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7화 〉6. 헛소동 - 15 (47/201)



〈 47화 〉6. 헛소동 - 15

카인 폰 에스텔과 비앙카 델 카스타나의 약혼식이 치러지는 예식장의 뒤편에는 대기실로 통하는 한적한 통로가 있었다.

또각또각.

두 남녀의 관련자가 아니면 출입이 허용되지 않아 인적이 드물기만  그곳을, 비앙카  카스타나는 어딘가 잔뜩 굳어있는 얼굴로 또각또각 걸어가고 있었다.

어딘가 서두르는 듯한 기색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던 그녀는, 이윽고 예식장 뒤편에 마련되어 있는 신부 대기실에 들어섰다.

벌컥-!

문이 세차게 열렸다. 대기실의 안쪽에는, 오늘 약혼식의 주인공이라 할  있는 비앙카의 시중을 들기 위한 시녀가 여럿 대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시녀들은, 사전에 어떠한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대기실에 들이닥친 비앙카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기만 하였다.

아니, 그 전에 어떠한 노크조차 없이 문을 세차게  비앙카를 이해할 수가 없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시녀들이 알고 있는 비앙카 델 카스타나라는 여인은 언제나 우아함을 잊지 않는 귀족적인 여자였기 때문에.

“...아, 아가씨? 약혼식이 시작되려면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는데 여기는 어쩐 일로 찾아오신 것인지...”

비앙카를 향해 시녀들은 극히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용건을 물었다. 그리고, 비앙카는 그러한 물음에 대해 아주 지극히 싸늘한 말투로 대답을 할 뿐이었다.

“...나가거라.”

“...예?”

아직 상황이 파악되지 않아 어리둥절한 기색으로 반문을 하는 시녀를 향해 비앙카는 어딘가 날이 선 듯한 말투로 그녀를 향해 말을 하였다. 어째서인지는  수 없지만, 지금의 그녀는 다른 누군가에게말을 거는 행위 그 자체가 피로하게 느껴지는 듯 하였다.

“내 말이 들리지 않았던 것이더냐?  이리 말을 하지 않았더냐. 여기에서 나가라고. 피곤하구나. 그리고, 어느 누구와도 이 방에 함께 있고 싶지 않구나. 혼자 있고 싶으니, 전부 이곳에서 나가거라. 지금, 당장.”

시녀들을 향해 어떠한 감정도 담지 않던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비앙카의 모습에 시녀들은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만다. 아마, 바깥에서 기분이 상할 일을 겪으신 것이 틀림없다 생각을 하며.

“...알겠습니다. 실례하겠습니다, 아가씨. 만약 저희가 필요하시다면, 저쪽의 차임벨을 울려주세요.”

그리 말을 하며 시녀들은 종종걸음으로 서둘러 대기실에서 하나 떠나갔다. 딱 봐도 비앙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자신들 앞에서 저리 감정을 드러낼 정도라면, 어디선가 좋지 않은 일을 겪고  것이 틀림 없는 것 같았다. 괜히 이곳에 남아 있다가 자신들에게 불똥이 튀기는 일만은 사양하고싶었다.

그리고, 시녀들이 전부 대기실 문을 빠져나가는 것과 동시에.

“커흡...!”

비앙카의 입에서 피가 왈칵하며 쏟아지고 말았다. 더 이상은 한계였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이곳까지 당도한 것만으로도,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인내심을 소요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정도로, 그녀가 입은 내상은 위중하기 그지없었다.

주르륵-

그녀가 토해낸 피의 색은, 검었다. 어떻게 보아도 그녀의 내장이 정상이 아니라는 명백한 신호였다.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거무죽죽하고 끈적끈적한 검은색 유혈(流血) 사이로 조그마한 덩어리 같은 것이 드문드문 섞여 있는 광경이 보인다. 그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그녀의 내장 부스러기였다.

“하, 악...!”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비앙카는 자신을 덮쳐오는 현기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바닥을 향해 무릎을 꿇고 말았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눈 앞의 초점을 도저히 맞출 수가 없었다. 머리가, 아팠다. 비유하자면, 수백 수천개의 바늘이 자신의 뇌를 쿡쿡 쑤시는 것과 같은 통증이 그녀를 엄습하고 있었다.

“구욱...!”

비앙카는 저도 모르게 손으로 입가를 가로막고 말았다.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지옥과도 같은 구역질이 밀려온다. 그녀의 입에서는, 그녀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짐승과도 같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순간, 자기 자신의 몸이 통째로 불타오르는 것이 아닌가하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엄청난 격통에 휩싸여 있을 뿐이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아름다운 하얀색 드레스가, 방금 전 그녀 자신이 토해낸 검은 색 피로 천천히 물들여져 간다. 그 모습은 마치, 그녀가 입은 옷이 신부를 위한 드레스가 아니라 상장(喪葬)을 위한 예복이 되어가는 듯한 불길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아, 으...”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드레스가 더럽혀지는 사소한 일 따위보다 자신의 신음성이 바깥에 새어나갈 가능성을 더욱 우려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몇 시간 뒤 약혼식을 치러야  신부가 이리 피를 토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건강 따위를 이유로 하여 그와 자신과의 약혼식이 며칠 뒤로 미뤄질 가능성 또한 결코 배제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건, 안 돼...”

그것만은, 양보할 수 없었다. 세상 그 어떠한 일을용납하더라도, 그와의 약혼식이 미뤄지는 것만은 도저히 참아내기 힘들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제까지 줄곧 참고, 참고,  참아오기만 하였으니까. 이제는  이상, 무언가를 참고 견딜 인내심이 떨어졌을 뿐이었다.

부들부들.

그녀는 벌벌 떨리고 있는 자신의 오른손을 가까스로 들어 올린 후, 마력을 끌어올려 손가락으로 하나의 수인(手印)을 자아내었다. 안과 밖의 소리를 격리시키는, 지극히 초보적인 마법  하나였다.

파앗-

이윽고, 대기실을 중심으로 하여 자그마한 방음막이 형성되었다. 이것으로서, 대기실에서 나는 소리가 바깥으로 새어나갈 가능성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였다. 그리고-

“아아아아악-!”

마법을 사용한 순간, 그녀는 온 몸의 혈관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듯한 엄청난 통증을 맛보고 말았다.  그래도 몸 상태가 결코 정상이라고는 할 수 없었는데 그것을 억지로 무시한 채 마력을 끌어올렸으니 몸에 더더욱 무리가 올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하... 으....”

방금 전, 감히 카스타나의 눈과 귀가 미치는 곳에서 주제도 모르고 이를 욕한 쓰레기 몇을 치우고 돌아올 때만 하더라도 그녀는 기분이 좋았었다. 비록, 그 이는 자신이 무엇을 행하였는지 평생 알지 못할 테지만 이것 또한 약혼녀  이의 내조라고 생각을 하니 수고롭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래, 이내 흡사 지옥과도 같은 고통이 그녀의 몸을 엄습하기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고통이 비앙카의 몸을 침범한 순간, 그녀는 어찌하여 자신에게 이러한 고통이 찾아온 것인지 금세 눈치 챌 수 있었다. 그것은 말하자면, 피드백이었다. 마력의 역류였다. 자신이 현세에 소환해놓은 사역마들이,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역소환 당했기 때문에 그 반동이 그녀의 몸에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리라.

더군다나, 비앙카가 현세에 풀어 놓았던 사역마들은 그녀가 소환할 수 있는 최강의 사역마인 ‘폭풍을 부르는 청동새’와 ‘바위산의 거인’ 이었다. 10년 뒤, 마법사로서 전성기를 맞이한 그녀조차도 그들을 쉽사리 다룰  없었었다. 하물며, 아직 마법사로서 여물지 못한 현재의 그녀로서는 그들을 사역하기 위해 여러모로 변칙적인 방법을 써야만 했던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이 모양 이 꼴이었다. 정식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그들을 소환한 것이 아닌 만큼, 그들이 역소환 되었을 때의 반동은 그녀에게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의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안겨다주고 있었다.

“...누구일까... 대체, 누구일까...”

육신을 헤집어 놓는 엄청난 격통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그녀는 현재 자신이 운용할수 있는 최강의 사역마들을 역소환시킨 장본인이대체 누구일까 하는 의문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생각하기에 현 대륙에서 ‘청동새’와 ‘바위산의 거인’을 꺾을 기량을 갖춘 이는 많아봐야 열을 넘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그녀가 약혼식을 올리는 이러한 타이밍에 카스타나 후작령으로 진입을 하고자 하는 ‘동기’를 갖춘 이라면 아마도 셋.

‘...정말, 그 여자들일까.’

순간, 비앙카의 뇌리 속에 어떠한 여자들의 얼굴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있는 힘껏 머리를 내흔들며 자신의 추측을 부정하고 말았다.

그럴 리가 없었다. 운명이라는 시간 추를 속이고 엇나가버린 기회를 다시 한  붙잡게 된 사람이, 자신 말고도 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도무지 하기가 힘들었다.

어차피, 여기까지 와서 사역마들을 쓰러뜨린 이가 누구인가 하는 질문은 그저 우문에 지나지 않았다. 설사, 자신이 생각하는 그 여자들이 청동새와 거인을 쓰러뜨렸다고 해도 별 상관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 자가 카스타나 후작령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모든 것이 끝나있을 테니까.

파르르.

비앙카는 주체할  없이 부들부들 떨리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 고작해야 소리를 차단하는 보잘  없는 마법 하나 사용했음에도 자신의 연약한 몸뚱아리는 그 충격을 버텨내지 못하고 말았다. 이래서야, 아무리 짧아도 오늘 하루는 제대로 된 마법을 사용하지 못할  같았다.

“...괜찮아, 이제... 마지막 단계니까...”

덥석.

비앙카는 파르르 떨리는 자신의 오른손을 왼손으로 살며시 쓰다듬으며 그리 중얼거렸다.

그렇다. 모든 것은 비앙카의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사역마가 역소환을 당했다거나, 그로 인한 반동으로 오늘 하루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된  따위, 변수 축에도 속하지 않는 사소한 일에 불과했다.

오늘을 위해 비앙카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그리고 어떠한 대가를 치렀는지 세상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녀가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적공에 비하자면, 그녀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 따위, 실로 시시하기 그지없는 일일 따름이었다.

...20년. 무려 20년이다. 아무 것도 아닌 계집과 어느 한 소년이 마주한 이후, 계집아이가 저 만치서 소년을 바라보기만 했던 시간이 20년이나 되었단 말이다. 그러니,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그와 처음 마주하게  이후, 어린 시절의 그와 나누었던 약속이 실현되기까지 고작해야  발자국만을 남겨두고 있는 이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러하였다.

“...아아, 카인...”

그리고, 오늘의 메인이벤트는 그와 자신의 약혼식뿐만이 아니었다. 오늘의 약혼식에는, 비앙카가 그를 위해 준비해놓은 깜짝 선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는 놀라겠지. 어쩌면 당황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자신의 의도를 이해한다면,  또한 필시 자신을 이해해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행하는 모든 행동의 이면에는, 그에 대한 사랑 밖에 깃들어 있지 않았으니까.

앞으로 몇 시간 뒤, 자신과 그는 모든 사람의 축복을 받으며 서로를 사랑하는 한 쌍의 약혼 관계가  것이며.

카인은, 영웅으로서 만인 앞에 우뚝 서게 되리라.

“이번에는 결코, 놓치지 않을 거야. 카인.”

자신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 웅덩이 속에 옷이 잠겨 있었지만, 비앙카는 도무지 유쾌함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인지 입가에서연신 웃음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키득-

“넌, 나를사랑하게  거야.”

그녀의 예언은, 진실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그녀가 자아내고자 하는 이야기의 결말이었으며.

동시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예언을 진실로 만들어 버리고자 할 것이니까.

그 끝에, 카인과 비앙카는 서로를 사랑하고, 행복한 삶을 구가하게 되리라.

...그래, 반드시. 그리고,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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