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227화 (1,225/1,239)

1227화

* * *

‘소아귀로 만든 연결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그렇게 해도 대악마는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안전장치는 안전장치일 뿐이다.

‘그러니, 소아귀 연결고리부터 끊어내는 건 어리석은 일이지.’

하지만 위기감을 느끼게 할 수는 있다.

드낙은 그냥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걸 서서히 깨닫고 있었다.

‘대악마들은 포기하지 않을 거다.’

소모하는 업이 많을수록 반드시 얻어야 했다.

대악마들의 이동속도가 빨라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들은 점점 더 많은 자원을 소모하기 시작했다.

그게 드낙이 원하는 일이었다.

‘대악마들이 업을 더 많이 소모하게 되었으니, 나 또한 행동에 변화를 줘야겠지.’

기만해야 한다.

전쟁은 기만이고, 전투 또한 기만이다. 누가 얼마나 상대를 잘 속이냐에 따라서 결과가 확연하게 달라진다.

‘상식적으로 대악마들이 업의 소모를 더 하여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데, 표적과의 거리를 계속 좁히지 못한다? 다른 마음을 품기 좋지.’

그만큼 이곳은 위험한 곳이다. 행성 내부로 들어가는 건 악마에게 있어서 큰 결심이다. 중립신의 이름값이 아니었다면 꿈에도 못 꾸는 상황이다.

‘내가 대악마를 죽여서 그 업을 행성에 넣는 건 과정이 하나 더 추가된다.’

반면 대악마가 업을 소모하는 건 곧바로 행성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테라의 행성 기질이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기질이 변한다고 갑자기 불모지가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행성의 기운이 강해지며, 생명체가 살기 더 적합한 곳이 될 것이다.

권속 악마 또한 번영시킬 수 있으니. 대악마들에게도 좋은 일이다.

‘거기에 악마 세계 2개가 합쳐지고 있다.’

유례없는 상황이다. 그 끝에 행성이 어찌 될지는 이 행성의 지배자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터다.

드낙은 단번에 파동으로 변해 순식간에 거리를 빠르게 벌리고 먼 곳에 자리 잡았다.

* * *

‘아닛?!’

아카타베루가 갑자기 이동속도를 늘려 사라진 꽃봉오리를 보며 당황했다. 하지만 움직임을 멈추진 않았다.

‘아스모데. 포기를 할 줄 모르는구나.’

중립신의 안배를 취하더라도 자신과 싸워야 하는데, 포기를 몰랐다. 너무 건방졌다.

‘상관없다. 쳐 죽이면 될 일이다.’

마룡(魔龍).

아카타베루는 무조건 대형체의 형태로 살아왔다.

종종 덩치를 크게 하기 위해 자신의 악마 세계마저도 한입에 집어삼켜 행성을 파괴한 이력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공격수단이 늘어났으니까.’

대악마로서 벽을 하나 넘었다고 볼 수 있다.

그건 아스모데도 마찬가지지만, 아카타베루는 그녀에게 패배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거기에 아카타베루와 아스모데 모두 조급함이 존재했다.

‘그 초월자.’

드낙에 대해 생각했다. 모든 공간을 비틀었음에도 상처 하나 주지 못했다. 반대로 드낙도 아카타베루에게 큰 피해를 주지 못했다.

아카타베루는 악마다. 악마는 육신이 조금 찢긴다고 해서 죽는 게 아니다.

육체는 악마의 힘이고, 반대로 악마의 힘은 곧 육체이기 때문이다. 육체를 분쇄기에 갈아도 악마의 힘이 남아있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재생된다.

‘놈의 공격력은 그리 대단치 못했다. 적어도 악마에게는 큰 위협은 되지 않는다.’

위협적이지만 대단한 위협이라 할 수는 없었다.

‘회피력은 대단하지. 그걸 파훼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아카타베루는 이미 그에 대한 생각도 해놨다. 그는 수많은 별을 파괴한 대악마였지만 반대로 파괴하지 못한 별도 무수히 많았다.

* * *

전략적으로 후퇴를 감행했다.

야생에서 도망을 안 치는 짐승은 그냥 뒈질 뿐이다. 얼마나 빨리 뒈지든 상관없는 일이지만 종(種) 자체가 멸종할 것이다.

그렇기에 아카타베루는 언제든지 도망을 선택할 수 있었다.

‘악마 세계가 좀 아깝긴 하지만, 중립신의 안배를 막고 도망가면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다.’

악마 세계는 그냥 세월만 투자하면 만들 수 있다.

‘아스모데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

권속 악마는 버리는 패다.

지상에서 그들을 호위하는 데 일부를 두고 나머지에게는 딱히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그들은 대륙을 침공하고 있을 것이다.

무질서해 보이지만, 모두 대악마의 계획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다른 놈들의 신경은 그것으로 묶이게 된다. 그게 놈들의 약점이지.’

행성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중요한 건 그들의 삶이고, 생명이다.

반면 권속 악마는 그딴 게 없다. 악마가 죽으라고 하면 죽는 게 권속 악마다.

그들은 꽃을 가꾸고, 공장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다. 오직 파괴를 위해서 살아간다. 오직 죽기 위해서 살아갈 뿐이다.

지켜야 할 놈과 지켜야 할 것이 없는 놈의 차이.

이를 통해서 이득을 본 건 대악마뿐이다.

세파리아스가 해안가 근처에 발이 묶인 것만 봐도 대단한 성과라 할 수 있다.

‘저기에 있다!’

한참을 그 방향으로 날아갔을 때, 감각에 중립신의 기운이 잡혔다. 그 순간 다시 사라졌다.

‘놈도 무리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계속해서 도망만 쳤는데, 지금은 마치 전력 질주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런 짓을 오래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때, 아스모데가 아카타베루의 정신과 부딪쳤다.

―어리석다!

아카타베루도 이에 대응해 업을 폭발하듯이 터트렸다.

소아귀의 연결고리가 쭉 뻗어나가며 그물처럼 펼쳐졌다. 이내 아스모데와 아카타베루가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꽃봉오리가 움직임을 변화한 건 그만큼 중요한 힌트였다.

‘거기에 지키고 있는 놈도 없다.’

대악마가 행성 내부에 들어섰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거다. 그런 판단이 가능한 이유는 지금도 죽어가고 있는 권속 악마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빠른 죽음은 평범하지 않았고, 대악마와 싸운 초월자들이 권속 악마를 처리하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고 여겨졌다.

실제로 세파리아스가 권속 악마들을 인간들을 위해서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죽어라! 중립신의 안배는 내 것이다!

대악마의 영혼과 영혼이 서로 뒤섞였다. 소아귀의 업(業)도 뒤섞였다.

서로 부딪치고, 스파크가 튀기고, 이내 그 파편이 행성의 아래로, 깊은 곳으로 흘러내려 갔다.

침전(沈澱)된다.

영혼과 영혼의 싸움. 힘과 힘의 싸움. 업과 업의 부딪힘. 모든 것이 파괴되고 있었다. 그중 누구 하나가 살아남을지 전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드낙 또한 이를 알고 있었다. 그는 대악마보다 훨씬 먼 거리를 감지할 수 있었다.

재능의 차이였다.

초월자라고 해서 전지전능한 것은 아니다.

같은 초월자라도 잘하는 것과 못 하는 것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아카타베루와 아스모데는 드낙보다 감지 능력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서로 싸우는 와중에는 그 감지 능력이 더욱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심지어 드낙이 지금 그들을 코앞에서 관찰하고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원하던 일은 아니었는데, 설마 이 정도로 어리석을 줄은……. 뭔가 맥이 빠진다.’

기회가 보이자 바로 행동에 나섰다.

‘심지어 정보에 대한 확신이 100% 없는데도 주사위를 던졌다.’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라 할 수 있는 건 다른 대악마다. 대악마를 처리하는 건 그들에게 필요한 일이다.

‘환경도 무시 못 하지. 왜 여기서 싸우는지 알겠어.’

악마가 육신을 가질 수 있는 행성의 업. 그 깊은 바다의 밖이었다면 싸움은 끝도 없이 이어졌을 것이다.

드낙이 압도적인 위력을 보여줘도 아카타베루가 물러서지 않았던 것처럼, 대악마를 죽이는 건 아주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나야 좋지.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되겠다.’

드낙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대악마 둘 중 하나가 죽으면 남은 대악마를 죽이는 건 어렵지 않다. 현실 세계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도 가능했다.

두 마리여서 문제였지, 한 마리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거기에 결착도 빠르지.’

육체가 없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아카타베루보다는 아스모데가 이겼으면 하는데…….’

대악마 아카타베루는 전승된 이야기에서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공간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여기서 빠져나갈 때, 놈의 그 능력은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 * *

파지지직… 파직.

우주 공간에 스파크가 튀었다. 그리고 곧 선이 길쭉하게 그어지며 빛이 터져 나오며 우주 낙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주 낙원은 도시 하나가 통째로 움직이는 것처럼 거대했다. 그 내부는 100% 활용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지상에는 보호막과 함께 거주지가 마련되어 있다.

100여 개에 달하는 우주 낙원의 형태는 조금 투박했고, 어긋남도 존재했다. 보는 이로 하여금 ‘고물’처럼 보이는 지점도 보였다.

카실레안이 이곳에 오는 동안 내부에서 인신을 죽이고, 파벌싸움을 종결시켰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오면서 살아남은 인신은 고작 다섯에 불과했다.

그들 하나가 20개에 달하는 우주 낙원을 관리하고 있었다. 5성 천사(Seraph)급이 많았기에 얼추 운용할 수 있었다.

카실레안은 우주 낙원들의 중심에서 조금 치우친 곳의 주변을 훑었다.

“인공 행성? 엄청난 크기인데. 전투 역량은 잃은 것처럼 보이는데…….”

데스 스타를 본 카실레안이 진지한 눈으로 상태를 파악했다. 한순간에 적의 전투력을 가늠하는 건 그의 특기 중 하나가 됐다.

“확인해 보고 와야겠다. 이대로라면 위험하니까.”

무기 체계를 마비시키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 이상의 역량을 소모하기는 싫었다.

호랑이와 싸울 때 소모되는 것과 소를 농사일에 투입하는 데 소모되는 것은 확연히 다른 법이다.

카실레안이 홀로 빠져나왔다. 그의 육신은 3.25m에 달했다. 세파리아스보다 절반에 가까운 육신이다. 카실레안이 더 큰 육체를 원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는 효율성을 중요시했다.

덩치가 커지면 표면적은 3배로 늘어난다. 그건 전략의 신, 카실레안에게 있어서 죽음과 일맥상통했다.

그가 뻗어나간다.

발아래에서 간헐적으로 충격파가 터져나갔다. 그 외에 다른 추진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평범한 이는 결코 제어하지 못했을 것이다.

길쭉한 인간의 형태, 거기에 자세에 따라서 또 균형이 달라지는 거인의 몸으로 발바닥에 있는 충격파 추진을 통해서 균형을 잡으며 가고 싶은 곳으로 간다는 건 범인(凡人)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카실레안은 가능했다. 그는 싸움 하나는 굉장히 잘하는 편이었다. 그의 권능 또한 싸움과 관련된 것이 많았다.

데스 스타에서 간헐적으로 마법 포격이 카실레안을 노렸다. 종종 미사일도 발사됐다.

사일은 RPG-7의 추진체처럼 2번 추진되며, 그다음에 최대한 날아가다가 폭발하는 형식이었다.

‘흠. 나쁘지 않다. 우주 낙원에서 얻은 지구의 기술을 통해서 만든 것 같네.’

단순하지만, 훌륭하다. 심플한 것이 최고인 법이다.

카실레안의 손이 뒤로 향했다.

등 뒤에 자리잡혀 있는 원형 고리가 회전했고 무기고 고리(Armory Ring)가 딱 멈췄다.

카실레안은 푸른색의 단창을 뽑아 들었다. 그다음에 고리가 또 살짝 움직였고, 오른손에 방패를 집어 들었다.

방패는 길쭉한 막대였는데, 순식간에 펼쳐졌다. 방패에서 방패와 똑같은 크기의 껍데기가 뻗어나갔다. 그 껍데기는 투명했지만, 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눈에 확연하게 들어왔다.

그 껍데기가 무수히 쏟아져 나오며 카실레안보다 빠르게 뻗어나갔다.

투사체를 막기 위한 ‘방패 껍질’은 카실레안을 위해서 만들어진 성무구(聖武具)다. 그것도 단순한 것이 아니다. 지구에서 우수한 사람을 잡아다가 인신으로 만들고, 만들자마자 바로 녹여서 만든 것이다.

당사자에게는 끔찍한 일이지만, 지구는 만신전의 독재를 인정했다. 누가 뒈지던, 이용당하여 목이 날아가든, 녹여져서 무기나 방어구가 된다고 해도 반박할 수 없었다.

독재란 그런 것이다.

껍질 방패는 쾌속의 권능을 보유하고 있다. 껍질이 굉장히 빠르게 움직이는 것도 모두 권능의 힘이었다. 다만, 카실레안의 권능이 아닌 방패에 깃들어 있는 권능이었다.

소리 없는 폭음이 곳곳에서 터져나갔다. 카실레안은 유유히 뻗어나갔다.

마법 포격은 단청을 휘둘러서 굴절시켰다. 긁는 푸른 단창(Scratched blue javelin)은 마법 포격을 조금 긁는 것만으로도 굴절시켜 냈다.

이는 접촉굴절의 권능이었다. 성무구를 만드는 데에도 노하우가 필요했는데, 굴절의 권능은 힘이 많이 소모되는 권능이었기에 성무구에 담지 못했다. 담는다 해도 위력이 낮아졌다.

그 대체재가 바로 접촉굴절의 권능이다. 접촉해서 긁으면 굴절이 되는 식이다.

순식간에 데스 스타에 도착한 카실레안이 무기를 바꾸었다.

비례 골절 대검을 뽑아 들었다. 한 손으로도 들 수 있었는데, 그걸로 그가 지닌 육신이 인간을 초월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시작해 볼까. 인명피해는 나지 않도록 조절해야 해.’

카실레안은 아직 판단하지 않았다. 그의 결심은 거북이처럼 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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