤의 주도권만큼은 내가 가져가야만 했다. 오늘 밤이야말로 그녀를 굴복시키고 무릎을 꿇게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나의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걸려 있는 중대한 문제이기도 하였다. 지금까지는 줄곧 비앙카를 제대로 이겨본 적이 없었지만, 드디어 제대로 된 설욕의 순간이 찾아오고 만 것이리라.
“...잠깐, 실례.”
나는 비앙카의 허리 쪽에 살며시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녀의 허리는 너무도 가느다란 나머지, 살짝만 건드려도 부서질 것 같이 느껴졌다. 나는 비앙카의 허리에 손을 올린 채로 손에 힘을 주어 그녀를 번쩍 하고 안아들었다.
“카, 카인... 지금 뭐 하는...!”
그렇게 나는 비앙카를 마치 공주님이라도 대하듯 안아 든후, 침대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그녀를 침대 위에 털썩하고 눕혔다.
“으, 읏...”
내가 자신을 침대 위에 눕히자 비앙카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듯 겁을 잔뜩 집어먹은 듯한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허나 그것도 잠시, 그녀는 이내 내가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좋다는 듯이 스스로의 두 눈을 질끈 하고 감을 뿐이었다.
비앙카의 그러한 모습에나 또한 체온이 확하고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평상시에는 그토록 이지적인 모습만을 보이던 주제에, 10년 뒤에는 대륙의 모든 사람들에게 모르는 것이 없는 대현자라고 추앙을 받던 주제에, 이렇게 침대 위에서는 남녀 관계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숫처녀처럼 굴다니.
“...비앙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의 새하얀 목덜미에 나의 손길을 살며시 가져다 대었다. 잡티 하나 없는 그녀의 백옥 같은 피부에, 나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욕망이 들끓기 시작하였다.
“흐읏...!”
아직 전희(前戲)고 뭐고 아무 것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신음소리를 내는 비앙카.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잔뜩 흐트러져 있는 그녀의 옷자락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등 쪽에 매여져 있던 드레스의 끈을 가볍게 풀어헤쳤다.
사락-
비앙카가 몸에 두르고 있던 드레스가 침대 바닥에 떨어진 직후, 나는 황제를 향해 배례(拜禮)를 하는 것처럼 극진한 태도로 그녀의 몸에 마지막까지 걸쳐져 있던 최후의 보루를 살짝 하고 끌어내리기에 이르렀다.
“보... 보지 마아...”
비앙카는 내가 자신의 나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만 한 지 한 손으로는 자신의 흘러 넘칠 듯한 풍만한 가슴을,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자신의 다리 사이를 가리고 있었다. 벽난로에서 새어나오던 모닥불의 불빛에, 그녀의 새하얀 나신이 반사되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
순간, 할 말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어떠한 미사여구도 필요 없었다. 새하얀 석고를 깎아내어 그대로 조각이라도 한 것 같은, 비앙카의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나신은, 정말로 지독할 정도로 아름답기만 할 뿐이었다.
내가 아무 말도 없이 자신의 나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만 있자, 비앙카는 왠지 모르게 떨리는 듯한 목소리로 내게 질문을 하였다.
“...왜, 왜 그래...? 서, 설마, 보기 흉해서 그래?”
“...아니, 무척 예뻐서 그랬어. 넌, 정말로 예뻐.”
내가 진심을 가득 담아 그녀의 귓가에 그리 속삭이니, 비앙카의 얼굴이 기쁨으로 환하게 물든다.
“...어째서일까.”
“항상 꿈꾸어왔고, 그토록 고대하던 순간임이 틀림없는데, 왠지 모르게 너무 부끄러워...”
나는 그녀의 귀여운 칭얼거림에 살짝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옆으로 스러 넘겨주었다. 사실, 떨리는 것은 나도 매한가지였지만 이럴 때만큼은 결코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기에, 있는 힘껏 허세를 부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어 보인다.
“카인... 사실 나, 이번이 처음이야...”
“...뭐?”
나를 향해 수줍은 듯이 고백을 해오는 비앙카.
“나, 나는 아무 것도 모르니까, 네 마음 내키는 대로 얼마든지 해도 괜찮아. 아니, 그렇게 해줘.”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나 지금 엄청 기뻐. 내 처음이 카인 너라서, 정말로 기뻐...”
그리 속삭이며 비앙카는 내 등 뒤를 세차게 껴안으며 나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었다.
“...카인, 사랑해. 정말로...”
그리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그녀는 나에게로 살며시 자신의 몸을 겹쳐왔다. 나 역시, 그녀의 몸을 뿌리치지 않고 오히려 그녀의 품 깊숙한 곳으로 조용히 침잠해 들어간다.
지금 이 순간, 비앙카는 정말로 미친 듯이 사랑스러울 뿐이었다.
****
“...시작되었나.”
키리에는 밤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을 올려다보며 그러한 말을 중얼거렸다. 과거, 이제는 사라져버린 시간 속에서, 키리에는 카인과 반려의 인연을 맺었던 적이 있었다. 비록, 시간이 몇 번이나 뒤로 감기며 이제는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사실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카인 사이의 연결은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엘프들이 일생에 단 한 번만 맺는다는 반려의 인연은 시공을 넘어서도 지속이 될 만큼 강인하고, 질기기까지 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카인이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의 기저심리 상태가 어떠한 상태에 놓여있는지 정도는 쉬이 파악할 정도는 되었단 말이다. 과거 같았으면 그가 현재 무슨 말을 하고 있으며, 그의 시야에 어떠한 풍경이 비추고 있는 지도 파악할 수 있었을 테지만 이렇게 가느다란 연결만 남아 있는 지금은 결단코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였다.
“뭐, 사실 이 정도가 딱 적당하기는 하지.”
사실, 키리에 또한 카인의 사생활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꿰뚫어 보는 것은 원하지않았기에 이 정도가 딱 적당한 선이 아닐까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소유물이며, 자신 또한 그의 소유물이긴 하지만 원활한 부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소소한 비밀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원래 남녀 사이에서는 적당한 비밀이 있어야만 그 사람이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는 법이니 말이다.
...느껴졌다. 비앙카와 사랑을 나누고 있는 듯한 카인. 그리고 카인을 구하기 위해 세계수의 나뭇가지를 들고 그들이 위치해 있는 장소에 거의 근접해 있는 아리아와 아이리스.
비록, 그 자리에 아리엘 티에르가 없는 것이 살짝 아쉽기는 하였지만, 그들 셋만 있더라도 상당히 재미난 구경거리를 연출해주겠지. 그곳에 모여 있는 모든 여성들이, 카인을 향해 마음을 품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들 셋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는 순간, 그들을 과연 어떠한 수라장을 연출하게 될까?
...스스로가 생각해도 악취미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아이리스 엘 데브하르트의 말처럼 나이를 너무 먹은 끝에 머리가 돌아버린 것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실제로 너무나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 그녀에게 있어 즐길 거리는 한정이 되어 있었으며, 결국 그녀가 즐길 수 있는 것은 인간 그 자체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키리에는 카인 폰 에스텔이라는 남자에게 반해버리고 만 것이리라.그토록 오랜 세월을 살아왔지만, 그처럼 찰나의 반짝임을 보여주는 이는 정말 드물었으니까.
“자아, 그러면 이번 이야기의 엔딩은 어떤 식으로 끝을 맺게 될까?”
이번 이야기의 주연은 카인 폰 에스텔과 비앙카 델 카스타나. 그 둘은 과연 키리에에게 어떠한 결말을 보여주게 될까? 해피 엔딩일까, 그것도 아니면 새드 엔딩일까? 사실, 어느 쪽이더라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어떠한 끝을 맞이하더라도, 그 나름대로 즐길 거리가 있는 것은 분명하였으니.
그리 중얼거리던 키리에는 이내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기라도 하기 마냥 낯빛을 굳히며 아주 자그마한 목소리로 이리 속삭였다.
“단순한 놀이까지는 허용해 주겠지만, 너무 지나치게 빠지지는 말아줘. 카인.”
아무리 한 때 스쳐지나가는 바람이라고는 하지만, 그가 다른 계집에게 너무 지나치게 몰입하게 된다면, 살짝 화가 날 수도 있는 노릇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