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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234화 (1,232/1,239)

1234화

이후 세파리아스와 카실레안의 회의는 바다에서 이루어졌다. 테라, 특히 그들과 싸웠던 뿔쥐들이 내륙에 들어오는 걸 꺼려서다.

이는 카실레안을 견제하는 세력이 ‘지하 종족’임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행위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현재 실세 세력이 누구인지도 알려주고 있었다.

카실레안이 기분 나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 세계의 초월자와도 쌍벽을 이룬 자였다. 드낙도 그 모습에 감탄하여 그를 감히 죽이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대우라니? 짜증이 차오를 만도 했다.

‘이게 또 복잡하기도 하다.’

아무튼 카실레안은 이용 가치가 너무 높았다. 드낙은 초월자의 삶을 세파리아스를 견제하는 데 쓰고 싶지 않았다.

그건 무척이나 피곤한 일이었다.

또한 드낙은 수련하고 있지 않았음에도 종종 세파리아스가 방문하여 드낙을 유일한 라이벌로 생각했는지 활화산처럼 타오르며 수련을 요청할 때가 있다.

그걸 카실레안이 대신해 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드낙은 일부러라도 카실레안과의 대화에 응하지 않고 세파리아스에게 일임했다.

테라라는 연합체에 속한 초월자에게 막대한 자유가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초월자 둘이 작당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드낙이 참가 안 하는 것만 봤을 때, 그 자유를 체감할 수 있었다.

드낙의 행동 덕분에 다종족 연합이 복잡하다는 걸 안 카실레안은 불만이 쏙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적대적인 나라가 비겁한 짓을 하는 걸 생각한다면 오히려 복잡한 사회가 평범한 사람에게 유리한 법이었다. 흑과 백이 명확하게 갈라진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재단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정한 잣대보다 길면 신체가 잘리고, 그들이 정한 잣대보다 짧으면 강제로 늘려놓는다.

어느 쪽이든 흑백이 명확한 세상에서는 살아남기가 힘들었다. 선과 악조차도 구분하기 어려운 곳이야말로 평범한 사람들이 가장 살기 좋은 곳이다. 무엇이 흑인지, 백인지. 구분하기 어려우면 판단도 어렵기 때문에 숲에 숨은 나무처럼 평온하게 살 수 있었다.

그렇기에 카실레안은 날이 지날수록 다종족 연합에 소속되고 싶었다.

“테라의 초월자가 되면 어떤 의무를 지는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 나는 차원 침공을 위해서 신제국을 다스리고, 차원 다리를 건조하고 있다.”

“드낙이라는 초월자는?”

“…종종 부패를 처리하고 다니지.”

소시민의 삶을 살았던 드낙은 지금까지도 권력자들에 대한 혐오를 어느 정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지역을 둘러보며 ‘부패를 추적’하여 비밀스러운 부패를 처리한다. 당연히 죽이지는 않았다.

그간 불법적으로 열심히 모은 재산을 모두 ‘추적’하여 몰수하고, 다시 일을 시킨다.

몰수한 재산은 순도 99.9%의 순금처럼 국고로 들어가서 세금이 쓰여야 할 곳에 쓰이니, 서로가 행복한 세상이 된다. 부패를 저지른 범죄자 놈은 감옥에 들어가지 않아서 행복하고, 드낙은 그간 누군가가 쉽게 모은 저금통을 박살을 내서 자신의 것으로 삼아서 좋다.

당하고 또 당하고, 계속 당하다 보면 결국 부패를 저지를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아무리 꼭꼭 숨겨도, 심지어 엉뚱한 곳의 산속에 숨겨도 추적해 내고 마는 추적의 악마가 바로 드낙이었다.

‘실상은 놀고먹는 삶을 살아가는 한량이지만.’

세상의 자원을 부패한 이들이 독점하지 않게 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훨씬 살 만한 곳이 됐다. 자원의 분배가 공평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실력이 있다면, 누구나 많은 돈을 벌어서 최대한의 자원을 누릴 수 있었다.

카실레안에게 대놓고 드낙이 놀고먹는다곤 말할 수 없었다. 그가 의심할 게 뻔했다.

‘드낙의 실력만 보고 놈이 놀고먹는 삶을 산다고 말한다면, 인정하지 않겠지.’

자신은 그렇게 살지 않았고, 뼈를 깎고, 피를 흘려서 실력을 갈고닦았는데, 상대가 놀고먹으면서 실력이 자연스레 증진된다? 억울해서라도 인정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한다라…….”

카실레안은 자연히 세파리아스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그 또한 무인이고, 싸움을 통해서 자신의 실력이 느는 것을 갈망하는 존재였다. 세파리아스는 카실레안과의 싸움을 통해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차원 식민지에 관심이 있나? 정복은 큰 의미가 있지.”

자신의 위업, 명예! 그런 걸 세울 수 있었고, 미지의 강자를 만날 수 있는 확률도 존재했다. 당장 카실레안, 세파리아스가 서로 다른 차원의 존재였다.

“그건 나중에 생각해 보지.”

카실레안이 튕겼다. 새로운 집단에 속하면 일단 사리고, 주변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우주 낙원은 우선 대양 한가운데 둬라. 아직 오션 오크와 머메이드들이 그쪽으로 진출하지 않았으니까.”

그들은 천천히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렇게 카실레안은 대단히 손쉽게 테라에 속하게 됐다. 세파리아스와 드낙이 작정하면 그를 죽일 수 있었기 때문이고, 드낙이 싸움에 솔직하게 임하지 않았기에 세파리아스는 카실레안을 죽일 수 없었다.

그 무력이 한몫했다. 동시에 카실레안은 만신전과 지구의 지식을 아낌없이 공개했다.

* * *

용병 지구인들은 ‘용병 신분’이었기에 지구에 시민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들이었다. 다행히도 그들은 테라에 쉽게 정착했다.

새로운 세력 ‘낙원’은 곧바로 우주 낙원을 퍼뜨려서 지상 재건에 힘을 쏟아부으며 자신들의 이용 가치를 내보였다. 동시에 마신에 대한 프로파간다가 곳곳에 뿌려졌다.

테라는 이번 전쟁으로 많은 것을 잃었다. 그게 지배자에 대한 분노와 불평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를 회피하려면 ‘대적자’가 필요했고, 마신은 훌륭한 대적자였다.

그들이 내뿜은 운석 공격이 가장 큰 피해를 준 것도 한몫했다. 1차, 2차에 걸친 운석 마수의 침공은 놀라운 피해를 일으켰다.

하늘 위로 솟아오른 먼지를 걷어내는 데에 드낙도 손을 써야 했을 정도였다. 만약 마법 혹은 과학 기술이 일정 수준 이하였다면, 꼼짝없이 말라비틀어져 죽었을 터다.

“빛이다―!”

꾀죄죄한 인간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10일이 넘도록 어두컴컴했었던 대지에 햇빛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광합성을 하지 못해 죽어가고, 말라비틀어진 식물이 서서히 숲 밖으로 걸어 나오는 인간의 발자국과 손길에 의해서 바스러져 바닥에 떨어진다.

“살았다!”

환희가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어이! 빨리 움직이자고!”

도망쳤던 이들이 모이고, 군대에서 떨어져 나간 패잔병들이 희망을 품은 채 집합지를 찾아다녔다.

운석 마수에게 당한 테라는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숲에 숨었던 이들은 많이 살아남았지만, 시민을 지키기 위해서 도시에 있었던 이들은 싹 다 죽임을 당했다.

살아남은 지상 종족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오션 오크도 마찬가지였다. 해양 도시는 특히나 더 노려졌다.

당연했다. 해양 도시는 하나같이 크게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현대에서도 바닷길을 통해서 물자를 대단히 많이 운송한다. 그런 것이 드나드는 항구가 발전하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었다.

오크들은 그런 폐허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양으로 나갔었던 거대한 원정군 중 일부였다. 도시마다 차출되었고, 그들은 자기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일이 이렇게 되다니… 하아. 이제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동 오션 오크나, 서 오션 오크나 상황은 똑같았다. 이들은 폐허를 버렸다. 감당할 수가 없어서다. 해양 도시에 모여 살았던 대가를 치렀다.

모두들 모였음에도 오션 오크의 숫자는 채 10만이 되지 못했다.

까마득할 정도의 숫자가 죽었다. 가히 3억 2천이 해양 도시 혹은 거대 항구와 함께 운석에 맞아 죽었다. 이 피해 또한 2차 운석 피해 때문이다. 1차에서는 많은 이들이 살아남았었다.

‘그런 것이 또 올 줄 누가 알았을까.’

안심했을 때, 호되게 당해버렸다.

“합심해서 재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살아남은 규르소모스가 오션 오크들을 다시 한번 통합하여 이끌었다. 그들은 폐허가 된 항구 중에서 재건할 순서를 정할 생각을 했다.

“추운 지방은 재건해 봤자입니다.”

“따뜻한 곳을 재건해야 합니다.”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처럼 느긋하게 살기 좋은 곳의 항구를 먼저 재건할 생각을 가졌다. 테라의 항구 도시는 모두 오션 오크의 것이라는 걸 드낙이 정했기에 아무 걱정이 없었다.

드낙은 자기 말을 지킨다.

그건 모든 이들이 잘 아는 일이었다. 거기에 드낙은 권력을 탐하지도 않는다. 정복왕처럼 정복에 눈이 돌아간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오션 오크들이 편안하게 집중하여 토론했다. 규르소모스는 전사였지만, 흐르는 세월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어서 훌륭한 행정가가 된 지 오래였다.

신제국의 피해도 극심했다. 세파리아스가 직접 나서서 재건을 해야 할 정도였다.

“나라는 사라졌는데, 나는 왜 살아있는 것이란 말인가.”

아크온이 깊게 탄식했다.

상위국의 상태도 똑같았다. 다만, 네 명의 공왕은 모두 살아남았는데, 하나같이 적군을 멸하기 위해서 군대를 소집하느라 성이나 도시 밖에 있어서였다. 그게 그들을 살렸다. 다만 상위국이 진정으로 멸망한 건 아니었다.

작은 성이나 소도시, 수많은 마을은 살아남았다.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건 아니다.”

그의 가족도 화를 면치 못했다. 기득권이었기에 가장 안전한 곳에 있었더니 가장 완벽하게 죽임을 당했다.

드워프 제국은 지상에도 지하에도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엘프들은 종족 전체가 17개의 도시에 있었기에 운석 마수로부터도 살아남았다.

최강의 종족이 고작 도시 17개만 소유했으니, 그 역량이 얼마나 집중되어있는지 알 수 있었다. 다만 그들조차도 여러 도시가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다. 동시에 이들은 드낙의 명령 때문에 재건에 100%의 역량을 투입하지 못하고, 다른 종족을 도와줘야 했다.

“대신 엘프신을 하나만 두겠다.”

그 말에 모든 백색 빛 엘프들이 크게 호응했다. 다른 종족이 많이 죽어서 엘프신을 많이 둘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불안감을 드낙이 해소해 준 덕분이었다.

불모지를 재건하던 권속 악마들은 그 어떤 피해도 받지 않았다. 그들 스스로 나서서 싸워 죽은 전사자들만 존재했다. 그마저도 대단치 못했고, 대국에 영향을 끼치지도 않았다.

“너희들은 대체 뭘 한 거냐?”

드낙은 재건에 힘쓰면서도 불모지의 권속 악마들이 전공을 세운 것이 대단치 못하자 황당해서 이들을 찾았다.

그들 모두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흰여우 세린, 여왕 발바룽, 거인 포낙서스. 모두 할 말이 없었다.

“이것저것 하려고 했지만 모두 실패하거나 늦어버려서…….”

드낙은 변명을 더는 듣지 않고 냉랭히 말했다.

“너희 모두 악마로 격을 높여서 테라를 수호하고, 다른 종족을 돕는 데 쓰겠다. 더 할 말이 있느냐?”

“…없습니다.”

그들이 탄식했다. 자신들의 자유 시간은 줄어들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죄를 지었으면, 공을 세워야 한다.

한마디로 벌주를 마셔야 할 때가 왔다.

반마를 생산하는 ‘우상을 위한 제단’이 있었기에 더는 수명이 중요하지 않았다. 거기에 삼위 변종 악마는 이미 반마의 격에 오른 지 오래였다. 더 노력하면 악마가 되겠지만, 그런 걸 원하는 자는 없었다.

이미 수명이 무한하거늘, 어찌 책임을 계속 짊어진단 말인가? 어깨가 무거운 걸 원하는 자는 없었다. 그들 또한 서서히 백색 빛 엘프처럼 포지션이 변하고 있었다.

권속 악마들도 드낙이 과중한 업무를 맡기지 않았기에 자유 시간이 많은 만큼 자아가 자극받고, 발달한 덕분이다. 그런 이들이기에 지배자인 세 명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흰여우 세린은 권력을 휘두르는 걸 좋아하지만, 처세를 하는 건 귀찮아한다.

발바룽은 머릿수를 늘리는 걸 재밌어한다. 그리고 발바룽의 자손이 자신을 떠받들어주는 것에 쾌감을 느낀다.

포낙서스는 빅 데몬 연구에 일생을 바쳤다.

그런 자들이 악마가 되어 테라에 도움 되는 일감을 받아서 처리해야 한다. 그들은 드낙을 상대로 이길 수 없으니, 이를 따라야 했다. 물론 그렇다고 노예의 삶은 아니었다.

“지금 당장 너희를 악마로 만들고 싶지만, 참겠다.”

드낙은 자신이 대악마로 진화할 생각이었기에 이들에 대한 처우가 뒤로 미뤄졌다.

“너희 스스로 업을 끌어모아서 악마로 거듭나라. 한 치의 거짓도 있어서는 안 되고, 등수에 따라 차별을 둘 것이다.”

“피를 토해서라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악마가 되어 보이겠습니다!”

경쟁이 시작되자 태도가 달라졌다.

드낙은 흡족한 표정을 짓고, 파동으로 변해 사라졌다.

“저 괴이한 수법은 봐도 봐도 놀랍다. 안 그런가?”

“결코 대적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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