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화 〉2. 겨울 원정대 - 05 (6/201)



〈 6화 〉2. 겨울 원정대 - 05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아무 짝에 쓸모없었다.

콰아앙!

“으아아아아악!”

마치 파리를 내쫓는 듯한 마녀의 손짓  번에 내가 저만치로 튕겨나간 직후, 중간에서 방해가 되는 내가 사라지자 곧바로 ‘겨울 원정대’와 ‘겨울의 마녀’ 사이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실로 신화의 재림이라고 할 수 있는 광경이었다.

우우우웅-

비앙카의 손끝에서는 지옥의 화염을 방불케 하는 거대한 화염이 생성되어 하늘을 수놓는다. 화염이 땅바닥을 스치고 지나가자, 그 일대의 대지가 마시멜로마냥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것이 똑똑히 보인다.

“하아아아아!”

황녀가 비스듬히 휘두르는 검격    번에 대지가 움푹 파여 나간다. 마녀를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간 충격파에 저 멀리의 산봉우리가 비스듬히 잘려 나간다. 2미터도 되지 않는 장검 한 자루에 산봉우리 자체가 잘려나가는 광경은, 정말이지 현실성 따위 느껴지지 않는다.

끼기긱-

키리에의 손끝에서 한계까지 당겨진 화살이 내쏘아진다. 대기에 동심원을 그리며 날아가는 화살은 거대한 파공성과 함께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 설사 표적을 빗나갔다 하더라도 키리에가 쏘아 보낸 화살은 마치 눈이라도 달려 있는 것 마냥 표적을 끝까지 물어뜯으려고 한다.

“여신이시여,그대들의 종을 굽어 살펴보아주소서...”

성녀를 중심으로 하늘에서 빛이 내려온다. 마치 하늘과 땅을 잇는 듯한 성스러운 빛의 한 가운데 무릎을 꿇고 있는 성녀의 모습에서 고결함과 신성함이 절로 느껴진다. 빛의 영향권 바깥에 있던 나조차도 방금 입은 상처가 빠른 속도로 아물어가고 전신에 활력이 넘쳐 흐르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광경에 넋을 잃었다고 보아도 좋았다. 나는 ‘겨울 원정대’의 구성원들이강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있었지만 저 정도로 강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지난 1년 간 비앙카가 마법을 사용할 때는 뜨거운 물을 만들어 내거나 나를 갈굴 때 손에 불덩이를 만들어 내는 정도였으며, 키리에가 화살을 쏠 때는 아주 가끔씩 튀어 나오는 마수나 야생동물을 잡을 때뿐이었다. 황녀는 마수를 마주치면 시시하다는 이유로 검조차 꺼내들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었으며 성녀가 치유술을 사용할 때는 내가 각종마수들에게 얻어터진 후 나를 회복시켜주려고  때 뿐이었다. 애당초 다른 구성원들은 다치는 일 자체가 드물었다.

그렇기에 이번이 처음이었다. 저들이 자신의 힘을 100% 발휘하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

“....하.”

그리고 그런 괴물들에 대항하는 마녀는 그들에 비해  술 더 뜨고 있었다.

비앙카가 쏘아낸 마법의 궤적들을  순간에 틀어버리며, 황녀가 쏘아낸 검기를 막아내는 얼음 방벽을 생성하고, 키리에가 쏘아 보낸 화살을 정통으로  맞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는다.

4 대 1의 싸움이었음에도 그들의 싸움은 어느 한 쪽으로 쉽사리 승부추가 기울지 않는다. 마녀 또한 혼자의 몸으로 저들 4명과 동등한 싸움을 이어나가는 괴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저 괴물들의 살벌하기 짝이 없는 전투 따위가 아니었다.

마녀가 손을 휘젓는다. 그녀의 손짓에 따라 비앙카가 쏘아 보낸 마법들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튕겨 나간다. 마녀가 비틀어버린 비앙카의 불꽃은 원래의 목표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래, 마녀의 뒤편에 서 있던 에스텔 공작령의 본성 쪽을 향하여.

콰콰콰콰쾅!

비앙카의 불꽃에 직격당한 본성의 중심부가 한 순간에 증발해 버린다. 건물의 중간 부분이 한 순간에 없어져 버리니 균형이 무너진 아랫부분은  이상 버틸 수가 없다는 듯 단말마를 내뱉으며 천천히 무너져 내려간다.

“....아.”

쿠우우우웅-

1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에스텔 공작가의 성이 나의 대에서 박살나버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비록 내가 행한 일은 아니지만 내가 에스텔 공작가의 가주일 때 본성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실시간으로 보는 내 가슴 또한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

“어머? 실수.”

그렇게 내가 넋을 잃은 채 본성을 바라보고 있자니 옆에서 전혀 미안하지 않은 듯한 목소리로 ‘실수’를 운운하는 비앙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금 당장이라도 저 개 같은 년에게 달려가 감히 ‘실수’라는 단어를 내뱉은  목을 조르고 싶었지만 상황은 그렇게 여유롭게 돌아가지는 않았다.

이쪽의 공격을 모조리 튕겨내는 것에 성공하여 조금 여유로워진 여파일까. 마녀의 손가락이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다.

꽈르르릉!

마녀의 손끝에서 벼락이 솟아난다. 허나 솟아난 벼락은 우리를 향해 내리쳐지지 않는다. 마녀의 벼락은 저 하늘 위로 솟구쳐 오른다.

우르르르릉-!

굉음이 울려 퍼진다. 하늘에 먹구름이 밀려온다. 적란운이 형성되며 구름  자체에 정전기가 파직거리기 시작한다.

‘...미친.’

다른 건 모르겠고 한 가지는 분명히 알겠다. 다음에  일격은, 존나게 위험하다는 것을.

“후후. 사람에게는 써 본 적이 없어서 위력 조절은 잘 못하겠네. 그럼, 행운을 빌게.”

뭔가 나른한  같은 마녀의 목소리.  직후, 마녀의 손가락이 아래쪽으로 까닥거렸다.

콰아아아아아앙!!

“.....!”

재앙 그 자체가 내리 꽂힌다. 하늘에서 웬만한 건물보다더욱거대한 크기의 벼락이 수십 갈래로 나뉘어 우리를 향해 쏟아지기 시작한다. 맙소사,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마녀의 힘은 이렇게 강했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 때였다.

[나의 방패는 의를 구하는 여신께 맡겼노라.]

전장에 울리는 무언가 경건하게 느껴지는 음성. 다음 순간,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광량이 하늘에서 쏟아지기 시작한다.

“....아.”

환영이 비춘다. 성녀 아리엘의 뒤편에, 모든 인간을 굽어 살피고자애롭게 여기는 누군가가 내려앉는 듯한 환영이 보인다. 그 성스러움에, 나의 가슴 속에는 무릎을 꿇고 싶다는 충동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여신께서 비추는 모든 길은 그의 언약을 지키는 자의 인자와 진리로다.]

빛이 세력을 확장시켜나간다. 성녀 아리엘을 중심으로 비추어나가는 성스러운 빛은, 그대로 모든 것을 수호하는 방패가 되어 현세의 이치를 모조리 튕겨낸다.

“카인,  거기서 뭐해!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허나 빛무리는 내가 주저앉아 있던 곳까지 세를 확장시키지 못하였기에 비앙카는 마법을 이용, 허겁지겁 나를 빛의 영역 속으로집어 던진다. 그리고 1초 후, 내가 주저앉아 있던 자리에 집채만한 벼락이 내리 꽂힌다.

콰콰콰콰콰쾅!

내가 방금 전까지 주저앉아 있던 자리가, 흔적이라고는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한  산산조각 나버리는 꼴을 보아하니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하. 미치겠군. 정말 미치겠다.”

방금 전까지 마녀의 목에 칼을 쑤시니 어쩌니 하며 깝죽대었던 내가 너무 한심하고 병신 같아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만약 마녀가 그럴 마음만 먹었더라면 지금쯤 나는 첫 일격으로 시체가 되었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 버린다. 아마, 마녀가 그리하지 않은 것은 그럴 가치도 없었기 때문이었겠지.

“너는  음흉한 여자 뒤에 얌전히 있어. 괜히 설치다가 네가 죽기라도 하면 꿈자리 사나울지도 모르니까.”

그리 말하며 비앙카는 성녀 아리엘 옆에 나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전쟁터로다시 날아가려던 찰나, 갑자기 나를  돌아본다.

“야!  뭔가 잊은  없어?”

“....?”

이게  또 시비지. 내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자, 비앙카는 어디가 답답하기라도 한 것인지 가슴을 쾅쾅 두드린다. 그 모습이 내 눈에는 마치 배우지 못한 원시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가 방금 너 구해줬잖아! 벌써 까먹었어?”

“...아.”

그러고 보니 그런 일도 있었지. 하지만 내 표정은 시큰둥하기만 하다. 애시 당초 에스텔 공작령의 본성을 무너뜨린 장본인인 주제에 내 목숨을  번 구해줬다고 생색내는 것은 너무 뻔뻔한 행위가 아닌가? 하지만 나는 내 눈 앞의 원시인과는 비교도 할  없는 문명인임을 자부하고 있기에 그녀에게 순순히 감사의 인사를 표한다.

“고마워, 네 덕분에 살았다.비앙카.”

내가 그녀를 향해 고맙다고 말을 하자 비앙카의 안색이 변화한다. 그 모습은 나를 보고 화를 내는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낯 뜨거워 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으으으으으!”

갑자기 귀에 물이라도 들어간 사람처럼고개를 붕붕 내젓는 비앙카. 그리고 한동안 나를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째려보더니 이내 마녀 쪽으로 몸을 돌린다.

...진짜 미친년인가. 인사하라고 해서 해줬더니저런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을 보이다니.

내가 저만치 사라져가는 비앙카의 뒷모습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자니, 아리엘은 은근슬쩍 내게 다가와 어깨를 톡톡 두드린다.

“...음. 카인.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제 뒤쪽에 있어 주실래요? 너무 전방으로는 가지 말아주세요. 다칠 수도 있으니까요.”

그 따뜻하고 자상한 말이 내 귀에는 ‘좆밥이면 설치지 말고  뒤에 얌전히 있어라.’라는 말로 자동 변환되어 들린다. 실제로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을 테고.

“...그럼, 사양치 않고.”

하지만 자존심이 내 목숨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다. 나는 잽싸게 아리엘의 등 뒤에 몸을 숨긴다. 추해 보인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 개똥밭을 구르더라도 이승에 있는 것이 제일이니까.

****



‘겨울 원정대’와 ‘겨울의 마녀’와의 전투는 꼬박 반나절에 걸쳐 이루어졌다.

동시에 그들이 전쟁터로 삼은 주 무대인 에스텔 공작령 또한 그야말로 개박살이 나버렸다.

영주성은 옛날 옛적에 가루로 변해버린 지 오래였으며 그 일대의 여러 건물들 또한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수십년에 걸쳐 개간하였던 농지는 모조리 갈아엎어졌으며 영지 곳곳에는 흉측하기 짝이 없는 거대한 구멍이 움푹움푹 파여 있는 꼴이 눈에 훤하였다.

그리고 그 광경을 쳐다보는 에스텔 공작가의 가주이자 이곳을 다스리는 영주인 나는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것을 느끼고 말았다.

“...엄마 보고 싶다.”

나름대로 진심을 담아 중얼거린 말이었다. 오늘따라 내가 어렸을 적 돌아가신 엄마가 사무치게 그립기만 하다.

“으으으으...”

“.....”

전투는, 끝이 났다. ‘겨울 원정대’와 ‘겨울의 마녀’는 서로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 미친 듯이 싸웠지만, 결국 승자는 정해지지 않았다.

비앙카도, 황녀도, 성녀도, 키리에도 전부 정신을 잃은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마녀 또한 무사한 것은 아니었다. 마녀는 정신을 잃지 않았지만 동시에손가락 하나 까닥일 여유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바닥에 쓰러져 신음성만을 흘리고 있는것을 보아하니 저쪽도 치명상을 입은  같았다.

“.....”

아리엘의 치마폭에 휩싸여 있던 덕에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은 나는  광경을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한다.

지금이 기회가 아닐까. 저 마녀가 모든 힘을잃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지금이, 저 년을 처치할 유일무이한 찬스가 아닐까.

스르릉.

그리 생각하며 나는 허리춤에서 검을 빼어든다.

그리고 마녀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하아.”

 인기척을 느꼈는지 내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마녀.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할 뿐 그 어떠한 반항도 할 기색을 비추지 않는다.

...정말, 마녀는힘이 다했나보다. 순간, 모든 것이 한 편의 희극 같다는 생각을 해버리고 만다. 황제나 윗대가리들이 고기방패 역할로 나를 원정대에 포함시켰을 때만 하더라도 이런 결말이 찾아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겠지. 무력이라는 측면에서는 원정대의 발끝에도 따라가지 못하는 ‘카인 폰 에스텔’이 마녀의 심장에 검을 꽂는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는,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녀.”

나는 바닥에 누워 헐떡이고 있는 마녀의 얼굴을 본다. 눈처럼 새하얀 머리카락, 앳되어 보이는 미모를 지닌 그녀는 겉모습만 본다면 어느 귀족집의 영애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마녀이다.  대륙에 겨울을 불러오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악독하고 사악한 마녀.

치링-

검을 들어 올린다. 내가 노리는 곳은 심장. 죽인다는 선택지는 변함없지만 되도록 고통 없이 보내줄 생각이다. 우리는 승자이며, 그녀는 패자다. 그녀는 패배의 대가로서 목숨을 헌납해야 하니, 나는 그 이상의것을 그녀에게 요구할 생각 따위 없었다. 애당초 그 전투에 끼어들지도 못한  아리엘의 뒤에 서서 벌벌 떨기만 한 내게는 그런 자격 따위 없기도 하고.

“잘 가라. 다음 생에는,  착하게 살아봐.”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는 마녀의 심장을 향해 검을 내리 꽂는다.

내 검이 그녀의 심장을 관통하기 직전, 마녀와 나의 두 눈이 마주한다.

“....!”

다음 순간, 시간이 멈춰버린다. 비유 따위가 아니다. 1초를 일백으로 쪼갠 듯한 찰나의 순간,마녀와 나는 서로가 서로의 눈을 쳐다보고 있음을 깨닫는다.

세상에 오롯이 나와 그녀만이 존재하는  순간 속에서, 마녀는 자신의 입술을 달싹거린다.

“...이번엔, 네가 남았구나. 후훗.”

“뭐?”

당황한 내가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려고 했지만, 그것은 너무 늦고 말았다.

시간은 원래대로 되돌아온다. 나의 검 또한, 자신이 목표했던 표적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간다.

푸욱!

나의 검이 마녀의 심장을 관통한다. 저항은, 없었다. 마녀의 입가에서 선혈이 내뿜어진다. 허나 마녀의 눈에는 원망 따위 비춰지지 않는다. 그녀는 심장에 꽂혀 있던 검을 조용히 밀어내더니 어찌할바를 모른 채 당황스러워 하고 있는 내 뺨을 조용히 쓰다듬어 준다.

“고마워.”

그리 말하며 마녀는 내 품에 스러지듯 안긴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의 시야가 뒤틀리기 시작한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나와 마녀를 중심으로, 세상 그 자체가 바뀌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진다.

눈부신 빛이 나를 감싸 안는 것을 느끼며, 의식은 꺼지듯 어둠 속으로 잠겨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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