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232화 (1,230/1,239)

1232화

팡!

카실레안이 허공을 박차고, 움직였다. 원형 방패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그를 도왔다. 바람이 어찌나 강맹한지, 3.25m에 달하는 카실레안이 바람을 타고 움직일 수 있었다.

검이 카실레안을 노렸지만, 다시 허공을 박차는 것으로 방향을 바꾼 카실레안이 단창을 휘두르며 단번에 찔렀다. 세파리아스가 주먹으로 단창의 면을 쳐 낸다.

그 짧은 순간에 단창을 비틀었음에도 면을 쳤다는 것은 카실레안을 짜릿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세파리아스는 인세(人世)의 무술을 벗어난 카실레안의 움직임을 마주하게 됐다.

원형 방패로 허공 바람 권능을 사용하면서 싸우는 건, 땅에서 싸우는 무술과는 그 궤를 달리해야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스스로 쌓아 올려야 했다. 그리고, 카실레안은 총 세 가지로 분류된 무술을 창조했다. 하나는 땅에 두 다리를 놓은 자를 격살하는 무술. 하나는 간헐적이지만, 허공을 점유할 수 있는 자를 격살하는 무술. 하나는 자신과 같이 하늘을 자유자재로 박찰 수 있는 자를 격살하는 무술이다.

이를 삼종결(三宗訣)이라 불렀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무술이다. 그런 오만함처럼 삼종결 중에서 가장 무섭고, 카실레안의 재능이 가장 많이 들어간 건 가장 마지막 무술이었다.

허나, 카실레안이 어찌 땅에 두 다리를 선 자에게 마지막 무술을 사용할 수 있겠는가. 애초에 조건이 맞지 않았다.

그가 서서히 허공을 박차는 재빠른 움직임 대신에 무겁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도가 변화하는 것은 초일류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허공에서 돌아다니는 강력한 무인과의 싸움은 세파리아스도 처음이었다.

엘프 기사도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단단한 땅을 버리고, 무른 하늘을 굳이 단단히 하여 싸울 이유가 없어서다. 하지만 상대는 일부러 그런 짓을 하고 있었다.

이는 곧 전략적 우위를 점하기 때문이다.

세파리아스는 이런 경우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탓이다. 반면 카실레안은 이런 경험이 많았다. 일부러라도 쌓았다.

‘환경을 지배한다.’

카실레안은 그 목표를 이루어냈다.

스윽.

뱅글뱅글 도는 단창이 카실레안의 머리 위로 쭉 뻗어간다. 거꾸로 선 그의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금방이라도 피가 몰려서 ‘악!’ 소리를 낼 것 같았지만 몸은 매우 평온했다.

단창을 든 이유가 세파리아스를 중력에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중력을 역이용해 자신도 이를 이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일석이조.’

한 번에 적을 억압하고, 자신을 도왔으니. 단창의 수준에 비해서 막대한 이득을 얻은 셈이다.

‘구도가 변한 것을 느꼈구나. 하지만 여기를 빠져나갈 수는 없을 거다.’

괜히 카실레안이 단창과 원형 방패를 든 것이 아니다. 세파리아스는 기동력이 X신이었다. 오직 일신의 무력만 믿고 있었다. 물론 이는 어폐가 있다. 기동력을 높이는 게 아니라, 일신의 무력을 송곳처럼 갈았으니.

그 또한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것은 버렸다 할 수 있었다.

짧은 인생을 살았던 세파리아스였고, 그는 항상 버려야 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삶이었다. 그건 신이 되어서도 변하지 않았다. 기존에 있었던 아티팩트를 사용해서 기동력을 높일 뿐, 그 외의 시간은 모두 수련과 신제국을 번성하는 데 노력했다.

정보화 시대가 도래하며, 단말기로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세파리아스는 전화와 문자를 하며 손쉽게 내정을 다스리게 됐다.

그런데도 세파리아스는 검을 손에서 놓는 일이 없었다. 놀랍고도 경이로운 일이었다. 그에 반면 드낙은 1년에 1번꼴로 수련을 하는 편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실력이 드는 탓이다.

수련을 해야만 성과가 있는 천재와 수련을 하지 않아도 되는 천재의 차이는 그들의 삶을 극명하게 갈라놓았다. 하지만 세파리아스는 드낙을 부러워하지 않았다. 그는 수련광이기 때문이고, 싸움에 미친 광인이기도 했다.

‘상단세의 구도구나. 골치 아프게 되었다.’

세파리아스는 카실레안이 어떤 구도로 싸움을 만드는지 단박에 알아봤다.

하늘에 거꾸로 박쥐처럼 서있는 카실레안과 땅에 우뚝 서있는 세파리아스.

서로의 검이 부딪치면 얼굴이 코앞이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검사라면 당연히 알 수밖에 없었다.

상단세의 전투이며, 서로의 머리를 향한 싸움이다. 당연히 세파리아스는 이런 싸움에 능하지 않았다. 어느 미친 인간이 상단세만 취해서 싸우겠는가? 그런 싸움 구도를 유도한 것만 봐도 상대가 얼마나 전술적 역량에 눈이 돌아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좋다! 어울려주마!”

세파리아스의 검과 카실레안의 단창이 서로 부딪쳤다. 당연히 서로가 원한 건 아니다. 서로 공격만 하고 있었는데, 점이 아닌 선을 지닌 무기라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이야아아아―!”

서로 고함을 내질렀다. 상단세의 가장 중요한 철칙은 선수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는 뜻이다. 선수를 빼앗기는 순간 끝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서로 광풍에 휘말린 황소처럼 멈추지 않았다.

‘놀라운걸.’

카실레안은 상대가 끝까지 선수를 채가기 위해서 싸움을 오랫동안 끌고 나가자 감탄했다. 결국 서로 근접하여 박치기를 하고 물러나야 했다. 그러면서도 단창과 검이 부딪혔음은 당연했다.

“흠.”

카실레안이 작게 탄식하자 세파리아스 또한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의외로 도움이 됐다.’

‘이자는 곁에 두고 함께 공부하고 싶은데…….’

카실레안의 경우 다음을 노릴 수 있어 보였다. 사실 상단세의 끝판 구도에서 버티는 이가 없어서 수련이 정체되어 있었다. 그런데 맞부딪치고 끝까지 버텼으니, 삼종결의 첫 번째 무술을 더욱 단련할 수 있는 셈이다.

실전이 아니고서야 그다음을 노리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또 기계를 쓴다고 해도 거기서 거기였다. 매번 판단이 달라야 하는 싸움 속에서 기계들은 형편없다.

반면 세파리아스 또한 재미를 느꼈다. 조금은 상단세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 것 같았다.

이런 상황이 되자 두 사람의 살기는 조금 줄어들었다. 대신 싸우지 않는 건 아니었다.

여전히 영향무력은 카실레안을 노리고 있었고, 상쇄의 권능은 이를 무력화했으며, 서로 손을 섞기에 주저함이 없었다.

카실레안은 단창 외에도 15가지에 달하는 무기를 통해서 세파리아스와 부딪혔고, 하나같이 깨달음을 얻었다. 반면 세파리아스 또한 다음을 노릴 수 있게 되었다. 모두 성장하게 되었다.

‘마지막까지 싸워본다.’

카실레안은 마지막으로 정신체를 끄집어냈다. 그 와중에 변모하고 있는 카실레안의 정신체는 그 어떤 것보다도 농밀했다. 크기를 키운다면 얼마든지 키울 수 있었다. 중립신의 발전 방향성이 크기를 키우는 것이다.

그러면 행성 하나. 차원 하나를 완벽하게 관리할 수 있다.

정원 관리사의 궁극 진화가 바로 대신이며, 중립신인 셈이다. 반면 카실레안은 지나칠 정도로 영혼이 농밀했다. 심지어 정신체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도 않았다.

검 한 자루의 모습으로 변하며, 카실레안의 머리 위에 둥둥 떠 있게 되었다.

“……!”

황당한 짓거리에 세파리아스가 눈을 부릅떴다.

“그게 대체 무엇이냐?”

“영혼검.”

말을 마친 카실레안이 다시 덤볐다. 세파리아스도 별수 없이 달려들어야 했다. 고수의 싸움에서 선수권은 양보할 수 없다. 족히 역량이 최소 1.5배에서 최대 5배까지 증가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그들은 격돌했다.

세파리아스의 검이 묘한 움직임을 보였다. 카실레안의 검도 동시에 묘해졌다.

검은 가벼운 잽처럼, 상대를 타격했다가 갑자기 강맹해지며, 벼락처럼 하단을 노리며 발을 공격하기도 했다. 공간을 비집고 들어간 검이 우뚝 서며, 주먹으로 서로 공수를 나누기도 했다.

그 현란한 싸움 속에서 영혼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팟―!

작은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세파리아스는 그것만으로도 정신체가 물리력을 지녔음을 깨닫고, 보통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이를 영향무력으로 베어냈지만, 흠집 하나 낸 것이 전부였다.

“대단하구나!”

세파리아스가 결국 한 걸음 물러섰다. 그 뒤로 카실레안의 공격을 세파리아스가 막아야 했다. 매섭기 그지없었고, 막기만 하는 건 어려웠지만 세파리아스는 비검을 투척하는 것으로 흐름을 종종 끊었다.

“하하하.”

카실레안이 웃음을 터트리며, 10분 뒤에 물러섰다. 세파리아스는 몸이 피떡이 되어있었지만, 치명상 하나 입지 않았다. 영혼검의 위력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끝까지 회피해서다.

‘그게 정답이긴 하지.’

극도로 집중된 인신의 영혼이 아니다. 대신으로 성장하고 있는 인신의 영혼이다. 조금만 닿아도 영혼이 피해를 입을 것이다. 대신의 길을 가지 않는 인신이라면 한순간에 무력화가 된다.

카실레안이 끝까지 만신전에 보여주지 않은 또 하나의 힘이었다.

그 또한 수백 년의 전쟁을 수행하지 않았다면 얻을 수 없었을 터다. 하지만 만신전에 감사한 마음은 요만큼도 없었다.

“이제…….”

카실레안이 항복을 권유하려고 했다. 세파리아스를 죽이는 것은 너무 아까웠다. 조조가 관우를 아끼려고 온갖 기행을 저지른 것과 비슷했다.

“합!”

세파리아스가 그 말을 기다리지 않고 덤벼들었다.

“죽고 싶은 거냐!”

“죽음이 어찌 두려우냐?”

이미 한 번 죽음 목숨이다. 두 번 죽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을 더 맹렬하게 태우고 있었다.

‘이런 적수를 만난 것에 감사한다!’

피 칠갑이 되었음에도 세파리아스는 더욱 전의를 불태웠다. 그를 부상 입힌다고 그의 전의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배로 불어났다.

시리도록 차가운 호승심이 세파리아스의 육신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다. 카실레안이 정신없이 뒤로 물러났다. 한순간에 선술을 빼앗겼다.

‘아니, 상대가 성장했다!’

그의 표정이 더욱 악독하게 물들었다. 이전과는 다르게 세파리아스를 죽일 생각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그가 그러면 그럴수록 세파리아스는 더욱 빠르게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실전에서 성장하는 건 세파리아스가 카실레안보다 더 빨랐다.

* * *

드낙은 때가 왔음을 알게 됐다. 어리석은 대악마 둘이 얼마나 자신의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는지 잘 알 수 있었다. 둘은 싸웠고, 아카타베루가 결국에는 아스모데를 죽이는 데 성공했다.

아카타베루 또한 멀쩡하지는 않았다. 그때, 드낙이 자신의 신격 꽃봉오리를 몸에 흡수하고, 바로 파동으로 이동하여 아카타베루를 공격했다. 소아귀와의 연결이 확고해지기 전에 달려들었다.

아카타베루가 아스모데를 죽이고 나서 웃는 게 끝나기도 전에 드낙의 암습이 아카타베루의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드낙은 모든 전력을 다했다.

그는 가진 모든 것을 쏟아냈다. 파동의 힘을 전력으로 내뻗어서 아카타베루의 절반을 싹 도려내어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거기서 끝마치지 않고, 반신의 격을 이용하여 정신적인 타격을 아카타베루에 주입했다.

반신급에 불과해도 약간의 반동은 줄 것이다. 연달아서 아카타베루의 모든 것을 박살을 내버렸다.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다. 아카타베루는 대처도 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렀다.

‘악마 놈이 감히 지상에 있는 자기 육신을 버리고 여기까지 기어들어 와? 분명 마신이 중립신이 죽었다고 말했겠지.’

그러니, 이렇게 무방비하게 왔을 터다. 그리고 신격의 꽃봉오리를 중립신이 남긴 것이라고 착각했을 공산도 컸다.

순간, 드낙의 표정이 기이하게 변했다. 그가 파동으로 한 곳을 향해 움직이자 그곳에 그림자 한 줄기가 버둥거리고 있는 걸 보았다. 드낙이 그 그림자에 검지를 가져다 대자 그림자가 순식간에 드낙의 몸속으로 들어왔다.

[살아 숨 쉬는 우리들의 신을 뵙습니다!]

[뿔쥐! 어찌 여기에 들어온 것이냐? 홀로 들어오지 못했을 텐데.]

[10만 명의 뿔쥐가 힘을 합쳐서 겨우 들어왔지만, 대부분의 영혼이 행성에 녹아들었고, 오직 저만 살아남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왜 그런 위험을 무릅썼느냐?]

[드낙 님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다만, 드낙 님이 정말로 저희의 힘을 원하실지 알 길이 몰라서 일단 일부만 들어왔습니다.]

드낙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의 신앙심은 지나칠 정도로 강고했다. 한순간에 10만에 달하는 뿔쥐가 여기에 들어오려다가 화하여 행성에 녹아들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그들의 목숨은 지나치게 무거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