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5. 욕망이라는 이름의 분쟁 - 03
비앙카 델 카스타나.
제국에서 최고의 마도(魔道) 명문이라 여겨지는 있는 카스타나 후작가의 장녀이자 10년 뒤 대륙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손꼽히게 될 희대의 대마법사. 무영창을 통해 전혀 다른 다섯 가지의 마법을 동시에 구사하는 것이 가능하며, 순간적이나마 마녀의 마법과 대등한 화력의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였던, 인세 최강의 마법사.
또한, 그녀가 직접 만들어낸 자신만의 고유마법, ‘백염(白炎)의 탄식’은 파괴력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현 인류가 구사할 수 있는 마법 중에서 정점에 위치해 있다고 평가되는 초월적인 위력을 자랑하는 마법이었다. 굳이 입 아프게 설명할 것 없이 ‘백염의 탄식’이라는 마법이 얼마나 존나 센 마법인지는 나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회귀 전, 비앙카가 날린 백염의 탄식에 의해 에스텔 공작령의 본성이 뙤약볕의 아이스크림마냥 녹아버리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였기 때문이다. 그 때 일만 떠올리면 그 개 같은 년의 모가지를 비틀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솟구쳐 오른다. 과연 내게 그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는 둘째치더라도.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마나의 축복’을 받은 비앙카는 인간이 지닐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비율로 몸이 재구성 되었다고 전해진다. 즉, 살아가면서 그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더라도 특유의 잘나빠진 외모를 상시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였다는 말이었다.
가문이면 가문, 마법이면 마법, 외모면 외모. 겉으로 보기에 뭐하나 빠지는 것 하나 없는 실로 완벽하기가 이를 데 없는 여인. 그것이 바로 ‘비앙카 델 카스타나’라는 여자에 대한 세간의 평가라 할 수 있으리라.
허나 그러면 뭐하는가? 지난 1년, 나는 비앙카와 함께하는 내내 딱 한 종류의 감상 외에는 다른 것을 떠올려본 적이 없었다.
‘시발년.’
굳이 거창한 감상문까지 작성할 필요도 없었다. 원정 기간 내내 그 빌어먹을 년이 나의 복장을 뒤집어 놓았던 적이 어디 한두 번 이었던가? 싸가지 없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말투가 더럽게 짧으며, 나에게는 절대로 말해주지 않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원정대의 다른 멤버와 갈등을 빚은 적은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았다.
나는 그러한 비앙카의 모습을 보며 마음 속으로 '미친 개'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정말이지, 그 망할 년에게 딱 들어맞는 별명이 아닐 수가 없을 것이다.
그 년의 수많은 단점 중에서도 나를 가장 좆같게 했던 점은 비앙카가 나를 괴롭히는 것을 매우 좋아하였다는 것이다. 비앙카의 머릿속에서 나에 대한 인식은 자기가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와 동등한 수준의 인식이 아니었다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이 다른 사람을 그렇게 개처럼 부려먹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허나 그렇다고 해서 그 망할 년과 계급장 떼고 한 따가리 해보자며 미친 척 덤벼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에스텔 공작령의 본성을 치즈마냥 녹여버리는 무시무시한 년한테 무슨 수로 개긴다는 것인가? 비앙카는 나에게 있어 황녀와는 사뭇 다른 의미로 내 마음에 공포심을 심어준 빌어먹을 여자였다.
그나마 내게 위안이 되는 점이 있었다면 에스텔 공작가와 카스타나 후작가는 보통 원수가 아닌, 철천지원수 같은 사이였다는 점이다. 서로가 서로의 면상을 마주하는 것조차 꺼리는 사이이니 제 아무리 이웃사촌이라고 할지라도 비앙카 그 년과 얼굴을 맞닥뜨리는 것은 요원한 일 일터.
회귀 전에는 어린 시절에 몇 번 재수 없이 얼굴을 마주하였던 것을 제한다면 나와 엮일 일 자체가 없던 여자였다. 그렇기에 이번 생 역시 그 엿같은 얼굴을 다시 볼 일 없을 것이라 단정을 짓고 있던 찰나였건만, 하필 비앙카가 카스타나 후작가에서 보내온 사절단의 총책임자 역할을 맡고 있었다니?
아버지의 말을 듣자마자 덮쳐오는 절망감에 나는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안 그래도 제도에서 황녀와 원치 않은 재회를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거늘, 연이어 비앙카와 마주한다는 것은 나의 심장에 크나큰 무리를 줄 것이 자명하였다.
“...아버지께서 직접 사절단과 이야기를 나누시면 안 됩니까?”
나는 한숨을 내쉬며 아버지께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어지간한 일이라면 아버지의 말씀에 따랐겠지만 비앙카 그 여자와 같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썩 내키는 일이 아니었다.
“왜 그러느냐? 설마 비앙카 그 아이 때문에 그러는 것이더냐?”
어떻게 알아차리신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아버지께서는 귀신같은 눈치로 내가 거절의 의사를 내비치는 이유를 짚어내셨다.
“네.”
어차피 숨겨봐야 숨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나는 아버지의 말에 순순히 긍정을 표하였다.
“어째서냐? 설마 그 아이를 싫어해서 그러는 것이더냐?”
“...글쎄요.”
사실, 나는 비앙카라는 여자를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았다. 내가 여성에게 괴롭힘을 받으면서 쾌락을 느끼는 빌어먹을 취향을 가지고 있어서 그리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이제 와서 그녀를 싫어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느꼈기 때문이었다. 나는 10년 전의 과거로 회귀하였으며, 미래에 내가 겪었던 모든 일은 없었던 일이 되었다. 이제 와서 사라져 버린 미래의 일을 바탕으로과거의 사람들에게 맹목적인 증오를 불태우는 것은, 너무나도 피곤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저, 앞으로 내가 삶을 살아가는 동안 엮이는 일 자체가 없었으면 하는 소소한 바람뿐이었다.
내 애매모호한 대답을 어떻게 해석하셨는지 아버지께서는 미간을 찌푸리셨다.
“왜 그러느냐? 어릴 때만 하더라도 함께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여주더니.”
“...어울리다니요. 그건 그저 악연이었을 따름입니다만.”
“악연?”
그렇다. 악연이다. 나도 그렇고, 비앙카도 그렇고 공작이나 후작과 같은 고위 귀족쯤 된다면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반드시 참석을 해야 하는 행사가 한두 개는 있는 법이었다. 그러한 자리에서 나와 비앙카는 서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참고로 비앙카는 어릴 적부터 싸가지가 없는, 싹수가 노란 년이었다는 점을 밝히고 싶다. 내가 비앙카와 처음 얼굴을 마주하였을 때, 그 계집애가 나를 향해 내뱉었던 말이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내 앞에서 꺼져.’
‘...뭐?’
‘넌 정말 멍청하구나. 카스타나 후작가에서 괴물 같은 년이 하나 나왔다는 소문도 듣지 못한 모양이지? 괜히 내 옆에서 얼쩡거리다가 다치지 말고 저 만치 꺼지라고.’
정말이지, 어릴 적부터 시건방짐이 하늘을 찌르던 교만한 년이 아닐 수가 없었다. 자신이 잘났다며 모가지를 빳빳하게 쳐드는 꼴이 하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나는 자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아는 비앙카에게 한 마디 해주었다.
‘너, 후작가 주제에 왜 나한테 명령질이야? 우리 집은 공작가인데. 꼬맹이 주제에 잘난 척 하기는.’
그렇게 해서 비앙카와 나는 한바탕 질펀하게 뒹굴었다. 그리고 정말 유감스럽게도 나는 나보다 어린 계집애한테 존나 얻어맞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것은 정말 불공정한 싸움이 아닐 수 없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마력을 다루는 법을 익혔다는 괴물 같은 계집애를 내가 무슨 수로 이긴단 말인가?
하지만 카인 폰 에스텔은 그런 조막만한 주먹을 가진 계집애한테 몇 대 얻어맞았다고 해서 마음이 꺾이는 그런 남자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나의 등 뒤에는 에스텔 공작가의 명예가 걸려있었다. 다른 누군가에게 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카스타나 후작가의 계집애에게만은 질 수가 없었단 말이다.
그 뒤로도 나는 비앙카와 몇 번 마주할 때마다 줄기차게 시비를 걸었으며 그 때마다 비앙카와 여러 번 치고받곤 하였다. 마지막으로 비앙카와 만났을 때,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기도 한데, 거기까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솔직히 그런 사소한 일까지 어떻게 기억을 하고 다니겠는가?
“...참, 넌 정말 병신빡통새끼구나. 네가 내 자식만 아니었다면 아주 뒤지기 전까지 패버렸을 것이다.”
“...네?”
“됐다. 너 같은 빡대가리에게 입 아프게 설명을 해서 뭘 어찌하겠느냐. 에스텔 공작가의 가주로서 네게 명하겠다. 아가리 다물고 얌전히 사절단을 접대 하거라. 반론은 받지 않겠다. 알겠느냐?”
“.....”
...이 양반은 나한테 또 왜 이러는 거야?
****
“그럼, 아버지.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오냐. 나도 네가 가급적이면 살아 돌아왔으면 좋겠구나. 네게 무운을 빌어 주마.”
“...그게 하나 뿐인 아들에게 할 소리입니까? 저는 사절단을 접대하러 가는 것이지 전쟁터에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만.”
“글쎄,내가 보기에는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이기만 하구나. 물론, 비앙카 그 아이는 믿을 수 있다만 그렇다고 해서 카스타나 후작가의 다른 놈들까지 믿는다는 의미는 아니거든.”
...뭐, 나 역시 비앙카에 대한 아버지의 근거 없는 믿음만을 제한다면 저 말이 전부 옳다고 생각한다. 에스텔 공작가와 카스타나 후작가의 관계는 개와 원숭이의 관계가 매우 돈독한 의형제 수준으로 보이게 할 만큼 험악하기 짝이 없는 사이였다. 녀석들이 대체 어떠한 꿍꿍이속을 가지고 있는지 확실치 않은 지금,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고 해서 손해 볼 것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아버지의 충고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아버지께 가볍게 목례를 올린 후 카스타나 후작가의 친구들을 ‘접대’해주기 위해 선발한 기사 몇 명과 응접실로 출발을 하려고 할 때였다.
“카인님, 카인님!”
“...? 왜 그러니, 아리아?”
갑자기 내 앞으로 아리아가 헐레벌떡 뛰어 오더니 이윽고 내 옷자락을 꽉 하며 붙잡았다.
“저도, 저도 카인님과 같이 가면 안 될까요? 방해는 되지 않을게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 부탁드려요.”
그런 말을 하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아리아. 솔직히 말하자면, 저 눈빛은 정말 반칙이었다. 저런 눈빛으로 누군가에게 부탁을 한다면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단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아리아의 부탁을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단칼에 거절하였다. 아리아의 부탁은, 들어줄 수가 없었다.
“안 돼. 그건 허락할 수 없단다, 아리아.”
“...네? 어째서요?”
나의 거절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는 아리아. 아리아의 저러한 모습을 보니 내가 무언가 커다란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닌가 하는 죄악감이 가슴 속을 스멀스멀 뒤덮어간다. 하지만 여기에서 아리아의 어리광을 받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나는 마음을 굳세게 먹고 아리아에게 쓴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넌 별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까. 미안하구나, 아리아.”
“.....”
나의 단도직입적인 말에 아리아는 울상을 짓는다. 허나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제 아무리 10년 뒤에 아리아가 세상을 오시할마녀로 성장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래의 이야기. 지금 이 시점에서의 아리아는 에스텔 공작령의 귀엽기 짝이 없는 시녀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카를 영감에게서 마법을 배우고 있기는 하지만 이제 막 기초를 뗀 아리아가 유사시에 별 도움이 될 수 있을 리가 만무하지 않겠는가.
...결정적으로, 비앙카와 아리아를 직접 대면시키기 싫다는 이유도 있었다. 황녀도그렇고, 아리엘도 그렇고, 돌아가는 상황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쯤은 쉬이 눈치를 챌 수 있었단 말이다. ...물론, 내가 과민하게 반응하고 있을 가능성이 훨씬 높기는 하였지만, 만의 하나라는 것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사죄의 의미로 아리아의 머리를 살짝 매만져주었다. 이번 일에 대해서는 나중에 제대로 사과를 하도록 하자. 그리 마음을 먹은 나는, 그렇게 아리아를 지나쳐갔다.
****
그리고, 아리아는 홀로 남겨졌다.
“...카인님.”
쓸모가 되지 못하였다. 자신은, 결국저 사람에게 쓸모가 되지 못하였다.
노력하였다. 저 사람의 힘이 되어주기 위해 노력하였다. 자신에게 이름을 지어주었으며, 자신에게 있을 곳을 마련해주었으며, 자신이 살아가는 의미를 만들어준 저 사람의 힘이 되어주기 위해 노력하였다. 노력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면, 언젠가 저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결국 자신은 쓸모가 없었다. 결정적인 순간, 자신은 저 사람에게 어떠한 도움도 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한 사실이, 아리아를 슬프게 만들고 있었다.
아리아는 더 이상 그의 침대 위에서 깨어났을 무렵의 미숙했던 아리아가 아니었다. 이제 그녀 역시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눈을 뜬 이후, 그와 함께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것을 함께 하였으니까. 그에 따라 세상을 보는 시야 또한 더욱 넓어졌으며, 더욱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출신조차 알 수 없는 비천한 계집인 것에 비해 그는 지체 높은 귀족가의 도련님이라는 것이나, 혹은 자신이 그의 시중을 들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에 있는 것이 허용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배려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 정도는 쉬이 알 수 있을 정도로.
미웠다. 저 사람을 이렇게 보낼 수밖에 없는 자신이 미웠다. 저 사람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없는 자신이 미웠다.
...그리고 저 사람의 말대로 아무 짝에 쓸모도 없는 자기 자신이 너무도, 미웠다.
“...카인님.”
그렇게 홀로 남겨진 그녀는, 위기의 바깥쪽에 안전하게 놓여진 자기 자신을 책망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한동안, 그렇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