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6화 〉4. 제도 루멘티움 - 15 (26/201)



〈 26화 〉4. 제도 루멘티움 - 15

...기사? 에스텔 공작가의 기사가 되고 싶다고? 투르니젠 공작가의 하나 뿐인 후계자이자, 제국에서 몇 되지 않는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무인인 주제에 에스텔 공작가의 기사가 되고 싶다며 내게 간청을 한다고? 이 새끼는 정말 제정신인 것일까? 나는 하도 어이가 없던 나머지 녀석을 향해 정중하고 교양 있는 어조로 질문을 던져보았다.

“...너 진짜 미친놈이야? 아니면, 또라이야? 뭐가 어쨌든 제정신은 아닌  같은데.”

나는 갑자기 나의 앞에 나타나 뜬금없는 헛소리를 주절거리는 루시안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저 새끼의 말이 진심이라면 투르니젠 공작은 10년 안에 투르니젠 공작가를 내부에서부터 붕괴시키기 위해 정신병자 한 놈을 후계자 자리에 앉혀놓은 것이 분명하였다.

나는 말없이 루시안을 쳐다보며 녀석의 주둥이에서 진짜 본론이 튀어나오기를 얌전히 기다려주었지만 안타깝게도 루시안의 두 눈은 진지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나는 제정신이다. 카인  에스텔. 농담도 아니고, 헛소리도 아니다. 진심으로 네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주었음에도 고개를 내저으며 진심이었다고 말을 내뱉은 루시안을 보며 나는 저도 모르게 실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정신병자 새끼. 완전히 미쳤군.”

대체 뭐가 아쉬워서? 마음만 먹는다면 황실 직속 기사단에도 들어갈 수 있는 놈이  구질구질하고 가난한 에스텔 공작가의 기사가 되기를 자청하고 있는 것인가?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놈이 기사단에 입단하겠다고 선언하면 제국 각지에서 제발 우리 기사단에 와달라고 녀석의 발바닥을 핥아줄지도 모르는데, 에스텔 공작가의 기사가 되기 위해 나에게 ‘간청’을 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 새끼가 어제 뭘 잘못  먹어서 기생충이 뇌에 침투한 것은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며칠 전 녀석에게 행하였던 의료행위의 후유증이 뒤늦게 나타나기라도  것일까.  결과 녀석의 뇌세포가 크게 다쳐서 정상적인 사고 기능이 마비되고 만 것일까?  그래도 저능한 새끼였는데 나의 실수로 인해 더욱 저능하게 된 것이라면 그저 애도를 표할 따름이다.

“...후우.”

설사  추측이 맞다 해더라도 이제 와서 무엇을 어찌할  있겠나. 전부 내 부덕의 소치이거늘. 나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며 저 만치에 서있던 아리아에게 손짓을 하였다. 아리아는 저만치에서도 내 손짓을 철썩 같이 알아듣고 쪼르르 달려왔다.

“예. 무슨 일이신가요, 카인님?”

자신에게 무언가 시킬 것이 있나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고 있는 아리아를 보며 나는 내 앞에 멀뚱멀뚱  있는 루시안을 가리켰다.

“사람을 한 명 붙여  테니 여기  멍청하게 생긴 놈을 투르니젠 공작가까지 모셔다드리렴. 지금 제정신이 아닌 상태라 중간에 어디로 도망갈지 모르니 절대 시선을 떼지 말고.”

“...무슨 실례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냐. 카인 폰 에스텔. 난 제정신이다.”

왠지 모르게 발끈한 듯한 어조로 말을 하는 루시안을 보며 나는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래그래, 나도 너 제정신인거 알아. 그렇고말고. 암.”

자고로 만취한 새끼 일수록 자신은 취하지 않았다고 언성을 높이고 다니며 강간마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화간에 지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법이다. 정신이상자가 자신은 제정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것과 똑같은 맥락의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아, 제발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었으면 좋겠군. 나는 아직 본론조차 꺼내지 않았단 말이다.”

그리 말을 하며 진심으로 골이 당긴다는 듯 표정을 지어보이는 루시안. ...어쩔  없다. 우선 녀석이 무슨 말을 지껄이는  지켜보도록 할까.

“...좋아, 3분 주지. 방금 전의 그 정신 나간 헛소리를 내가 이해가 가도록 납득 시켜보라고.”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그것만을 기다렸다는  루시안의 입이 열렸다.

“내가 에스텔 공작가의 기사가 되고 싶은 이유는 한 가지이다. 나는 너와의 결투 속에서,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벽을 넘을 수 있는 단초(端初)를 붙잡는 것에 성공하였기 때문이지.”

“...단초?”

“그래. 지금으로부터 1년 전, 나는 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거기까지였지. 어떠한 수련을 하더라도, 어떠한 수단을 써서 나 자신을 몰아붙이더라도 ‘벽’을 뛰어 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검술의 경지는 답보 상태에 놓여있었고,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나아가는 느낌을 받지 못하였다. 이것이, 나의 한계인가 하는 절망감에 빠져있었지.”

그리 말하더니 루시안은 어깨를 부르르 떨고 말았다. 사라가 어깨를 부르르 떨 때는 애처로워 보였지만 사내자식이 저 지랄을 하니 구역질이 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너와의 결투를 통해 어떠한 영감을 느꼈다. 아니, 감각이라고 해야 할까. 그 감각에 매진한다면 현재 나를 가로막고 있는 벽을 넘어설 수 있는 기분이들었다. 그것이 이유이다. 내가 에스텔 공작가의 기사가 된다면 너와 언제든 대련을...”

“.....”

그러니까, 루시안 저 새끼의 말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나 때문에 에스텔 공작가의 기사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는 것일까?

“우욱.”

사내 새끼에게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위에서 쓴물이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나는 저도 모르게 루시안으로부터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내 몸에서 자동적으로 일어난 생리적인 현상이었다.

“...지금 뭐하는 것이지?”

그리 말하며 나를 향해  발짝 다가오려는 루시안. 허나 나는 녀석이 발걸음을 떼기 전에 황급히 제지하였다.

“미안한데, 나와 이야기할 때는 최소한 열 발자국 떨어진 장소에서 말을 걸어주면 안 될까? 딱히 네가 싫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 응? 조심하자고.”

“.....”

솔직히 말하자면 저런 역겨운 놈과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연회장에서 사라를 좋아하니 어쩌니 떠들어대던 것도, 회귀 전에 사라와 결혼을 했던 것도 사실은 자신의 취향을 감추기 위한 고도의 기만술이 아니었던 것일까? 이 추측이 사실이라면 루시안 저 새끼는 실로 치밀하기 짝이 없는 대단한 새끼인 것이 분명했다. 저런 씹새끼들 때문에 제국 전체의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으리라.

내가 자신을 향해 썩어 들어가는 표정을 짓고 있자 그제야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눈치를 챈 루시안은 얼굴을 휴지조각처럼 구기며 나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이런 염병할! 사라 양을 향한 나의 마음은 진심 중의 진심이다! 감히 나를 남색가로 만드는 것이냐!”

“.....”

실로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무죄를 탄원하는 루시안. 하지만 나는 녀석의 억울하다는 표정 또한 화전양면전술의 일종이 아닐까 하는 의심 밖에 들지 않았다. 나는 내가 살아 숨 쉬는 동안 루시안  새끼를 향한 경계를 늦추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일단 녀석의 주장을 수용해 주기로 결심하였다.

“...믿어주지. 하지만 나와 대화할 때는 적어도 열 걸음 떨어진 곳에서 대화를 하도록.”

“...빌어먹을. 정말 너라는 놈은...”

나는 루시안의 투덜거림 따위는  쪽 귀로 흘려들으며 방금 전 저 녀석이 나에게 지껄인 구역질나는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았다.

‘나와의 결투에서 무언가를 느꼈다고?’

사실, 루시안이 느꼈다는 감각이 무엇인지 알  같기도 하였다. 물론, 나는 루시안이 지껄인 것처럼 구역질나는 감상 따위는 손톱만큼도 느낀 적이 없었다. 내가 느낀 것은 다름 아닌 위화감이었다.

‘...루시안, 그 녀석의 오러는 나하고 궁합이 너무 잘 맞았어. 이상할 정도로.’

황녀가 나에게 가르쳐 준 바에 따르면 '흐르는 별'을 통해 다른 사람의 오러를 빼앗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며, 설사 빼앗는 것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오러를 통제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일이라 하였다. 왜냐하면 오러는 단순한 에너지가 아니라 시전자의 심령(心靈)과 직접적으로 이어져 있는, 그 사람의 신체의 일부나 다름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

나는 잠시 생각에 빠져 있다가 루시안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루시안,  가지 물어볼 것이 있는데.”

“무엇인가?”

“네가 익힌 검술, 이름이 뭐지?”

“이름  인가? 내가 익힌 검술의 이름은 ‘어스름한 달’이라 한다. 투르니젠 공작가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비전 검술이지.”

“어스름한 달...?”

무언가 알 듯 말 듯 하다. 왠지 모르게 황녀라면 이 위화감을 설명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지금이라도 황녀에게 달려가 질문을 던져본다면 금방 답을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자살하고 싶다면 안 아프게 죽는 방법이 지천에 깔려 있는데 굳이 그런 방법을 택할 필요는 없을 테지.

“흐음...”

그렇게 내가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자니 그런 나를 보며 루시안은 초조한 듯 말을 내뱉는다.

“...대답이 듣고 싶다. 카인 폰 에스텔. 나를 에스텔 공작가의 기사로 받아줄 수 있나?”

나는 그러한 루시안의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혀를 차고 말았다.

“그런데 왜 공작가의 기사가 되려 하는 것이지? 식객으로 머무른다는 선택지는 없는 건가?”

“그러면 민폐이지 않겠는가. 내가 마주한 벽을 넘어설 때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데  기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런 일 밖에 없으니까.”

“...투르니젠 공작님의 허락은 받았나?”

“아버지께는 이미 허락받은 사안이다. 내가 마주한 벽을 허물 기회라 말씀드리니 순순히 허락을 해주시더군.”

...거 참, 실로 대범하기 이를 데가 없는 양반이다. 연회장에서 자기 아들을 공개적으로 줘  것도 모자라 모욕을 가한 녀석의 기사가 되는 것을 순순히 허락해주다니.

“넌 정말 아무렇지도 않냐? 결투에서 너를 꺾고 모욕을 가한 상대의 밑에 들어간다는 사실에 아무런 감흥도 없어?”

“패배가 무슨 상관인가? 그리고 모욕이 뭐가 어쨌다는 거지?”

“...뭐?”

"검을 든 그 순간부터 패배는 이미 각오하고 있던 바이다. 모욕 또한 마찬가지지. 물론, 패배나 모욕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내게 있어서는 그 따위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을 따름이다. 그것에 비하면 패배나 모욕은 실로 하잘 것 없는 것에 지나지 않지.”

“...미친 놈이로군.”

나는 녀석의 말을 들으며 진심을 가득 담아 중얼거리고 말았다. 루시안 이 녀석 또한 황녀와 똑같은 부류의 인간이었다. 검을 통한 구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미치광이였다는 말이다. 나는 녀석의 대답을 들으며 내가 어떠한 선택을 내려야 할  결정을 내릴  있었다.

“내 대답을 들려주지. 네 제안은 거절하겠다. 루시안.”

나의 대답에 루시안은  어떠한 표정의 변화도 없이 덤덤한 얼굴로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 이유에 대해  수 있나?”

“그거야 어렵지 않지.”

나라고 해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무인을 기사로 맞이하고 싶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산수의 문제였다. 이 녀석을 받아들이는 것에는 득보다 실이 훨씬 많았다.

“우선, 에스텔 공작가의 환경은 투르니젠 공작가의 환경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구질구질한데다가 열악하기 짝이 없지. 단언컨대, 네가 무엇을 상상하건 그 이상일걸?”

나는 루시안을 향해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것은, 진실이었다. 적어도 눈 앞에 잘나빠진 도련님이 수련에만 열중할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것만은 확실하였다.

“우리는 굉장히 바빠. 적어도, 우리가 처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채 반찬투정이나 할  뻔한 도련님의 뒤치다꺼리를 할 정도로 한가하지도 않고 그럴 여유도 없어.”

“.....”

“한 가지 더, 네 신분이 너무 거치적거려. 투르니젠 공작가의 도련님이라는 신분은 어디를 가나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감이나 줄 것이 뻔한 노릇 아닌가? 나는 에스텔 공작가가 모실 상전이 한 명  늘어나는 것을 바라지 않거든.”

그리 말하며 나는 루시안을 향해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러니 거절하도록 하지. 네 사정은 잘 알겠다만 우리는 다른 사람의 배려나  정도로 풍족한 환경이 아니거든.”

정말이지, 내가 생각해도 구구절절 옳은 말의 향연이었다. 설사 내 옆에 황제나 투르니젠 공작 본인이 있다 하더라도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완벽한 논리였다.

헌데 루시안의 표정은 전혀 변화하지 않는다. 내 말에 수긍하는 기색은 전혀 비추지 않은 채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카인 폰 에스텔. 이건 어떤가?”

툭-

그리 말하며 녀석은 자그마한 주머니 하나를 던졌다.

“뭐야, 이건. 뇌물이야?”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이놈은 제국에서도 청렴결백하기로 소문난 카인 폰 에스텔을 뇌물로 매수할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내가 그리도 호락호락하게 넘어갈 것이라 생각한다면 정말이지 크나큰 오산이다.

“...으음.”

그런데 이 주머니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궁금증이 들기 시작했다. 내용물을 살짝 확인한 후에 녀석에게 돌려준다면 아무 문제없으리라. 그리 생각하며 나는 가죽 주머니를 열어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을 해보았다.

“.....”

“그것은 선금이다. 나를 받아준다면 석 달에  번씩 그것과같은 양의...”

덥석-

“...환영한다. 루시안.  시간부로 너는 에스텔 공작가의 가족이다.”

"....."

녀석의 제안을 그대로 거절하기에는, 그것은 너무나도 많은 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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