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2화
* * *
솔직히 아카타베루와 아스모데는 진실로 협력하지 않았다. 그저 공동전선에 섰을 뿐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행성을 뒤지기 시작했다. 해저를 탐험하고, 땅을 부수고 들어가기도 했다.
넓게 해저를 훑는 것도 빠질 수 없었고, 이내 새하얀 나무뿌리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건 서서히 퍼져나가고 있었으며 중립신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들이 중립신의 냄새를 알고 있는 이유는 그들이 이곳에 온 이유가 마신이 정보를 내어줬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중립신의 이것저것에 대한 정보를 마신 세력이 내어줬고, 중립신의 기운은 그중에 하나였다.
‘이거다.’
‘행성 속에 있다.’
둘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 뿌리는 땅에서부터 난 것이고, 이 땅은 테라라 불리는 행성이다. 그 행성 속에 중립신의 시체가 녹아 있을 게 틀림없다.
두 대악마는 곧바로 행성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그건 아주 위험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보정장치가 필요했다.
먼저 그들은 악마 세계를 경유해서 행성에 접속하기로 했다. 둘은 의논하지 않았지만 둘 다 똑같은 선택을 했다.
드낙은 거침없이 테라 행성에 녹아들었지만, 그건 아주 미친 짓이었다. 잘못하면 자아를 잃고, 행성과 하나가 될 수도 있다.
태양 차원의 행성에 갇혀서 영영 못 나오게 된 초월자 ‘굴라’ 또한 이 케이스였다. 그는 행성으로 도망쳤다가 다시는 못 나오게 됐다. 그는 자신의 역량이 ‘반 토막’이 나서 못 나온다고 생각했지만, 훨씬 복잡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런 사례를 봤을 때, 두 대악마의 행동은 실로 합당했다.
아카타베루의 몸에 소아귀들이 들러붙었다. 소아귀들은 순식간에 죽어 나갔다. 그들의 업이 행성으로 흡수됐다.
푸더덕. 푸더더덕.
소아귀들이 아카타베루의 몸에 들러붙었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마치, 배변하는 것처럼 그들의 사체가 끝없이 떨어져 내렸다.
드낙은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감을 최대한 넓혔다. 업의 파도 속에서 그런 식으로 반응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지만, 드낙은 기어코 해냈다.
‘왔다.’
드낙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다만 주먹의 감촉은 없다. 행성 내부, 그 업의 바닷속에 들어가 있는 게 드낙의 현 상황이었다. 그건 대악마들도 마찬가지다.
이곳에서는 새로운 방식의 싸움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건 ‘업(業)의 소모’를 견디는 것에 있었다.
‘이곳은 행성 내부이기도 하지만, 물리적 법칙이 어긋난 곳이니까.’
이런 곳에서 활동하면 업을 소모하게 된다. 그건 대악마도 마찬가지다.
소모된 업 중 일부는 행성에 녹는다. 드낙과 세파리아스가 노리는 것이 이 부분이다.
동시에 드낙은 대단히 효율성이 높았다. 그는 ‘세상을 속이는 힘’을 지니고, 그런 경지에 올라있었기에 행성 또한 속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업의 소모를 극단적으로 낮출 수 있었다.
‘파동 세계에 숨어있다가, 대악마가 오기 전에 가짜 껍질과 그 껍질 속에 있는 신격의 꽃봉오리를 옮기면 된다.’
드낙은 이 행위를 통해서 대악마의 업을 행성에 녹일 생각이었다. 소모전인 셈이다.
그리고 상황은 드낙에게 더 유리하다.
‘두 놈이나 왔다.’
여기에 들어올 수 있는 놈은 오직 초월자뿐이다.
물론 예외도 존재한다. 수많은 노력 끝에 수많은 마법 장치를 통해서 행성 내부의 업(業)을 관측할 수 있는 마법사가 있을 수도 있었다.
‘지금은 불가능한 일이지.’
운석이 테라 대륙의 절반을 불구덩이로 만들었다. 그렇기에 어지간한 수작질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또한 테라 대륙은 강력한 행정력을 토대로 개개인의 마력 소모율까지 기록하고 있었다.
단가가 최대한 낮게 마력을 공급하는 것도 모두 범죄를 표적하기 위함이다.
종종 독특한 아이디어를 추구하는 마법 연구자들이 막대한 마력을 소모했다가 걸려서 초빙 당하기도 한다.
그들은 마도 기술의 발전에 분명 도움이 된다.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길을 걷기 때문이다.
당장 실생활에 도움이 안 되지만, 언젠가는 도움이 될 것이다.
강대국들이 기초과학에 무지막지한 돈을 붓는 것이 괜한 게 아니다.
그런 예외는 지금 당장은 무시할 만했다. 전쟁이 벌어졌으니까.
‘크크크.’
드낙이 인성 좋지 않은 웃음소리를 냈다. 즐거웠다.
대악마는 죽이기 힘든 놈들이다.
드낙은 실제로 놈과 마주했고 부딪혔다. 놈은 드낙을 죽이지 못했지만 드낙 또한 놈을 죽이지 못했다.
그런 평행선의 구도 속에서 이번 일은 제법 재미나는 일이다. 상대의 힘을 흡수하는 것이기도 했다.
정확히는 행성 테라가 받아먹는 것이 되겠지만 최종 승리자는 자신이 되리라고 드낙은 의심하고 있지 않았다. 대악마도 마찬가지일 터다.
별에 투입한 업은 별을 잡아먹고 파괴하면서 다시 회수할 수 있어서 지금 그들은 업을 소모하면서 중립신의 그림자를 쫓고 있었다.
‘온다, 온다, 온다…….’
드낙은 잠깐 기다리다가 그대로 가짜 껍질과 신격의 꽃봉오리를 들고 순식간에 이동했다.
저들의 감각 내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대로 놀아보자.’
이것은 숨바꼭질이 아니다.
대악마는 중립신의 기운과 비슷한 신격의 꽃봉오리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어디에 있는지 알 수밖에 없다.
‘꼬리잡기에 가깝지.’
살랑거리는 꼬리를 대악마는 끝없이 쫓아올 것이다.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업을 이 행성에 토해내는지도 모른 채 계속해서 그 꼬리를 잡으려고 노력할 터였다.
‘잡힐 수가 없다.’
노력해도 그들은 닿을 수 없었다.
드낙은 이레귤러고, 중립신의 품에서 태어난 후계자이기도 했다.
결코 그들과 같지 않았다.
* * *
우주가 요동을 쳤다. ‘1차’로 뻗어나간 운석 마수 다음으로 ‘2차’ 운석 마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쓰레기 행성 하나를 통째로 소모해서 만든 운석 마수는 마신으로부터 이름을 받은 미노타우르스들이 계획한 가장 강력하고도 가장 효율적이며 가장 큰 이득을 쉽게 챙길 수 있었다.
그들은 무슨 수를 써도 40년~100년까지도 걸리는 차원 항해 끝에 도달하는 테라를 점령할 생각이 없었다.
멀어도 너무 멀었다.
동시에 그림자 후작의 수작질이 통하지 않은 것도 두려운 일이었다.
로노베 후작의 그림자 마수는 가장 강력한 행성 투입 마수다. 행성 자원을 통해서 몸을 확장하고 키우기 때문에 효율성도 높다.
그런 걸 훌륭히 막아냈으니, 테라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가질 수 없다면 파괴하는 것이 알맞다.
그리고 그들은 운석 마수라는 놈을 통해서 테라에게 징벌을 내렸다.
당연히 간단하지 않았다.
두 차례에 걸쳐서 텀을 줬다. 간사하기 짝이 없었다.
동시에 1차에 60%에 달하는 전력을 투사했다. 2차는 고작 비율로 따지면 40%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크기가 대단히 컸다. 단 32개의 초거대 운석으로 변했다.
모두 크기는 제각각이었지만 최소 10km에서 최대 50km는 됐다. 행성 하나 박살 내는 데 어려움이 전혀 없었다.
대신 속력은 그리 빠르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우주를 떠다니는 운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운석에 비하면 그 속력은 1/4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도 위협적이다.
드낙의 부재로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또한 우주 전함은 재무장을 위해서 대기권 아래로 내려가서 지상에 착륙한 상태였다.
오직 데스 스타만이 이를 관측했다.
곧바로 전파가 테라로 향했다. 메시지 마법은 사용하지 않았다. 속도가 형편없기 때문이다. 개선을 한 메시지 마법이라도 전파의 속력을 따라잡지 못한다.
동시에 그럴 마력도 없었다.
한 차례 전투를 치렀던 데스 스타는 모든 등이 암전되었고, 최소한의 개인 조명에 의존한 채 기동하고 있었다. 몸을 추스르는 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등장한 운석 마수의 2차 침공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오크들의 대예언조차도 이를 명확하게 점찍지 못했다.
대악마가 지니는 거대한 악업의 소용돌이에서 모든 상황과 극적인 연출을 하나하나 점지하기에는 오크들의 수준은 필멸자에 불과했다.
또한 막대한 주력이 들어가는 것도 문제였다.
필멸자는 탐욕스러운 존재였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수십억을 써야 한다는 것엔 동의하지 않을 수 있었다. 지금의 행복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건 오크들도 마찬가지였다.
유례없는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고, 막대한 힘을 소모하는 대예언은 그 횟수를 매년 줄여나갔다.
“하필 이럴 때에…….”
세파리아스가 인상을 썼다. 그의 몸에서 정신체가 뻗어 나와서 순식간에 지하 동공으로 움직였다.
그곳은 뿔 쥐들이 만든 폐쇄 동공이다. 정신체가 아니고서는 시간을 들여서 올 수 있었다.
7m에 달하는 전투 육신에 정신체가 들어가자마자 주변이 소리 없이 베이며, 잔해가 아래로 떨어진다. 그 위로 세파리아스가 솟구쳐 올랐다.
운석과 마주했지만, 때는 이미 많이 흘러있었다.
드낙이 있어야만 완벽한 방위가 가능했다. 드낙이 없는 상황에서는 완벽한 방위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세파리아스는 이미 한 번 ‘운석 마수’와 조우했다.
그 전투는 복기한 지 오래였으며, 운석 마수를 해부해 보기도 했다.
이유는 간단.
놈들이 바다가 아니라 대륙을 노렸고, 해안가에 있는 도시를 중심적으로 타격했으며, 내륙에서 도시만 골라서 파괴행위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뇌가 없을 수가 없지.’
그 위치는 운석의 한중간이다.
운석 내부에는 장기가 존재했고, 뇌도 그 장기와 함께 뒤엉켜 있었다. 말 그대로 최소한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마수였다. 그 외에는 모든 것이 운석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건 희귀한 광물이기도 했고, 평범한 암석이기도 했다.
희귀하고 진귀하며 유용한 광물을 미노타우르스들이 따로 빼돌리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미노타우르스들도 사활을 걸었다. 선별하고, 옮기고 다른 대체재를 만들어 오는 일조차도 걷어차고 집중했다.
그 집중한 결과가 두 차례에 걸친 운석 마수 침공이다.
처음엔 한 번으로 끝날 것이라 생각할 정도로 압도적인 숫자로 밀어붙였다. 큰 놈도 많았고, 위협적이었다.
세파리아스는 운석 마수를 정확하게 두 쪽으로 갈라서 뇌를 찾아서 잘라냈다.
하지만 이마저도 미노타우르스에 의해서 농락당했다.
1차 침공 운석 마수와 2차 침공 운석 마수의 내장 위치가 달랐다. 내장과 뇌가 뒤섞여 있었기에 그곳의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 운석 마수는 죽지 않는다.
한 번에 한 번 베어서 뇌를 파괴하지 못하면, 더욱 손이 바빠진다.
영향무력의 사정거리를 최대한 증가시켰지만 계속해서 이동해야 한다는 걸 생각했을 때, 이는 아주 번거로운 일이었다.
세파리아스의 이동속도도 문제였다. 육신이 커지고, 팔 길이도 길고, 검도 7m의 신장과 비례하여 커졌다.
그에 비례하여 중력이 무거워졌기에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한계가 존재했다.
‘선택해야 한다.’
세파리아스는 자신이 선택의 기로에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다만 그 선택은 지극히 극단적이었다.
다 죽이느냐, 덜 죽이느냐의 차이에 불과했다.
세파리아스는 운석을 충분히 쪼개서 테라로 보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운석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대기권에 진입한 운석이 붉게 타올랐다.
세상이 다시 한번 붉은 세상으로 변했다.
해가 저물지도 않았음에도 노을이 진 것처럼 모든 것이 붉게 변한다.
이글거리는 연기가 공기를 타고 피부에 닿았다.
“아…….”
하늘에서 빠르게 떨어지는 수많은 운석. 수천으로 갈라진 운석이 다시 한번 테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이들은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라디오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렸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패닉에 빠졌다.
‘도, 도망쳐야…….’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무엇이라도. 지금이라도. 당장 무언가를 해야 했다.
희망이라는 것을 생각하지도 않았다. 머릿속은 그저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 결과가 죽음인지 삶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런 걸 사고할 틈도 없었다.
건물의 지하로. 마차를 타거나 말을 타고 밖으로. 자동차를 탄 이들도 있었고, 비행 마법으로 날아오르다가 서로 부딪쳐서 추락하기도 했다.
피가 튀었다.
혼란이 다시 시작됐다.
꺼져 있는 화마에 다시 한번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멀리서 우주 전함 하나가 위로 올라가다 운석과 충돌해 크게 기울면서 인근 도시로 추락하며 폭음이 퍼져나갔다.
우주 전함은 운석 마수가 도시만 집중적으로 노리기에 안전하다고 생각했을지 몰라도 세파리아스에게 조각난 운석은 도시를 노리지 않았다.
무작위로 떨어져 내렸다.
끔찍한 죽음이 피를 닦고 있는 테라에게 다시 한번 떨어져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