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229화 (1,227/1,239)

1229화

43. 대단원 (4)

우주 낙원의 하강은 두 분류로 나누어졌다. 낙하 속도를 줄이지 않는 쪽과 낙하 속도를 줄이는 쪽이다.

장인의 신, 라이트(Wright)는 이름으로 봐도 전투 인신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그가 이끄는 우주 낙원 20개는 적장 궤도에서 속도를 멈추고, 조용히 주둔했다. 만약을 대비해서다.

“드롭 쉽(Drop ship)을 통해서 지원 가능하니까. 난 대기해도 된다는 거지. 내가 고급 인력이다, 이 말이야!”

라이트가 낄낄 웃었다. 그는 이런 쪽에서 머리가 비상했고, 죽고 싶지 않은 겁쟁이였다. 그런 그였기에 불로불사를 꿈꾸게 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이치였다.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고, 성과를 내고.

그렇게 끝까지 살아왔고, 결국엔 인신이 됐다. 과학자로서도 인정을 받았고 그뿐만이 아니라 신이 되면서 다른 것에도 손을 대었다. 오로지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게 꽃피우기도 전에 이곳으로 동원되어서 오게 되었지만.

더불어 너무 약해서 카실레안에게 죽지 않을 수 있었다.

위협이 되는 놈들 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죽여버렸다고 하는데. 아무튼 카실레안의 권능은 권능 같지 않았다.

‘무적자(無敵者).’

라이트는 카실레안이 인신을 죽이는 것을 보고, 다시는 그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 간신배가 된 셈이다. 카실레안이 잘못된 길로 들어서도 라이트는 조언 하나 하지 못할 것이다.

그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만신전은 놈의 진짜 권능을 모른다.’

그 시야가 차원 항해로 사라졌을 때, 카실레안은 본색을 드러냈고 인신들을 사냥했다. 지금 살아남은 이들은 카실레안이 충분히 제어 가능한 이들이었다.

‘애초에 그 권능을 마주하고, 딴마음을 품을 인신이 있기는 한가? 왜 카실레안은 만신전에 권능을 보여주지 않았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살아남은 인신뿐만이 아니라, 이번 원정에 투입된 인신은 모두 신입 인신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알고 있는 정보가 한없이 작았다. 마치 가뭄이 든 강물의 높이만큼 형편없었다.

반면에 만신전은 정보가 많다. 카실레안의 숨겨진 권능을 보고 무슨 생각 할지도 모르나 만신전의 무서움은 신입 인신들도 한참 모를 것이다. 인신을 녹여서 무구를 만드는 정신이 나간 집단이었으니까.

“드롭 쉽을 바로바로 쏠 수 있게 준비해라.”

“예!”

라이트가 편안하게 상황을 관망할 준비를 했다. 그는 내정용 인신이고, 우주 낙원을 수리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울 수 있는 후방 지원형 인신이었다.

작금의 전투는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이기겠지. 카실레안은 괴물이다. 놈이 잠룡이었어.’

라이트의 눈에 우주 낙원이 다섯 갈래로 퍼져나가는 게 보였다.

현재 살아남은 인신은 다섯. 거기에 카실레안까지. 라이트가 빠졌으니, 다섯이다. 그들을 향해서 질량 무기가 쏘아 올려졌다. 대부분이 미사일이었다. 화력을 올리기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했다.

우주 낙원에서도 투사체가 약 25초간 쏟아졌고, 그다음에 우주 낙원 하부에 방어막이 생성됐다.

투사체는 투사체를 요격했고, 폭발 연기를 뚫고 방어막에 닿는 숫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그들은 거침없이 움직였다.

카실레안을 제외한 이들의 목표는 상대의 영토를 점령하고, 최대한 많은 포로를 잡는 일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인 것은 전사의 신, 군나르였다.

“크하하하하! 이게 바로 내 힘이다!”

군나르의 권능은 ‘힘’.

그의 몸 주위로 힘이 득실거렸다. 그건 방어적으로나 공격적으로도 사용 가능했다. 권능으로 힘을 방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힘의 소모가 많다는 게 단점이었다.

업(業)과 격(格)이 높은 인신이어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악마였다면 지쳐서 금방 바스러졌을 것이다. 우주 낙원에는 용병 지구인들이 있었고, 그들의 신앙은 우주 낙원에 배정된 인신이 받게 된다.

말해서 무엇하리. 카실레안은 최종적으로 100명의 인신 중 95명을 쳐 죽였다. 그 반대급부로 우주 낙원을 과도하게 배정받은 게 살아남은 인신들이다.

그들이 받은 업의 양은 상당히 많았다.

군나르는 그 혜택을 직접적으로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업을 소모하는 권능을 가진 자였다. 소모가 많은 만큼 위력도 크다.

“돌격해라, 돌격해!”

군나르가 이끄는 인조인간은 대부분이 3성(星)급이고 기병이다. 용병 지구인은 중요 인력이었기에 우주 낙원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있었다. 우주 낙원 방위를 위해서라도 남아야 했다.

두두두두두!

3성(星) 정예병(Elite).

금빛 갑주 기사단(Gold Armor knights).

황금의 갑주를 입은 기병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들은 거대한 카우치드 랜스를 하늘 높이 추켜올린 채로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갔다.

숲이든, 강이든, 산이든 아무 상관 없었다.

개조와 개량, 강화된 금빛 마갑을 입은 전투마는 동체시력도 좋아서 나무 사이를 능숙하게 지나갔다. 힘차게 땅을 밟으며 점프를 하기도 했다.

그 호쾌한 모습은 비현실적이기 짝이 없었다.

군나르는 한 군대를 맡아서 동쪽으로 향했다.

두두두두……!

드드드드……!

말발굽 소리에 맞춰서 땅이 떨렸다. 명백하게 다른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만큼 교묘했다.

순식간에 땅이 푹 꺼진다.

“오오?”

군나르가 재밌는 표정을 지었다. 반면 금빛 갑주 기사단은 그야말로 매몰당했다. 한순간에 일어난 촌극이었다. 싹 다 무너져 내려서 피해가 상당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정예 인조인간을 죽일 수 없었다.

그들은 다시 몸을 일으켰고, 전투마도 버둥거리며 바로 섰다.

“불꽃을 터트려라! 금빛 갑주!”

군나르의 말에 금빛 갑주 기사단의 몸에서 마법 불꽃이 피어올랐다.

땅 아래는 온도가 높아졌고, 위로는 지상 바닥을 긁고 지나가는 차가운 바람이 아래로 들어갔다. 순식간에 상승기류가 만들어지면서 흙먼지가 하늘 위로 솟구쳐올랐다.

“다 죽여라!”

“뜨나아아아악!!!”

직경 1,500m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구덩이 속에 고립된 이들을 통해서 지하 연합의 군대가 수많은 구멍에서 쏟아져 나왔다.

“쥐새끼 같은 놈들이구나. 하하하!”

군나르가 튀어나오는 놈들의 면면을 살피더니, 이내 비웃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뿔쥐들은 중급 권속 악마라,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나머지의 면면은 형편없는 놈들뿐이다.

하나같이 인간보다 키가 작다. 인간 중에 단신(短身), 단구(短軀)라 불리는 사람보다도 작은 것이 지하 연합에 소속된 이들의 신체 능력이었다.

고블린. 크놀. 두더지 인간. 그림자에 숨어있는 뿔쥐들.

눈으로 보아도 체급은 군나르 쪽의 군대가 압도적이다.

“와아아아아!! 군나르 님을 위하여!!”

그 흙먼지의 상승 속에서 금빛 갑주 기사단이 끝도 없이 아래로 달려왔다. 지상에 있는 금빛 갑주 기사단의 모습은 화염 속으로 들어가는 불나방이나 다름없었다.

“크하하하! 돌격하라! 끝없이 나아가라!”

군나르의 말에 그의 군대가 움직였다. 활활 타오르는 갑주와 이글거리는 불꽃을 사방팔방으로 아무렇게나 쏘아 보내는 모습은 산탄총의 불꽃과 다름없었다.

심지어 아군에게도 들러붙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그러나, 이게 바로 군나르가 원하는 전쟁터의 모습이었다.

“우리들의 살아 숨 쉬는 신께서 승리를 원하신다!”

그때 두더지 인간이 자기 몸보다 큰 방패를 이끌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 뒤에 있던 고블린 창병이 창부리가 부러지도록 움켜쥔 채 함께했다. 겁이 많은 고블린이었지만, ‘신앙’은 능히 그 고블린을 전진하게끔 만들었다.

고블린의 머리 위로 매캐한 화약 연기가 지나갔다. 저급한 화약이었다.

“키케케케케!”

징집된 고블린 하나가 사제로 어디서 구한 건지 모를 권총을 쏘고 있었다. 해골 모양의 금속 장식 따위를 주렁주렁 달아서 누가 보면 프레일로 착각할 정도로 둔기처럼 보였다.

“시야 가리잖아! 그만해!”

“저기에 적이 있다고! 이거 놔!”

징집병의 한계였다. 지상은 엉망이 됐고, 새로운 적이 눈앞에 나타났다. 징집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나라가 힘들면 국민도 힘든 법이다. 지도자가 나 몰라라 기차 타고 룰루랄라 도망가면 그만이지만, 남은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그 상황을 짊어야 할 괴로움이 있었다.

“윽!”

다만 그런 징집병도 이런 전쟁터에서는 난동을 피울 수 없었다. 뒷사람에 밀리고. 뒷사람에 밀리고. 떠밀리듯이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화염이다!”

“마법이다!”

그런 소리가 연달아 터져 나왔다. 그간 테라는 평화 속에서 전쟁을 준비했다. 군수물자는 넘쳐났다. 종종 오래된 군수품이 민간을 통해서 흘러나오거나 골동품으로 팔리지만, 제대로 된 군수품이 징집병에게도 지급됐다.

“핏빛 섬광 발사!”

그 말에 징집병도 어깨끈에 있는 레버를 강하게 잡아당겼다. 낙하산을 펼치는 것과 비슷했지만 효과는 달랐다. 어깨에 멘 배낭의 옆쪽에 매달린 검은색 플라스틱에서 무언가가 발사됐다.

피유우우웅―!

폭죽을 쏠 때 들리는 소리와 매우 흡사했다. 날아가면서 액체를 분사했는데, 모기약처럼 스프레이 형태였다.

그 숫자가 대단히 많았다.

보병들의 보급품 중 하나였으니 당연했다. 안 쓰던 이들도 뒤늦게 쏘아 올렸다. 모두가 비슷한 훈련을 받아서인지 소리를 듣자마자 시행했다.

피유우우웅―!

뒤늦게 쏘아 올려지는 핏빛 섬광은 빛과 함께 붉은색의 액체를 분사했다. 그 액체에 닿은 마법은 무용지물이 됐다.

―뜨나아아아악!

닥치는 대로 고함을 지르며, 자신의 신앙을 울부짖던 지하 연합의 군대가 밀고 들어갔다. 초월의 힘이 사라진 곳에서 필요한 건 육체와 육체의 싸움이다. 그리고, 지하 연합은 머릿수가 가장 많았고, 이곳은 거대한 구렁텅이였다.

누가 이길지 생각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었다.

드드드드……!

본래 있던 자리에서 또다시 진동음이 시작되었고, 그곳에서도 몇 개의 구덩이가 내려앉더니 지하 연합의 지하 종족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기병이 질주하고, 방패와 부딪치고, 생명체가 죽어 나갔다.

고꾸라지는 전투마가 버둥거리며 고블린의 허리를 발로 걷어찼다. 이내 소리 하나 못 지르고, 숨도 못 쉰 채 고블린 전사가 뒤로 넘어간다.

“크하악!”

이어서 마법으로 목을 추적하는 ‘목 쇠사슬’ 공격에 기수가 낙마한다. 그곳에 크놀이 들러붙고, 두더지 인간이 할버드를 내려찍었다.

삽시간에 상황은 난전이 되었지만, 군나르는 오히려 깔깔 호호 하하 웃고 있었다.

‘이거지!’

그가 두 팔을 벌리고, 빙글빙글 몸을 움직였다. 머리통 하나가 그의 근처로 떨어지며 피가 튀었지만,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으으으음―!”

‘만신전의 정형화된 싸움이 아니다.’

그가 원했던 싸움이었다. 4성, 5성 인조인간 따위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건 3성 정예병의 물량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것에 있었다.

실제로 지금도 실시간으로 구렁텅이에 금빛 갑주 기사단이 돌진하고 있었다. 금빛의 질주는 멈추지 않았다. 카우치드 랜스를 앞세우고, 랜스가 박히면 손을 떼고, 검을 뽑아 들었다.

말과 부딪친 상대는 당연히 튕겨 나갔다. 그러나 그 돌진도 결국에는 멈춰진다.

그렇게 그 난전이 되풀이된다.

죽은 자들이 쌓이고, 피비린내가 바람을 타고 군나르의 코로 흠뻑 들어왔다.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고막을 북처럼 두들기고, 그들의 악다구니가 그의 귀로 각자의 모습으로 섬세하게 새겨졌다.

죽고 죽이는 현장이 그 눈에 밟혔다.

“싸우고, 죽여라! 싸우고 또 죽여라!”

군나르가 흥얼흥얼 노래를 불렀다. 그러던 와중에 지하로 뿔쥐들이 모여서 회의했다.

“찍찍. 정말 마음에 안 드는 놈이다. 마치, 우리와의 전쟁을 ‘카드 게임’처럼 여기고 있다.”

플레이어가 절대로 죽지 않는 게임. 그게 바로 카드 게임이다.

“놔둬라. 그만큼 즐긴다는 거다. 우리에게 기회가 더 쉽게 올 거다.”

“기회랄 것도 있나? 지금 그냥 덮치면 될 것 같은데.”

찍찍 소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지하 공간에 모여있는 뿔쥐들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이단이야? 그럼 나도 끼워줘!”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이단이라고 불리는 자들은 지하 연합에서 볼 수 없었다. 드낙은 경제력을 주고, 힘도 준다. 그렇기에 이단이 생길 수가 없었다. 배고픈 이는 신을 욕하지만, 배부른 이는 만족하며 신에게 기도를 올린다.

이런 상황에서 군나르가 사방팔방에 군대를 보냈고, 직접 모습을 드러낸 데다가 권능까지 뿌리고 있었다.

가장 쉽게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아직이다! 좀 조용히 해! 들릴지도 모르잖아!”

“너나 조용히 해!”

“네가 먼저 뛰쳐나갈 거 우리가 모를 줄 알고? 저놈 발목에 밧줄 묶어.”

그들은 한참을 티격태격했지만 전쟁이 벌어지고 있어서 그런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더 큰 소리에 파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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