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7. 호접지몽(胡蝶之夢) - 07
타닥, 타다닥.
카인과 비앙카가 함께 거하고 있는 오두막의 안.
현재 카인은 침대 위에 누워 곤히 잠에 들어 있는 상태였으며, 비앙카는 오두막의 한켠에 설치되어 있는 벽난로아궁이에서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빤히 쳐다보고 있기만 할 뿐이었다.
그녀는 현재, 노심초사하고 있는 상태였다. 혹시 불길이 약해지거나, 꺼지게 된다면 잠에 들어 있는 카인이 추위를 느끼지는 않을까, 혹여나 잠자리에서 깨지는 않을까, 무척이나 염려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마법을 사용해 오두막 내부의 기온을 조절할 수는 있었지만, ‘단 둘’이서만 있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굳이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분위기를 망치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읽어 보았던 연애소설에 의하면 갓 결혼한 신혼부부는 이러한 사소한 역경을 하나하나 극복해나가며 서로의 관계를 진전시켜나가는 법이라고 하였으므로.
그렇기에 비앙카는 혹시 벽난로의 불길이 약해지지는 않을까, 그로 인해 카인이 추위를 느끼지는 않을까하며 속으로 끙끙 앓고 있는 상태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살면서 찻숟가락 보다 무거운 것을 들어본 적이없을 것만 같은 아가씨가 장작 몇 개를 손에 꼭하고 쥔 채 벽난로를 향해 장작을 하나씩 던져 넣는 그 모습은 정말이지지독할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광경이었지만 정작 비앙카 본인은 진지하기만 할 뿐이었다.
왜냐하면, 좋았기 때문이다. 카인을 위해 무언가 해줄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좋았기 때문이다. 비앙카는,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어떠한 일을 행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놀라울 정도의 뿌듯함과 만족감을 안겨다준다는 사실을.
기뻤다. 어떠한 마법을 익혔을 때도 이토록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였으며, 격전 끝에 ‘겨울의 마녀’를 물리쳤을 때도 이토록 뿌듯함을 느끼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양철로 이루어졌을 것이라 생각했던 자신의 심장에 따스한 온기가 도는 기분이 들었다. 이것이야말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이 틀림없노라고,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후후.”
사락-
그녀는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를 내며 침대 위에서 숙면을 취하고 있는 카인을 향해 살며시 다가갔다. 현재의 카인은, 설사 누군가 자신을 업어가더라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모습이었다.
그야, 무리도 아니겠지.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려 사흘 동안이나 정신을 잃어버리고 있다가 조금 전에야 의식을 되찾은 몸이었다. 당분간은 침대 위에 가만히 누워 요양을 해도 모자랄 판국에 오두막 주위를 이리저리 쏘다니기까지 하였으니, 결국에는 기력이 다하여 저렇게 의식을 잃어버린 것 마냥 깊은 잠에 빠지게 된 것은 필연적인 결과였던 셈이다.
“...으음.”
그 때였다. 마침 잠자리가 불편하기라도 했던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악몽이라도 꾼 것인지, 카인은 신음성을 내며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고 말았다. 그가 오른편으로 몸을 뒤척이는 바람에, 카인의 얼굴이 마침 침대 옆에 서있던 비앙카와 정면으로 마주하는 형세가 되고 말았다. 물론, 그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며, 카인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상태였지만.
“...카인.”
하지만, 그의 얼굴을 정면에서 바라보고 있는 비앙카의 입장에서는 사뭇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와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고 있자니, 비앙카의 머릿속에서는 오늘 그와 함께 나누었던 기억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좋았지. 응, 정말, 좋았지.”
정말로, 좋았다. 오늘 하루, 그녀는 그와 참으로 많은 것을 함께 나누었다. 그와 팔짱을 끼기고 하였으며, 함께 정원을 거닐어보기도 하였으며, 그것도 모자라 그의 입술을 탐하기까지 하였다.
그는 알고 있을까. 자신과 그의 입술이 맞닿은 순간, 자신은 바보가 된 것 마냥 머릿속의 끝까지 새하얗게 변하여 아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는 것을. 뇌 그 자체에, 전류가 튀어 오른 듯한 짜릿한 충격을 맛보고 말았다는 것을.
세간에서는 흔히 이러한 말을 나누곤 한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첫사랑은 언제나 실패로 끝을 맺기 마련이라고. 그렇기에 첫사랑이라는 언제나 달콤 쌉싸름한 녀석임이 틀림없노라고.
...하지만, 비앙카는 그 말에 동의를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 그녀는 무척이나 행복하였기 때문이었다. 행복하고, 너무도 행복한 나머지, 자신 같은 것이 이리도 행복해도 괜찮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행복하기만 하였다.
스윽-
비앙카는 자신의 오른손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려 카인의 뺨을 살짝 어루만져 보았다. 그의 뺨에는, 모닥불 탓인지 따스한 온기가 은은하게 맴돌고 있었다.
역시, 자신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스스로가 짊어지고 있는 것들을 모조리 내던진 끝에, 이렇게 그와 함께하는 것이 정답이었던 것이다. 세상의 그 어떠한 사람도 자신들을 방해하지 못할 이 장소에서라면, 카인과 자신이 백년해로를 하는 것도 허황된 꿈이 아닐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끝에, 그와 닮은 아이를 여럿 낳아 다 같이 단란한 시간을 보낸다는 상상을 하니 머리에 열이 오르기 시작하였다. 머릿속 어딘가에서, 이상한 스위치가 켜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킥.”
그가 잠들어 있는 모습을 다시금 찬찬히 살펴본다. 얌전히 눈을 감고 있는 그의 얼굴은, 그녀의 생각 이상으로 귀여울 뿐이었다.
“...카인, 네가 잘못한 거야. 응, 그런 표정을 내게 보여준, 네가 잘못한 거야...”
그러한 말과 함께 비앙카는 마법을 자아내기 시작하였다. 그녀가 카인에게 건 마법은, 신체에 전혀 해로운 마법은 아니었다. 애당초, 그러한 마법을 카인에게 사용할 리가 없지 않는가. 마법의 효능은 아주 단순하였다. 그냥, 이 마법에 걸린 대상자가 더욱 깊은 잠에 빠지게 하며, 어떠한 자극을 받아도 쉬이 깨어나지 못하게 하는, 수면 유도용 마법일 뿐이었다.
“자, 그럼...”
비앙카의 손가락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출발점은, 그의 뺨이었다. 뺨을 어루만지는 것과 동시에, 그의 입술을 살짝 매만진 그녀의 손가락은, 이내 그의 쇄골을 통과하여, 그의 탄탄한 가슴을 살짝 더듬기까지에 이르렀다.
“...하아.”
저도 모르게 달뜬 한숨이 새어나오고 말았다. 선을 넘을 생각까지는 없었다. 하지만, 자신은 이미 그에게 모든 것을 주기로 한 몸이니, 예습 정도는 해두는 편이 서로를 위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러한 변명으로 자신을 합리화하고 있었다.
“카인, 사랑해.”
비앙카는 카인의 몸 위에 올라타며 그의 귓가에 대고 그리 속삭였다.
아직, 남아있는 밤은 길고도 길 뿐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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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드는군.’
아이리스는 자신의 뇌리를 스치는 어떠한 종류의 불쾌한 감각에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사소한 문제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왜냐하면, 현재 아이리스의 눈앞에는 카인의 아버지인 에스텔 공작이 그녀를 향해 예를 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스텔 공작가의 프란츠 폰 에스텔이 제국의 달께 인사를 올립니다.”
“그리 예를 표하지 않아도 된다네, 에스텔 공작. 나 또한 폐하께 자네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몸이니 말일세. 황실의 맹우라고 할 수 있는 자네가 이리 과도한 예를 차린다면 오히려 불편한 따름이니 그리 고개를 숙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네.”
아이리스의 말에 에스텔 공작은 그제야 아이리스를 향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올렸다.
“...저하께서 그리 생각을 해주시니 황송하기만 할 따름입니다.”
“무얼. 그리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그대로 말한 것에 불과하거늘.”
그렇게 서로 간에 치하와 겸양이 오고간 끝에야 에스텔 공작은 아이리스를 향해 조심스러운 어조로 질문을 던져볼 수 있었다.
“...저하, 그런데 어찌하여 아무런 기별도 없이 이곳을 방문해주신 것입니까? 루멘티움에서 에스텔 공작령까지의 거리는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닐지 언데, 고작해야 수행원 한 명만 데리고 이곳을 방문하신 이유가 대관절 무엇인지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그리 말을 하며 에스텔 공작은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아이리스와, 그녀와 함께 이곳을 찾아온 호위기사 크리스, 그리고 짐짝으로 함께 딸려온 아리아를 바라보며 의문이 가득한 표정을 지어보일 뿐이었다.
“그 이유는 폐하께서 내게 내려주신 황명과 크나큰 연관성이 있으니 타인에게 함부로 실토를 할 수 없다네. 그 점에 대해서는 양해를 부탁하지, 에스텔 공작.”
하지만 입에 침도 바르지 않은 채 뻔뻔스럽게 대답을 하는 아이리스를 보며 에스텔 공작은 자신의 의문을 가슴 깊숙한 곳에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설마하니 고지식하고 딱딱한 성격의 소유자인 아이리스가 거짓부렁을 읊어가면서까지 이곳을 방문할 이유가 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으니까.
“...예, 죄송합니다. 저하.”
황명이라는 말에 에스텔 공작이 고개를 꾸벅 숙여보이자 아이리스는 마음 속 한쪽 구석에 죄책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을 애써 억눌러야만 하였다.
“크흠, 그것보다 에스텔 공작. 내 이 근처를 지나치다 흥미로운 소문을 접하였던지라, 자네에게 개인적으로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다네.”
“...개인적인 질문 말씀이십니까?”
약간이지만 어리둥절한 기색을 비추며 에스텔 공작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말았다. 대체 어떠한 종류의 소문이기에 저 고지식한 황녀의 흥미를 끌 수 있었던 것인지 의아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 소문을 듣자하니, 에스텔 소공작과 카스타나 후작가의 비앙카 델 카스타나가 약혼식을 올렸다지? 그 소문이 사실이었단 말인가?”
아이리스의 질문에 에스텔 공작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조금만 수소문 해본다면 금방 진위를 파악할 수 있는 질문인데 답변을 해주지 못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습니다. 저하. 물론, 그 이면에는 정치적 거래가 있기는 하였지만 두 사람이 약혼을 올린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에스텔 공작이 두 사람의 약혼을 선선히 인정하는 꼴을 보아하니 아이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 그녀에게 있어 예비 시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카인의 곁에 다른 계집이 붙어있는 꼴을 순순히 용인하는 것 그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리스는 자신의 목소리를 한 차례 가다듬은 후, 에스텔 공작을 향해 자신이 진정으로 묻고 싶었던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렇다면, 현재 약혼 관계의 그 둘이 실종되었다는 소문 또한 정녕 사실이란 말인가?”
“...예?”
아이리스의 갑작스런 질문에 에스텔 공작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일 뿐이었지만, 아이리스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향해 재차 질문을 던졌다.
“내 이곳으로 오는 와중에 한 가지 기묘한 소문을 들었다네. 에스텔 소공작이 에스텔 공작가로 복귀하는 도중에, 행방이 묘연해지고 말았다는, 그러한 소문 말일세.”
“.....”
“내 다른 것은 몰라도 그것만큼은 가벼이 흘려 넘길 수가 없더군. 에스텔 공작가는 제국의 시작과 함께한 유서 깊은 가문. 제국의 황녀로서공작가의 후계자의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소식을 어찌 가만히 두고 볼 수만 있단 말인가. 에스텔 공작. 자네 또한 그리 생각을 하지 않는가?”
사실은 아이리스의 말 속에는 사심만이 가득 담겨 있을 뿐이었지만 겉으로 보기에 그녀의 말은 한 점 틀린 구석이 없었으므로 에스텔 공작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일 뿐이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는 듯 하였다. 카인과 비앙카를 생각하여 감출 수 있는 데까지 감추어 보려고 하였지만, 황녀가 이리 나오는데 마냥 뻗댈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후우,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더는 숨길 수는 없는 노릇이겠군요. 아무래도 저하께는 진실을 알려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진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에스텔 공작?”
“사실 그 둘은, 실종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 둘을 제 두 눈으로 목격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순간, 아이리스는 에스텔 공작의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목격한 적이 있다고? 실종된 그 둘을?”
“예, 그 둘이 종적을 감추었다는 소문이 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이 손을 잡고서 이곳을 방문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 말을 하며 에스텔 공작은 자신의 입에 쓴웃음을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보아도 젊은이들의 치기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는 이러한 종류의 일을 황녀에게 고하려고 하니 상당히 낯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카인이 비앙카, 그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이리 말을 하더군요. 약혼 기념으로 잠깐 동안만 밀월여행을 다녀올 테니 그리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고 말입니다. 둘만의 시간을 충분히 보내고 나면 돌아온...”
하지만 에스텔 공작의 말은 거기에서 끊길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밀월여행...? 나도 아직 해보지 못한 것을, 그 계집이 먼저 선수를 쳐...?”
그의 눈앞에 있는 황녀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는 살기를 터트리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