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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236화 (1,234/1,239)

1236화

드낙의 말대로 이재민이 아주 많이 발생했다. 운석이 도시를 때려도 운 좋게 살아남은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마법과 아티팩트 같은 것으로 자신의 생존을 기어코 움켜쥐게 됐다.

자본주의 덕분에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모두가 똑같은 트로피를 받는다면, 트로피는 더는 의미가 없었다. 모두가 금메달을 받는다면, 금메달 연금은 자연스럽게 폐지될 것이다.

위대함을 더는 위대함으로 포장하지 못하는 세상이었다.

문제는 돈으로 술술 찍어낸 아티팩트는 사람은 살렸지만, 집은 못 살렸다는 점이다.

“내 안배가 여기서 이렇게 날 뒤통수 치는구나!”

생존자가 많은 것을 기뻐해야 했지만, 집을 단기간 내에 짓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어느 누가 테라의 경제 수준으로 집을 단기간 내에 이재민들에게 보급할 수 있겠는가? 그걸 해결하려면 결국 초월자가 나서야 했다.

당연히 드낙도 여기에 포함됐다.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누가 귀찮은 일을 하려고 할까?’

설거지는 자기 스스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귀찮은 일도 어찌하려고 하겠는가? 설거지도 스스로 하지 않는다면, 결국 다른 귀찮은 일도 하지 않게 된다. 가사노동은 아주 귀찮은 일임으로 이를 통해서 자식의 성향을 살펴볼 수 있다.

초월자도 마찬가지였다.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너도 해야지? 라고 물을 수 없었다.

‘다 같이 해야겠지.’

물론 같은 곳에서 일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부터 초월자는 주택난 해결을 시작한다!”

도시와 성이 있던 곳에는 철근 콘크리트를 통해서 아파트를 지을 생각을 했다. 우주 낙원을 여럿 가지고 온 카실레안이 있으므로 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노하우와 경험이 쌓여 있어야만 했다.

“포기하자.”

결국 아파트는 포기하게 되었다. 쉬워 보였는데, 쉬운 게 아니었다. 현대건축의 정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신 5층짜리 맨션을 만들기로 했다.

동시에 도시 밖에는 교외 지역을 만들어 그곳에 압도적인 단독주택을 짓기로 했다. 이층집에 모두 똑같이 생긴 집이었다. 물론 마당도 있었다.

‘미국식이지.’

거기에 목조건물은 ‘분업’도 가능했다.

건물의 틀이나, 방의 구조 따위를 미리 만들어놓고 운반하여 설치하여 합체한다. 그렇게 하면 기존보다 훨씬 더 빨리 집을 건설할 수 있었다.

순식간에 집들이 지어지고 있었고, 당장 급한 노약자가 많은 가구부터 집을 가지게 됐다.

테라는 빠르게 정상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모든 지배자가 열심히 일한 덕분이었다. 당장 드낙이 땅을 평탄화하는 데 직접 손을 쓰고 있었으니, 말 다 했다. 뺀질거리는 드낙이 일을 하기 시작했으니, 다른 이들도 드낙의 눈길을 받을까 봐 두려워하여 열심히 했다.

동시에 새로운 시대가 점차 도래하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산악도시에서부터 시작되려는 조짐을 보였다.

그 누구도 모르게 조용하게 그 일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산악도시, 부르산.

뿔쥐들은 집중발전에 관한 좋은 사례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먼저 상위국의 중심부에 위치한 산을 개조했다.

그곳을 도시로 만들었다.

다른 이들이 이를 들었다면, 까무러쳤겠지만, 대한민국 사람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당장 부산만 해도 산에 지은 도시가 아닌가?

“부르산이 완성됐다. 산길도 훌륭하다. 우리는 여기서 고부가 가치라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 찍찍!”

뿔쥐 의원이 뒷짐을 진 채 모습을 드러냈다.

뒷짐을 지면 토실토실한 뱃살이 앞으로 더욱 크게 나오기 때문에 뿔쥐들은 자주 이 자세를 취하는 편이었다. 털이 북슬북슬한 뿔쥐는 살이 찌면 보기 좋았다.

이에 고블린 시장들이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또 크놀 시장들도 존재했다.

손재주가 좋은 고블린과 크놀이 시장에 임명된 것만 봐도 부르산에서 무엇을 만들지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먼저 우리는 시계 사업을 할 것이다. 크기가 작으면서도 만들기가 쉽지 않으니. 여기서 할 만하다.”

기어코 지하 연합이 큰 사달을 냈다.

지금까지 지하 연합은 1차 생산자의 역할만 해왔다. 종종 이차 산업에도 손을 대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비율로 따지면 5%도 되지 않았다.

식량 생산이나 원자재를 팔거나 철괴로 제련해서 판매하는 게 전부였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진짜 고부가 가치를 노리기 시작했다.

원자재는 지하에 얼마든지 있었기에, 시계를 선택한 것도 있었고, 또 시계는 기술이 필요한 일이었다. 투자할 만한 가치가 무궁무진했다. 성장 가능한 산업이었다.

‘원자재 마진을 차고도 남는다.’

단말기, 컴퓨터 그런 건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지만, 시계는 아니었다. 시계를 건너뛰고 그런 것이 보급된 탓이다. 또한 드낙은 은근히 소시민적인 존재로, 딱히 패션에 큰돈을 투자하지 않았다.

반면 다른 필멸자들은 달랐다. 하나같이 가진 돈을 쓰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이런 이들에게 손목시계는 제법 욕심이 나는 물건이었다.

너도나도 하나씩은 가지고는 있어야 해소되고, 그마저도 지갑이 넉넉하다면 수집까지 하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기술은 우주 낙원에 저장되어 있었기에 사용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저 꾸준히 연습하여 숙달되는 것이 중요했다.

“이제 우리 지하 연합의 시대가 왔다!”

인간의 시대가 저물고 뿔쥐의 시대가 온 것이다. 동시에 뿔쥐들은 식량 지원을 통해서 영향력을 퍼뜨리기 시작했고, 또 한 가지 음습한 짓을 하게 된다.

“아아, 이건 바퀴벌레라는 것이다. 단백질이 풍부하지.”

“우웁.”

“찍찍. 평소에는 가루로 만들었는데, 요즘에는 다리 떼는 게 힘들다. 너희들이 직접 해라!”

“…….”

“무, 물론 그 대신에 치즈를 많이 주겠다. 어쩌겠느냐?”

“그렇다면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다만…….”

“찍찍. 왜? 뭐가 더 문제냐?”

“그게 삶고 구운 벌레는 밤에 받고 싶습니다.”

사람들 몰래 하겠단 소리였다. 한 번 삶고, 식힌 다음에 바로 구운 벌레는 손질을 하고, 갈아버리면 충분히 고소하게 먹을 수 있었다.

“좋다. 찍찍! 대신 알고 있겠지만…….”

“나중에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벌레 식량을 손질하지 않고 주는 등, 문제가 발생했다. 급하게 다른 종족을 지원함과 동시에 영향력도 은근슬쩍 확보하려다 보니 배탈이 난 셈이다. 그러나 지하 연합은 어떻게든 이걸 계속 이어나갔다.

그 목표는 오션 오크들에게 가장 먼저 손을 뻗었다.

그들이 현재 가장 나약하고 세력이 낮았다.

“종족 회의라…….”

그중에서도 가장 득을 본 것은 오션 오크들이다. 지형이 고르고, 멀리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해안가에 도시가 세워져 있었던 오션 오크는 운석 마수의 제1 표적이 되어버린 탓이다.

“뿔쥐들에게 받고 있는 노동력과 건물 자재. 수많은 원재료를 비롯한 식량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의 말에 찬동해야 합니다.”

“하지만 초월자들의 대회의가 있는데, 종족 회의까지 만들다니. 뿔쥐들은 무슨 생각이지?”

오크 대족장이자 다시 한번 통합된 통합 오크의 수장, 규르소모스가 그 의도를 알 수가 없어 선택하기를 꺼려했다. 상대의 패도 모르는데, 판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별수 없지. 초월자에게 의견을 보내라.”

뿔쥐보다 먼저 이 땅에 신이 없는 오션 오크들이 종족 회의를 드높였다.

초월자가 없기에 ‘종족 회의’는 오크들에게도 유용해 보였다. 이를 본 드낙은 ‘알아서 해’라고 말했고, 세파리아스도 딱히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는 ‘상관없다’라고 의견을 냈다.

카실레안은 조금 더 고민했지만 결국 그도 손을 들었다. 두 명이 저러는데, 자신이 반대한다고 진행 안 될 일도 아니었다.

종족 회의는 천천히 궤도에 올랐다.

필요한 법률도 세워야 하고, 회의에 참석하는 인원수도 정해야 했다.

종족 회의에는 초월자가 참석해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도 세워졌다. 이를 통해서 뿔쥐들은 드낙이 신경 써야 할 문제를 자신들의 차원에서 해결함과 동시에 역량을 전 종족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가장 드낙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게 뿔쥐들인 셈이다.

그사이에 드낙은 한창 단독주택이 건설될 곳의 땅을 평탄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단순히 평탄화 작업만 한 것도 아니다. 둑이 필요한 곳에는 둑을 세웠다. 마법을 통해서 손쉽게 해냈다.

“와아아아아!!!”

둑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냥 댐 수준으로 높아진 곳을 본 사람들이 크게 환호성을 질렀다. 이제 저것을 동굴처럼 파내고, 강철로 보강한 다음 수력발전소 겸 댐으로 쓸 것이다.

구경하는 작업자들이 너도나도 작업을 시작했다.

“이게 마법이지.”

드낙이 흐뭇하게 웃었다.

돈 때문에 못 하는 일도 마법이면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다만, 그 경지까지 오르는 것이 힘들었다. 악마나 신이 되면 능히 쉽게 할 수 있다고 한들, 누가 할 수 있을까? 극소수에 불과했다.

드낙은 다음 일터로 향했는데, 그곳에는 이미 선객이 와있었다.

“크레시미르. 어쩐 일이냐? 상위국도 지금 엉망이라던데.”

“재건 사업은 저 없이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인간들의 역량은 이제 제법 높습니다.”

그가 빙긋 웃으며 드낙과 얼굴을 마주했다. 서로 깊게 포옹하기도 했다.

가진 것이 많고, 내어줄 것이 많은 아버지인 드낙은 항상 사랑받는 아버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평생 일한 것보다 돈을 더 많이 내어줄 수 있는 부모는 받들어 모셔도 부족함이 없다.

그게 생각보다 어렵기에 우리는 항상 효를 중시한다.

“앉아라. 요즘은 잘 지내고?”

“어머님이 너무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구휼을 원하는 이들이 많아요.”

“레이시아가… 내 따로 시간을 내서 지하 연합에게 도와달라고 해야겠다. 고블린 사장 중에 그런 쪽으로 배정된 이들이 제법 있다고 대장 쥐에게 들은 적이 있다.”

“그러려고 이야기를 꺼낸 건 아닌데요.”

“아내가 편해야지. 여기는 웬일로 온 거냐? 너도 바쁠 테니까. 빨리빨리 말해라.”

“예전에 제가 신이 된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으음… 전쟁을 겪어보니, 아니다 싶었느냐?”

그 말에 크레시미르 불파겐이 고개를 끄덕였다.

운석 마수의 1차, 2차 공격.

대악마의 침공.

만신전의 침입.

테라의 인구는 절반 가까이 뚝 떨어졌다. 너무 많은 이들이 죽었다. 그중에는 지하 연합만이 유독 예외가 됐다. 지상인들의 죽음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다.

그게 크레시미르의 마음을 크게 뒤바꾸어 놓았다.

“…오래 생각해 보고 결정을 내린 것이냐?”

“예.”

그가 공손히 답했다. 아주 진지했다. 근엄하기도 했는데, 먼 곳을 바라보는 이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드낙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인신은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

악마보다 훨씬 필멸자에게 도움이 된다. 그런데 그런 인신 후보자가 한 명 사라지게 생겼다.

“네가 그리는 그림은 무엇이냐? 듣고 싶은데…….”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다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물리고 싶습니다.”

이에 드낙이 눈치를 주자 그를 돕기 위해서 온 자들이 물러갔다. 그림자 속에 숨어있는 뿔쥐 또한 물러갔다.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는 눈치 좋은 뿔쥐였다.

드낙이 주변을 ‘추적’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군.’

드낙의 눈이 다시 크레시미르에게로 향했다. 그도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드낙에게는 귀여울 뿐이다.

“이제 말해봐라. 인신이 아니라, 악마가 되어서 펼칠 너의 큰 그림은 무엇이냐.”

“큰 그림이라고 거창하게 말씀을 드리지는 않겠지만, 한번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그래. 한번 들어보자.”

이에 크레시미르가 입술에 침을 발랐다.

“악마가 되면 먼저 앞에 나서서 싸울 수 있습니다. 제가 만약 악마가 된다면, 수비에 도움이 되는 육신을 구성하여, 행성을 보호할 것입니다.”

크레시미르가 단말기를 꺼냈다. 드낙에게 정보를 전송했고, 드낙이 단말기 화면을 바라보았다.

행성을 보호하는 껍질 같은 것이 보였다. 함께 자전하고 있는 게 보였다.

“행성 방패라…….”

“방패는 제 육신이기도 합니다. 하나의 차원을 관리하고 보호하는 데 부족함이 없습니다. 필요할 때 이렇게 방어를 한다면, 그 어떤 외부 공격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럴듯했다.

“방패 표면은 악마의 육신이므로 특수한 권속 악마들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그들은 지표면으로 내려가서 필멸자들을 도울 것입니다.”

“음.”

드낙이 제법 좋은 표정을 지었다. 이에 크레시미르가 이어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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