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230화 (1,228/1,239)

1230화

“이 정도면 된 것 같은데?”

곤충을 빻은 고단백질 가루를 한 줌 쥐어 입에 털어 넣은 뒤 그 고소함을 입에 머금은 뿔쥐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다른 뿔쥐도 입에 허옇거나 밝은 갈색 가루를 묻히고 있었다. 심심하면 먹는 걸 즐기는 게 작금의 뿔쥐들이었다.

살이 찌면 더 많은 열량을 몸이 요구해서다. 보통이라면 이를 해결하려고 하겠지만, 뿔쥐는 역시 뿔쥐였다. 털로 수북하게 뒤덮인 동물의 모습을 한 뿔쥐들은 살이 찌면 찔수록 지성 종족들이 귀여워해 준다는 걸 깨달은 지 오래다.

이제는 일부러라도 살을 찌우는 편이었다.

고혈압을 걱정하기에는 뿔쥐들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동시에 그들은 그림자의 힘을 다루고, 드낙의 피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가장 총애받는 권속 악마였다.

그들은 거대한 봉을 지하에 가져왔는데, 그 숫자가 수십 개는 됐다.

그 봉의 길이는 모두 똑같았다. 미터법과 파운드법으로 서로 길이가 다른 걸 제작하기엔 이 세상은 그렇게 혼란스러운 세상이 아니었다. 모두 미터법을 차용했다. 그게 사리에 맞았다.

패권국가 미합중국이 이를 들었다면 항공모함을 이끌고 뚝배기를 깨러 오겠지만 이곳은 테라였다. 드낙이 미국인이었다면 응당 파운드법이 테라에 자리 잡았을 터다.

“실패해서는 안 된다.”

30m에 이르는 봉은 ‘초월 억제기’로 초월의 힘 자체를 무마시키는 강력한 봉이었다. 동시에 초월자를 상대로 활약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악마나 신이나 모두 초월체였고 그들은 육신까지 초월의 힘이 스며들어 있었다.

초월 억제기를 사용하고, 끝없이 전진한다면 분명 초월자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다.

그건 드낙과 세파리아스에게도 유효하지만, 당연히 그걸 모를 드낙과 세파리아스가 아니다. 그들은 ‘경지’에 올랐고, 초월 억제기를 파훼할 수 있었다.

보이지 않아도 전방위를 모두 박살을 낼 수 있는 세파리아스는 초월 억제기에 닿기 전에 초월 억제기를 파괴 가능했다.

드낙은 그냥 도망치면 그만이다.

“기동 준비 완료. 타이머 설정 1분.”

시간이 흘러 막 59초가 되었다. 그리고, 시끌시끌했던 지하가 조용해지더니, 이내 한꺼번에 그림자로 변해서 지상으로 쏘아졌다.

군나르를 토벌하기 위해서 이곳에 모인 뿔쥐의 숫자는 무려 72만에 달했다. 그 뒤로도 계속해서 합류하고 있었고, 일이 잘못된다면 300만~500만의 뿔쥐가 군나르를 노리게 될 것이다.

지상 위 생명체들이 착각한 게 있었는데 지하 연합의 뿔쥐 숫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다. 이런 갑작스러운 일에도 500만의 뿔쥐와 그 외에 수십만의 지하 종족을 투입할 수 있는 역량이 그들에게는 있었다.

벌 떼같이 그림자가 쏟아져 나오며 단박에 하늘마저 뒤덮었다. 군나르는 그러한 압도적인 광경 속에서도 미소를 지을 뿐이다.

“내 힘의 권능을 마주해라!!”

업이 소모되며 막강한 힘이 폭발하듯이 군나르의 몸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 힘은 가시처럼 그림자를 꿰뚫었고, 뿔쥐들의 목숨을 거두었다.

그림자로 변했던 뿔쥐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변하며 피를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 눈빛만은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모든 것은 살아 숨 쉬는 우리들의 신, 드낙 님을 위해서!’

뿔쥐들이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목숨을 초개처럼 던지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물량 앞에서 군나르의 몸이 벌벌 떨렸다.

‘이, 이런……!’

그림자 속에 숨어있던 뿔쥐들의 숫자가 시간이 흐르자 가늠이 되었고, 그 눈에 공포가 서렸다.

‘빠져나가야 한다!’

살육의 즐거움에 빠져있던 군나르가 움직이려는 찰나, 차원 억제기가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며 그에게 고통을 줬다.

“크악?!”

지하 봉에서 나온 차원 억제기는 ‘범위 공격’의 형태가 아니었다. 흰색의 쇠사슬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것이 군나르의 발을 마구잡이로 붙잡더니, 이내 무릎, 허리까지 옭아맸다. 어찌나 숫자가 많은지 쇠사슬에 쇠사슬이 덮어졌다.

‘내 힘이! 내 권능이! 위력이 약해진다!’

군나르는 한순간에 모든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쇠사슬은 그의 권능과 천적 관계에 있었다. 군나르의 ‘힘의 권능’은 말 그대로 업을 소모하여 힘, 그 자체를 쏘아낸다. 소모가 극심하지만, 위력은 비례한다.

경천지동의 힘을 발휘하는 것도 가능했다. 반대로 초월 억제기는 초월의 힘을 억제하고 빼앗는 기기였다. 서로 상반되어 있었다.

“크아아아악!”

발버둥 치는 군나르에게 뿔쥐들이 들러붙었다. 뿔쥐들은 자신이 지닌 마력을 쏟아냈다. 동시에 그들은 권속 악마이기도 했다. 군나르의 힘의 권능에 죽어가면서 뿌려지는 피는 군나르의 힘과 상쇄 현상을 일으켰다.

“이, 버러지들이!”

군나르가 악다구니를 쓰며 마구 발광했다. 아무리 차원 억제기가 있어도 상대는 신이다. 그것도 보통 인신이 아니었다.

하찮은 인신이긴 해도 ‘전술의 신 카실레안’의 선택을 받아 살아남았고 20개에 달하는 우주 낙원을 지배하고 있는 인신이기도 했으며, 카실레안과 한 번 싸우고 살아남아 그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인신이기도 했다.

그런 자가 쉽게 죽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끝없는 소모전이 이어졌다.

밖으로는 지하 종족과 금빛 갑주 기사단이 부딪쳤고, 안으로는 군나르와 뿔쥐들이 부딪쳤다.

“이야아아아아아!!”

“이야아아아아아!!”

군나르의 육신과 정신체가 기합을 내지르며 ‘힘의 권능’을 최고 출력으로 높이며 단박에 치솟아 올랐다.

마지막 발악이었다.

“찍찍!”

“막자!”

“신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아아!!”

그림자로 이루어진 뿔쥐들의 무리에서 오동통통 살이 찐 뿔쥐들의 머리가 톡 튀어나와 고래고래 고함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들은 경쟁하듯 드낙을 위해 목숨을 포기하고 가장 먼저 달려들었다.

그들이 죽으면 혼(魂)이 드낙에게로 향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곤죽이 되어 업으로 전환될 것이다. 이는 곧 저 행성 내부에서 싸우고 있는 드낙에게 도움이 되는 행위였다.

드낙은 죽지 말라고 했지만, 전투 중에 죽는 건 당연한 이치라서 드낙이 말릴 수 없었다.

무얼 말하리. 지금 이 상황은 지금까지 억눌려왔던 뿔쥐들의 신앙심이 해소되는 상황이었다. 스트레스처럼 쌓이기만 했던 신앙심! 그게 이번 사태와 맞물려서 해소되기 시작했으니, 지하 연합의 무지성 돌격은 지극히 당연했다.

이건 성전이다.

유럽에서 펼쳐졌던 성전 같은 성전이 아니다. 이건 진정한 의미로의 성전이었다. 초월의 힘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지배자가 된 드낙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유도한 건 아니지만 결과만 보면 그러했다.

그 초개와 같은 목숨이 1초에도 몇만씩 죽어 나갔고, 군나르의 몸에서 빛의 광채가 사라지며, 그림자가 그 몸에 달라붙었다.

“크아아아아아아―!”

“이런 버러지 같은 놈들! 목숨이 아깝지도 않으냐!”

3성 정예병의 물량으로만 전쟁을 이끌며 죽고 죽이는 학살장을 만들려던 군나르의 계획은 시작부터 개박살이 나고야 말았다. 인근에 있는 뿔쥐들이 죄다 그에게로 몰려왔다.

시작부터 힘의 권능을 곳곳에 뿌리며 어그로를 끌었기 때문이다.

광신도들에게 ‘나는 이단이다!’라고 외친 격이었으니 말 그대로 죽고 싶어서 환장한 셈이다.

군나르는 순식간에 포획됐다. 그는 12시간 내내 발악했지만 결국 벗어날 수 없었고, 뿔쥐 1,880만 마리를 죽이는 것에 그쳐야 했다. 오랜 시간 동안 발악하면서 뿔쥐를 죽인 만큼 그 숫자가 어마어마했다.

주변에서 증원이 될 때까지 붙잡아둘 수 있었기에 가능한 킬 카운트였다. 만약 뿔쥐들이 드낙에 대한 철저한 신앙심이 없었다면 그를 포획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동시에 드낙이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뿔쥐들을 위하지 않았다면, 뿔쥐들 또한 그만큼 죽기 전에 도망쳤을 것이다.

포획된 군나르는 산 채로 녹여져 ‘신격’을 토해내게 됐다.

가장 완벽하고 효율적인 수단으로 가공되었다. 뿔쥐들은 이를 소중하게 보관했다. 나중에 드낙에게 바칠 생각이었다. 드낙이 이를 수락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지만 뿔쥐들은 걱정하지 않았다.

바치는 행위를 통해서 자부심과 드낙의 사랑을 얻을 수 있어서다.

신격을 봉인한 금의 상자를 들어 올린 뿔쥐가 외쳤다.

“우리들의 신앙은 이로써 증명되었다! 우리가 드낙 님의 첫 번째 자손이다!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리라!”

이러한 일은 곳곳에서 이루어졌다.

만시(萬矢)의 신, 아르망(Armand). 투사체의 정신체라 불리는 시험적인 시도가 이루어진 궁수의 인신은 무려 3천만의 뿔쥐를 죽이고 신격을 토해내게 됐다.

대체의 신, 자크(Jacques). 분신과 복제에 능하여 전투와 내정에도 도움을 주는 인신 또한 죽음을 면치 못했다. 그는 겨우 500만의 뿔쥐를 잡아 죽이다가 고꾸라졌다.

대천사의 신, 아르칸젤로(Arcangelo). 5성급 인조 병기를 버프하는 권능을 지닌 아르칸젤로는 가장 오래 버텼지만, 그가 직접 죽인 뿔쥐의 숫자는 10만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와 우주 낙원에서 쏟아져 나오는 인조인간들은 가히 1억에 가까운 지하 종족을 죽였다.

“이런 사실을 난 받아들이지 못한다!”

연달아 패전 소식이 터져나가자 장인의 신, 라이트는 도와줄 생각 없이 바로 도망쳤다. 만신전으로 도망칠 생각이었다. 카실레안도 아래로 내려갔으니, 그를 막을 존재는 존재하지 않았다.

‘카실레안 놈! 원래부터 이럴 생각이었어!’

장인의 인신, 라이트는 카실레안을 욕하면서 도망쳤다. 그를 따르는 우주 낙원 20개가 대기권에 머물다가 빠르게 솟구쳐 오르며 차원 항해를 시작했다.

이것들은 차례대로 사라지고 있었는데, 무력화된 데스 스타에서 이를 관측했다. 다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미사일 발사관이 기이하게 꺾여있거나, 마법 아티팩트의 ‘방향’이 뒤틀어져 있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카실레안이 데스 스타의 인원을 죽이지 않은 까닭은 나중을 위해서였다. 사실 그는 대전략이 약했기에 미래를 그리는 큰 그림은 어찌 그리는지 아직도 긴가민가하고 있었다.

그런 자였기에 돌다리를 두드리듯이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 * *

카실레안을 위치로 한 우주 낙원 5채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카실레안이 먼저 지상으로 훅 떨어진다. 다른 우주 낙원은 약 1,500m의 고도를 유지했다. 홀로 떨어진 카실레안이 가볍게 착지한다.

3.25m에 달한 육신과 떨어지는 속력을 생각하면 괴이했다.

“재밌군.”

이를 지켜본 세파리아스가 미소를 지었다. 카실레안과 세파리아스가 서로 마주 보았다. 그 두 눈에 깃든 광기는 서로 비슷한 종류의 광기였다.

무(武)를 추구하는 광기다. 오직, 무(武) 외에는 관심이 없는 것과도 비슷했다.

말해서 무엇하리, 카실레안이 수백 년 동안 만신전의 뜻대로 싸운 것은 사실 그도 싸우고 싶은 마음이 있기도 했다. 그런 마음이 있었기에 만신전이 카실레안을 무식하게 굴리기도 했다.

다만, 사람의 마음은 갈대라고 하지 않는가. 카실레안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존재했다. 결국 만족한다고 해도 만신전의 손바닥 아래에서 남을 위해서 싸우는 건 기분 나쁜 일이다.

월급 500만 원을 받고, 매년 연봉 인상이 성공해서 50만 원씩 늘어난다고 해도 그건 결국 ‘+’밖에 되지 않는다. 자기가 직접 사장이 되는 순간 고객 1명마다 ‘x’으로 변하게 된다.

고객이 많을수록 곱셉은 무서운 법이다.

카실레안이 독립을 생각하는 건 전혀 이상한 상상이 아니었다. 실력 있는 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것이 독립이다.

작은 나라조차도 힘을 가지게 된다면 자주독립을 원하게 되고, 황제라 칭하고 싶으며, 왕국을 제국으로 만들고 싶기 마련이다.

“네가 여기를 지배하는 신인가? 말로 듣던 중립신과는 전혀 다른 모습인데.”

중립신은 전초극의 권능을 사용하고, 그 챔피언에게는 전초극의 오른팔을 하사한다. 그리고 카실레안은 중립신에 대한 정보를 만신전의 도움으로 많이 얻었으며, 실제로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싸워보기도 했다.

중립신을 죽였지만 죽은 중립신을 두려워하는 게 만신전이라 가능했다.

그런 정보를 가지고 있는 카실레안의 눈에 세파리아스는 전혀 중립신 같지 않았다.

“난 세파리아스 불파겐이다. 신제국의 황제이며, 테라의 절반을 소유하고 있는 초월자이기도 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