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219화 (1,217/1,239)

1219화

* * *

“찍찍. 이게 그것인가?”

“그렇다. 살아 숨 쉬는 우리들의 신께서 활약한 모습이 담겨 있지.”

“요즘 언론에 돈을 안 뿌린 것 같던데. 뜨―낙님에 대한 위대한 묘사가 고작 형용사 세 개라니… 찍찍!”

“불쾌하지만 우리들의 신께서 활약하신 것이 너무 많았다고 변명하더군.”

“그게 무슨 소리지?”

“지문에 그 업적을 다 써야 하는데, 지문은 한계가 있지 않나.”

“그래! 그건 그렇지!”

뿔 쥐들은 제각각 신앙의 정도가 달랐다. 아주 독한 놈이 있다면 적당히 유한 놈도 있었다. 40년이라는 세월 동안 수많은 세대로 쪼개졌기 때문이다.

지금 50대와 10대가 좋아하는 게 다른 것처럼, 세대 차이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격차가 존재했다.

드낙이 행하는 바를 하나하나 모으는 별종들이 존재했는데, 그들은 돈도 많이 벌어서 막대한 소비를 하는 계층이기도 했다.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했으니, 돈이 많았고 드낙에 대한 신앙을 퍼뜨리는 데 열정적이다.

이런 열성 신도(Zealot)는 뿔 쥐 사회에서도 그 권한이 막강했다.

당연하다. 남들은 자기 개인의 ‘욕망’에 소비를 한다면 이들은 드낙을 위해서 소비를 한다.

그 차이는 상상 이상의 격차를 만들어 낸다.

오늘은 한우를 먹는다면 그건 개인의 욕망이다. 자기 연봉의 절반이라는 합리적인 계산으로 구매한 자동차 또한 개인의 욕망이다.

10평에서 20평, 20평에서 30평. 서서히 넓은 곳으로 이사하며 집을 바꾸며 집을 구매하는 것 또한 개인의 욕망이다.

‘열성 신도 놈들은 그런 게 없다.’

그들은 자신의 장비에 큰돈을 쓰지 않는다. 그저 노력하고 또 노력하며 실력을 갈고닦는다. 관리라면 행정의 귀신이 되려고 코피가 터지도록 휴가 때 책을 읽는다.

놀지 않고 끝없는 향상심을 가지고 있으며 검소하게 생활하여 돈이 남는다. 남는 돈으로는 영향력을 구매하기 위해 투자를 하거나 공금을 모아서 큰 세력이 된다.

이러니, 그들이 큰 세력이 안 될 수가 없었다.

실패해도 다음을 기약하기도 좋았다. 허투루 돈을 쓰지 않고, 돈을 써야 할 때도 돈을 안 쓰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덤조차도 ‘한 개’뿐이다. 화장한 것을 무덤 하나를 깊게 파서 그곳에 함께 뿌려놓는다.

가족묘보다 더 효율을 중시하는 셈이다. 그 덕에 많은 이들이 죽었지만, 가족묘는 아직도 널널했다.

그런 열성 신도들은 드낙과 관련된 것에는 소비를 제법 하는 편이었는데, 이를 통해서 신앙을 더욱 퍼뜨리고 고취하기 위해서였다.

당연히 쓸데없는 것도 쓸모있는 것으로 바꾸었다.

[오늘의 살아 숨 쉬는 신을 구독하면 한 달간 10% 페이백!]

[좋아요. 1개에 동화 1닢? 지금 당장 따봉을 눌러서 신앙에 참여하고 돈도 받자!]

황당무계한 이벤트가 한 달에 한 번씩 있거나, 여러 개인 경우도 있었다. 그것 모두 돈과 관련되어 있었기에 많은 이들이 드낙을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결과가 됐다.

그게 열성 신도들의 노림수이기도 했다.

자기 구에 매달 30만 원씩 돈을 직접 쥐여주는 지역구의원이 있다면? 상상 이상의 환호를 받을 터다.

드낙은 돈 때문에라도 믿고 기도를 해야 하는 존재가 되고 있었다.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금력으로 만들어진 신앙심이다. 허나 그 또한 신앙심이었다.

열성 신도 두 명은 지하로 향하는 입구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아주 위험한 임무였다.

하늘에서는 운석이 떨어지고, 도시의 건물은 파괴되고, 무너져 내렸다.

대부분의 전사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큰 피해를 입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 입구를 지킨다는 뜻은 죽고 싶어서 환장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열성 신도 두 명은 그런 위험한 곳에 투입된 것 치고는 매우 평온했다.

잡담을 떠들 정도였다.

“저, 선배님들…….”

화장실에 갔다 온 어린 뿔 쥐가 어색하게 돌아왔다.

“왔냐.”

“근데 위험한 것 아닙니까? 보통 이런 곳에는 실력자분들은 빠지는데…….”

“찍찍! 그 말은 우리가 약하다는 거냐?”

“아닙니다요! 찍찍!”

거세게 고개를 저었다. 그 신병다운 모습에 뿔 쥐 두 명의 두툼하고 살집이 든든하게 자리 잡은 주둥이를 위아래로 씰룩이며 웃음소리를 냈다.

조금만 먹어도 살이 포동포동하게 찌는 것이 뿔 쥐였다. 그들은 야생에서 살아가는 종족이지만, 드낙과 마주하며 풍족한 문화를 누리게 됐다. 그 유전자 때문에라도 살이 찔 수밖에 없었다.

후덕함은 뿔 쥐들에게도 중요한 가치로 잡게 됐다. 그 후덕함이야말로 뿔 쥐끼리의 위대함을 간파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였다.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지는 않지만, 편견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신병 뿔 쥐는 훈련소에서 많이 굴렀기 때문에 아주 날렵해 보였다.

“찍찍. 후배에게 좋은 것을 알려주도록 할까.”

“후배는 정보등급도 낮으니까.”

“저 운석은 마수다. 마수는 도시 타격을 노리고 있지. 내륙도 당하긴 했는데 해안 도시가 특히나 많이 당했지.”

“우리가 있는 곳은 도시에서도 먼 곳이다. 수많은 입구 중에서도 외곽에 있으니, 안전하다는 거다.”

“또 돈도 많이 주지. 위험이 아예 없는 게 아니니까.”

“아, 열성 신도는 돈을 중요시한다고 들은 것 같은데…….”

“돈을 중요시하는 게 아니라 신앙을 퍼뜨리는 걸 중요시하는 거다. 다른 놈이 들었다면 크게 싸웠을걸.”

“죄, 죄송합니다.”

“됐다. 이제 1년 차도 아닌 놈에게 무슨 화를 내겠냐?”

어른답지 못하다.

뿔 쥐 베테랑 열성 신도는 교대하고 난 뒤 지하로 향했다.

그곳에는 뿔 쥐나 고블린, 두더지 인간과 크놀이 가득했다. 다만 그들은 조금 불평이 있는 듯 굴었다.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왜 그렇게 꼴 받은 표정을 하고 있어? 찍찍!”

지나가던 크놀이 뿔 쥐의 말에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일하다가 죽게 생겼다.”

그 말을 하며 뿔 쥐의 뱃살을 두들기고 크놀이 빠져나갔다. 뭔가 후련한 표정을 짓고 있다.

북슬북슬한 3중 털로 뒤덮여 있는 뿔 쥐의 뱃살은 극상의 감촉을 선사해 준다.

뿔 쥐가 대단히 강하지 않았다면 애완동물이 되어서 테라를 점령했을지도 모른다.

“어이, 라카누! 양고기 꼬치, 준비되어 있다고! 제엔장!”

고블린 상인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노점이었지만 대단히 깔끔하다. 수납공간을 효율적으로 만들었기에 단출하지만, 가게의 성능은 그대로 이어나가고 있었다.

뿔 쥐 두 마리는 그곳에서 양고기 꼬치를 먹기 시작했다. 무려 11가지의 소스가 있었기에 자리에 앉으면 11개는 먹어줘야 했다.

“벌꿀 주도 둘.”

이스핀이 만든 건 아니지만 벌꿀 주도 앞에 나왔다. 달달함과 알코올의 배합이 훌륭했고, 시원함도 가지고 있었다. 미세한 단맛은 술의 끝맛을 중화시키기도 했기 때문에 남녀노소 모두 즐기는 술이 벌꿀 주였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고블린 노점상인은 자신의 바로 뒤에 있는 술집의 반쯤 열린 창문에 손을 집어넣으며 바닥을 두드렸다.

“여기 벌꿀 주 두 잔!”

“예에!”

대답하는 소리가 들린다.

술집은 치킨을 안주로 겸하고 있지만, 양고기나 ‘구이’는 없었다.

노점상인은 술집의 그런 조악한 메뉴를 풍요롭게 만들어 주면서 자신의 매상을 올리는 셈이다. 술집은 술을 파니 또 이득이다.

지하 연합의 노점은 가게와 농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들은 거하게 한 끼를 먹고, 다시 교대했다.

그건 해가 저물 때까지 이어졌다.

해가 저물고 나서 그들은 퇴근했다. 두 마리는 항상 함께했다. 그 모습은 마치 전우조를 떠올리게 했다.

두리번, 두리번.

“미행은 없지?”

“두 번 확인했다.”

“좋아. 가자.”

그들은 지하 공간의 으슥한 곳으로 향했다. 지하 연합은 땅을 넓히고, 관리하는 것에 힘들어했기에 사유지라는 개념이 강하게 자리잡혀 있었다.

지하를 개척하는 데 국가만 노력해서는 방법이 없어서다.

그 덕에 열성 신도들은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고, 자신들만의 비밀 아지트 또한 가지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아주 음습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형제, 왔는가?”

얼굴에 가면을 쓰고, 펑퍼짐한 로브를 입은 뿔 쥐들이 모였다. 사실, 펑퍼짐한 로브는 거짓말이다. 뚱뚱통통한 뿔 쥐들의 몸매는 속이고 싶어도 속일 수가 없었다.

그냥 다 뚱뚱통통쟁이들이었다.

‘이들 모두 사회적인 입지가 있는 이들이다.’

적어도 어느 한 곳에서 10년 이상 근속한 자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이렇게 푸덩푸덩 살이 찐 것이다.

일부로 살을 찌우는 뿔 쥐도 있었다.

많은 이들이 살찐 뿔 쥐의 뱃살을 만지고 싶어 했다. 그중에는 사악하게도 배 방귀를 하고 싶다고 은근히 자신의 취향을 말하는 간사한 이들도 존재했다.

모두 자리를 잡았다.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음식은 없었다.

그런 모임이다.

“수군수군.”

“떡밥. 떡밥.”

땅. 땅. 땅.

이야기를 나누던 이들은 나무 때리는 소리에 자리에 앉았다.

극장같이 높낮이로 이루어진 객석에 자리 잡았다. 둥글게 이루어져 있었고, 중앙의 단상에 한 명이 올라갔다.

“때가 왔다. 테라의 지상은 박살이 났고, 그들은 여력을 잃었다. 이제 우리가 나설 때다.”

“뜨낙!”

“뜨―낙!”

그들이 울부짖었다.

“지하 연합 또한 나설 생각이다. 우리는 바다로 향해서 악마를 죽인다. 그리고 우리들의 살아 숨 쉬는 신을 우리의 힘으로 지킬 것이다!”

크아앙!

열성 신도들이 울부짖었다. 대부분이 뿔 쥐였지만 그들이 가용 가능한 인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영향력 또한 권력의 한 축에 담겨 있었다. 여론을 조작하는 것도 쉬울 터다.

반론이나 더 나눌 이야기도 없었다.

악마를 찾아가서 죽인다.

그건 분명 드낙을 위한 일이다.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열성 신도들이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랜만이다. 젠칸스.”

열성 신도, 라카누.

그는 경비병 일을 하고 있지만 그런데도 제법 수완가였다. 오고 가는 이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종종 ‘소름 돋을 위험한 제안’을 받기도 한다. 이건 상대편에게도 똑같이 적용됐다.

그리고, 라카누는 그런 위험한 제안을 수십 번이나 감내한 자이기도 했다.

“라카누…….”

늙은 고블린이 그를 맞이했다.

“서로 얼굴을 안 보는 날이 왔었으면 좋았을 텐데.”

“전쟁이 벌어졌으니까. 올 것이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지. 그래, 무슨 부탁을 하고 싶은가?”

라카누가 입을 달싹였다.

“지하 연합은 살아 숨 쉬는 우리들의 신께서 명하신 대로 ‘유지력’을 높이는 데 동원되고 있다. 하지만 열성교의 판단은 달라.”

“나아가서 싸우겠단 소리인가?”

“그래. 이대로는 우리들의 충성심이 퇴색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피는 흘러야 한다.”

그 말에 늙은 고블린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수많은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무려 40년이다. 40년. 이제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많아졌어…….”

그 말에 라카누가 씨익 웃었다.

“돈 굴리는 데는 재능이 있더니, 이쪽으로는 젬병이군.”

“아니라는 소리냐?”

“평화가 40년 지속됐다. 전쟁을 겪은 이들은 적고. 당연히 그 낭만에 휘둘리는 이들이 더 많다. 오히려 전쟁을 못 해서 난리지. 조금만 밀어붙이면 된다. 많은 걸 원하지 않아.”

“으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만…….”

“말싸움하려고 여기 온 건 아니다. 빚을 갚으라는 소리지. 살인자 하나 도망치게 해줬다. 그 대가를 이제 치르면 돼.”

라카누의 말은 거칠기 짝이 없었다. 후배의 실수를 쿨하게 넘기는 뿔 쥐의 모습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내가 이러쿵저러쿵하는 것도 우습지. 좋다. 올라타겠다.”

“그래야지.”

그가 일어서자 늙은 고블린이 입을 뗐다.

“열성교가 다 움직이는 건가?”

“그래. 치이면 죽는다.”

“으음…….”

늙은 고블린이 복잡한 눈을 했다.

하기야, 저래 보여도 사업체 하나는 굴리고 있는 고블린이기에 어떻게든 움직일 수밖에 없으리라.

당연하게도 이 움직임은 한쪽의 심기를 건드리게 됐다.

대장 쥐가 자기 주둥이에 난 긴 털을 손질하며 말했다.

“열성교 놈들이 주전론을 퍼뜨리고 다니더군.”

뿔 쥐 위원회는 더욱 확장하여 거대한 지하 연합 의회로 발전했다. 당연히 수많은 지하 종족이 참가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인간도 존재했다. 지상에 환멸을 느낀 인간이 지하 연합에 투신하는 건 자주 있는 일이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열성교는 분명 의미가 있다. 쳐낼 수는 없어.”

신앙의 마지막 보루 같은 느낌이다.

대장 쥐가 좌중을 훑어봤다. 웅성거림이 순식간에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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