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2. 겨울 원정대 - 01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겨울의 마녀’를 토벌하기 위해 구성된 원정대는 소수의 인원으로 구성이 되었다. 길잡이이자 유사시에 고기방패로 쓰일 나를 제한다면 그 인원은 고작해야 4명에 불과했던 것이다.
뭐, 곰곰이 생각해보니 현 상황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소수 정예가 더욱 걸맞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선, 대륙에 휘몰아치는 끊임없는 겨울로 인하여 제국은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다. 제 아무리 비축해둔식량이 꽤나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원정대를 구성하고 그들이 먹을 식량을 따로 차출한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막말로, 마녀를 확실하게 토벌하기 위해 실력자를 천 명 정도 선발하여 식량을 쥐어주고 북쪽으로 떠나보냈다고 가정해보자. 물론 천 명의 실력자가 마녀의 목을 베어버리고 위풍당당하게 돌아온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이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천 명의 실력자가 마녀 한 명한테 줘털리고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온다면? 말할 것도 없었다. 그 날로 제국은 공중분해가 되고 말 것이다. 식량은 식량대로 사라지고, 마녀와 맞설 귀중한 인력까지 잃어버렸으니, 모든 희망은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말겠지.
하지만 이렇게 소규모 파티 형식의 원정대가 간다면, 제국 입장에서는 차출해야 할 식량도 얼마 들지 않고, 설사 이들이 실패한다면 또다시 원정대를 꾸리면 되는 일이다.
단 한 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사실이 있다면 현 대륙의 공적이라 칭할 수 있는 마녀를 처치하는 훌륭하고 영광스러운 임무에 어째서 나 같은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길잡이 역할을 맡게 되었냐는 점이었는데...
"...엿 같은 인간 같으니. 황제만 아니면 정말 계급장 떼고 덤비는 건데."
황제의 시커멓기 그지없는 속이 아주 뻔히 들여다 보였다.
우선, 첫 번째. 황제가 '길잡이' 역할까지 떠맡기며 나를 억지로 원정대에 끼워넣은 이유라 하면 바로 땅바닥에 떨어질 대로 떨어진 에스텔 공작가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함이 틀림없다 사료된다.
당연한 말이긴 하지만, 황제가 에스텔 공작가를 극진히 생각해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니라 에스텔 공작가가 제국의 4개 밖에 없는 공작가 중 하나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 추측한다.
에스텔 공작가는 척박하기 그지없는 북쪽에서도 가장 끝에 위치한, 가진 것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가난한 가문이지만 동시에 제국의 건국과 함께할 정도로 역사가 깊은 곰팡내나는 가문이기도 하였다. 동시에 그러한 정통성을 기반으로 하여 황실이 각 지역에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가문이 바로 4대 공작가였단 말이다.
즉, 황제는 내가 불쌍해서가 아니라 에스텔 공작가가 실각하게 된다면 자신의 권력이 줄어들까봐 두려워 이런 연극을 꾸민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두 번째, 황제의 말대로 내가 ‘길잡이’의 역할에 가장 걸맞는 사람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방금도 말했다시피 에스텔 영지는 험하고 척박하기로 유명한 북쪽에서도 가장 끝에 존재하는 깡촌이다. 특산품도 없고, 특출난 경치도 존재하지 않는 깡촌을 방문하고자 했던 모험가는 극히 드물었으며, 에스텔 영지의 지형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기만 하였다.
정말 웃기는 일이지만, 나조차도 1년에 한 번씩 에스텔 영지를 순찰하며 일대의 지리에 대해 대충이나마 알고 있는 나야말로 '길잡이'라는 역할이 가장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도무지 부정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마지막으로, 원정대의 구성원은 전부 지체 높으신 신분들이었다는 것이다. 나까지 포함해서 고작 5명이서 긴 시간동안 함께 얼굴을 맞대고 푸닥거려야 할 텐데 그 자리에 평민을 앉힐 수도 없는 노릇이었겠지.
그렇게 이런 저런 사정이 겹친 끝에 카인 폰 에스텔 공작은 지하 감옥에 쳐박혀 있던 죄수에서 마녀를 무찌르기 위한 영광스런 원정대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신분 세탁에 성공을 할 수가 있게 된 것이었다.
...허나 지금 와서 돌이켜 본다면 나는 길잡이 역할을 받아들여서는 아니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니, 차라리 지하 감옥에서 혀를 깨물고 뒈져버렸더라면 마음만은 편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원정대가 구성되고 마녀를 토벌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1년.
그 1년간 나는 문자 그대로 지옥 같은 나날을 보냈으니까.
****
우선, 장차 인류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겨울 원정대’의 구성원 4명을 소개하고자한다.
첫 번째로 마법사, 비앙카 델 카스타나 라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비앙카 델 카스타나라는 여자는 겉모습만 본다면 정말 새끈하고 아름다운, 기가 막힌 미인이었다.
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칼은 카스타나후작가의 핏줄을 그대로 물려받았음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들어가야 할 곳은 들어가고 나와야할 곳은 확실히 나온 완벽한 몸매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허나 그러면 뭐하는가. 내 눈에 비앙카라는 여자는 이제 막 지옥에서 튀어나온 악마 같은 년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비앙카라는 여자는 나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싫어했기 때문이다. 아니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나를 지나가는 바퀴벌레만도 못하게 여기는 것이 분명하였다.
비앙카가 나를 싫어하는 이유는 조금 복잡한 사정이 얽혀 있었다. 그것을 제대로 설명하자면 밤을 꼬박 새울 지도 모르니, 에스텔 공작가와 카스타나 후작가 사이에 얽힌 뿌리 깊은 반목이 그 원인이 되었다고만 말을 해두겠다.
어렸을 적만 해도 영광스런 선조님들께서 쌓아둔 업보가 나에게 그대로 돌아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비앙카라는 년이 조금 싸가지가 없기는 해도 어차피 안 보면 그만, 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살아가면서 몇 번 우연히 부딪치게 된 것을 제외한다면 그녀를 만날 일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렇다. 그녀가 ‘겨울 원정대’에서 마법사의 역할을 맡은 이라는 사실을 전해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머, 요즘 대륙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계시는 에스텔 공작님 아니신가요? 공작님께서 친히 길잡이 역할을 맡으신다니, 실로 영광스럽기 그지없는 일이군요.”
나를 쳐다보며 마치 잘 걸렸다는 듯 눈을 빛내는 비앙카를 보았을 때, 나는 너무나 무서워서 그만 오줌을 지릴 뻔했다.
원정대에서 나는 고작 길잡이의 신분, 그녀는 마녀를 토벌하는 원정대의 일익.
거기서부터 우리 둘 사이의 상하관계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말씀 낮추어 주십시오. 저는 지금 자작의 신분이니, 카스타나 영애께서 말을 올릴 만한 대상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윗대가리들이 ‘백의종군의 심정’이니 어쩌니를 들먹이며 나의 작위를 강제로 빼앗아 갔지만, 이내 허울뿐인 명패라도 있어야한다 판단한 것인지 명예 자작의 신분을 뼈다귀 던지듯 던져주었다.
허나 단순한 명예직이었기에, 카스타나 후작가의 적손이라 할 수 있자 동시에 제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마법사인 비앙카와 비교하자면 한참 후달리는 신분임은 부정할 수 없었으며 감히 그녀를 향해 말을 편히 한다는 것은 당연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흐음. 그래? 그럼 말 놓지 뭐. 아, 카인. 앞으로 잘해보자? 우후후.”
단 한 번의 겸양도 없이 곧장 말을 내려놓는 비앙카. 나를 쳐다보는 그 눈이 마치 먹잇감을 쳐다보는 매의 눈과 같다 생각이 되는 것은 나의 착각이 아니었으리라.
허나 원정 준비가 이루어지는 동안, 그녀가 나를 갈구거나 모욕을 주는 등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예상 외로 그녀는 순순하였고, 나는 비앙카가 한동안 보지 않은 새 철이 든 것이라 마음을 놓고 말았다. 하기야,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지 어연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 비앙카라는 여자가 아무리 싸가지가 없어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을 해버리고 만 것이다.
...허나 아니었던 것이다. 폭풍이 오기 전, 날씨가 맑고 화창한 것과 같이 나를 엄습할 불행 또한 최적의 기회를 노리고 있던 것에 불과했다.
시간이 흘러 준비가 끝마쳐지고, 원정대가 제도를 떠나 북쪽으로 이동을 개시하자마자, 뱀이 독니를 드러내듯 비앙카 또한 그 마수를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카인. 나 너한테 할 말 있는데.”
“응. 왜그래, 비앙카?”
비앙카가 나도 그냥 말을 놓으라고 했기에 나는 부담 없이 그녀의 말에 대꾸를 한다. 물론, 나로서는 그냥 서로 간에 존댓말을 쓰는 편이 낫지 않나 생각을 하였지만 비앙카가 워낙 지랄을 떠는 바람에 나 또한 어쩔 수 없이 말을 놓게 된 것에 불과하였다. 덕분에 나는 그다지 친하지 않은 사람과 친한 척을 하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깨닫고 말았다.
“나 아침에 머문 야영지에 귀걸이 놓고 왔어. 가서 가지고 와.”
“...아침에 머문 야영지? 거기까지 되돌아가려면 족히 2시간은 걸릴 텐데?”
“...그래서, 지금 하기 싫다는 거야? 어?”
나의 입에서 부정적인 의견이 튀어나오자 마자, 비앙카의 눈썹이 치켜 올라가고 말았다. 내가 저 망할 계집애와 꽤 오랜 시간동안 함께해서 잘 아는데, 비앙카는 자기가 마음에 들지 않은 일이 있을 때마다 스스로의 눈썹을 치켜 세우는 버릇이 있었다. 바꿔 말하자면, 비앙카가 언제 빡돌아서 내 머리통에 마법을 쑤셔 넣을지 모른다는 말이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돌아가는 길에 마수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지. 혹시 내가 거기까지 가는 길에 다치거나 죽는다면 원정대의 일정에 차질이 생길수도 있잖아.”
그런 변명을 내뱉으며 혹시 이 정신 나간 여자를 누군가 말려주지 않을까 하며 원정대의 다른 멤버들을 바라보았지만 그들은 뉘집 개가 짓냐는 뚱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 비앙카를 말릴 생각은 추호도 가지지 않은 것 같았다. 새삼스럽지만 이 엿같은 원정대에 내 편이 없다는 사실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만 것이다.
“음, 뭐. 그렇긴 하겠네. 길잡이가 없으면 원정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지. 네 말이 옳아. 카인.”
그리 말하며 비앙카는 내게 요상하게 생긴 부적 하나를 휙 던져 준다.
“...이게 뭐야?”
“마수를 물러나게 하는 부적. 아마 하루 동안은 효력이 유지 될 테니 이제 아무 문제없지?”
내 얼굴이 괴상하게 일그러지는 것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파리라도 내쫓듯 손을 휘휘 내젓는 비앙카.
“뭐해? 안 다녀오고?”
‘시발년.’
허나 어쩌랴. 도합 4시간을 개처럼 뛰어 귀걸이를 가지고 오는 것이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그렇게 해서 정말 죽을힘을 다해 뜀박질을 하여 귀걸이를 가져왔건만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도 없이 가방 깊숙한 곳에 귀걸이를 쳐 넣는 비앙카. 참고로 그 귀걸이는 남은 원정 내내 가방 깊숙한 곳에서 나오지 않았다.
참고로 이러한 에피소드는 원정이 이루어진 1년 동안 발생한 사건 중에서도 실로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 정말 시시하기 그지없는 사건에 불과했다.
내가 비앙카에게 받은 굴욕들은 내 인내심의 바닥이 어디까지인지 절실하게 느끼게 해주는 귀중한 시간이 되어주었다.
또 언젠가는 이런 일이 있었다.
“야, 카인. 너 한가하지?”
참고로 그 때의 나는 모닥불을 피우기 위한 땔깜을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나무를 패는 중이었다. 원정대에서 가장 쓸모없는 인간을 꼽아보라면 단연 내가 1등을 차지할 정도로 나의 존재감은 미비하기 그지없었기에 어떻게 해서든 원정대에 도움을 주기 위해 열심히 고군분투하는 중이었다는 점을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넌 눈깔도 없냐. 나 지금 나무 패고 있는 거 안 보여?’
물론,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야 없었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한가하니 잘 되었네. 조금 있다가 내 텐트로 들어와.”
“텐트? 왜?”
“아, 거 말 많네! 그냥 들어오라면 들어오면 되지 뭐가 이리 말이 길어!”
개 뜬금없이 화를 벌컥 내더니 씩씩 거리며 자기 텐트로 돌아가는 비앙카.
‘분노조절장애인가.’
하지만 저 년이 저따위로 구는 것도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기에 나는 순순히 그녀의 텐트로 들어선다.
“비앙카. 나 들어간다.”
“어, 빨랑 들어와. 찬 공기 들어오니까.”
비앙카의 텐트 안으로 들어서니 바깥 공기와는 차원이 다른, 후끈후끈한 공기가 나를 맞이한다.
아마 마법을 이용해 혼자 이리도 편하게 지내고 있는 것이 틀림없겠지.
나는 매일 밤마다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옷이라는 옷은 죄다 껴입고 벌벌 떨며 잠을 청하는데 이 년은 실로 아늑하기 짝이 없는 곳에서 잠을 잔다는 사실이 정말 배알이 꼴리기 시작한다.
고개를 들어 비앙카를 쳐다보니 그녀는 길쭉하고 날씬하기 그지없는 하얀 맨다리를 드러낸 상태였다.
아마 몸을 씻으려고 하던 찰나가 아니었나 싶다.
“왜 불렀어? 혹시 뭐 필요한 거라도 있어서 그래?”
“아니, 그건 아니고.”
비앙카는 자신의 길쭉한 다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나를 향해 말을 하였다.
“너 한가하지? 나 마사지 좀 해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