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7. 호접지몽(胡蝶之夢) - 13
내가 그 말을 내뱉은 순간,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 자그마한 오두막 안은 삽시간에 묵직한 적막으로 가득 차고 말았다.
“.....”
의외로, 비앙카는 표정은 담담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아니, 비앙카의 얼굴에서 표정이라는 것이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는 게 올바른 표현인 것 같았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모든 것에 순응해버린 듯한 모습이기도 하였으며, 또 다르게 보면 이제는 전부 체념해버린 듯한 모습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얼굴에 핏기 하나 없는 모습을 보아하니 결코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닌 듯 하였다.
새하얗게 질려있는 비앙카의 얼굴을 뒤로 한 채로, 나는 다시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게 전부가 아니지? 나에게서 기억을 빼앗아간 것도, 이 오두막 주위에 강력한 결계를 쳐놓음으로서 나를 감금해두고 있는 것도, 전부 네 소행이 틀림없다고 추측되는데, 내 말이 틀린가?”
그리 말을 하며 나는 동화책 한 가운데서 튀어나온 것 같은 아기자기한 오두막을 한 차례 둘러보며 쓴웃음을 머금었다.
“아니, 이곳에서 우리 둘 사이를 규정하고 있던 모든 것이 거짓말이었던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는데. 설마 내 추측이 틀린 것인가, 비앙카?”
“.....”
그렇게, 한동안 무겁기 그지없는 침묵이 이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던 와중이었다. 비앙카는, 여전히 표정을 쉽사리 읽을 수가 없는 담담하기 이를 데가 없는 표정으로 자신의 입을 천천히 열었다.
“...대체, 어떻게 알았어?”
비앙카의 발언은, 사실상 나의 추측이 정답임을 인정하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었다.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야. 처음에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무엇 하나 눈치 채지 못하였었으니까. 모든 것은 단순한 추측에 지나지 않았지.”
나는 비앙카를 향해 어쩌다가 그러한 결론에 닿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일련의 사고의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해주기로 하였다. ...실은, 답안지를 전부 펼쳐놓은 채 풀이과정을역순으로 밟은 것에 지나지 않았기에 잘난 척 할 일은 아니었지만.
“비앙카, 내가 이 오두막에서 눈을 떴을 때, 너는 내게 이렇게 말을 했었지. 내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여, 너와 함께했던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그 후유증을 치료하기 위해, 이렇게 자그마한 오두막에서 ‘요양’을 하게 된 것이라고.”
얼핏 듣는다면 꽤나 그럴듯한 변명이기는 하였다. 하지만, 조금만 깊게 생각한다면 비앙카의 말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임이 틀림없었다.
어디를 어떻게 보아도 귀족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비앙카가 어떠한 수행인도 없이 이런 오두막에 나와 단 둘이 있기만을 자처한 것도, 사고를 당했다고 하는 나의 몸에 어떠한 상처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도, 내가 ‘요양’을 하는 것에 있어 방해가 될 수도 있으니 근방의 출입을 불허하는 강력한 결계를 쳐놓은 것도, 전부 수상쩍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내가 아무리 머리가 좋지 않아도, 그 정도는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단 말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비앙카는 너무나 커다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너는 너무도 여유로웠어. 비앙카.”
“...뭐?”
“네 말대로 정말 우리가 연인 관계였다면, 부상당한 연인을 향해 좀 더걱정하는 기색 정도는 보여야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너는 내 기억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더라도, 내 부상에 대해서는 일절 물어보는 기색이 없더군. 마치, 그러한 부상 따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지.”
“.....”
분명, 비앙카는 그런 사소한 설정마저 신경을 쓸 겨를은 없었던 것이리라. 신선놀음에 도끼자루가 썩어가는 것도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비앙카 또한 나와의 ‘연인놀이’에 너무도 심취한 나머지 자신이 초반에 내뱉었던 그런 사소한 설정 따위는 무심코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이 분명할 테니.
“마지막으로, 네 마법은 그리 완전하지 않았어. 비앙카.”
“...내 마법이 불완전 했다고?”
“그래, 내 머리 속에서 기억이란 기억은 싸그리 떠올릴 수 없게 만든, 그 마법 말이야.”
나는 검지 손가락으로 나의 머리를 톡톡하고 두드렸다.
“마법에 대해서는 일자무식인지라 무엇이 원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둘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하더군. 뭐, 모든 기억이 완전히 되살아난 것은 아니고 드문드문 밖에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 정도만 하더라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는 것에 아무 무리가 없던데?”
...사실, 내가 어찌하여 비앙카가 구사한 마법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전혀 짚이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난 한 달 동안, 나는 어떻게 해서든 사라져버린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썼으며, 그 결과 나의 몸에는 육안으로는 도저히 파악할 수가 없는 아주 가느다랗고 희미한 끈을 통해 ‘무언가’와 연결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가정일 따름이지만, 내 몸과 이어져있는 ‘무언가’가 내가 기억을 회복하는 것에 도움을 준 것이 아니었을까? 물론, 논리고 증거고 아무 것도 없는 내 추측에 불과할 따름이었지만.
비앙카는 처음부터 끝가지 나의 추론을 잠자코 듣기만 하더니, 이내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며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전부, 알아차리고 말았구나. 이렇게, 모든 것이 끝나고 말았구나.”
나의 말에 비앙카는 입술을 살짝 하고 깨물더니, 이내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걸치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숨길 수 없는 경멸이 깃들어 있었다.
“맞아. 네 추측이 전부 옳아. 네 말은 하나도 틀린 것이 없어. 나는 너를 너무 가지고 싶어 했던 나머지, 너를 납치하고 네 기억까지 전부 없애버린 끝에, 네 옆에서 연인행세나 했던, 그런 소름 돋는 여자에 불과해.”
그녀는 깔깔 웃으며 악역과 같은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내가 보기에 그녀는 필사적으로 악역을 연기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비앙카의 그러한 모습이 왠지 모르게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나를 경멸하니. 카인? 너 또한, 내가 미친년처럼 보일 뿐이니? 그래, 그럴 수밖에 없겠지. 난 너를 속였어. 너에게 거짓만을 늘어놓았어. 약혼부터 시작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네게 거짓을 늘어놓지 않은 적이 없었어!”
...아니, 그녀는 실제로 울고 있었다. 언젠가, 내가 보았던 그 때의 어린아이처럼, 그녀는 마음 속 깊이 울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이해한 순간, 나는 나 자신에 대해 후회를 해버리고 말았다. 만약, 내가 조금만 더 그녀의 마음을 빠르게 눈치 챌 수 있었더라면, 그녀의 이러한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 후회를 해버리고 말았다.
“알고 있었어. 내가 나쁘다는 것쯤은, 내가 잘못된 선택을 내렸다는 것쯤은, 전부 알고 있었어! 하지만, 무서웠어. 설령 거짓이더라도, 지금 맛보고 있는 행복이 너무 달아서, 도무지 끝을 낼 수가 없었어. 어쩌면, 이렇게 모든 것을 잊어버린 채 살아가는 편이 우리들에게는 행복이 아닐까 자위를 하며, 끝내 너를 상처 입히고 말았어.”
언젠가, 비앙카는 내게 이리 말을 하였었다. 자신은, 참고 기다리는 것이 익숙하다고. 그러니까, 내가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아도아무 상관없다고. 그 아무렇지도 않은 말에, 얼마나 많은 회한과 슬픔이 깃들어 있었는지, 나는 어째서 깨닫지 못했던 것일까. 어째서, 그녀를 이해해주지 못한 것일까.
“전부 내 잘못이야. 처음부터, 모든 것은 파국으로 끝을 맺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나는 어째서 네게 상처를 입히는 짓을 하고 만 것일까. 카인, 미안해. 나는 정말 나쁜 여자 인가봐. 그러니, 나를 결코 용서하지는 말아줘.”
네게 있어 죄인에 불과 하노라고, 참회하는 듯 그리 울부짖는 비앙카에게 나는 한 발짝 다가가-
“...아.”
그녀를 살포시, 그리고 꼭하고 끌어안아 주었다.
“...카, 인...”
나는 이미, 진작에 그녀를 용서하였다.
“미안해, 비앙카. 진작, 네 마음을 눈치 채지 못한 것도, 네 마음을 외면해버린 것도, 네가 그렇게 아파하고 있을 때 네 손을 잡아주지 못했던 것도, 전부, 미안해.”
순간, 나의 머릿속에 비앙카와 함께했던 지난날의 추억들이 떠오르고 말았다. 어릴 적, 세상에 어떠한 미련도 없다는 듯 공허한 눈길로 타인을 바라보던 자그마한 외로운 어린아이. 원정대에서 갖은 명목으로 나에게 투정을 부리고 사람을 못살게 굴었던 고약한 심성의 마법사.
그리고, 나의 거짓 약혼녀 행세를 하며 행복하기만 한 듯 얼굴에 미소를 지어보이던 어느 한 여인.
분명, 그녀의 행동은 잘못되었다. 그녀의 행동은 명백히 정상이 아니었다. 자신이 손에 넣을 수 없었다고 해서, 타인의 정신과 육체에 손을 댄다는 행위는, 명백히 커다란 잘못임이 틀림없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를 향해 무작정 죄를 물을 수가 없는 나 자신이 존재하기도 하였다. 과거 같았으면 분명 그녀를 향해 화를 내거나, 증오를 불태웠을 것이 분명하였을 텐데, 어째서인지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지가 않았다. 어쩌면, 그녀와 함께 했던 40여일의 시간이, 나는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녀는 미워하는 것은 간단하다. 그녀를 향해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 또한 간단하였다. 하지만, 그래 가지고는 무엇 하나 해결되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 자리에서는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해결을 볼 것이다.
그것이, 내가 내린 선택이자, 결정이었다.
“그러니, 이제 그만하자. 자신을 속이고, 다른 누군가를 속이고, 그 끝에 모두를 속인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너 또한 불행하게 만들 뿐이야. 나는 더 이상, 네가 상처를 입지 않았으면 한다. 비앙카.”
본디 세상일이란 그러한 것이었다. 자신의 순수함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으로서 타인을 대하게 된다면, 결국에 모든 것은 망가져 버리기 마련이었다. 내가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에게 진실을 고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더 이상은, 그녀가 잘못된 선택 속에서 거짓된 행복을 누리는 것을, 지켜볼 수가 없었을 따름이었다.
그리 말을 하며 나는 비앙카를 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서로의 숨결이, 서로에게 와 닿는 것이 느껴진다.
“...카인.”
비앙카의 눈에서 흘러나온 무언가가, 그녀의 볼을 적신다. 동시에, 그녀는 나를 향해 이리 속삭였다. 널 좋아해서 다행이야. 정말로.
“...한 가지, 대답을 해줄 수 있어?”
비앙카의 질문에 나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나의 대답에 비앙카는 고개를 푹하고 숙이더니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내게 이리 속삭였다.
“나와 함께한 이 시간이, 당신은 행복했었어?”
비앙카의 질문에, 나는 솔직하게 답을 하였다.
“...그래, 행복했었어.”
나의 대답에 비앙카는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다행이다. 응, 다행이야.”
나와 함께한 순간이 당신에게 있어 행복하지 않은 시간이었다면, 그것이야말로 나에게는 크나큰 아픔이었을 테니.
“있잖아, 카인. 사실, 나는 꿈을 꾸었어.”
“꿈?”
나의 반문에, 비앙카는 살며시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한다.
“만약, 어디까지나 만약의 일이지만, 이대로 이 자그마한 오두막에서 우리 둘이 계속해서 살아가게 된다면, 어떠할까 하는 꿈을 꾸었어. 나라는 사람이 당신의 품속에 살고, 당신의 무릎 위에서 죽고, 당신의 눈 속에 묻히지 않을까하는, 그런 사치스러운 꿈을 꾸어 보았어.”
“...하지만, 꿈이었나보네. 우리가 함께하는 이 순간은, 필경은 거짓, 가짜에 불과했었으니까. 그러니, 우리들의 이야기가 이러한 결말로 마무리 되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이 사랑의 끝이 보답 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나는 이 순간, 당신을 사랑하고 있음이 분명하니까. 그리고, 지금 당신이 나를 사랑해주고 있음 역시 분명하니까. 그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행복하다.
“...있잖아, 카인. 당신 말대로 할게. 당신의 말대로, 이런 거짓된 연극 따위, 그만 두도록 할게. 대신, 한 가지 부탁이 있어.”
비앙카는 얼굴에 묘한 열을 동반한 채로, 나의 귓가에 아찔하기 그지없는 말을 속삭여왔다.
“날 안아줘. 날 품어줘. 나를 원해줘. 내 안에, 네가 다녀갔다는 흔적을 남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