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5화
42. 대단원 (3)
오션 오크 함대가 후퇴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해저 지진 때문이다.
동시에 쓰나미가 발생해서 해안가가 엉망이 됐다.
“와하하하하!!”
나무에 부딪히고, 지어진 창고에 머리를 박고, 그대로 파도에 휩쓸려서 멀리까지 간 드워프가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웃었다.
“재밌다.”
“오션 오크 놈들. 호방한 것처럼 보이더니, 이거 생각보다 맹탕이구만!!”
드워프들은 오션 오크들의 겉멋이 주제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콰앙―!
굉음이 터져나갔다. 쓰나미와 함께 휩쓸린 기뢰가 드워프와 부딪치며 폭발했다. 물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주변 기뢰에 과하게 들어간 화약 가루가 검게 퍼져나갔다.
곳곳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드워프 중 각성제를 과하게 먹은 드워프는 일시적이지만 이명에 시달릴 정도였다.
“악마 같은 새끼들!”
악마들은 기뢰에 대한 존재를 몰랐지만, 얻어걸린 셈이었다. 그래도 드워프들은 권속 악마를 욕했다.
투명화 마법까지 걸려 있고, 마력이 외부로 전혀 누출되지 않는 최첨단 기뢰였다.
야만적인 권속 악마들은 몸으로 부딪치는 수밖에 없었는데, 하필이면 머메이드의 전략을 몸으로 겪으며 머메이드의 전략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놀지만 말고 물을 퍼내! 참호를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냐! 무너진 참호도 고쳐야 한다!”
드워프 하나가 고래고래 고함을 내질렀다. 분명 사업하는 드워프일 것이 분명했다. 야망이 있으니, 저렇게 열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
여기에 동원된 것도 짜증이 날 것이다. 순번에서 밀렸다는 뜻이다.
“진짜 완전히 망했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참호를 만들었는데.”
드워프 하나가 자신이 만든 보금자리를 보고 있었다. 완전히 수몰되어 있다. 물을 다 퍼내더라도 예전처럼 기능하지는 못할 것이다.
일단 전력이 망가졌다. 몇몇 드워프가 다시 전력을 끌어오고 있어서 걱정은 없었다.
“제기랄.”
현자 타임이 강하게 찾아왔다. 허탈했다.
해안가는 엉망이 됐다. 떠밀려온 거대한 배가 거꾸로 뒤집혀서 꼴사납게 해안가에 널브러져 있었다.
이것도 치워야 했다.
일개미가 큰 나뭇잎을 물고 움직이는 것처럼 작은 드워프가 큰 배를 옮기기 시작했다. 무식한 방법이었다.
“뭐하러 치워? 참호 안에서 살 텐데!”
“내 자리에서는 해안가가 안 보여. 치워야 해.”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난 내 길을 걸어간다아아아아앗!!”
드워프들끼리는 수평관계가 보통이다.
예전에는 가문의 힘을 통해서 수직적 관계가 존재했지만 40년이 지난 지금은 평등해졌다. 드워프니까 가능한 일이다.
“전력이 연결됐다!”
드워프들은 TV를 통해서 바다의 상황을 볼 수 있었다. 오션 오크들은 후퇴했지만, 정찰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능했다. 특히 드론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단순히 마법을 통해서 배터리에 전력을 공급하는 방법으로도 드론 혁명이 가능했다.
그 덕에 쉽게 악마들을 정찰 가능했다.
파괴되기도 했지만, 상관없었다. 숫자가 충분했기 때문이다.
초장거리 비행이 가능했고, 무게 또한 늘어났다. 덩치가 클수록 마력을 더 집어넣을 수 있고, 다양한 마법을 부여할 수 있었다.
표면적이 넓어지면 무게가 늘어나며, 비효율성이 증가하는 물리적 법칙을 마법을 통해서 어느 정도 감쇄 가능했다.
드워프들이 TV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군사 채널이라 볼 수 있는 이들이 정해져 있었다. 암호와 주파수는 당연했으며, 추가적인 단말기도 있어야 했다.
오션 오크들의 대전략은 실패했다.
권속 악마 군대가 쓰나미로 바다를 헤집어서 기뢰가 쓸려나갔기 때문이다.
한발 빠르게 도망쳤음에도 오션 오크들은 피해를 입었다. 배가 아무리 빨라봤자 쓰나미보다는 느렸다.
그 쓰나미에는 오션 오크들의 기뢰가 있었다.
“젠장, 너무 늦게 예언을 해버렸다!”
주술사가 끔찍한 표정을 지었다. 마법 방패와 온갖 방어 마법이 함선을 둘렀지만, 한계가 명확했다.
기뢰의 폭발반경만 집중해서 막았다면 달라졌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마법 체계는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천재가 나타나야 했지만 마법 천재는 아직도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드낙과 세파리아스의 근본이 무인인 것도 한몫했다.
그들은 마법사 부흥을 위해서 노력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존재 자체가 마법사들의 영향력을 축소시켰다.
엘프조차도 순수 마법사로 살아가는 이들은 적었다. 대부분 사업을 걸치고 있거나, 과학 기술을 탐닉하고 있었다.
인간이 수천 년간 쌓아 올린 과학이라는 놈은 정말 매력적인 학문이었다.
과학은 엘프들이 마법을 부전공으로 선택할 정도로 대단한 ‘악귀’였다.
―오션 오크들은 피해를 입고, 북쪽으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기뢰 대전략이 실패했는데요.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옆에 있던 패널이 입을 떼기 시작했다. 드워프들도 입을 털기 바빴다.
“어떻게 되기는. 우리가 바보가 된 거지.”
“지하 통로는 확실하지? 보급이 안 되면 답 없어.”
“그쪽은 지하 연합이 있어. 전투가 시작되면 보급을 얼마든지 해주고, 돈도 안 받는다더라.”
“역시 지하 연합은 화끈하다니까.”
“맞아. 이스핀 백작의 손을 주술과 마법으로 복제해 보자고 제안한 것도 그들이잖아. 인간들은 겁에 질려서 반대했지.”
드워프 제국과 이스핀 백작의 관계는 을과 갑의 관계였다.
갑은 이스핀 백작이다. 그 덕에 인간들은 상당한 혜택을 이어받았다. 이스핀은 인간 종족이기 때문이다. 다만, 문서상으로는 명예 드워프다.
현재는 인간보다 드워프 제국의 입김이 더 크기 때문에 이스핀은 전산상으로는 드워프가 되어버렸다.
말장난 같지만 드워프 제국은 ‘진심’이다.
이스핀 백작은 부부 금실도 좋아서 자식이 생겨나면 그 손으로 벌꿀 주를 담는 것도 드워프 제국이 막대한 돈을 주면서 제의한 결과였다.
“곧 오겠어. 제대로 준비한다!”
“오우!”
드워프들이 열심히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몇 번의 대전략이 시작도 전에 실패했지만, 참호 대전략은 분명 성공할 것이다.
드워프들이 그렇게 만들 터다.
다행이라면 단단히 밀봉된 상자 덕분에 화약은 멀쩡하다는 점이다.
대포 같은 총기는 훌륭한 대화 수단이다. 구경이 작은 총알은 사용하지도 않았다. 도움이 안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총기는 인간 상대로는 과잉 화력이지만, 권속 악마 상대로는 위력이 약했다.
권속 악마들의 군세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드워프들의 눈으로는 그저 새까만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득실거리는 곰팡이들이 해안가에서 떠밀려 오는 것 같이 보였다.
“드론 사출!”
드워프들이 큰 컨테이너에서 거대한 드론을 꺼내서 올려 보냈다. 정찰 드론의 몸체에는 렌즈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곧 영상이 출력된다. 대부분의 드워프가 이를 전송받아서 볼 수 있다. 참호에 설치한 TV가 아니라 소형 단말기로도 수신이 가능했다.
“이건… 권속 악마라기보다는…….”
그건 ‘뒤섞인 것’ 혹은 ‘마구 뒤엉킨 것’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엉망이다.
“키메라 같은데.”
오래 산 드워프들은 쉽게 그 명칭을 떠올릴 수 있었다. 흑마법사들이 ‘실패작’이라는 것과 비슷했다.
다만 적의 군세는 실패작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대단했다.
“바다와는 어울리지 않은 권속 악마라서 좋아했는데.”
“저런 식으로 변해 버리면 오히려 더 성가시다.”
드워프들이 무기를 쥐었다. 대포를 소중하게 끌어안고 준비하는 드워프도 있었다.
드워프 지휘부에서는 연락이 오고 가고 있었다.
“지금 화력 요청을 원한다.”
―치익. 탄착까지 30~62초.
워낙 넓게 퍼져 있었기에 탄착 시점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30초 만에 포탄이 해안가에 도착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무려 62초까지 걸리는 것도 있었다. 중요한 점은 이 해안가는 걸레짝처럼 박살이 날 것이라는 점이다.
시간이 흘렀다.
습관적으로 각성제를 먹는 소리나, 자신들이 만든 술을 마시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곧 해안가에 키메라가 도착했다. 마구 뒤엉킨 권속 악마들의 집합체는 군체라고 불러도 흠잡을 데가 없었다.
“좋아! 내 크고 아름다운 대포를…….”
“수그려! 미친놈아!”
드워프가 당겼다. 참호 밖에서 대포를 꺼내는 미친 드워프가 참호 속을 쏘옥 들어갔다. 워낙 작아서 추락하듯이 떨어졌다.
“이크! 에크!”
나뒹군 드워프가 앓는 소리를 냈다. 동시에 끝도 없이 포격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장난 아닐걸. 얼마나 쏘아대고 있는 거지?”
“몰라도 반나절은 쏟아질 것이다. 하지만 작전은 그게 아냐. 너도 들어서 알잖아.”
“끅!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취기가 상당히 돌아있었다. 각성제와 술을 동시에 복용한 듯싶다.
“이 새끼, 맛이 아주 가버렸는데.”
“난 괜찮아!”
“포격은 시간이 정해져 있다. 1시간 간격이다! 그래야 키메라가 우리 쪽을 볼 수 있으니까!”
포격은 1시간 이어졌고, 마지막 포탄이 착탄 하자마자 드워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고함을 지르며 대포를 쏘거나, 무기를 들고 아우성치기도 했다. 피떡이 된 키메라가 다시 한번 진격해 오기 시작했다.
1시간 동안 싸우고, 참호 전투도 이어나갔다. 굴속에 들어온 키메라는 온갖 해양 생물들이 뒤섞여 있었고, 그냥 이빨만 창처럼 길쭉하게 튀어나오기도 했다.
“크아아아아!”
놈들이 거침없이 비집고 들어왔다. 드워프 하나가 입구를 틀어막았다. 그러자 키메라의 몸에서 즙 같은 것이 삐져나오더니 벽에 달라붙으면서 핏줄처럼 순식간에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우오오오!”
뒤에 있던 드워프 하나가 손에서 거대한 철 덩어리를 쥐고 고함을 내질렀다.
아티팩트가 반응하며 빛이 쏟아진다. 빛에 노출된 키메라는 매캐한 연기를 뿜어냈다. 내부 공간이 순식간에 500°C 이상의 고열로 들끓어 올랐다.
기체가 팽창하며 밖으로 순식간에 빠져나가더니, 뻥 소리가 터지며 키메라가 수축했다가 마치 팝콘처럼 튀어 나갔다.
차가운 공기가 내부로 거칠게 들어왔다.
“제법인데.”
“저놈들, 계속 변한다! 방심하지 마!”
키메라의 본질은 권속 악마다.
그들은 육지에 오자마자 쓸데없는 것을 버리기 시작했다. 아가미를 버리고, 그 장기를 다시 흡수한다. 아가미가 있던 자리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지만 이내 새살이 돋으며 근육이 생기고 뼈가 쑤컹하고 갑자기 크게 튀어나온다.
이내 다리가 됐다.
다그닥! 다그닥!
말발굽 소리가 났다. 놈들은 하나의 덩어리였기에 살점을 뜯고, 망치로 부숴도 의미가 없었다.
‘죽인다’는 행위가 되지 못했다. 그저 피해만 줄 수 있을 뿐이다.
이들이 군체가 된 이유는 쓰나미와 해양 환경이 주효했다.
쓰나미에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하급 권속 악마는 똘똘 뭉치다 못해 하나가 됐다.
해양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식량이 필요했다. 그리고 물고기를 잡으려면 협력이 필수적이다.
돌고래도 협력해서 물고기를 사냥한다. 펭귄을 잡을 때도 범고래 여러 마리가 협동한다. 그렇기에 권속 악마들도 자연스럽게 협력하게 됐다.
키메라의 대부분이 소아귀로 이루어져 있는 건 이러한 이유다.
다만, 다른 중상위 권속 악마도 뒤섞여 있었기에 방심할 수 없었다.
화약으로 피떡으로 만들어도 소실되는 부분은 적었다. 질량 무기보다는 오히려 마법 타격이 더 효과적이었다. 악마의 힘을 상쇄시킬 수 있었다.
콰드드득!
미사일이 내려앉은 곳에 폭음이 터지고 나고, 미사일의 파편에서 얼음 조각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그곳을 밟고 지나간 키메라의 발에 얼음 파편이 박히더니 주변 살덩어리를 얼려 버렸고, 그대로 무너져 내린다.
동사한 신체는 다시 합쳐지지 못했다. 살덩어리 내부에 있는 악마의 힘이 소진됐기 때문이다.
지나가던 아가리가 달린 생선이 이를 집어 먹었다.
힘은 없어도 질량은 가지고 있었기에 훌륭한 양식이 될 수 있다.
드워프들은 점점 구석으로 내몰렸고, 이내 몇몇은 집어삼켜지기도 했다. 하지만 엉뚱한 곳에서 다시 뱉어졌다.
“이런 제기랄! 더러워!”
드워프는 소화시킬 수가 없었다.
그런 드워프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예정된 시간이 됐고, 또 한 번 포격 세례가 떨어졌다.
키메라가 그 속에서 마구 버둥거린다. 코앞에 드워프가 있었고, 참호 속에도 드워프를 관측 가능했다.
거기에 홀린 키메라는 계속해서 자신을 들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