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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228화 (1,226/1,239)

1228화

* * *

카실레안은 만신전이 배정한 인신들을 죽였다. 그건 만신전들이 분노할 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카실레안의 목줄로 삼을 공산이 크다. 그런데도 카실레안은 그런 짓을 벌였다.

만신전을 위한 개들은 카실레안을 위한 개가 아니다.

중립신이 부활했고, 만신전은 역린이 건드려진 것처럼 발작했다. 고로, 이 원정은 그만큼 위험하다고 판단했기에 쓸데없이 많은 인신들을 정리했다.

‘돌아갈 수는 있지.’

그런데도 카실레안은 만신전으로 돌아가서 다시 활동할 수 있었다. 신병처럼 징집된 인신들은 카실레안의 손가락조차도 자르지 못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최대한 많은 선택지를 가지고 있는 게 개인에게 유리하다. 그리고 카실레안은 개인이다.

그는 만신전에 적을 두었지만 만신전의 영광을 누리지 못하고, 차원과 차원을 오가며 만신전을 위해서 싸워야 했다.

그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카실레안이 개인의 삶을 위해서 최대한 많은 선택지를 고려하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도망칠 수 있는 자유.’

100개에 달하는 우주 낙원은 카실레안이 만신전을 버리고 도망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였다.

중립신이 무서워서 만신전이 카실레안에게 내어준 우주 낙원은 카실레안에게 자유를 주기에 충분했다.

‘이 정도면 다른 차원에서 살아갈 수 있지.’

동시에 신 하나 죽이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반대로 잡아먹힐 수도 있다. 그러니 변수를 차단해야 한다.

데스 스타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비례 골절 대검은 상대의 무게에 비례하여 골절을 유도한다.

이름과는 다르게 유기체보다는 무기체에 더욱 효과적이다. 사람의 인체 표면적 대비 무게보다 강철의 표면적 대비 무게가 더 무겁기 때문이다.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빠르게 상대를 골절시켜 버리는 것이 비례 골절 대검이다.

카실레안이 쥔 대검의 길이는 3m로 카실레안의 키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다만 검 손잡이가 일반적인 대검의 검 손잡이보다 1.5배는 컸다.

그 덕에 대검 제어력이 대단했다.

스극!

대포의 포신을 가볍게 긁었지만, 성무구의 힘으로 인하여 단번에 대포가 꺾였다. 골절상을 입은 뼈처럼 어긋난다. 그것만으로도 사용하지 못하게 됐다.

‘무게가 대단한 수준이다.’

카실레안이 데스 스타의 테두리를 긁어 나갔다. 긁히는 것만으로도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미사일 발사구는 조금만 어긋나도 위험했기에 사용이 불가능해졌다.

‘모든 것이 강철로 이루어져 있다. 표면에는 칠을 해놓았는데, 녹스는 걸 방지할 생각으로 해둔 듯하고……’

카실레안은 데스 스타를 통해서 상대의 역량을 가늠했다.

‘행성을 지배한 건 틀림없어 보인다.’

카실레안은 우뚝 서서 행성을 바라보았다. 푸르른 별의 모습에 지구 생각이 절로 났다.

카실레안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다시 우주 낙원으로 돌아갔다.

데스 스타를 무력화시킨 것만으로도 상대는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위성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데이터는 수집 완료했고, 실시간으로 분석에 들어갔습니다. 완료된 분석은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카실레안이 단말기를 받아 들었다. 손가락으로 휙휙 움직였다.

정확한 정보우위를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싸우는 건 위험하다. 예전이었다면 정보가 부족함에도 위험 속으로 들어갔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카실레안이 겁쟁이라서가 아니다.

상황이 변해서다.

옛날의 카실레안은 한낱 가상 현실 게임 하는 필멸자에 불과했다. 그는 가진 것이 없었고, 그래서 항상 무리를 해야 했다. 무리하지 않으면 앞으로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었다.

소위 가진 놈들은 무리를 하지 말고, 리스크를 짊어지지 말라고 말하지만,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는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다.

한 걸음 나아가는 것만으로도 무리를 해야 하는 게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다.

‘지금은 아니지.’

상황이 변하면 태도도 달라져야 한다.

카실레안은 가진 자다. 그는 성공한 자다. 이제는 넘어지는 걸 걱정해야 한다.

충무공(忠武公)의 마음처럼, 무패(無敗)가 카실레안이 원하는 일이었다.

패배하지 않는 방법은 간단하다. 패배할 수 있는 싸움에 응하지 않는 것이다. 이를 겁쟁이라고 말한다면, 그자는 이충무공(李忠武公)의 업적을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여기는 것이다.

“더 정보를 모아라.”

카실레안은 신중했다. 그는 만신전의 말대로 중립신이 부활한 것을 박살 내야 하지만, 실제로 이를 반드시 행해야겠다는 마음은 없었다.

‘만신전에게 있어서 난 그저 전쟁 도구일 뿐이니까.’

노력하면 바뀔 거라 생각했다. 전공을 쌓다 보면 변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만신전은 카실레안을 우대했지만, 그런 것으로는 채울 수 없는 시기가 올 수밖에 없다.

그 누가 전쟁터에서 수백 년을 보내고 싶어 할까? 만신전의 생각은 허무맹랑했다.

“정보를 모으려면 현지에 도착해서 활동해야 합니다.”

“지상보다 지하 정보가 더 중요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지상은 무너졌고, 지하에서 쏟아지는 지하 종족이 많아서다. 그들은 고블린이기도 했고, 크놀이기도 했으며, 두더지 인간이기도, 뿔 쥐이기도 했다.

그 다양한 개체 구성은 괴이할 정도였다.

피부색이 달라도 서로 싸우고 죽이고, 도축하고 베어 무는 것이 인간이다. 종족이 다른 이들이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건 이상론에 지나지 않았다.

그게 두 눈에 보이니, 당황스러울 것이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환경이었기에, 정보가 매우 필요한 상황이다.

그만큼 종족의 다양성은 지키기 힘든 것이고, 이례적이다. 당장 다민족 국가인 미국만 해도 얼마나 대단한 자유의 국가인가? 서로를 향해 총을 쏘고 죽여대어도 결국 그 이득이 더 크다.

하물며 종족은 그 이득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하나의 국가 아래 자리 잡을 수 있게만 한다면 말이다.

‘그게 불가능하니까, 문제지.’

만신전이 괜히 인조인간을 생산하는 게 아니었다. 3성(星)~5성(星)으로 나누어서 구분 지어 생산품처럼 생산하는 건 통제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들은 아니다. 하나같이 살아있다는 게 느껴진다.’

단말기에는 계속해서 정보가 업데이트됐다. 정보 위성이 가져온 고해상 사진과 짧은 동영상도 카실레안에게는 큰 도움이 됐다.

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을 생각하는 건 카실레안이 수백 년 동안 쌓아온 능력이었다. 심지어 그는 만신전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의 위업을 달성했다.

그 비밀 때문에라도 카실레안은 중립신을 찾기 위한 여정에 올라탔다.

‘여기에 대신이 있다는 건가. 하지만,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

아쉬운 일이다.

“악마와 싸우고 있고… 구성이 다른 것을 보면 숫자는 최소 둘 이상.”

거기에 행성의 지표면은 운석 대멸망을 당한 것처럼 크레이터로 가득했다. 도시가 무너져 내렸으며, 태양이 떠올랐음에도 땅이 박살 나면서 생긴 먼지구름 때문에 어두컴컴했다.

하루가 다르게 식물이 죽어가고 있었다. 땅 곳곳에서는 여력이 있는 곳에서만 마법으로 만든 빛이 둥둥 떠 있을 뿐이었다.

‘심각하군.’

만약 수백억 인구가 살아가는 지구였다면, 200억 이상이 죽었을 정도의 참상이다.

‘여기는 그 정도는 아니다.’

지구는 아프리카 판, 북아메리카 판, 남아메리카 판,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판, 남극 판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이 행성은 다르다. 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지표면의 형태가 지구와는 상이했다.

‘거기에 대륙도 하나뿐.’

지구 또한 그런 게 있었던 적이 있다.

3억 년 전, 즉 고생대 말기부터 중생대 초기까지 존재했던 초대륙, 판게아다.

‘지구처럼 발전된 곳이 아니다. 지상의 인구는 기껏 해봤자 수십억 수준이겠지.’

적어도 10억에서 15억이 운석으로 죽은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권속 악마의 침공까지…….

‘가만히 놔둬도 패한다.’

변수가 있다면 단 하나.

‘지하에서 튀어나온 지하 종족의 역량이겠지.’

―내려가서 다 쳐부수면 되는 일 아닙니까?

같은 인신이지만, 전사의 신 군나르(Gunnar)는 카실레안 앞에서 아주 조심스러웠다. 너무 조심스러워져서 웃기긴 했다.

하지만 징집되어 인신이 된 군나르가 ‘전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은 건 그 기질 덕분이었다.

카실레안이 그나마 신뢰하는 인신 중 하나다.

“아직은 아니다. 그리고 날 왜 찾아왔지? 지금은 대기하라고 했을 텐데.”

―몸이 근질거려서… 죄송합니다.

“필요할 때 얼마든지 날뛸 수 있게 해주마.”

카실레안이 축객령을 내리자 군나르의 정신체가 물러갔다.

“음.”

단말기의 업데이트를 확인한 카실레안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해당 데이터는 물류의 방향을 파악하며, 전투가 벌어지는 최전방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지상은 파괴되었고, 물량의 이동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곧, 파악하기 쉽다는 뜻이다.

카실레안은 최전방에서의 싸움을 목도할 수 있었다.

―……!

소리 없는 참격.

검은 앞으로 향하지만, 모든 방위에서 이루어지는 죽음의 향기.

‘믿을 수 없다. 내가 보고 있는 게 현실인가?’

그만큼 ‘그 초월자’의 힘은 보고도 믿을 수가 없는 힘이다. 보이는 걸 베어버리는 권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권능을 몇 번 쓰면 더는 쓰지 못하게 될 것이다.

‘권능 외의 다른 힘…인가. 하지만 그건 대신으로 향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다른 수단을 마주하다니. 얄궂은 일이다.’

카실레안은 그 광경 속에서 알 수 없는 ‘재능’을 느꼈다.

‘거기에 신장 7m의 거인이라니. 웃기지도 않는다.’

최고의 효율을 지닌 카실레안의 육신은 3.25m다. 그 두 배가 넘는 7m의 신장은 비효율의 극치로, 전투에 결코 좋지 않다.

마신장 오우거가 그에 준하는 덩치를 지니고 있지만, 놈들은 최강이라 불려도 죽지 않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장수에 속할 뿐, 군주가 되는 일은 결코 없다.

그것만으로도 놈들의 한계가 명확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무식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실로 무인답다.’

총과 대포, 전차가 앞으로 나아갈 때, 마지막 기병은 무슨 생각을 하고 달려 나갔을까.

카실레안은 세파리아스를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 다만, 그런 생각은 잠깐뿐이었다.

그가 단말기를 조작해 관련 정보를 더욱 정밀하기 확보하기 위한 명령을 내렸다.

‘수비적인 효율성을 완전히 버렸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거고, 사정거리도 압도적으로 넓다.’

시간이 지날수록 카실레안은 심각해졌다.

‘이런 놈과 싸우는 건 싫다.’

질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득이 없다.

‘아니, 정말로 없나?’

카실레안이 히죽 웃었다. 그는 전략가가 아니다. 뒷짐 지고 지도를 보고, 대계를 세우는 건 입맛에 맞지도 않고, 그럴 재능도 없었다.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만신전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동시에 그는 무인이기도 했다.

싸우는 걸 싫어하지 않고, 오히려 좋아한다.

‘세상을 베어버리는 것 같은 참격이다.’

검격 없이 상대가 말끔하게 절단되어서 바닥으로 떨어진다.

바닥으로 떨어지면서도 내부에 있는 기생충이 이빨을 드리운 채 달려들었지만, 그마저도 머리를 반으로 쪼갰다.

수백, 수천의 참격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보면 볼수록 소름이 쭉 뻗는다. 적어도 카실레안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행이라면, 놈들이 지금 싸우고 있다는 점이다.”

시간은 충분했다. 하지만 카실레안은 영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호승심이 삐쭉 튀어나온다.

‘여기는 중립신이 부활한 곳. 지배해야 할 필요성은 있다.’

싸우고 싶어졌다. 몸이 달아올랐다. 그저 싸운다는 생각만으로도 그 열기가 그 몸에서 조용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는 쓸데없는 명분을 이유로 삼았다.

‘…필요하다면 협상을 해야 한다. 여기에 거점을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어차피 난 만신전을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했으니까. 중간 거점을 여기에 두고, 다른 곳으로 향해도 된다. 여차하면 여기서 차원 교역을 하는 것도 좋을지도.’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그러려면 내 힘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만신전에 수백 년 동안 묶여서 전쟁을 치른 내가 가진 힘은 만신전에게 지금까지 들키지 않았다. 이번에 저런 놈을 통해서 시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이 엿가락처럼 길어지고, 이내 그 무엇도 아닌 것으로 변해 버렸다.

말 그대로 타협에 지나지 않았고, 자기변명에 불가했다. 그는 그 어떤 피해를 봐도, 저 아래에서 괴이하게 싸우는 힘을 지닌 신과 싸우고 싶어졌다.

“지상을 점거해라. 우리가 최강이다.”

우주 낙원 100개가 대륙으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그중 다섯은 카실레안과 함께 해안가 너머에 있는 지상을 노렸다. 정확하게 세파리아스가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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