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화 〉1. 빌어먹을 시작 (1/201)



〈 1화 〉1. 빌어먹을 시작

그것은, 아무런 징조도 없이 불현듯 찾아왔다.

처음에는 평소보다 겨울이 며칠 정도 길게 이어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허나 3월이 되어도 새순은커녕 하늘에서 눈이 흩날리는 것을 보자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6월, 평소 같으면 무더운 열기가 대륙을 덮쳤을시기.

허나 사방에는 온통 눈으로 가득하였으며 사람들은 두꺼운 방한복을 착용하지 않고는 거리를 나다니지 못하였다.

그제야 사람들은 알아차렸다. 이 대륙에, 끝나지 않는 겨울이 찾아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8월. 대륙에 있는 모든 국가와 종족이 제국의 수도에 모여 힘을 합치기를 결의하였다.

겨울이 끝날 때까지, 모든 분쟁을 멈추기로 결정하였다.

때마침, 하늘에서 여신의 신탁이 내려왔다.

[겨울을 부르는 재앙은 북쪽에 있다.]

이에, 조사단이 파견되었다. 겨울을 부르는 재앙이 무엇인지, 그 원인을 찾아내기 위한 조사단이 북쪽으로 파견 되었다.

12월. 조사단이 귀환하였다. 하지만 돌아온 이는 단 한 명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북쪽의 끝, 에스텔 공작령에서 겨울을 부르는 마녀를 보았노라고.

그 마녀의 손끝에서 눈송이가 피어났으며 마녀가 지나간곳에는 한기만이 남아있었노라고.

그 소식은 곧장 수도를 강타하였다. 곧 수도는, 두 가지 화제로불타오르기 시작한다.

우선 첫 번째는, 겨울을 불러오는 ‘마녀’라는 존재에 대하여.

그리고 두 번째.마녀를 배출한 에스텔 공작령의 개자식들을 어떻게 처분할 지에 대하여.

듣자 하니,  빌어먹을 놈들은 겨울이 시작되자마자 그 추위를 견디지 버티지 못하고 곧장 제도로 쪼르르 달려왔다고 하던가.

‘마녀’를 배출하였으면 공작령에서 얼어 죽어도 부족할판에, 제 한 목숨은 아까워서 제도로 부리나케 달려온  추태에 대해 제도의 모든 사람들은 비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이내 여론은 확대되었다.

 겁쟁이 놈들, 모든 일의 원흉인 놈들. 공작령의 개자식들을 가만히 두어서는 안 된다고.

그렇다. 나도  의견에 매우 찬성한다. 그런 개자식들을 가만히 놔두어서야 이 땅의 정의가 바로 세워지겠는가?

...에스텔 공작령의 가주가 나만 아니었다면 말이지.

제국의 지하 감옥, 그 중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독방에 처박히며 결국 나는 한탄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시발... 다들 왜 나한테만 지랄들이냐고...”


****


열흘. 벌써 열흘째이다.

제국의 지하감옥에 갇혀 바깥 공기 한 번 쐬지 못한 지 벌써 열흘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는 말이다.

지난 열흘간 사람 얼굴이라고는 나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는 좆같이 생긴 간수 놈의 얼굴 말고는 구경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뭐, 사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제국의 지하감옥에 쳐박혀 있는 것이 나에게 있어서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지금 제국 전체에 있어 에스텔 공작가의 가주, 카인 폰 에스텔은 굉장한 유명인이었기 때문이다. 어찌나 그 인기가 대단하던지 제도의 시민들이 내 얼굴만 쳐다봐도 나를 산 채로 불에 태워버리기 위해 달려드는 수준이라 하면 쉽게 상상이 가는가?

이렇게 지하 감옥에 갇혀 있으니 적어도 누군가가 언제 등 뒤에서 나를 칼로 쑤셔버리지는 않을까 노심초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만큼은 확실히 장점이라 할 수 있었다.

"...빌어먹을, 그 능구렁이 같은 양반 같으니."

나는 나를 지하 감옥 깊숙한 곳에 쳐박은 장본인인 황제의 얼굴을 떠올리며 저도 모르게 눈쌀을 찌푸리고 말았다. 사실, 황제가 어떠한 일언반구도 없이 나를 지하 감옥 깊숙한 곳에 쳐박아버린 처사가 결코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마녀가 불러온 끝나지 않는겨울은 벌써 1년 째 지속되고 있었다. 말이 좋아 1년이지, 대륙 전체에서 식량이 생산되지 않은지 벌써 1년이 훌쩍 넘었다는 것이다. 대륙 각지에서는 이미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었고 시장에 가면 빵 한 덩이를 가지고 고귀한 귀족들이 아웅다웅하는 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물론, 마법의 힘을 빌린다면 이리 거센 추위 속에서 제한적으로나마 식량을 재배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하였다. 하지만, 대륙 전체의 인구수에 비례해 보았을 때 마법을 다루는 이의 수는 너무나도 적었으며 그에 반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의 수는  수를 헤아릴 수가 없을 만큼 많았다.

현재 생산되는 식량은 턱없이 부족한반면, 굶주려가는 사람은 나날이 증가하는  상황.

날이면 날마다 제국의 신민들의 불만은 거세어져 갔으며, 동시에 제도전체에 흉흉하기 짝이 없는 이상한 소문마저 여럿 나도는, 실로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제도의 높으신 분들이 떠올린 아이디어는 실로 간단하였다. 바로 '겨울의 마녀'를 배출한 에스텔 공작가의 가주에게 모든 잘못을 뒤집어 씌운 후 희생양으로 삼아 버리는 것.

 마디로 정리하자면, 나에게 걸린 죄목이란 바로 '연좌죄'와 '괘씸죄' 정도가 아닐까.

"...뭐, 죽일테면 죽이라지."

이런 깜찍한 아이디어를 떠올린 장본인이라 수 있는 황제와  떨거지들을 탓할 생각은, 솔직히 별로 들지 않는다. 내가 다른 사람의 입장이었더라도 지금쯤 술집에 앉아 마녀를탄생시킨 원인인 주제에 제도에 뻔뻔스레 틀어박힌 그 개자식에 대해 열심히 씹어대고 있었을 테니까.

또한, 제국의 모든 사람들의 나를 향한 울분과 원한또한, 이해가 가지 않는 바가 아니었다.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만을 품은  주린 배를 움켜잡고 인내를 해온지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들 나름대로 스스로의 감정을 배설할 배출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저, 재수없게 내가 액막이 역할에 당첨이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걱정이 한 가지 있다면 나의 여동생, 엘레나에 대한 것이다.  그래도 천성적으로 몸이 약한 아이였다. 엘레나는 겨울이 시작되자마자 그 추위를 견뎌내지 못하고 병상에 쓰러졌으며 이는 우리가 제도로 부리나케 달려오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엘레나가 그 추위 속에서 얼어죽는 꼴만은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죽는다면, 그 아이가 에스텔 공작가를 이어나가야 할 텐데 심약하기 짝이 없는 엘레나가 그런 막중한 역할을 맡을 수 있을 런지 걱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열흘째 아무도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 거야?"

나와 같은 극악무도한 악적을 죽이는 것에 반대 의견이 오고갈 리는 없을 것이니, 어떻게 하면  고통스럽게 죽일 수 있는지처형 방법에 대해 토의라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게 내가 독방에 수그리고 앉아 나의 암울한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을 무렵, 의외로 끝은 빠르게 찾아왔다.

"...에스텔 공작 각하. 출소입니다. 저를 따라나와 주시길 바랍니다."

지난 열흘간 나의 끼니 조달을 위해 힘써준 우락부락한 간수가 나의 출소 소식을 알려주러  것이었다.

“흠. 생각보다 꽤나 늦게 왔는데. 드디어 내 처형 날짜가 잡혔다는 소식을 알려주러 온 것인가?”

나의 빈정거림에 간수는 부정을 표하였다.

"폐하께서 공작 각하를 뵙기를 원하십니다. 알현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



태양의 홀. 천 년 전, 제국이 세워졌을 당시 그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용들이 마법을 걸어주고 드워프들이 건설을 해주었다는, 제국을 상징하는 위엄 그 자체.

백 명이 한 번에 들어와도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그 거대한 크기에 홀의 한 가운데 나는 부복을 하여 황제를 맞이하고 있었다.

"...제국의 태양을 뵙습니다.”

사실 제국의 공작인 만큼 이런 지나친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었지만 지은 죄가 있다보니 저도 모르게 납짝 엎드리고 말았다. 여기서 괜히 뻗대었다가 거열형(車裂刑)이나 팽형(烹刑) 같은 끔찍한 사형 방법으로 죽어나가는 것만큼은 사양하고 싶었으니까.

“에스텔 공작, 오래간만에 보는군. 5년만에 보는 것인가?”

왠지 모르게 나에게 친한 척을 하는 그 말투에 나는 저도 모르게 대꾸를 하고 말았다.

"...그렇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후, 공작 작위를 승계받기 위해 이곳을 찾은 것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습니다."

"허어, 그랬었지. 프란츠가 죽은지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던가..."

왠지 모르게 나와의 친분을 들먹이는 황제를 보며 나는 슬쩍 눈동자를 굴려 주변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모가지를 뎅강하고 쳐버리기 위해 이런 자리를 마련한  같지는 않아서였다. 지금 이 순간,  능구렁이 같은 인간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쉽사리 감이 잡히지 않을 뿐이었다.

“에스텔공작.”

“...예. 폐하.”

“그대에 대한 처우를 놓고서 많은 고민을 하였다. 그대의 죄가 숨길  없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에스텔 영지 출신이라 확실시 되는 ‘마녀’라는 존재가 현 대륙에 끊임없는 겨울을 불러 왔으며 그로 인해 수많은 목숨이 죽어나가고 있는 것이 현 상황이니라. 이것은, 그대가 영지를 제대로 통치하지 못한 부덕의 소치이니 그대에게도 일정 부분의 책임이 있음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가?”

‘...그게 뭔 개소리야.’

그 마녀라는 년이 에스텔 영지에서 발견된 것 자체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개 같은 년이 우리 영지 출신인지 대체 어떻게 아는 것인가? 조사단원의 보고서에는 ‘에스텔 영지에서 겨울을부르는 여자를 목격하였다.’라고만 쓰여져 있지  년의 출신 따위는 일언반구도 없었단 말이다.

그래, 백보 양보해서 마녀가 우리 영지 출신이 맞다고 해보자. 그런데 그것이  내 잘못인가? 내가 영지 내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장차 범죄를 저지를 놈인지 아닌지 확인이라도 했어야 했단 말인가?

내 혀끝에서는 ‘좆같은 소리 좀 하지 마십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튀어 올라왔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을 동원하여 간신히 목구멍 안쪽으로 도로 밀어 넣었다. 어차피,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항변을 해봐야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었다.

“...인정합니다. 폐하.”

내가 전부 내려놓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을 하자 황제는 그 뜻을 알 수가 없는 모호한 웃음을 짓더니 나를 향해 이리 말을 내뱉기 시작하였다.

“허나 에스텔 공작가는 제국의 시작과 함께 역사를 같이해 온 유서 깊은 가문. 그대의 선조들이 제국을 위해 봉사한 넋을 굽어 살펴서라도 그대에게 이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로 결정하였다.”

'만회? 기회?'

실로 불길하기 짝이 없는 어감의 단어가 아닐 수가 없었다. 나 같은 아무 능력 없는 놈에게 무엇을 시키기 위해 황제는 저렇게 혓바닥을 놀려대는 것이란 말인가?

“에스텔 공작. 그대에게 명하겠노라.”

"...예, 폐하."

“마녀를 토벌하기 위해 원정대를 꾸릴 생각이다. 그 원정대의 선두에  길잡이가 되어, 공작가의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그대에게 부여하겠노라.”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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