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1화 〉7. 호접지몽(胡蝶之夢) - 02 (51/201)



〈 51화 〉7. 호접지몽(胡蝶之夢) - 02


덜컹, 덜컹.

에스텔 공작가로 향하는 복귀 행렬. 그 행렬의 한 가운데에 있는 호화로운 마차 안에서 몸을 뉘이고 있던 나는 마차가 거세게 덜컹거리는 충격에 저도 모르게 눈을 뜨고 말았다.

“으음...”

눈동자를 돌려 창문 밖에 비춰지는 풍경을 슬쩍 내다보았다. 이미 사방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어둠이 자욱하게 깔려있기만 할 뿐이었다. 슬쩍 귀를 곤두세워보니 어디에서인가 풀벌레들이 지저귀는 소리도 들려오고 있는  하였다.

고개를 살짝 위로 올려보았다. 먹물을 뿌려놓은 듯한 밤하늘의 한 가운데에, 휘영청하기만  보름달이 구름 사이로 수줍기만   자신의 속살을 감추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보름달의 주위에는, 마치 밤의 여신을 알현하기라도 하듯 무수한 별들이 수놓아져 있었다.

“...우음, 카인님...”

나의 옆에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  새근새근 잠에 빠져 있는 아리아의 모습이 있었다. 입을 살짝 벌린 채 곤히 잠에 들어 있는 모습은 정말이지 귀여웠던지라, 나는 그녀의 흐트러져 있는 머리를 살짝 가다듬어 주었다.

“...헤헤, 더 해주세요오...”

나는 그리 잠꼬대를 중얼거리는 아리아의 얼굴을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감상하기만 하던 나는, 문득 아리아의 얼굴 위에 그녀와 전혀 닮지 않은 어떤 여인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것을 깨달으며,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아무래도, 꽤나 중증인  같았다.

카스타나 후작가를 떠나오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비앙카의 얼굴이 떠오른다. 금방이라도 두 눈에서 눈물을 쏟아낼 것 같으며, 지금까지 내가 단 한 번도 보지 못하였던 어떠한 종류의 표정을 짓고 있던 비앙카는, 평소에 자신만만하고 당당하기만 하던 그녀의 모습과 정극단에 위치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대체, 뭐였던 것일까.”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비앙카 델 카스타나라는 여자는 절대로 그러한 여자가 아니었으며, 내 앞에서 그러한 표정을 짓고 그러한 행동을 해서는 아니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비앙카는 타인을 깔보고, 업신여기며, 자신의 기분이 내키는 대로 행동을 하여 주위에 민폐를 끼치는, 그러한 종류의 여자였다. 아니, 그러한 여자여만 하였다. 마치 무언가에 상처를 입은 듯 너덜너덜한 표정을 지으며, 주인에게 혼이 난 풀이 죽은 강아지와 같은 모습 따위는, 그 여자에게 결단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라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아니, 어쩌면 그러한 모습이야말로 비앙카 델 카스타나라는 여인을 이루고 있는 본질일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그 때도 그녀는 그러하였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입으로는 냉랭한 미소를 띠고 있던 주제에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은 어떤 자그마한 여자아이의 모습과, 방금 전에 보았던 그녀의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 저기, 우리말이야. 다음번에 또 만나는 거지? 아니, 만날  있는 거지? 그렇지?

- ...으응,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그래도...

- ...좋았어. 들뜨고 말았어.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누군가와 함께 놀아본 게, 이번이 처음이니까. 전부, 좋았어.


“...멍청하긴. 그런 추억 따위, 가지고 있어봐야 아무 소용없는데.”

나도 모르게 마음이 심란해져서 그런 변명과도 같은 말을 내뱉고 말았다. 가슴 어딘가에, 무언가가 크게 얹힌 듯한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감정을 지워버리고자, 나는 눈을 감으며 애써 잠을 청하고자 하였다. 차라리 잠에 들면, 이 모든 것을 잊어버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나온, 치졸한 도피였다.

그런데, 그 때였다.

덜커덩-!

사전에 어떠한 예고도, 전조도 없이 마차가 급정지를 하였다. 관성을 이겨내지 못하고, 마차 그 자체가 앞으로 급격하게 쏠린다.

“꺄, 꺄악!”

“아리아!”

내 어깨에 기댄 채 잠이 들어 있던 아리아의 몸이  반동을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넘어가려고 하던 것을, 흐르는 별까지 사용하여 간신히 그녀의 몸을 붙잡는다. 다행히 내 움직임은 늦지 않아서, 순간적으로 아리아를 붙잡고 내 품 안에 꼭 끌어안을 수 있었다.

“괜찮니, 아리아?”

“네, 네에... 괜찮아요. 저는 정말로 괜찮아요. 카인님...”

곤히 잠에 들어 있다가 갑작스레 봉변을 당한 탓일까, 아리아의 얼굴은 새빨갛게 변해있었다. 순간, 나는 아직도 아리아를 끌어안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재빠르게 그녀를 품 안에서 놓아주었다.

“...으읏.”

나의 그러한 조치에 어딘가 불만이라도 있는  아리아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그녀의 표정은 금세 딱딱하게 변화하였다. 그리고, 나를 향해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카인님. 눈치 채셨나요? 지금, 주위가...”

“...그래. 나도 알고 있어. 아리아.”

지금 아리아가 어떠한 의도로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바깥이 너무도 조용하였기 때문이다. 명색이 에스텔 공작가의 지체 높으신 소공작이 타고 있던 마차였다. 그러한 마차가 하마터면 앞으로 넘어갈 뻔한 대형 사고가 일어날 뻔했는데, 현재어느 누구도  마차의 문을 열어 우리의 안부를 확인하는 녀석이 아무도 없다는 것은 명백히 이상한 일임이 분명하였다.

...결정적으로, 바깥은 너무도 조용하였다. 말의 울음소리도, 도란도란 들려오던 사람들의 말소리도, 심지어 풀벌레들이 지저귀던 소리조차 깨끗하게 사라지고 없었다. 마치, 소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별세계에떨어진 듯한, 기분 나쁠 정도의 적막감만이 이 자리에 맴돌고 있었다.

“.....”

“.....”

아리아와 나는 서로 말 없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저도 모르게, 목구멍으로 침을 꿀꺽 넘어 삼키고 말았다. 그리고 이내 마음을 굳세게 먹고, 마차의 문을 천천히 열었다.

끼이익-

마차에서 내려, 바깥으로 발걸음을 내딛은 순간, 나는 무언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이건...”

나를 호위하고 있던 행렬의 모든 인원들이, 바닥에널브러져 있었다. 단순한 마차꾼부터 시작해, 기사들, 심지어 마차를 몰던 말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예외 없이 쓰러져 있었다. 그들에게는 어떠한 외상도, 어떠한 흔적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단순히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그것은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는 불운한 소식이기도 하였다. 범인은, 나와 아리아가 눈치 채지도 못한 사이에, 그 어떠한 흔적도, 기척도, 전조도 없이 이러한 일을 저질렀다는 의미가 될 것이니 말이다.

‘...도망쳐야 하나.’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것 일수도 있지만 그래도 발버둥정도는 쳐봐야 하지 않을까하며 고심을 하던 찰나였다.

터벅-

갑자기 어디선가, 발소리가 들려왔다. 가볍고, 그다지 소리가 나지 않은 발소리였지만 주위가 워낙 적막했던 탓에 그 발소리는 나에게 있어 천둥보다 더욱 커다랗게만 느껴졌다.

“...어라? 카인. 오래간만이네. 아아, 아니다. 반나절 만에 보는 것이니까, 오랜만이라고 하면 조금 어감이 이상하려나? 그러면... 대체 뭐라고 해야 할까? 좋은밤? 좋은 새벽? 정말, 아무 것도 모르겠네. 네가 좀 정답을 알려주지 않겠어, 카인?”

달빛이 요요하게 비춰지는 아래, 내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어떠한 여인이 이쪽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며 연신 키득거리고 웃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달빛에 비춰진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입을 열고 말았다.

“...비앙카.”

나는 이쪽을 향해 킥킥거리고 있는 비앙카의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그녀로부터  발짝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지금의 비앙카는, 너무도 위험했다. 나의 본능에 미친 듯한 경종이 울리고 있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과거 ‘겨울의 마녀’를 마주했을 때와 똑같은 분위기가, 비앙카에게서도 느껴지고 있었다.

“뭐야아, 카인. 왜 나에게서 뒷걸음질을 치는 거야? 난 너를 보러 왔는데, 너를 보기 위해 그 머나먼 거리를 한걸음에 달려왔는데, 너는 나에게서 멀어질 생각 밖에 하지 않는구나. 또다시, 내게서 도망갈 생각밖에 하지 않는구나. 네가 자꾸 그렇게 나오면 말이야, 나 슬퍼.”

그리 말을 하며 비앙카는 흑흑하고 눈물을 훔치는 시늉을 하였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그녀의 모습을 보며 왠지 모르게 다리가 벌벌 떨려오는 것을 느끼고 말았다.비유하자면, 인간이 아닌 것이 인간의 흉내를 내는 듯한, 알 수 없는 공포감이 나의 심장을 움켜쥔 채 꽉하고 쥐어짜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기세마저 그녀에게 눌리고 만다면, 그 때는 정말 아무런 답도 없어지고 마리라는 것을.

“...비앙카. 대체 무슨 일로 여기에 찾아온 것이지? 그리고, 이건 네가 행한 일인 것인가?”

나는 수천 마리의 개미가 사지를 기어 다니는 듯한 공포감을 가까스로 억누른 채로 비앙카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말끝이 살짝 떨려오는 것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섭섭하구나,카인. 기껏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고작해야 묻는 것이 왜 왔냐는 것이라니. 하지만, 당신 질문이니 대답을 안 할 수는 없네. 내가 이곳에 왜 왔냐고? 그야, 당신을 보러 이곳에 온 것이겠지?”

키득-

나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비앙카의 입가에는, 싸늘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리고, 난 단 둘이서만 이야기하고 싶었거든. 다른 불청객들을 청중으로 세워둔 채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생각을 추호도 없어서 말이야. 원래, 숙녀들은 부끄러움이 많은 법이잖아?”

그리고, 비앙카는 내 옆에  있는 ‘불청객’을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미간을 찡그린  힐끗 쳐다보았다.

“뭐, 저것이 눈을 새파랗게 뜬 채 나를 쳐다보고 있으리라는 것은 상정 외였지만 말이지. 용케도, '마법사'라고 자칭할 만한 힘은 회복했구나.”

그리 말을 하며 비앙카는 나를 향해  발짝 걸어온다.

“하지만, 그  건 별로 중요한 사실이 아니야. 이제와서 네가 나를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 가려한다는 게 문제지.”

순간, 나는 비앙카의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비앙카를 버린다는 뜬금없는 말은 둘째치고, 내가 다른 여자에게 가려고 한다는 그 말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버린다고? 비앙카, 그건 또 무슨...”

...하지만, 그것은 실수였다.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차라리 어떠한 말도 내뱉지 말아야 했던 것이다.

“...싫어.”

갑자기, 비앙카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헝클이더니 나를 향해 쓰디쓴 목소리를 중얼거리기 시작하였다.

“싫어. 이젠정말, 싫다고. 너무, 싫어. 언제까지나 혼자인 건, 더는 싫어. 네가 나를 버리고 가고, 그렇게 혼자 남겨지는 것은, 이제 싫기만 하다고.”

"비앙카. 제발 사람 말 좀..."

"30년!"

비앙카는 갑자기 내 말을 끊더니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읊조리기 시작하였다.

“30년, 무려 30년이야.  혼자였어. 언제나, 혼자였다고. 대체 언제까지 난 이렇게 살아야해? 언제까지, 이렇게 비참해야만 해?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아. 어떤 것도 바라지 않아. 아무 것도 필요 없다고. 남들은  가지는, 그런 행복조차 내게는 사치인 것일까? 대답해줘, 카인.”

그리 말을 하는 그녀의 두 눈에서는, 어느새 눈동자 한 방울이 선명하게 맺혀 있었다.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단 한 순간도 행복했던 적이 없어. 매일매일 죽고 싶었어. 단  번만이라도,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아보고 싶었어.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아보고 싶었어. 그것이, 그토록 커다란 잘못이었던 것일까? 나는 평생토록 불행하기만 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이, 내 운명이라는 것일까?"

“...비앙카.”

"그런데, 내게 빛을 보여준 건 너였어. 사람의 온기를 알려주고, 삶을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고,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기쁨을 알려준 건 카인, 너였다고."

"...그리고,  또다시 떠나가는구나. 어린 시절의 나와 약속을 맺었던 것을 새카맣게 잊은 채, 나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재회했던  때처럼, 또 다시 내게서 떠나가려 하는구나."

"...너, 설마..."

설마 비앙카는 나를-

“넌 이렇게 가면 끝이겠지. 금세 모든 것을 잊어버리겠지. 나 같은 추한 여자는 잊어버리고, 다른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질 지도 모르지. 하지만 아니야. 아니라고. 나는 또다시 홀로 외로이 시간을 보내게 될 거야. 또다시, 길고 긴 겨울을 지내야만 하겠지. 있잖아, 카인. 그런 것은 이제 정말, 지긋지긋해.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는 일이라고.”

눈을 번들거리며 그런 말을 하는 비앙카는, 어디까지나 이성적으로 미쳐있었다.

“그러니까, 전부 네 잘못이야. 나를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 떠나려고 하는 네 잘못이야. 나를 그토록 오랜시간 홀로 내팽겨 둔 채, 사라 세르나드 같은 계집이랑 약혼을 한, 네 잘못이야.”

“...난, 이제, 참을 수가 없어. 평생을 참아 왔어. 더 이상은, 무언가를 참아낼 기력이 없어. 그저, 그런 이야기였던 것에 불과해.”

터벅-

비앙카는 나를 향해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손을 들어올려 나의 뺨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나를 향해 이리 중얼거렸다.

“그러니 카인, 부탁이야. 다시 한 번 나와 약혼을 해줘. 그 끝에 나와 결혼을 해줘. 나와 함께해줘. 나를 행복하게 해줘. 나도 이제 한 번쯤은, 행복해져보고 싶을 따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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