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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화 〉5. 욕망이라는 이름의 분쟁 - 02 (28/201)



〈 28화 〉5. 욕망이라는 이름의 분쟁 - 02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 대륙 전체는 전장의 겁화에 휩싸여 있었다. 지상 위에 물경 수십 개의 국가가 난립하여 서로가 서로를 향해 창칼을 겨누던 지극히 혼란스럽던 시대였다. 소수의 권력자들의 욕망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터에서 덧없이 쓰러져간 잔혹했던 시대였다.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으로 말미암아 민초(民草)들이 군화에 짓밟힌 채로 신음성을 흘리던 야만의 시대이기도 하였다.

결국, 사람들은 지쳐버리고 말았다. 아무 의미도 없이 반복되는 전쟁에 지쳐버렸다. 아무 의미도 없는 전쟁터에서 덧없이 흩어져가는 수많은 목숨들에 대해 환멸을 느껴버리고 말았다. 그 시대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지긋지긋하다 생각해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기도하였다. 더 이상 무의미한 피를 흘리지 않았으면 한다고. 어제와 같은 내일이 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평화로운 시대가 도래 하였으면 한다고. 그런 소망과 염원을 가슴 속 깊숙한 곳에 품으며, 여신을 향해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그러한 민중의 총화(總和)를 대변하기로 한 듯, 한 남자가 나타났다. 어떠한 사람도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무엇을 하다 왔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그는 나타나자마자 일신의 강대한 무력과 특유의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하여 자신을 가로막는 것들을 모조리 굴복시켜 나갔다. 그는 단신의 힘으로 일만의 군세와 맞먹는 힘을 발휘하였다고 하며, 고작 십 년이라는 시간 만에 대륙의 삼분지 일을 하나로 묶어   위에 만연하여있던 모든 전쟁을 종식시키는 것에 성공하였다.

그 남자의 이름은 데브하르트. 물경 천 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제국의 주인으로 군림하게 될 황족들의 위대한 시조가 바로 그였다.

그리고, 데브하르트에게는 그가 제국을 일으키는 과정에 있어 가장 큰 도움을 주었다는 네 명의 심복이 존재하였다고 한다. 데브하르트는 그들과 그들의 후손으로 하여금 자신을 언제든지 알현할 권리를 하사하였으며 그들의 영광이 누대를 이어 지속되기를 기원하였다 전해진다.

그들의 이름은 각각 에스텔, 투르니젠, 데카라즈난, 크러셀.

이것이 바로 현 대륙의 주인이라 칭할 수 있는 제국의 황가와 그들을 보필하는 영광스런 4대 공작가문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보면 한 가지 의문점이 드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흔히 미취학 아동들을 위한 동화책에는 청자의 수준과 흥미를 위해 손에서 불이나 얼음을 뽑아내는 마법사 하나쯤은 곁다리로 들어가 있기 마련인데 제국의 건국 신화에는 그런 떨거지들의 이야기는  씻고 찾아보아도 발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마법사들이 자신들이야말로 귀족 중의 귀족이라며 모가지에 힘을 뻣뻣하게 주고 다니는 것과 참 대조되는 현상이 아닐 수가 없었다.

마법사들이 제국의 건국설화에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실로 간단하다. 왜냐하면 지금으로부터 천  전에는 마법의 수준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좆밥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마법으로 온갖 해괴한 개지랄을 떨 수 있다지만 천  전에는 국소적 범위에 자연 현상을 인위적으로 재현하는 정도의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뭐,  정도 수준만 하더라도 실제 전쟁터에서 마법이라는 힘이 변수로 작용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군세의 선봉에 서서 적들을 베어 넘기던 무인(武人)들은 마법사들의 행태에 대해 상당히 아니꼬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적들과 맞서 싸우는 자신들과는 다르게 안전한 곳에 자리한 채 마법이나 날리는 마법사란 족속들을 ‘좆병신’이라며 비웃는 것에 어떠한 거리낌도 가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마법사들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양반은 바로 나의 자랑스러운 조상인 초대 에스텔 공작이었다. 그 양반은 마법사들이 쏘아내는 불꽃을 담뱃불보다 못하게 여겼다고 전해지는, 정말 골수까지 무인인 인간이었다고 전해진다.

제 아무리 마법사가 좆밥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의 면전에서 좆밥이라 부르면 듣는 좆밥도 기분이 나쁜 법. 당시 데브하르트의 휘하에 있던 대마법사 카스타나는 그런 말을 대놓고 떠드는 에스텔을 엄청나게 싫어하였다고 하며, 결국 둘은 한바탕 질펀하게 뒹굴기에 이른다.

결과는? 말할 것도 없었다. 마스터의경지에 올라 있던 에스텔은 대마법사 카스타나를 말 그대로 아작을 내버렸다고 한다. 내 선조인 양반이지만 정말이지 옆과 뒤를 돌아보지 않는 호쾌한 인간이었던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헌데  사람의 악연은 그것으로 결착이 난 것이 아니었다. 대륙에서 모든 전쟁이 종식된 후, 데브하르트가 자신들의 수하들에게 봉토를 수여할 당시 에스텔 영지 바로 옆에 하필이면 카스타나의 영지를 배정해준 것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데브하르트의 그러한 결정에 에스텔도, 카스타나도 아무런 반대 의견을 표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악연으로 똘똘 뭉쳐져 있는 두 사람을 강제로 이웃사촌으로 만들어버린 데브하르트도, 그러한 결정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에스텔과 카스타나 또한 약간 맛이 가있던 것이 아닌가 사료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서로의 얼굴을 보면 못 잡아  먹어서 환장한 듯이 굴었다는  사람을 강제로 이웃으로 만든다는 발상이 말이 된다 생각을 했던 것일까?

그렇게 에스텔과 카스타나는 강제로 이웃사촌이 되었지만 당연하게도 둘의 사이는 손톱만큼도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두 가문의 사이는 악화일로를 걸었다고 한다. 에스텔이나 카스타나나 단순히 서로를 증오하기만 한 것뿐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증오를 후손들에게 그대로 대물림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천 년에 걸친 밥상머리 교육이 이루어졌다. 증오의 연쇄가 시작되었다. 해가 지날수록 맹목적인 증오는 증폭되어만 갔으며, 그것은 결국 하나의 전통으로 승화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천 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는  가문의 사이는 거짓말로라도 양호하다고는 할 수 없을 지경에 다달았다.

천  전만 하더라도 에스텔 공작령 옆에 자신들만 보면 이를 벅벅 갈고 있는 이웃사촌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어떠한 문제도 야기하지 않았다. 제국이 건국된 초창기만 해도 에스텔 공작가는 제국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 중 하나였다. 에스텔 공작령의 광산에서는 금과 은을 비롯한 온갖 귀금속이 쏟아져 나왔으며 킬더른 강을 위시로 한 비옥한 평야에서는 엄청난 양의 농작물이 수확되고 있었다. 비록 옆 영지에 그리 사이가 좋지 않는 좆밥들이 있다 하더라도 피식 하며 웃어넘길 있는 힘을 갖추고 있었단말이다.

허나 시간이 흐르며 그러한 관계는 차츰 역전되어 가기 시작했다. 에스텔 공작령의 광산이 하나둘 폐광이 되어가고, 평야의 지력이 메말라가며 쇠락의 길을 걸을 동안, 카스타나 후작가는 점차 승승장구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대륙의 마학(魔學) 수준이 점차 상승해가며 마법사가 차지하는 위상 또한 한층 더 높아지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단순히 손에서 불이나 얼음을 만들어내는 수준이 아니라, 마법이라는 학문이 일상 그 자체와 결합을 하여 생활을 한층 더 윤택하게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최전선에는 카스타나 후작가의 마법사들이 위치하고 있었다.

그들은 마법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일반인들조차 문제없이 사용 가능한 아티팩트를 여럿 개발하였으며 그로 말미암아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부를 얻는 것에 성공하였다. 그들이 누대에 걸쳐 쌓아온 거대한 부는 점차 쇠퇴의 길을 걷고 있던 이웃사촌을 가볍게 압살할 정도로 대단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그나마 에스텔 공작가에 한 가지 다행인 사실이 있었다면 두 가문의 수준 차이가 그야 말로 하늘과  사이로 벌어진 이후 카스타나 후작가 측에서는 에스텔 공작가를 소닭 보듯 쳐다보기만 할 뿐 직접적으로 시비를 거는 일은 없었다는 점이다. 어쩌다가 공식석상에서 마주하게 된다면 서로의 면상을보며 얼굴을 구기거나 부모님의 안부를 물어보는 일은 있어도 물리적인 충돌만은 자제를 해왔다는 의미였다.

내 기억으로는 두 가문 사이에 공식적인 왕래가 있던 것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백여 년도 훌쩍 지난 까마득한 과거의 일이었을 터. 그런데 이제 와서  새끼들이 사절단이니 뭐니 하는 것을 보낸 의도가 대체 무엇일까.

“...카스타나 후작가의 친구들이 뭘 잘못 쳐 먹기라도  것이랍니까? 무슨 용건으로 사절단을 파견하는 등의 예의 바른 짓을 저지른 것이랍니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에스텔 공작가와 카스타나 후작가 사이에 사절단이 오고간다면 그것은 서로를  죽이기 위해 선전포고를 할 때밖에 없을 것이라 단정 짓고 있었는데 말이지.

“거 참. 아주 재미있는 사정이더구나.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사정이기도 하고.”

그리 말씀을 하시며 아버지께서는 나를 향해 서찰을 넘겨주셨다. 아버지로부터 서찰을 받아 그 내용을 차근차근 읽어보니 어찌하여 아버지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인지 이해가 가기도 하였다.

카스타나 후작가에서 보내온 서찰의 내용은 간단하다면 간단하였다. 현재 에스텔 공작령과 카스타나 후작령 사이에는 거대한 단층지대가 존재한다. 굳이 공을 들여 경계선을 그을 필요도 없이, 그 단층지대는 대략 천 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두 영지 사이의 경계 역할을 해주었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대략 한 달 전, 그 단층지대의 한 가운데에서 마법의 촉매로 작용하는 키텔렌 광석이 무더기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같은 무게의 황금보다 열 배는 비싼, 더럽게 희귀한 금속이었지.’

키텔렌 광석을 먼저 발견한 쪽은 카스타나 후작가 쪽이었다. 허나 영지의 경계에 걸쳐져 있는 곳이기에 카스타나 후작가 쪽에서도 대놓고 꿀꺽하기에는 눈치가 보였나보다. 그렇기에 광석의 소유권과 수익과 관련해서 제대로  담판을 지어보자는 의미에서 사절단을 보냈다는, 그런 내용의 서찰이었다.

“.....”

헌데 나는 이 서찰을 보며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아니, 이상한 정도가 아니었다. 수상쩍음이 너무 짙어, 신경을 쓰지 않을래야 쓰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의 위화감이 느껴진다.

‘...이게 말이 되나?’

현 시점에서 카스타나 후작가와 에스텔 공작가의  차이는 그야말로 하늘과  차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막말로, 카스타나 후작가 측에서 힘을 앞세워 키텔렌 광석을 다 쳐먹겠다고 당당하게 선포를 하더라도 우리는 찍소리도 못한 채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여야 할 처지란 말이다. 그런데 에스텔 공작가 알기를 동네의 개만도못하게 여기는 카스타나 후작가 측에서 먼저 이러한 제안을 해오다니?

결정적으로, 내가 회귀하기 전에는 이런 일은 일어난 적이 없었다. 단층지대에서 광석이 발견이 되었다느니, 카스타나 후작가에서 사절단을 파견한다느니 하는 일 자체가 없었단 말이다. 회귀자 카인 폰 에스텔의 행동에 의해 대륙의 역사 그 자체가 살짝 흔들릴 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이건 그 정도 수준을 한참 뛰어넘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내가 과거로 돌아온 것과 단층지대에서 광석이 발견되는 것에는 대관절 무슨 연관성이 있단 말인가?

“.....”

허나 내 머리통의 수준으로 이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해봐야 제대로  답이 나올 리가 만무한 노릇이었다. 나는 뒷머리를 긁으며 아버지께 나지막하게 나의 생각을 말하였다.

“...우선, 녀석들의 말을 들어봐야겠군요. 놈들의 입에서 무슨 개소리가 튀어 나오는지 직접 들어보고 돌아가는 상황을 판단해야 할  같습니다.”

“그래, 나도 같은 생각이다.”

아버지께서는 내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셨다.

“아, 그러고 보니 이번 사절단의  책임자 말이다. 너도 잘 알고 있는 아이가 그 역할을 맡았더구나. 그런 의미에서 사절단과 담판을 짓는 역할은 네게 맡기고 싶구나.”

“...제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요?”

아버지의 말을 듣자마자  얼굴이 괴상하게 일그러지고 말았다. 왜냐하면, 내가 카스타나 후작가에서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사람은 딱 한 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비앙카. 그 아이가 이번 사절단의 총책임자 역할을 맡았다고 하더구나.”

“...네?”

순간, 내 입이 저도 모르게 쩍 하고 벌어지고 만 것은 소꿉친구를 오랜만에 만나게 된 기쁨에서 비롯된 것만은 결코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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