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3. 시작이 시작되기 전에 - 04
“오오, 이럴 수가. 이 아이는 정녕 마법을 익히기 위해 태어난 아이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에스텔 공작령에 단 한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마법사인 카를 영감은 아리아를 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마력에 대한 친화도, 순간출력량, 거기다 연산력에 이르기까지 모두 완벽합니다! 이 아이는 기필코 대륙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마법사가 될 것이 틀림없을 것 같습니다!”
카를 영감은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 채로 침을 잔뜩 튀기며 나에게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그야 그럴 만도 하겠지. 아리아는 10년 뒤 대륙 전체에 겨울을 불러올 정도로 대단한 힘을 가진 마녀였다. 오히려 마법에 대한 재능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면 그 사실에 놀라워했을 지도 모른다.
“소공작님! 이 아이를 저의 제자로 들여도 괜찮겠습니까? 가르쳐보고 싶습니다. 아니, 가르쳐야만 합니다. 이런 보석 같은 재능을 가지고 있는 아이가 마법을 배우지 않는다는 것은 전 대륙에 손실이란 말입니다!”
카를 영감은 주름살이 가득한 얼굴을 나에게 들이 밀며 열변을 토하고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나에게는 카를 영감의 마음이 그리 와 닿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나를 열 받게 하고 있었다. 영지에 일손이 필요할 때는나이가 들어 허리가 빠개지는 것 같다느니 무릎이 잘 굽혀지지가 않는다니 어쩌니 온갖 핑계를 대던 주제에 이럴 때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나서서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이중성이 나를 아니꼽게 만들고 있었단 말이다.
“그래? 그거 잘 됐네.”
내가 심드렁하게 대답을 하자 카를 영감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오오, 그럼 이 아이를 제자로 맞이하는 것을 허락해주시는 것입니까?”
나이가 일흔이 넘어 얼굴에 주름살이 쪼글쪼글한 주제에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나에게 얼굴을 들이대는 그 꼴에 나는 저도 모르게 한 발 짝 뒤로 물러서고 만다. 그런 짓은 아리아와 같이 귀여운 여자애가 하면 몰라도 언제 관짝에 들어갈지 모르는 영감이 한다면 상대방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법이다.
“아니,나는 허락한다고 한 적 없는데. 그리고 내 허락을 왜 맡아?”
“...네? 그게 무슨...”
“중요한 것은 아리아의 의사가 아닌가? 아무리 재능이 있다고 할지라도 아리아가 하기 싫어하는 일은 시킬 생각이 없으니까 당사자끼리 합의를 보도록.”
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카를 영감은 눈알을 번들거리며 아리아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가기 시작한다. 그 꼬라지를 가만히 보고 있자하니 금방이라도 아리아를 납치하고 유괴할 것 같은 모양새인지라 저 영감의 뒤통수를 한 대 강하게 후려서라도 말려야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오, 네 이름이 아리아라고 하는구나. 방금 소공작님의 말씀은 들었겠지?”
“네.”
아리아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자 카를 영감 또한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우선 내 소개를 하겠다. 내 이름은 카를로스 헤델. 마나의 의지를 대행하는 자이자 칼케돈 학파에서 사사를 받은 녹(綠)의 마법사이니라.”
“삼류마법사라는 말은 왜 빼?”
옆에서 내가 이죽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하자 카를 영감은 나를 날카로운 눈초리로 쏘아본다.
“그 말은 대체 왜 하시는 것입니까?”
“아니, 영감이 나이가 들어 깜빡한 것인지 제일 중요한 것을 말 안했잖아. 아리아도 알건 알아야하지 않겠어?”
내가 히죽히죽 웃으며 그리 답을 하자 카를 영감은 한숨을 내쉬며 아리아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아리아를 쳐다보는 순간, 카를 영감의 얼굴은 순식간에 인자한 늙은 노인의 그것으로 변화하였다. 어지간한 배우들의 뺨도 후려칠 수 있을 법한 무시무시한 속도의 표정 변화였다.
“...그래, 소공작님의 말씀대로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삼류의 위치에 머물러 있는 보잘 것 없는 마법사란다. 하지만 너를 속이거나 하는 의도에서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으니 오해는 하지 말아주렴.”
“오해는 무슨. 일부로 말을 안 한 것이면서.”
“...소공작님은 좀 조용히 해주시겠습니까?”
“...뭐, 소원대로 입을 닫고 있어주지.”
나는 저 영감의 요청대로 순순히 입을 닫아주었다. 혹시 아리아의 스승이 될지도 모르는 영감이니 삐지거나 한다면 상당히 골치 아파지기 때문이다. 나이가 70이 넘은 영감이 토라져서 꽁해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이마에서 절로 식은땀이 흐르고 만다.
“내가 소공작님께 말씀드렸다시피 너는 마법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났단다. 조금만 노력을 한다면 이 제국에서 손꼽히는 마법사가 될지도 모르는 천부적인 재능을.”
그리 말하며 카를 영감은 마치 보석이라도 보는 눈길로 아리아를 쳐다본다.
“나에게는 재능이 없었단다. 마력을 다룰 수는 있었지만 동시에 그것이 나의 한계였지. 결국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하급 마법사에 머물러 있다. 그것이 원망스럽지는 않단다. 나는 마도(魔道)에 입문하였을 때부터 내게 이런 결말이 올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허나 그 순간 나는 카를 영감의 손이 살짝 떨리는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나는 마법사로서 높은 곳에 오를 수 없음을 잘 알았기에 그간 연구에 매진을 해왔단다. 나 자신의 힘으로는 진리에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마학(魔學)의 발전에 초석이라도 되기를 간절히 바라였지. 그래, 지금 너를 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말이야.”
부르르, 하며 카를 영감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한다.
“너라면 내가 쌓아온 모든 것을 이어받을 자격이 있다. 너라면 내가 평생에 걸쳐 쌓아온 모든 연구 결과를 물려받을 자격이 있단 말이다. 너라면 나의 연구 결과를 뛰어 넘어 그 너머에 있는 진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단다. 어떠하냐? 나의 제자가 되겠느냐? 네가 고개를 끄덕이기만 한다면, 내 너를 반드시 제국 제일의 마법사로 만들어주겠다.”
카를 영감의 장황하고 기나긴 연설에 아리아는 그저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한다. 그러더니 눈을 깜빡이며 카를 영감에게 질문을 던진다.
“...만약 제자가 된다면, 저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응? 그게 무슨 말이냐?”
“만약 제가 할아버지의 제자가 된다면, 저는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며 마법만을 공부해야 하는 것인가요?”
카를 영감은 아리아의 질문에 잠시 눈살을 찌푸리더니, 이내 순순히 대답을 해주었다.
“...흠,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구나. 하지만 마법이라는 학문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룰 수 없는 심도 깊은 학문이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하루의 절반은 내게 와 교육을 받으며 기초를 갈고 닦아야 할 것 같구나. 허나 그 시간은 네가 마법사로서 크게 발돋움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그럼 안 할래요.”
“...뭐?”
순간 카를 영감은 개가 알을 낳았다는 말을 들은 사람인 것 마냥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눈빛으로 아리아를 쳐다본다.
“...지금 뭐라 했느냐? 내 제자가 되지 않겠다고? 마법사가 되지 않겠다는 말이더냐?”
카를 영감의 말에 아리아는 입술을 삐죽이며 토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치만 저는 카인님의 전속 시녀를 하기로 했단 말이에요. 이제 막 시녀 일에 익숙해지고 있는데 마법 같은 거에 시간을 빼앗기기는 싫어요. 카인님이 허락하신다면 또 몰라도.”
그 말에 카를 영감의 입이 딱 하고 벌어진다. 그리고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나는 피식하고 웃으며 얼굴에 최대한 재수 없는 표정을 만들어보인다.
“푸흐흡, 영감. 우리 사이에 할 말이 아주 많은 것 같은데. 안 그래?”
****
“노인네 얼굴이 구겨진 꼴을 보니 내 속이 다 시원하군.”
나는 아리아와 함께 카를 영감의 거처를 나오는 것과 동시에 끝내 버티지 못하고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다른 영지에서는 사람 취급도 못 받는 하급 마법사인 주제에 에스텔 공작령에서는 언제나 모가지를 빳빳하게 쳐들고 다니던 저 영감이 난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쩌다가 마법사가 필요한 일이 있어 호출을 할 때면 큰소리로 불평을 중얼거리던 저 주둥이를 들이 받아버리고 싶다 생각은 해왔었지만 이런 식으로 엿을 먹이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통쾌함이 두 배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리아, 네가 아주 복덩이구나. 복덩이야.”
“헤헤.”
방금 전, 나는 마법사가 되기 싫다고 칭얼거리는 아리아를 설득해주는 조건으로 카를 영감과 여러 가지 ‘협상’을 체결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마법사가 필요할 때는 입 다물고 손을 빌려준다거나, 혹은 영지를 위한 여러 가지 물품을 군말 없이 제작해준다던가 등의 여러 가지를.
그렇게 협상을 마친 내가 필사적으로 설득을 했음에도 아리아의 고집은 쉽사리 꺾이지 않았다. 자기는 시녀 일이 더 마음에 드는데 어째서 마법사 같은 것을 해야 하냐는 논리였다. 참고로 아리아가 그 말을 꺼냈을 때 그 노인네의 표정은 정말 볼만 하였다. 나 혼자 보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결국 길고 긴 설득이 오간 끝에 아리아는 일주일에 세 번, 하루에 6시간을 카를 영감에게서 마법 교육을 받기로 결정이 내려졌다. 당연히 아리아는 그 사실을 별로 탐탁치 않아하였지만 마법을 익힌다면 나에게 더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는 사탕발림에 결국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내가 알고 있는 마법사란 것들은 죄다 싸가지 없는 것들이었는데 아리아는 누구를 닮아 이리 착한 것인지 모르겠다.
“흐음."
이렇게 나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고 있었다. 이대로 아리아가 마법을 익혀 나간다면, 에스텔 영지에서는 조만간 대마법사 하나가 탄생하게 될 것이다. 그 말인 즉 슨, 이번 생에는 비앙카 그 정신 나간 여자가 훼까닥 돌아서 에스텔 공작령의 본성에 불덩이를 던진다고 하더라도 그 공격을 막아낼 전력이 생긴다는 의미나 다름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역으로 비앙카 그 여자를 사로잡아 버릴 수도 있으리라. 그 망할 계집애을 사로잡아서 패버린다는 상상을 하니 내 입에서는 웃음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다는 느낌이 아닌가 싶다.
나는 그렇게 미친 놈 마냥 실실 거리며 아리아와 함께 본성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내가 자리를 비운지 고작 몇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본성은 아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평소에 하는 일이 없이 수다나 떨던 하녀들도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으며, 월급이나 축내는 도둑놈들이라 생각했던 기사들도 어쩐 일인지 엄격한 기강을 유지한 채 빠릿빠릿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내가 없던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내가 영문을 알지 못해 두 눈을 깜박이고만 있자 지나가던 기사 한 명이 내 얼굴을 알아본 것인지 걸음을 멈추고 내게 인사를 올린다.절도 있는 자세로 내게 경례를 하는 젊은 기사의 얼굴은 내게도 상당히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소공작님. 한 달 만에 뵙습니다. 임무를 마치고 무사히 귀환하여 이리 인사를 올립니다.”
“그래, 오랜만에서 봐서 나도 기쁘다. 음... 근데 너 이름이... 제임스? 아니면 한스?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제 이름은 리안 데커셀입니다. 소공작님.”
“...그랬었나. 미안.”
실은 한 달이 아니라 몇 년 만에 보는 사람인지라 이름을 까먹고 말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카인 폰 에스텔의 머리에는 시커먼 사내놈의 이름 같은 정보가 잘 입력되지 않는 편이거든.
“아, 그건 그렇고 깜빡할 뻔했군요. 소공작님을 발견하는 사람에게 전갈을 올리라는 공작님의 명이 있었습니다.”
“흠. 아버지께서 이제 막 도착하신 것인가?”
“예, 방금 막.”
그랬던 것인가. 어쩐지 본성이 시끌시끌하다 생각이 되더니, 아버지께서 한 달 만에 영지 순찰을 마치시고에 본성에 귀환하셔서 그런 분위기가 형성이 되었었나보다.
참고로 나는 아버지를 한 달 만에 보는 것이 아니라 대략 5년 만에 다시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으로부터 5년 후,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때문이다. 갑자기 눈깔이 뒤집어져서 에스텔 공작령으로 밀고 들어오는 마수들을 막아내기 위해 최전선에서 고군분투를 하시다가 끝내 숨을 거두시고 만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뻔히 알고 있는데 가만히 방관하고 있을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으니까.
“그건 그렇고, 전갈이라는 건 대체 무슨 내용인데?”
“아, 공작님께서 소공작님을 찾으십니다. 긴히 나누어야 할 이야기가 있다더군요. 참고로...”
“참고로?”
리안은 나를 향해 머쓱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화가 좀 많이 나셨습니다.”
그리고 10분 후.
퍼억-
나는 아버지의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종이뭉치가 내 머리통을 가격하는 것을 느끼고 말았다. 크게 아프지는 않았지만, 기분은 상당히 아니꼬웠다.
“카인. 내가 없는 한 달 새에 일을화려하게도 저질러 놨더구나. 장하다.”
나의 아버지, 프란츠 폰 에스텔은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두통이라도 온 것인지 머리를 꾹꾹 매만지며 나를 향해 그리 말을 하였다.
“그렇게장한 아들을 한 달 만에 보자마자 하는 것이 머리통에 종이뭉치를 던지는 것입니까?”
내가 심드렁한 얼굴로 아버지를 쳐다보자 아버지는 내 머리통을 가격하여 효용을 다한 종이뭉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셨다.
“내가 너에게 던진 저 종이뭉치의 내용이 뭔지 아느냐?”
“그야 전 모르죠.”
내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을 하자 아버지의 한숨은 더욱 깊어져 갔다.
“네 눈으로 한 번 보거라.”
그 말에 나는 바닥에 널브려져 있던 꾸깃꾸깃한 종이뭉치를 펼쳐들어 대체 뭐라 적혀 있는 것인지 차근차근 읽어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황당한 눈빛으로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이게 대체 무엇입니까?”
“파혼 신청서이다. 세르나드 백작가의 이름으로 보내진 정식 문건이지.”
“...그러니까. 그 말은...”
“그래, 카인. 아주 큰일을 해주었구나.”
아버지는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리쉬며 우울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하셨다.
“사라, 그 아이가 너와의 약혼을 취소하고 싶다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