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8화 〉6. 헛소동 - 16 (48/201)



〈 48화 〉6. 헛소동 - 16

카인 폰 에스텔과 비앙카 델 카스타나의 약혼식이 치러지는 약혼식장은,  마디로 표현하자면 실로 화려하기 그지없는 장소였다.

식장은, 대리석을 통째로 깎아 만들어진 새하얀 공간이었다. 식장을 떠받치고 있는 전면의 기둥에서부터 시작하여, 반짝반짝하게 윤기를 내고 있는 타일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장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식장은 전체적으로 너무도 새하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기에, 오늘 약혼식에 참여한 하객들은 이곳이 일종의 별세계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천장에는, 크리스탈을 하나하나 접붙인 거대한 샹들리에가 식장의 불빛을 반사하며 찬란한 별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세공사 수십 명에 의해 정교하게 가다듬어진 이후, 꽃봉오리가 만개한 듯한 모습으로 식장의 천장을 수놓고 있는 샹들리에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예술품이라 하기에 결코 부족함이 없는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벽면이나 천장에 장식되어 있는 화려한 문양은 전부 금과 은으로 덧칠이 되어 있었으며, 식장의 바닥에는 하얀색 작약과 수국과 같은 단아한 꽃들이 곳곳에 놓여있었다. 참고로, 식장에 수국을 놓아두자는 것은 비앙카의 강력한 주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어디 그 뿐이랴. 오늘 약혼식장에 하객으로 참여한 이들의 면면 또한 훌륭하기 그지없었다. 오늘  자리에 모여 있는  서른  명의 하객들은 전부 북부를주름잡고 있는 대귀족의 반열에 들어가는 이들 뿐이었다. 그러한 이들이 오늘 자신과 카인의 약혼식의 산증인이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을 하니 비앙카는 실로 흡족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자그마한 약혼식장 안에 고귀한 귀족들이 수도 없이 모여 있는 만큼, 주위에는 실로 엄중하다고 밖에  수 없는 보안체제가 구축되어 있었다. 식장 안에는 사전에 허락을 받은 이가 아니라면 계급을 불문하고 그 어떠한 이라도 무기를 소지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심지어, 이곳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카스타나 후작마저 무장 해제를 당한  식장으로 들어서야만 했다.

실로, 완벽하였다. 오늘의 약혼식은, 비앙카가 생각하기에도 완벽하기 그지없었다. 세상 어느 누구도, 오늘 이루어질 그들의 약혼식을 방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아닐  없었다.

그녀는 현재, 자신의 굴곡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는 시스루 스타일의 하얀색 드레스를 착용하고 있었다. 시스루 드레스인 만큼 그녀의 새하얀 살결이 곳곳에 비춰 보이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촘촘한 장식이 드레스 곳곳에 달려 있었기에 야하다기 보다는 고급스러운 절제된 느낌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을 멀리서 언뜻 쳐다본다면, 마치 5월의 신부가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져드리라.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그녀가 의도하던 바이기도 하였지만.

그리고 그녀의 왼편에는 공작으로서의 정복을 착용하고 있는 카인의 모습이 있었다.  거행될 약혼식에 긴장이라도 한 것인지 딱딱하게 굳어 있는 표정에, 비앙카는 저도 모르게 싱긋 웃음을 짓고 말았다. 평상시에는 결코 보여주지 않는 그의 그러한 얼굴도 꽤나 볼법하다고 생각해버렸기 때문이었다.

덥석-

비앙카는 딱딱하게 굳어있는 카인의 얼굴을 보며 저도 모르게 손을 덥석 하고 붙잡고 말았다. 일차적으로는 그의 긴장감을 해소시켜주고자 하기 위함이었지만, 실은 머지않아 약혼을 치르게 될 사이이니  정도는 아무 문제없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카인님...”

그 때, 맨 앞줄의 의자에 앉아 그들이 손을 잡은 모습을 보며 울상을 짓고 있는 하얀 머리의 소녀가 비앙카의 시선에 포착되었다.

피식-

그리고, 비앙카는  편에서 자신을 원독어린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하얀 머리 소녀를 향해 입꼬리를 밀어 올렸다. 그녀 또한 알고 있었다. 저것 또한, 카인에 대해 실로 심상치 않은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그녀가 그 사실을 어찌 모를 수가 있겠는가. 입으로는 자신은 카인의 시녀에 불과하다 말하고 다니는 주제에, 언제나 그를 심상치 않은눈빛으로 바라보곤 하던, 요망하기 짝이 없는 저것의 감정에 대해.

처음에는, 무척이나 불쾌하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세상에 재앙을 불러온 ‘마녀’ 따위가 그에게 꼬리를 친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쉽사리 참아낼 수 있는 종류의 무언가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비앙카는 저 하얀 머리 소녀의 작태가 귀엽게 여겨질 따름이었다. 왜냐하면, 저 계집아이는 이미 패배자에 불과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카인을 향해 연심을 품고 있기만 할 뿐,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도 하지 못하는겁쟁이에 불과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꼬리를 축 늘어뜨린 패배한 개와 같은 몰골을 하고 있는 저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비앙카의 가슴 속에는 실로 뿌듯한 감정이 맴돌기 시작하였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자신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함을 느끼는 사람이 아닐 수가 없다고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허허, 실로 한 쌍의 완벽한 선남선녀가 아닐 수가 없구려.”

오늘 약혼식의 주례를 맡은 주교가 그들을 향해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리고, 비앙카 또한 그의 말을 능숙하게 받아 넘긴다.

“과찬이 심하시군요. 주교님.”

“허허, 과찬이라니요. 카스타나 영애, 제가 수십년 간 수많은 사람들의 주례를 도맡아왔지만 그대들만큼 잘 어울리는 이들은 찾아보지 못했소이다. 내 그대들의 행복이 영원이 이어지기를 여신의 이름으로 축복하겠소이다.”

파앗-

그리 말을 하며 주교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머리 위를 향해 신성력의 빛무리를 뿜어내었다. 카인과 비앙카의 머리 위에 은은한 빛의 입자가 그들을 향해 살포시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러한 광경을 보며 의자에 앉아 있던 하객들 또한 저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말았다.

짝짝짝-

이 자리에서 박수를 치지 않는 것은 아까보다 더욱 울상인 표정이 되어 그들을 쳐다보는 아리아 뿐이었다. 비앙카는 아리아의 그러한모습을 보며 기분이 더욱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자, 그러면 마지막으로 서로 간에 반지를 교환하겠소이다. 이것으로서 두 사람은 명실상부한 약혼 관계에 놓이는 것이외다.”

주교의 말에 카인은 자신의 품 안에 자그마한 반지함을 꺼낸 후 그 안에서 한 쌍의 반지를 집어 들었다. 테가 백금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위에는 큼지막한 다이아몬드가 박혀있는, 실로 호화롭기 짝이 없는 반지였다. 비앙카가 생각하기에도, 그들의 약혼식에 이것보다 어울리는 반지는 있을 수가 없었다.

스윽-

카인은  쪽 손으로는 반지를 집어 들고 다른  손으로는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녀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겠다는 신호였다.

“...아아.”

비앙카의 자신이 숨이 절로 가빠오는 것을 느끼고 말았다. 대체 얼마나, 얼마나 이 순간을 고대해왔던가. 이 순간이 오기를 꿈꾸어왔던가. 그녀는 자신의 손이 벌벌 떨려오는 것을 애써 참아내야만 하였다. 카인이 끼워주는 반지만 받아들인다면, 그들은 이제 약혼 관계에 놓여 있는 정식적인 연인이라 할 수 있는 사이가 된다.

 이상, 사라 세르나드를 향해 열등감을 지필 이유도, 그녀를 향해증오를 쏟아낼 이유도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라 세르나드는 과거에 흘러간 인연에 불과하지만, 자신은 이 순간 그의 곁에 있는 유일한 동반자였으니까.

심호흡을 한다. 이런 곳에서 추태를 부릴 수는 없었다. 지금  순간, 자신은 어느 누구보다 우아해야 했으며 어느 누구보다 아름다워야 했다. 일생의 최고라고 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고작해야 긴장 따위로 망쳐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그 때였다.

"....!"

비앙카의 감각에 불쾌하기 짝이 없는 어떠한 것이 잡혀들었다. 그것의정체란, 다름 아닌 살기였다. 눈동자를 돌려, 살기의 근원지를 찾는다. 이윽고, 비앙카는 감히 자신을 향해 살기를 뿌려오는 것들의 정체를 알아챈다.

이쪽을 향해 살기에 보내오는 그들의 정체는, 비앙카 또한 잘 알고 있는 자들이었다. 아니, 잘 알고 있다라는 수준으로는 설명이 부족할 정도였다. 비앙카가 어찌 저들의 존재를 어찌 잊어버릴 수 있겠는가. 카스타나 후작가를 외부에 팔아먹은 쓰레기들이자, 10년 뒤 카인을 그 지경으로 몰아넣은 놈들의 주구라 할 수 있는 개자식들을.

가주의 친동생, 헤론 델 카스타나. 그리고 카스타나 후작가의 흑풍 기사단 소속, 조슈아 펜델. 그러고 보니, 저들이 오늘 약혼식장의 경비를 맡고 있는 총책임자이기도 하였던가. 그래서인가, 저들에게만은 무기의 패용이 허락되어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오고 말았다.

순간, 저들을 바라보는 비앙카의 눈가에 짜증이 서리고 말았다.

‘저 눈치도 없는 버러지 같은 것들이.’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전, 비앙카는 저들을 향해 이리 ‘설득’을 하기는 했었다. 그를 향해 살기를 뿜어내라고, 그리고 그를 향해 얼간이 마냥 덤벼들다가 그의 손에 순순히 사로잡히라고.

어차피 재활용도 되지 않는 쓰레기 같은 것들이었다. 단숨에 죽여 버리는 것은 저들에게 사치라 생각했기에, 카인이 공을 세우기 위한 소품으로 활용하려 했었다.

하지만, 설마 눈치도 없이 이런 중요한 순간에 자신을 훼방 놓을 것이라고는 그녀 본인 조차 미처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지금은, 그녀의 인생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순간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반지를 끼워주며, 서로를 향해 영원한 사랑을 속삭인다는, 그녀가 지난 20년 간 고대하고 또 고대하던 일생일대의순간이었단 말이다.

그런데 감히 저 눈치도 없는 것들이 이 순간을 망치려고 들다니!

비앙카는 눈썹을 아주 살짝 위로 치켜 올리며 자신의 약지를 살짝 흔들었다. 저 쓰레기들의 심령과 비앙카의 마력은 서로 이어져 있었다. 자신이 일주일 전에 저들에게 내렸던 명령을 철회하는  따위, 비앙카에게 있어서는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그녀가 저지른 가장 큰 패착이었던 것이다.

피잉-

“...아, 흑...!”

비앙카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신음성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인지할 틈 사이도 없이, 그녀의 무릎이 저절로 꺾이고 말았다. 그녀의 입가에서 다시금 선혈이 한 줄기 흘러내리고 만다.

“비앙카!”

그러한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당혹스러운 목소리를 내는 카인.

“...카, 카인...”

순간, 비앙카는 행복에 심취해있던 탓에 자신이 어떤 멍청한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인지 깨닫고 말았다. 현재의 자신은, 사역마의 강제적 역소환으로 인한 피드백으로 인해 제대로 된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무력한 계집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깜빡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래서야 저들에게 내렸던 명령을 철회하는 것은 무리였다.

스르릉-

자신을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면 그의 등 뒤편에서, 조슈아가 천천히 검을 뽑아드는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온다. 두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지금, 금방이라도 카인을 죽여 버릴 듯한 섬뜩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무언가, 무언가가 잘못되었다. 자신은 저들에게 이러한 명령을 내린 적이 없었다. 자신이 저들에게 명령한 것은 관객들이 보기에 진짜 같은 연극 한 편이었지, 진짜로 카인을 해하라는 명령은 내린 적이 없었던 말이다! 저들이 대체 왜 자신이 내린적도 없는 명령을 수행하려 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째서? 대체, 어째서?’

손끝이 욱신거린다. 아무리 정신을 집중해 마력을 끌어올리려 해보아도, 이미 너덜너덜해진 그녀의 몸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절망스럽기만 하였다. 저런 버러지들 따위, 자신의 몸이 멀쩡하기만 했었다면 단숨에 사지를 날려버릴 수 있었을 텐데!

“뭐, 뭐야?”

“꺄아아아악!”

하객들 또한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것인지 이곳저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파앗-

조슈아가 카인을 향해 검을 들고 쇄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현재 이지가 제압되어 있는 탓인지 그의 눈동자는 다소 흐리멍텅하였으며 입으로는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다소 흉측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가 펼치고 있는 검술만은 진짜배기였다. 실로 깔끔하다고 밖에 평할  없는 찌르기가, 정확히 카인의 심장을 노리며 화살처럼 쏘아져간다!

“카인, 뒤!”

비앙카는 그리 외치며 마치 스스로가 방패가 되기라도 하는 것 마냥 카인의 몸을 꼭하고 끌어안는다. 마법을 사용하지 못할 뿐 아니라, 스스로의  하나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현재의 그녀로서는 카인을 보호해줄 방법이 이것 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다.

눈을 꼭하고 감는다. 이대로 죽는다는 것이 다소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약혼식장에서 그의 품에 안겨 죽는다는 것은 어딘가 로맨틱하게 느껴진다.어쩌면, 이렇게 자신이 죽어버린다면 그는 평생 동안 자신을 잊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러한 소소한 사실 하나만이, 그녀의 마음을 달래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때였다.  자리에 모여 있던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카아앙-!

“.....!”

조슈아의 검이, 어긋난다. 아니, 어긋난 것이 아니었다. 튕겨져 나간 것이었다. 조슈아의 검을 튕겨낸 것은다름 아닌 카인의 맨손이었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노릇이었지만, 카인은 무기라고는 들고 있지 않은 맨손으로 상대방의 검격을 튕겨낸 것이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카인은 마치 무도회장에서 춤을 추기라도 하듯 몸을 빙그르 반전시킨 후, 조슈아를 향해 다리를 휘둘렀다. 노리는 곳은 조슈아의 옆구리. 빛살과도 같은 발차기가 순식간에 조슈아의 옆구리에 꽂힌다.

콰아앙!

주르륵.

카인의 발차기가 그의 옆구리에 직격하기 직전, 조슈아는 자신의 검을 세워 그의 발차기를 가까스로 막아내었다. 하지만, 발차기 안에 담긴 힘을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었는지 이내 주르륵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비앙카.”

조슈아와 거리가 벌어진 틈을 타, 카인은 비앙카를 슥하고 쳐다보더니 이내 그녀를 향해 웃음을 지어주었다.

“이제 괜찮아. 내가, 다 알아서  테니까.”

그리 말을 하며 카인을 살며시 자세를 낮춘다. 그에 응대하기라도 하듯, 조슈아 또한 검을  손으로 바꿔 잡으며 자세를 취하였다. 아무리 제정신이 아닌 그였지만, 그가 갈고 닦아온 무인의 본능이 카인을 경시해서는 아니 될 상대라고 고하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를 향해 교차한다. 그리고.

-파앙!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카인의 주먹이 조슈아를향해 휘둘러져 갔다. 그에 맞서, 조슈아 또한 카인을 향해 살기 어린 검을 휘두른다.

콰앙!

서로를 죽고 죽이기 위한, 치열한 사투의 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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