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화 〉3. 시작이 시작되기 전에 - 03 (9/201)



〈 9화 〉3. 시작이 시작되기 전에 - 03

머릿속으로 떠올려본다. 마녀의 초월자로서의 면모를, 그리고 마법의 극에 달했다고 평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강력했던 그녀의 마법을. 마녀의 손가락 하나에 천지 그 자체가 뒤집히던, 파괴적인 모습을.

‘겨울 원정대’ 에 속해있던 비앙카 역시 제국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마법사이자 에스텔 공작령의 본성쯤은 손쉽게 가루로 만들어버릴  있는 실력자였지만 마녀와 비교해 본다면 아무래도 많은 손색이 있었다. 그 정도로 마녀는 강력한 마법사였으며, 내가 알고 있는  가장 강력한 인간이기도 하였다. 애당초 대륙 전체에 끝나지 않는 겨울을 불러왔다는 점에서부터 규격 외라 칭해도 할 말이 없다 생각하지만.

그러니까 죽이는 것은 너무 아깝다.  그래도 에스텔 공작령은 마법사 같은 고급 인력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던 찰나였다. 날씨는 오질 나게 춥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토지도 지극히 제한적인 이 상황에서 제대로 된 마법사가 단 한 명만 있더라도 영지는 많은 발전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불행하게도 에스텔 공작령 같이 더럽게 춥기만 하고 돈도 별로 없는 깡촌으로 오고 싶어 하는 마법사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지금 영지내의 마법사라고는 나이가 일흔이 넘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노인네 하나 밖에 없는 실정이란 말이다.

그러니 내  앞에서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채 두 눈을 깜빡이고 있는 마녀가 나의 눈에는 긁지 않은 복권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10년 뒤에 인류 최강자의 반열에 들 마법사 한 명을 이런 식으로 주울 수 있다니, 길거리를 가다가 주인 없는 보석을 주운 기분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뱀과 같은 혀를 놀려 마녀를 향해 간사하기 짝이 없는 소리를 속삭이기 시작한다. 10년 뒤, 제국의 만민에게서 있어 욕을 바가지로 쳐 먹게  회귀자, 카인 폰 에스텔에게 있어  정도 간계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 기억을 잃어 세상 물정 모르는 마녀를 유혹하는 일은, 땅에 떨어진 돈을 줍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다.

“돌아갈 곳도, 가족도 아무 것도 없다며. 그럼 여기 계속 머물러도 괜찮아. 우리 영지가 조금 좁고 가난하기는 하지만,  하나 정도 거두지 못할 정도인 것은 아니니까.”

참고로 마녀가 자신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은 거북하기 짝이 없다며 말을 놓아달라 부탁을 하였기에 반말을 쓰고 있었다. 물론, 나라는 인간은 그러한 부탁은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었다.

“...정말요?”

“그래.  내가 누구인지 알아?”

도리도리.

그래, 기억을 다 잃었는데 나를 아는 편이 더 이상하긴 하겠지.

“이 성의 주인...은 아니지만 장차 주인이 될 사람이다. 이 성에서  번째로 높은 사람이라고. 그러니까, 부담 같은 거 가질 필요는 없어.”

왜냐하면, 앞으로 뼈 빠지게 부려먹을 예정이거든.

그렇게 내가 사람 좋은 얼굴로 마녀를 설득하고 있자니, 그녀의 얼굴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에서,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한 표정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정말로.”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다.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 듯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기만 한다. 그리고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이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내게 질문을 던졌다.

“정말로, 그래도 되나요...?”

“응?”

“이미 말씀드렸지만, 저에게는 아무런 기억이 없어요. 저 스스로조차 제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못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조차 알지 못해요. 저는, 텅  사람이나 마찬가지에요.”

그리 말을 하는 마녀의 눈동자는 공허하기가 이를  없었다. 마치, 자기 자신 뿐만이 아니라 세상 그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외치는 듯 한 눈이었다.

“그러니 저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에요. 아무런 가치도 없어요. 저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을  에요. 왜냐하면 저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거든요. 그러니까...”

거기까지 말을 하더니 마녀는 고개를 숙인 채 끝내 말을 잇지 못한다.

“.....”

나는 마녀를 쳐다본다. 마녀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지라, 눈처럼 새하얀 머리카락으로 뒤덮여 있는 뒤통수 밖에 보이지 않고 있다.

“하아.”

나는 한숨을 한  크게 내리쉰다. 내가 한숨을 내쉬는 소리에, 마녀는 몸을 움찔하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 따위 것은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콩.

“아얏.”

마녀의 뒤통수를 살포시 쥐어박아준다.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인데. 네 기억이 없는 것과, 네가 쓸모없는 것에 무슨 연관성이 있는 것인데.”

“그, 그게... 저는 아무 것도 모르니까... 다른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것도, 저는 알지 못하니까...”

“나도 아는 거 별로 없어. 나도 모르는 거 엄청나게 많아. 내가 남들에 비해 조금 더 잘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펜대를 굴리면서 셈을 하는 법이랑 서류를 처리하는 일 뿐이지. 그러면, 나도쓸모 없는 사람인가?"

사실은 회귀 전에 황녀 밑에서 죽도록 구르며 칼질도 조금 할 줄 알게 되었다만 그것은 논외라고 해두자. 워낙 쓰라리기만 한 아픈 기억이었으니까.

“그, 그거랑 이거랑 달라요!”

“뭐가 다른데?”

“그, 그러니까...”

마녀는 잠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더니 이내 입을 우물우물 거리기 시작하였다.

“...남들은 당연하게  줄 아는 것도, 전 할 수가 없어요.”

“당연하게 할 줄 아는 건 뭔데?”

“...어, 그러니까... 청소나 빨래 같은 일상적인...”

“난 또, 뭐라고.”

나는 마녀의 말에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에스텔 공작령에는 청소도 빨래도 잘 못하는 주제에 하녀라고 자칭하고 다니는 애들 진짜 엄청 많아. 네 말대로라면 지금 여기서 일하는 애들 죄다 쫓아내야  걸?”

참고로 청소도 빨래도  못하는 애들을 시녀라고 고용하고 있는 이유는 에스텔 공작령이지독하게 가난하기 때문이다. 에스텔 공작령이 농사도, 목축도, 장사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 깡촌이다 보니 영지민들이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은 굉장히 한정되어 있다. 그렇기에 에스텔 공작가는 영지민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 원하는 이라면 누구나  내의 사용인으로 고용해주고 있었다. 그 덕분에 시녀인 주제에 빨래도 청소도 더럽게 못하는 무시무시한 혼종들이 탄생하고 만 것이다.

총관 영감탱이는 그런 것들을 보며 매번 땅이 꺼지랴 한숨을 쉬곤 했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의 빨래와 청소 실력은 쉽사리 늘지 않았던 모양이다. 10년 뒤에도 총관 영감은 시녀들을 보며 한숨을 푹푹 내리쉬는 일을 멈추지 않았었으니까.

“모르는  있으면 배우면 되지. 걱정하지 마. 네가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 가르쳐  용의가 있으니까.”

물론, 마법에 흥미를 가진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은 없을 테지만. 그런 음흉한 속내를 숨기며 그렇게 마녀를 달래고 있자니, 그녀는 침울한 목소리로 내게 중얼거린다.

“...하지만 저는 텅 비어있는 사람인걸요. 저는 제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이름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해요. 그런 제가, 잘 할 수 있을까요...?”

“괜찮아. 넌, 잘 할 수 있을 거야.”

나는 그녀를 향해 강한 신뢰를 담아 그리 말을 해준다. 10년 뒤, 대륙 전체에 겨울을 불러올 정도로 강대한 능력을 갖춘 마녀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대체 누구를 신뢰한단 말인가.

“그리고 네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는 나는 신경 안 써. 네가 그렇게 신경이 쓰인다면, 내가 너에게 이름을 지어줄게.”

“...제, 이름을요...?”

이름을 지어준다고 하니까 마녀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본다. 나를 바라보는 그 눈동자에는, 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생기가 깃들어 있었다.

초롱초롱.

나를 바라보는 그 눈동자가 너무도 초롱초롱하여 살짝 부담이 되기도 하였지만, 나는 눈앞의 하얀 머리 여자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 무엇일까 고민을 하다가 딱 알맞은 이름을 생각해 내었다.

“아리아, 어때?”

아리아란 북쪽 지방의 전설 속에 등장하는 겨울의 여신의 이름이다. 10년 뒤, 대륙에 끝나지 않은 겨울을 가져온 마녀에게 딱 걸맞는 이름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리아.”

마녀, 아니 아리아는 내가 붙여준 이름이 마음에 드는   이름을 수도 없이 중얼거려 본다. 그리고는 나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너무 마음에 들어요. 감사해요. 음, 그러니까...”

나는 그녀가 마지막에 왜 우물거린 것인지 잽싸게 눈치 채고 말을 해주었다.

“카인이라 불러. 다른 사람도 다 그렇게 부르니까.”

“예, 카인.”

“...끝에 님은 붙이고.”

아무래도 에스텔 공작령의 모자란 시녀들도 잘 알고 있는 기본적인 예절부터 차근차근 가르쳐야만 할 것 같았다.

****


그리하여, 그녀는 눈을 떴다.

스스로의 눈을 떴을 때, 그녀는 본능적으로 깨닫고 말았다. 자신은, 지극히 불완전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녀의 안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은 텅 비어 있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비유하자면, 자신의 몸 어딘가에 휑한 구멍이 하나 뚫려 있어서, 내용물이 줄줄 새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끔찍한 기분이 들기만 할 뿐이었다.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스스로의 이름이 무엇인지, 출신이 어디인지, 가족은 누구인지, 그리고, 자신이 대체 어떠한 사람인지까지, 전부.

다른 평범한 사람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아무렇지도 않게 가지고 있는 것들을, 그녀는 모조리 잃어버리고 말 것이었다.

...소름이 돋았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면 할수록,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 찰 뿐이었다. 어쩌면 자신은 일평생, 이렇게 이질적인 감각에 휩싸인 채로 삶을 구가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싫었다. 그리고, 무서웠다. 무엇이 무서웠냐면, 모든 것이 무섭다고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사람이 사람답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초적인 지식부터 시작하여,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법한 전문적인 지식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어느  하나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이 없었다.

말하자면, 그녀는 쓸모가 없는 인간이되어버리고  것이다.

'...아아.'

낙담하고 말았다. 두렵기만 하였다. 미래영겁, 자신은 언제까지고 이렇게 부서져 있는 형태로 삶을 마감할 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그녀를 사로잡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맞이하게 될 당연한 결말이 아닌가 하고 인정을 해버리고 말았다. 이 땅 위에 자신이 몸을 뉘일 곳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자신을 비웃는 것 같이 느껴질 뿐이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녀가 눈을 떴을 무렵부터 자신의 곁에 있어주었던 그 남자는, 그녀를 향해 이리 말을 해주었던 것이다.

[혹시, 에스텔 공작가에 고용되어 일을 해 볼 생각이 있습니까?]

[갈 곳이 없다면, 에스텔 공작가에서 당신을 정식으로 채용할 용의가 싶습니다만.]

그는 그렇게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으며.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인데. 네 기억이 없는 것과, 네가 쓸모없는 것에 무슨 연관성이 있는 것인데.]

자신이 품고 있는 불안감을 해소 시켜주기라도 하듯 자기 같은 것에게도 '쓸모가 있다'라고 말을 해주었다.

아무리 그녀가 기억을 잃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눈치는 있었다. 눈앞의 남자는, 아마 출신성분도 분명하지 않은 자신 같은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신분의 사람임이 틀림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러한 남자가 보잘것 없기만  자신을 향하여 굳은 신뢰를 담아 이러한 말을 해주었다. 너는, 결코 쓸모 없지 않다고. 모르는 것이 있다면, 배우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노라고.

...두근거렸다. 그리고, 좋았다. 나 같은 것도 쓸모가 있다고 해주는 저 사람의 서투른 위로도 좋았으며, 나 같은 것을 향해 신뢰를 담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을 해주는 그의 믿음이 너무도 좋을 뿐이었다.

결정적으로, 저 사람은 그녀의 인생에서, 도무지 잊혀지지 않을 선물을 선사해주었다.

[네가 그렇게 신경이 쓰인다면, 내가 너에게 이름을 지어줄게.]

[아리아, 어때?]

바로, 그녀에게 이름을 지어준 것이었다.

'아리아.'

신기하였다. 그에게서 아리아라는 이름을 지음 받은 순간, 그녀는 자신의  어딘가에 뚫려 있던 휑한 구멍이 메워지는 듯한 신비한 감각을 느끼고 말았다.

아리아라는 이름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가 자신을 향해 직접 지어준 이름이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마치 그 이름이 마치 자신의 원래 이름이 아니었을까 하는 착각마저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행복했다. 그리고, 설레었다. 자신 또한 누군가의 도움이 되어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녀의 가슴을 벅차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마음 속으로 결정을 해두었다.  몸이, 누구의 도움이 되어줄 것인지. 그리고, 누군가를 위하여 자신의 새로운 인생을 소모해 나갈 것인지, 전부 결정을 해두었단 말이다.

'카인님.'

그녀는 미친 듯이 두근거리고 있는 자신의 심장을 살포시 매만져보았다.지금까지 느껴본 바가 없는 낯선 감각이었지만, 자신의  감각이 그 사내를 향한 감정에서 비롯된 감정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기쁘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언젠가는 꼭,  사람의 도움이 되어주리라. 그리고 그 끝에, 그가 자신에게 보여준 신뢰를 보답하리라.

그래, 반드시. 그리고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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