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6. 헛소동 - 08
‘...진짜 더럽게 불편한 자리로군.’
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일까. 내가 대체 어떠한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런 엿 같은 장소에서 이토록 고통을 받아야만 하는 것일까. 사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1급수와 같이 맑고 깨끗한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는 나에게도 잘못이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내 잘못이 무엇인가하면, 그것은 바로 사탕만 주면 아무 의심 없이 낯선 사람을 졸졸 따라가는 세 살 배기 애새끼마냥 타인을 의심하지 못한 순진무구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 카스타나 후작이 가볍게 식사나 같이 하자고 해서 별다른 생각도 없이 초대에 응하였더니, 이따위 방식으로 사람의 뒤통수를 후려갈길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단 말이다. 과연, 비열하고 야비한 카스타나의 피를 이어받은 자들의 우두머리다운 역겨운 행태가 아닐 수 없었다.
단언컨대, 카스타나 후작이 나를 초대한 식사 자리는, 내 인생을 통틀어서 가장 불편하고 소화가 되지 않는 식사자리 가운데 하나임이 틀림없었다. 우선, 카스타나 후작이 ‘가볍게’ 식사나 함께 하자고 전갈을 보내왔기에 나는 막연히 그와 단 둘이서 담화(談話)나 나눌 것이라 예상을 하였건만, 설마하니 카스타나의 일족이 전부 모여 있는 거대한 만찬장의 한 가운데에서 청문회가 열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단 말이다.
“.....”
“.....”
더욱더 나를 소름 돋게 하는 것이 무엇이었냐면, 만찬장에 모여 있는 카스타나 후작가의 마법사들이 죄다 데드마스크를 쓴 것 마냥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가만히 쳐다보기만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마법사란 종자들이 죄다 공감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회 부적응자들이자 사이코패스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사람을 무슨 동물원의 원숭이마냥 뚫어져라 쳐다보는 저것들의 뜨거운 시선을 받고 있자니 목구멍으로 음식이 제대로 넘어가지가 않았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기분이 존나 좆같았다.
그리고 두 번째,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한 것이었는데, 만찬장에 모여 있는 모든 마법사들을 합친 것보다 나를 더욱 불편하게 만드는 요인은 따로 있었다는 것이다. 그 요인이 무엇이냐면, 그것은 바로-
“자아, 카인, 아 해봐요. 아. 어서요, 빨리.”
“...저기, 비앙카. 미안한데, 나도 손이 있어. 이 자리에 다른 사람들도 많은데 굳이그런 남사스러운 행동을 할 필요는 없...”
“어머, 지금 제 성의를 무시하시는 것인가요? 사양할 필요는 없다니깐요? 자아, 어서요. 카인. 아, 해봐요, 빨리요.”
“.....”
내 바로 옆자리에 샴쌍둥이마냥 찰싹 달라붙어서 나의 입에 음식을 하나라도 더 우겨넣으려고용을 쓰는 비앙카가 그 주된 원인이 되시겠다. 아까부터 한사코 거절의 의사를 표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앙카는 나의 손과 발의 뼈가 아작이 나버렸거나 혹은 내가 전신마비가 와서 스스로의 의지대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라고 생각을 하는 것인지 자꾸만 내 입에 음식을 직접 넣어주려 하고 있었다.
비앙카의 그러한 모습이 어찌나 지극정성인지, 만약 제국에 복지 제도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등급을 매기는 사람이 이 광경을 보며 단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향해 1등급을 책정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들 정도로 그녀는 호들갑을 떨고 있었단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쪽팔리기 그지없었다. 비앙카와 내가 한 쌍의 바퀴벌레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지금 비앙카가 저지르고 있는 모든 행위가 연기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뻔히 지켜보고 있는 한 가운데에서 이토록 뻔뻔스럽게 행동을 할 수 있는 그녀가 정말로 경이롭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이 계집애는 면상에 철판을 깔기라도 한 것일까? 어떻게 이런 손발이 오글거리는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일까?
까드드득-
그리고, 나의 등 뒤에 얌전히 시립하고 있던 아리아에게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절로 모골이 송연해지는 듯한 섬뜩한 소리가 아닐 수가 없었다. 그 소리에, 나는 심장이 쪼그라드는 듯한 기분을 맛보고 말았다.
“.....”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저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지금 이 순간, 나의 등 뒤에서 대체 어떠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할 용기 따위는 요만큼도 없었다. 사방천지가 적이었다. 이 만찬장 안에서 나의 편 따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내가 이 만찬장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력이 서서히 고갈 되어갈 무렵, 저만치 상석(上席)에 앉아 내가 고통 받는 꼬락서니를 가만히 구경만 하던 카스타나 후작이 아주 자그마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하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슬슬 시작해도 되겠군.”
그리 중얼거리며 카스타나 후작은 자신이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땅에 가볍게 내리찍었다.
쿵-!
그리고 다음 순간, 은은한 파동이 만찬장 전체를 가득 채운다.
‘.....!’
나는 그 파동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고 말았다. 하마터면, 비앙카로 부터 받아먹었던 음식물이 역류한다는 추태를 부릴 뻔하였다. 방금 전, 카스타나 후작이 내려찍은 파동에는 그만한 위력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비앙카를 비롯한 이 자리에 모여 있던 모든 마법사들은 실로 아무렇지도 않은 기색으로 카스타나 후작 쪽을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매우 유감스럽게도, 이 만찬장에 모여 있던 사람들 중 내가 제일 좆밥이었던 모양이다.
카스타나 후작은 만찬장에 모여 있던 모든 이들의 얼굴을 슥 하며 한번 돌아본 뒤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모두들, 식사는 잘 즐기었소이까? 본인이 오늘 그대들을 만찬장에 불러 모은 이유는, 단순히 혈족 간에 우애를 다지기 위해 식사를 함께 하자는 의미가 아니었소이다. 가주의 이름으로, 이 자리에 모여 있는 가문의 모든 혈족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사항이 있어서였소.”
그리 말을 하며 카스타나 후작은 눈짓으로 나와 비앙카를 가리켰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카스타나 후작이 대체 왜 나를 이곳에 왜 불러낸 것인지 어렴풋하게나마 깨닫고 말았다.
‘...빌어먹을.’
내가 잠시 후 닥쳐올 절망스런 미래를 그리며 얼굴을 구기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으며, 카스타나 후작은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나의 하나 밖에 없는 딸, 비앙카와 에스텔 공작가의 소공작인 카인 폰 에스텔경이 약혼을 맺기로 결정하였소. 제국에서도 가장 유서가 깊다고 할 수 있는 두 가문의 결합이라는, 실로 경사스러운 소식이 아닐 수가 없지.”
"....!"
눈꼽만큼도 기뻐하지 않는 어조로 카스타나 후작이 그러한 말을 내뱉은 순간, 만찬장 안의 공기가 급변하기 시작하였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만찬장에 모인 사람들은 방금 전 가주의 발언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에스텔?”
“스카바티(Sukhavati)의 에스텔 공작가를 뜻하는 것인가?”
“...아마도 그렇겠지. 제국에 에스텔이라는 이름이 둘이나 있지는 않으니까. 헌데 믿을 수가 없군. 하필이면 많고 많은 가문 중에서 에스텔 공작가라니. 그들은 카스타나의 숙적과도 같은 가문이 아니던가?”
분위기가 점점 가열되어간다. 구체적으로 말을 하자면, 나와 비앙카의 약혼이라는 깜짝 발표에 대해서 결코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었다. 하기야,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자면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이야말로,카스타나 후작과 비앙카가 노리던 반응이 틀림없으리라.
“어디까지나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비앙카와 카인 폰 에스텔 경의 약혼은 그 어떠한 정치적 외압이나 혹은 거래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소이다. 나도 얼마 전에야 안 사실이지만, 그 둘은 두 가문의 사이의 악연을 뛰어넘어 진심으로 교제를 하고 있던 모양이라오.”
‘지랄.’
카스타나 후작의 웃기지도 않은 개소리에 나는 저도 모르게 속으로 욕지기를 내뱉고 말았다. 저런 거지같은 설정을 붙일 예정이었다면 적어도 나와 한 마디 정도는 상의를 해야 하는 것이 예의 아니던가?
“하지만, 동시에 가문의 혈족들이 이번 약혼에 대해 쉬이 납득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을 했소이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발표이기도 하였으며, 무엇보다 본가에는 에스텔 공작가에 대해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많지 않소이까? 그렇기에 본인과 에스텔 소공작은 이러한 자리를 마련했소이다.”
‘...뭐?’
카스타나 후작의 주둥이에서 나의 이름이 거론된 순간, 좌중의 모든 시선이 나에게로 쏠리고 만다. 젠장, 내가 언제 이 따위 빌어먹을 자리를 마련했다는 것인가? 설마, 비앙카가 말했던 ‘이쪽의 모든 형편에 맞추어 연기를 해준다.’라는 계약 조건이 이것을 뜻하는 것이었던 건가?
“약혼이란 가문과 가문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약속. 약혼을 올리는 당사자의 의견이 가장 중요한 것은 틀림없지만 그 약혼이 가문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이상 이 자리에 모여 있는 모든 이들에게도 약혼에 의문을 표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겠소. 그렇기에 기회를 드리겠소이다. 그대들이 이 약혼에 대해 궁금한 점을 우리에게 허심탄회하게 물어볼 기회를 말이오.”
그리 말을 하며 카스타나 후작은 나를 힐끗 쳐다본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카스타나 후작의 입가가 아주 살짝이지만 묘하게 비틀린다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에스텔 소공작은 아직 정식으로 작위를 승계 받지는 않았지만 에스텔 공작의 뒤를 이어 공작가를 이끌어 갈 대귀족이오. 혹시라도 그에게 무례를 범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믿소이다.”
“.....”
정작 무례는 자기가 범하고 있는 주제에 주둥이 하나는 실로 청산유수인 인간이 아닐 수 없었다.
‘...너구리 같은 인간 같으니. 이딴 식으로 나오겠다, 이건가?’
카스타나 후작이 갑자기 뜬금없이 이런 자리를 만든 이유는 쉬이 유추할 수 있었다. 아니, 너무도 노골적이었던지라 알아채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나를 시험해보겠다, 이거로군.’
어쩐지, 고작해야 약혼자 시늉 몇 번을 하는 것에 비해 대가가 너무 값진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카스타나 후작이 가문의 모든 혈족을 모아다 놓고 이따위청문회를 개최할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지만, 따지고 보면 그의 이러한 행위를 계약 위반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비앙카와 구두 계약을 맺을 당시, 분명 그녀가 이러한 요구를 하지 않았던가. 주변에서 볼 때 '우리 둘의 사이가 연인처럼 보이도록' 철저히 연기를 해달라고. 사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이것은 내게 있어 기회나 다름이 없었다. 지금 이 순간을 무사히 넘길 수 있다면, 나는 약혼식이 다가오는 그 순간까지 비앙카와 연인처럼 보이기 위해 주위의 반응을 살피며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뭐, 이러한 판을 깔았다는 것에 대해 나에게 미리 말을 해주지 않은 것이 악취미임은 부정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빌어먹을 인간 같으니.'
지금 이 순간, 카스타나 후작이 나에게 요구하는 바는 간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어떻게 보면 기회라고 할 수 있으며 어떻게 보면 위기라고 할 수 있는 이 순간을 내가 어떻게 헤쳐 나가는 것인지 보고 싶어 하는 것이리라. 카스타나 후작가의 깊숙한 곳에 숨은 채 그들의 살을 야금야금 파먹어가는 쥐새끼들을 색출하는 작업에 있어, 카인 폰 에스텔이라는 사람이 믿음직한 파트너인 것인지, 아니면 그저 활용할 수 있는 카드 패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이 분명하겠지.
“.....”
나는 말없이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나의 옆에는, 어느 누가 보아도 사랑에 빠진 여자임이 분명해 보이는 비앙카의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소름 돋는 계집애 같으니.’
미래를 함께하자고 약속한 남자도 있는 주제에 아무런 애정도 없는 나를 향해 이런 수준의 연기를 펼칠 수 있다니. 대체 누구인지는 몰라도 이 여자와 미래를 약속한 그 녀석이 처량하게만 느껴졌다. 나는 가슴 속으로 조용히 그 녀석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나는 비앙카의 그러한 모습을 보며 조용히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카스타나 후작가에 놀러온 것이 아니었다. 에스텔 공작가의 이름을 대고 비앙카와 계약을 나눈 이상, 나는 내가 맡은 역할에 충실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말았다.
“비앙카.”
“...응?”
“손 좀 줘봐. 어서.”
“...어?”
비앙카는 약간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도 나를 향해 순순히 왼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녀의 왼손을 꽉 하며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나 이 자리에 모여 있는 모든 사람을 향해 당당하게 말을 내뱉었다.
“이 자리에 계신 카스타나 후작가의 모든 분들께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 제가 여러분들을 향해 드릴 수 있는 말은 오직 한 가지뿐입니다.”
하아, 하고 숨을 크게 들이 쉬는 것과 동시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전, 비앙카 델 카스타나라는 여자를 사랑합니다. 그것도 진심으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