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6. 헛소동 - 01
“...비앙카 델 카스타나.”
황궁의 심처, 그 중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자신의 방에서 아이리스 엘 데브하르트는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천장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현재, 아이리스가 떠올리고 있는 ‘비앙카 델 카스타나’는현 시간대의 비앙카가 아니었다. 시간이 거꾸로 되돌아가기 전, 원정대에서 그녀와 함께 고락을 나눈 그 때의 비앙카에 대해 떠올리고 있었다. 카스타나 후작가의 영애라는 직함보다는, 제국에서 다섯 손가락에 드는 대마법사이자 불세출의 천재라고 추앙받던 여자. 마법사답게 괴팍한 성품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타인에게 자신을 속내를 잘 드러내지 못하던 유약한 여자. ...그리고, 원정대에서 그 이를 스스럼없이 대하던 유일한 여자.
아이리스가 알고 있는 비앙카 델 카스타나라는 여인은, 참으로 모순된 존재였다. 겉으로 보기에 그 여자는 매사에 당당하기 그지없으며, 타인에게 있어 자신감 있는 일관된 태도를 보이고는 하지만 실상은 그 본질이 유약하기 짝이 없는 가련한 여자에 불과하였다.
언제나 강한 척 허세를 부리며, 타인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식으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이리스가 보기에 비앙카의 행동은 그저 강박에 지나지 않았다. 자신의 약한 면모를 감추기 위해 타인을 향한 가시를 빳빳히 세우는 고슴도치와 비슷하다 생각하였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비앙카 델 카스타나라는 여인은, 참으로 안쓰러운 여자가 아닐 수 없었다.
스스로에게조차 솔직해지지 못해 타인을 향해 잔뜩 날이 선 언행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자기 자신조차 귀애하지 못하는 주제에 타인으로부터 애정을 갈구한다는 점도, 타인으로부터 애정을 갈구하는 주제에 정작 타인과의 접촉에 두려움을 느끼는 어린아이와 같은 점도, 전부.
하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세간에서는 ‘비앙카 델 카스타나’라는 불세출의 천재의 화려한 단면만을 바라보며 그녀를 향해 감탄을 내뱉기 바빴지만 그러한 모습이 비앙카라는 여자를 구성하는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국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에 있는 아이리스는 보통의 사람들이 결코 알 수 없을 비밀스러운 정보에 대해 몇 가지 더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비앙카 델 카스타나라는 여자가 ‘어떻게’ 태어나게 된 것인지. 카스타나 후작가에서 비앙카 델 카스타나라는 여자를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였는지. 비앙카 델 카스타나라는 여자가 카스타나 후작가에서 어떠한 취급을 당하였는지.
해서는 아니 될 감상이기는 하였지만, 아이리스는 비앙카가 지내온 지난날의 삶을 보며 일순간이나마 동정심을 품어버리고 말았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동정을 받을만한 여자인 것이 맞기도 하였다. 참으로 불쌍한 계집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을 구성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경원시당하고, 외면당하며, 배척 받기만 한 인생을 살아온 여자였다. 가족으로부터 단 한 순간도 애정을 받아본 적이 없는 안쓰러운 여자였다. 그것이, 아이리스가 알고 있는 비앙카 델카스타나라는 여자의 과거였다.
“.....”
그리고 어느 날, 비앙카 델 카스타나는 마주하게 되었다. 카인 폰 에스텔이라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한 소년을. 아이리스로서도 그 보잘 것 없는 사소한 만남 속에서 어떠한 일이 오고 간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 사실만은 알 것 같기도 하였다. 적어도 비앙카 델 카스타나에게 있어 카인 폰 에스텔과의 만남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걸.
솔직히 말하자면, 아이리스로서는 그 이를 대하는 비앙카의 태도는 상당히 아니꼽게 비춰졌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일정 이상의 거리를 유지하며 깍듯이 예의를 지키는 주제에, 유독 그 이에게는 허물없이 대하는 모습이 아이리스의 신경을 거스르고는 하였다. 그 이를 향해 온갖 트집을 잡아대던 모습은, 아이리스에게는 그 이에게 의존을 하며 응석을 부리는 광경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았다.
...허나 그렇기에 아이리스는 오히려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스스로에게도 솔직하지 못하기에, 스스로가 무엇을 바라는 지 깨닫지 못하던 여자였다. 감정 그 자체에 휘둘려 무엇을 해야 하는 지도 알지 못하던 미숙한 여자였다. 저런 어린아이와 같은 여자와의 경쟁에서, 자신이 패배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래,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으음.”
하지만 그러한 생각을 수정해야할 것 같았다. 비앙카 델 카스타나라는 여자는, 결코 만만히 봐서는 안 될 호적수였던 것이다. 흑마법의 본산지, 흑탑에서부터 은밀히 반출한 자료를 들여다보며 아이리스는 그러한 생각을 품고 말았다.
“...인간의 기억, 이라...”
비앙카 델 카스타나는 자신의 행적을 감출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렇기에 아이리스는 비앙카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흑탑을 방문한 것인지 쉬이 알 수 있었다. 현재 비앙카가 연구하고 있는 주된 테마는 ‘기억’ 이었다. 성녀, 아리엘 티에르 이상으로 자신의 마각(馬脚)을 거리낌 없이 드러낼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에 비앙카가 내지른 일격은 더욱 통렬하게 느껴지기만 하였다.
“...대체 무슨 속셈일까.”
비앙카 델 카스타나의 노림수는 대체 무엇일까. 그녀는 대체 어찌하여 기억과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일까. 모르겠다. 왜 모르겠냐면, 짚이는 것이 너무도 많아서 그녀의 의도를 쉬이 파악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간단한 추론은, 비앙카 델 카스타나가 시간이 거꾸로 되감기기 이전의 ‘기억’을 되살리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 일까? 아이리스는 마법에 대해 상세히 알지 못하지만, 세상의 그 어떠한 마법사라도 전 세계의 시간을 되감는 이적(異跡)을 행할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설사, 지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는 전설 속의 용들이 되살아온다 하더라도 그런 일을 저지르는 것은 불가능 하리라.
그렇기에 단언할 수 있었다. 그러한 행위는, 한낱 인간에게 있어 불가능한 일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보아도 답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회귀'와 관련된 문제를 타인과 함께 공유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답답함이 배가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아이리스가 자신의 머리를 움켜잡으며 번민에 휩싸여 있을 때였다.
똑똑-
“누구더냐.”
황녀의 질문에 문밖에서 그녀에게 익숙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하. 소신, 크리스입니다. 저하께 급히 알려야하는 소식이 있다 판단되어 이리 늦은 시간에 저하의 침소를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들어오라.”
아이리스의 허락이 떨어지고 나서야 문이 열리고 전신에 경무장을 하고 있는 기사 한 명이 그녀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수호기사, 크리스였다.
아이리스는 살짝 의문이 서린 눈길로 크리스를 쳐다보았다. 어지간히 급한 일이 아니고서야 이리 늦은 시간에 크리스가 자신의 침소를 찾아올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로 이 시간에 이곳을 찾아온 것인가, 크리스.”
“...그게, 저...”
아이리스의 질문에 크리스는 우물쭈물하는 태도를 보였다. 평상시와는 완연히 다른 태도. 크리스의 그러한 기색에 아이리스는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온 몸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끼고 말았다.
“...카인 폰 에스텔, 아니 카인님과 관련된 소식입니다.”
“...카인과?”
“...예.”
크리스의 대답에 아이리스는 방금 전 느꼈던 불안감이 열 배 정도는 증폭되는 것을 느꼈다.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크리스가 쉽사리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우물쭈물거리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저, 카인님과 카스타나 후작가의 비앙카 델 카스타나, 이 두 사람 사이에서...”
오늘따라 크리스의 말이 지독하게 느릿느릿하게만 느껴졌다. 아이리스는 저도 모르게 크리스를 향해 재촉을 하고 말았다.
“...사이에서, 무엇이 일어났다는 것이더냐?”
아이리스의 재촉을 이기지 못하고 크리스는 결국 방금 다하지 못했던 뒷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약혼식이 거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것도 일주일 뒤에.”
우찌근-!
그리고 그 순간, 아이리스가앉아 있던의자가 통째로 박살이 나고 말았다. 허나 아이리스는 그 따위 사소한 일은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크리스를 향해 한 발짝 다가서며 흉흉하기가 이를 데 없는 목소리를 내뱉기 시작하였다.
“...크리스, 방금 전 그 일에 대해 더 상세하게 읊어 보거라.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지금 당장.”
****
“...소공작님,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뭔데? 내가 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답을 해주도록 하지.”
나의 대답에 카를 영감은 저 만치서 명상에 잠겨 있는 아리아를 쳐다보며 나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아리아, 저 아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생각을 하냐고?”
“예.”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질문인 것일까. 하지만 그러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카를 영감의 얼굴이 무서울 정도로 진지하였기에 나는 순순히 대답을 해주었다.
“에스텔 공작령의 마스코트 같은 귀여운 여자아이지. 덤으로, 마법에 대해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고 말이야. 영감이 내게 애걸복걸을 하며 제자로 삼아도 되냐며 매달릴 정도로 말이지.”
내가 피식 웃으며 농담 섞인 대답을 해주자 카를 영감은 내 말에 부정이라도 하듯 고개를 좌우로 내젓는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리아는, 마법에 대해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지? 그 날, 영감의 입으로 신나게 떠들어 댔었잖아. 아리아야 말로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불세출의 천재가 틀림없다며 말이야.”
“...예, 확실히 그랬었죠. 당시의 저는 아리아, 저 아이야 말로 마학(魔學)의 역사에 한 줄기 획을 남길 대단한 천재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저의 모든 연구 결과를 물려받은 끝에 그 너머의 진리를 규명해낼 수 있는 유일한 인재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건방지게도 말입니다.”
그렇게 말을 하더니 이윽고 카를 영감은 자신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제가 틀렸던 것입니다. 아리아 저 아이는, 단순히 ‘천재’라는 말로 규명을 할 수 있는 단순한 존재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저 따위가 측정을 할 수도, 재단을할 수도 없는 그러한 존재였다는 말입니다.”
“.....”
“소공작님, 그거 아십니까. 흔히들 천재라고 불리는 이들은 하나를 가르치면 그것으로부터 능히 열 가지를 깨우친다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천재들조차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는 누군가로부터 하나를 배운다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무(無)에서부터 유의 과정을 더듬어간다는 것은, 고작해야 백여년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리아는 아닙니다. 저 아이는 제가 하나밖에 가르치지 않았음에도 벌써 백을 알고 있습니다. 천을 깨우치고 만을 응용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도에 다녀오기 전의 아리아는, 마법에 어떠한 흥미도 없었으며 제 말을 그저 건성으로만 듣고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럼에도 저의 옹이구멍 같은 두 눈에는 저 아이가 천재와 같이 보였던 것입니다.”
그리 말을 하더니 카를 영감은 오한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몸을 부르르 떨었다.
“실로 두렵습니다. 저 아이가 어디까지 나아갈 것이며, 그 끝에 어디에 도달하게 될지 말입니다. 이 늙은이는, 지금 이 순간도 두려움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카를 영감의 걱정이 어떠한 것인지 왠지 모르게 알 것 같았다. 카를 영감이 걱정하는 것은, 아리아가 10년 뒤의 마녀와 같이 되는 것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겠지. 비록 경지는 삼류에 지나지 않지만, 아리아가 도달할지도 모르는 미래를 정확하게 알아맞히다니 썩어도 마법사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네?”
“그래서, 영감은 아리아를 제자로 삼은 것을 후회하는 것인가? 차라리, 제자로 받지 않았으면 하며 한탄이라도 하고 싶은 것인가?”
나의 질문에 카를 영감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아닙니다. 저는 단 한 순간도, 저 아이를 제자로 삼은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다만, 소공작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을 따름입니다.”
“부탁?”
“예.”
그리 말을 하며 카를 영감은 저만치서 명상에 잠겨 있는 아리아를 따스한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이내 나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만일, 저 아이가 엇나가게 된다면, 그 때는 소공작님이 저 아이를 가로막아 주시길 바랍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소공작님 밖에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니 말입니다.”
...확실히, 저 늙은이의 말 대로였다. 어쩌면 10년 뒤, 아리아는 다시금 세상에 겨울을 불러오는 마녀로 변모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거대한 재앙이 될 지도 모르는 아리아를 살리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은 바로 나였다. 그러니, 내가 모든 책임을 떠맡아야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리라.
“...그렇게 하도록 하지. 아리아는, 내가 끝까지 책임지도록 할게.”
나의 말을 어떤 방식으로 알아들었던 것일까. 나의 대답에 카를 영감은 조용히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안심이 되는군요. 감사합니다, 소공작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