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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226화 (1,224/1,239)

1226화

대전략은 성공한 것 같았다.

드워프는 키메라들의 시선에 확 와닿았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포격은 간헐적이어서 충분히 싸울 만하다고 여겼다.

전투는 4시간 동안 이어졌지만 드워프들은 계속 버티고 있었다.

드워프들은 권속 악마 키메라의 몸에 들어가도 뱉어지는 놈들이다. 몸의 내구성이 ‘살아있는 유기체’ 같지 않았고, 단단한 금속과 다를 바 없었다.

퍼버벙!

후방에서 자주포가 불을 뿜었다. 사열된 자주포만 해도 500대가 넘어섰기에 그 위용은 실로 대단했다.

자주포 사이로 병사가 오고 가며, 자주 포탄을 끝없이 옮기고 쌓고 있었다.

가을이었지만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다. 서늘한 바람도 땀을 식히진 못했다.

드드드드……!

지진이 일어나자 모두 자리에서 멈췄다. 지진이 일어났는데도 무리하게 움직이는 건 교육받지 못한 무식한 놈들뿐이다.

침묵이 이어졌다.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이곳이 야지이기 때문에 주변에 떨어질 만한 물건이 없다는 점이다. 천막 안에 있는 이들이나 자잘한 상처를 얻게 됐다.

지진은 1시간 간격. 혹은 10분 간격. 그것도 아니면 진정될 듯하다가 다시 격해지기도 했다.

권속 악마들이 해양에서 지진을 일으킨 여파는 내륙에도 여파를 끼쳤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드드드드드드!!

‘점점 심해진다.’

땅속에서 무언가가 솟구쳐 올랐다. 어찌나 큰 놈인지, 수십t에 달하는 자주포가 뒤집혔다.

“쿠어어어어어!”

거대한 애벌레가 입에서 생선 따위를 토해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데몬 웜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을 정도였다. 데몬 웜이 등장함과 동시에 그가 나온 구덩이에서 해수(海水)가 소용돌이치며 쏟아져 나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소금 냄새와 바다 특유의 비린내가 심하게 났다.

“기습이다!”

“아카타베루의 괴물!”

“맞서 싸워!”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바닷물의 양은 상상 이상이어서, 물자와 함께 사람도 떠밀려 내려갔다. 목록을 작성하던 고블린도 예외는 아니었다.

떠밀려간 이들은 나무나 고저 차가 높은 곳으로 굴러떨어져 큰 부상을 입거나 기절했다. 구덩이에 머리를 처박고 기절한 자들은 호흡하지 못해 허망하게 목숨을 잃기도 했다.

생선들은 악마의 힘으로 인해 육체가 바뀌어 있었다. 다리가 달려 있거나, 아가미에 촉수 같은 것이 꿈틀거렸다. 혹은 주둥이에 기생충이 잔뜩 뒤엉켜 있기도 했다.

“크, 크아아아아악!”

생선에 얼굴을 얻어맞은 병사가 버둥거렸다. 처음에는 그저 생채기가 생긴 것뿐이지만, 생선에 있던 기생충이 눈알에 옮겨붙어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후 이어진 끔찍한 비명에 분위기가 급변했다.

서어억.

15m에 달하는 데몬 웜이 조각이 나며 핏물이 되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7m에 이르는 거대한 키를 지닌 세파리아스가 사방을 돌아다니며 싹 다 죽여버렸다.

병사는 살아남았고, 악마 생선은 죽었다. 기생충까지도 세심하게 베어버렸다. 영향 무력은 그런 것마저도 가능했다.

상황이 정리된 후, 곧 보고가 들어왔다.

“동시다발적인 기습입니다! 땅속에서 권속 악마들이 닥치는 대로 튀어나오고 있습니다!”

“흠.”

‘좋지 않다.’

드워프들은 오래 버틸 수 있다. 반면 이쪽의 화력 지원이 시간이 지날수록 낮아지기에, 결국엔 후퇴할 수밖에 없다.

콰앙―!

멀리서 폭음이 들려왔다. 방향을 확인한 세파리아스의 얼굴이 더욱 굳는다.

“무기고가……!”

산이 무너져 내리며, 산사태가 일어났다. 해수가 흙과 뒤섞이며 진흙탕이 되어서 나무까지 쓸려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곳에 데몬 웜이 있었다.

‘엉망이다. 하지만 이게 악마들의 싸움이겠지.’

악마들의 차원 침공.

모든 생명체를 죽이고, 그들을 공포와 절망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끝없는 전쟁이 필요하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악마들은 깊은 지하를 통해서 더 깊은 내륙으로 향하고 있을 게 뻔하다.

지상은 세파리아스와 다종족 연합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기에 곧바로 대처할 수 있었지만, 지하는 다르다.

“뭐야?”

“으아아악!”

데몬 웜이 병사들 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그 뒤가 더 심했다. 해수가 쏟아져 나온다. 바닷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고블린이나 크놀이 휩쓸려 떠내려갔다.

열심히 두드리고 있던 용광로에 바닷물이 들어가며 물이 폭발해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삽시간에 엉망이 됐다.

대장간의 망치가 물속에서 휘둘러지며 크놀 대장장이의 머리통에 박혔다.

비현실적일 정도로 호쾌하게 두개골이 부서졌다. 한순간에 수몰됐고, 헤엄쳐서 도망쳤으나, 부족했다. 버둥거림이 이내 사라지며 축 늘어진다.

그곳에 뿔 쥐들이 그림자에서 튀어나와서 주문을 외웠다. 크놀의 몸 주위로 공기 방울이 생기며 팽창해 나갔다.

크놀이 입에서 물을 토해냈다. 전신이 바르르 떨린다. 크놀들이 구출되기 시작했지만, 상황은 심각했다.

곡물 포대가 바닷물에 잔뜩 적셔졌다. 보기만 해도 짜다. 거기에 바닷물만 섞인 게 아니었다. 흙도 뒤섞였다.

온갖 이물질이 밀과 쌀 사이사이에 들러붙었다.

‘이건 못 써먹는다.’

보급에 차질이 생겼다. 지상은 운석으로 크게 파괴가 되었기에 식량 보급은 지하 연합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그게 망가졌다.

권속 악마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바닷물이 가장 무서웠다. 식량과 물건을 불태우는 것보다도 심한 것이 바닷물에 젖는 것이다.

세파리아스의 정신체 조금이 떨어져 나가 멀리 이동했다. 정신은 빛에 준하는 속력을 보여줬다.

―드워프들에게 후퇴하라고 전해라. 우리도 후퇴한다.

보급이 없으면 전선은 붕괴되기에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군대의 진격 속도는 훈련도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진격 거리는 보급에 결정된다. 날고 기는 장군이라도 그건 불변의 진리였다.

상대 국가의 역량을 알 수 있다면, 패배할 장군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에서 상대 역량을 가늠하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기를 쓰고 정보를 얻어도 누락되거나, 부풀려진 게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세파리아스의 결단은 지극히 당연했다.

정석 중의 정석이다.

‘무기고까지 파괴되고 있으니, 말 다 했다.’

전투 역량을 잃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지하 연합은 바닷물에 매장당하고 있을 지경이다. 바다와 싸워서 이겼다는 국가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기가 찰 노릇이다.”

세파리아스가 데몬 웜을 분해시키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검은 점들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 검은 점은 점점 커지며 붉은색으로 변해 갔다.

붉은 용이다. 그리고 놈들은 전투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 이쪽을 거들떠도 보고 있지 않았다.

‘내륙 깊이 들어가겠단 소리.’

놈들을 쫓아가고 싶었지만, 이곳에는 바닷물이 들어가도 버릴 수 없는 군수 물품이 너무 많았다.

‘테라는 걷잡을 수 없는 피해를 받았다.’

이걸 회복하는 데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암담할 지경이다. 하지만, 그런 절망적인 생각을 하면서도 세파리아스의 눈에는 한 줄기, 현기(玄機)가 스며 들어가 있었다.

‘태양 식민지.’

비장의 한 수가 있다. 일종의 두 집 살림이다. 한 집이 무너져도, 다른 집이 있기에 안심할 수 있었다.

‘드낙… 놈은 이걸 예상했을까?’

테라 행성은 커지겠지만, 테라의 필멸자들은 끔찍하게 죽어갈 것이다. 드낙이 그러한 선택을 했다고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되레, 대악마들이 행성 내부에서 활동하고 있으니, 여기까지 신경 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세파리아스가 움직였다.

그의 거체가 권속 악마를 죽일 때마다 환호성 같은 울부짖음이 따라왔다.

환호성을 지르기에는 지금 상황은 지나치게 절박하다. 제삼자는 경기를 지켜보며 환호성을 지르지만, 그 속에 절박함은 없다.

자기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도와줬을 때, 그때, 환호성보다는 괴성 같은 것이 튀어나오게 마련이다.

세파리아스의 얼굴이 미소가 번진다.

그는 이런 삶을 원했다.

인간으로 태어나, 엘프의 손에 조각된 상(像)이 되는 삶보다는, 인간을 이끄는 삶을 살아가고 싶었다.

* * *

행성 내부는 비정상적인 공간이었다.

물리적으로 내핵에 들어서는 것이지만, 행성 업(業)의 바닷속에 들어가는 행위이기도 했다.

초월자의 경우엔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카르마와 관련된 공간이라 할 수 있었다.

드낙은 그곳에 빠르게 익숙해졌다.

그는 암살자의 재능이 가장 높지만, 파도 숲에서 활동한 사냥꾼이기도 했다.

사냥꾼으로서의 재능은 분명 일품이나, 천재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사냥꾼으로서의 경험이 많았고, 기술 또한 충분히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류 사냥꾼은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빠를 수밖에 없다. 거친 숲과 산을 경험해 봤기 때문이다.

특히 드낙은 홀로서기나 다름없는 사냥꾼 시기를 보냈었다.

‘중요한 건 결국 업의 소모.’

행성의 업으로 이루어진 바다는 그나마 닮은 것이 바다지, 물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곳에서 이동하기 위해서는 업을 소모해야 한다. 대악마 두 놈도 드낙을 쫓으면서 업을 소모하는 건 불가피한 일이었다.

반면 드낙은 ‘세상을 속이는 경지’를 통해서 이동하고 있었다. 여기에 업의 소모는 없다.

그러나 드낙은 몸에서 업을 뿌리고 있었다. 업을 소모하고 있다는 잔향이 남아야 악마들이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악마들은 업의 싸움에서 패배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게 어디까지 갈까?’

아슬아슬한 상황이 오면, 결국 도망칠 것이다.

‘그건 막아야 해.’

드낙은 이 환경에 적응하면서 어떻게 대악마의 영혼을 붙잡아둘지 크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서서히 형태를 잡아가고 있었다.

‘굴라.’

새로운 것을 떠올리진 않았다. 새로운 발명을 해내는 건 어려운 일이다. 망치로 대못을 박듯이 뚝딱 나오지 않는다.

드낙은 행성에 갇힌 굴라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너무 쉽게 생각한 게 아쉽다. 조금 더 조사해 볼걸.’

태양 차원의 초월자. 굴라가 행성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 이유, 과정, 결과 따위를 조금이라도 상세하게 지식으로 취급했어야 했다.

‘지식은 힘이다.’

드낙은 이를 간과했다. 할 일이 많아서 놓쳐 버렸다.

그리고 굴라는 이미 몰락한 초월자다. 그는 태양 행성을 벗어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그런 놈에게서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드낙은 하고 싶은 일이 많기도 했다. 드낙은 자신이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부인들의 살 내음을 맡으며 시간을 보내거나, 해가 뜨고, 해가 저무는 것을 멍하게 바라보며 시간을 허비할 여유가 있었다.

아니, 있어야만 했다.

그런 보상을 탐닉해야 할 정도로 드낙은 힘든 삶을 살았다. 그는 그러한 보상을 강제로라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연결고리를 죽여야 한다.’

그렇게 하면 대악마의 영혼은 대악마의 육신으로 가지 못할 것이다.

드낙은 조용히 놈들을 살피고 인상을 찌푸렸다.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드낙과는 달랐다.

‘그래서 이놈들이 나한테 어떻게든 접근하려고 애를 쓰는 거였어. 의심조차도 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것 때문인가.’

연결고리는 대악마가 아닌 다른 것의 업으로 엮어진 실이었다. 그리고 그 실은 하나가 아니다. 대단히 많았으며 지금도 사라지고 생기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수많은 실타래가 대악마의 영혼을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

반면 드낙은 그런 게 없었다.

그 차이 때문에 대악마들은 전혀 의심하지 않고, 신의 꽃봉오리를 탐하려고 드낙을 쫓아갈 생각을 했다.

‘소아귀(小兒鬼)의 업이다.’

드낙은 몇 번의 시도 끝에 그 실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알 수 있었다.

소아귀의 업이 끝없이 대악마를 보호해 주고, 안전장치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행성에서 대악마의 업이 소모되는 것을 조금은 줄여주고 있었다.

‘효율적이다.’

거기에 대악마 둘 다 그런 방식을 쓰고 있었다. ‘세상을 속이는 짓’을 할 수 있는 드낙은 쉽게 행성의 업에 뛰어들고, 빠져나갈 수 있지만 그건 그만이 할 수 있는 짓이다.

보통은 저런 식으로 완충지대를 만들어야 했다.

반대로 굴라는 그걸 소홀히 했다가 화를 당했다.

드낙은 그들의 방식을 보고 깨우칠 수 있었다.

‘암살해야 할 건 세 가지.’

소아귀의 업으로 만든 안전장치. 아카타베루와 이름 모를 또 하나의 대악마의 영혼이다.

드낙이 조용히 자신의 칼을 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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