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5화
* * *
푸른 향이 퍼져나간다. 그것은 색을 지니고 있었지만, 퍼져나가면서 사라졌다.
하지만 모두 사라진 건 아니다.
‘전쟁에서 가장 피곤한 건 인간이 지니는 체력의 한계점을 파악하는 일이다.’
사람의 체력은 보이지 않는다.
호흡하는 양이 다르듯이, 사람의 체격도 다르고, 지구력도 천지 차이다. 지휘관은 이를 생각하며 싸우고, 물러서고 교대를 시키는 등, 수많은 결정을 내려야 했다.
사람이 진이 다 빠지면 아무리 뭐라고 해도 그 명령을 수행할 수 없다.
그때가 돼서는 후회해도 늦는다.
사다리가 걸쳐지고, 적군이 올라오면 병사는 더는 아무 행동을 할 수 없다. 그저 무기를 버리고, 체념할 뿐이다.
지휘관은 그 상황, 그 자체를 만들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푸른 향’ 마법은 훌륭하다. 청량하고 시원한 공기이며, 병사의 체력을 조금은 회복시켜 준다.
답답한 공간에서 빠져나왔을 때 느끼는 청량감을 주고, 체력 회복에 중점을 둔 푸른 향 마법은 신성력과도 닮아있었지만, 그것보다 단가가 훨씬 싸다.
세파리아스는 전황이 바뀌고 있으며, 기세가 변하는 것을 체감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높은 체고를 지닌 세파리아스의 눈에 성벽이 보였다.
그곳에서는 보수 작업이 한창이었다.
“무너지면 안 된다! 빨리빨리 집어넣어!”
“끄아아아!!”
병사들이 고함을 내지르며 자신이 짊어진 목봉을 우직하게 집어넣었다. 무너진 성벽의 틈새에 목봉이 깊게 들어가야 했으므로 너도나도 목봉에 손을 댔다.
그다음에는 콘크리트를 섞은 통을 물 뿌리듯이 집어 던졌다. 밧줄이 손과 함께 묶여 있었기에 그렇게 쏟은 다음에는 당겨서 바로 가져갈 수 있었다.
“응애! 응애애! 응애!”
소아귀가 콘크리트로 인해 눈도 못 뜬 채 버둥거리며 튀어나왔다. 기어코 성벽의 구멍 뚫린 틈새로 들어온 것이다.
체중이 가벼운 반면에 힘은 좋아서 성벽을 쉽게 기어 올라갈 수 있는 게 소아귀였다.
성벽에 가장 가까이 있던 병사가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소아귀의 울음소리는 도저히 적응되지 않았다.
마음속에서 욱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인간에게 있어서 ‘아기’를 건드리고 모욕하는 행위나 다를 바가 없어서였다.
“응, 콘크리트나 처먹어. 이 개새끼야!”
바로 들고 있던 바가지로 소아귀의 뚝배기를 깨버렸다.
“끼엑.”
단말마를 지르며 소아귀가 축 늘어진다. 거기에 콘크리트가 쌓여 갔고, 온갖 것들도 들어갔다.
콘크리트는 쉽게 마르지 않기 때문에 나무 조각이나, 쓰레기 따위를 무식하게 땜질하듯이 집어넣는 것이다. 그래야 굳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고, 쌓인 채로 있을 수 있다.
틈을 메꾸고 난 다음에는 그곳에 나무로 만든 비계를 끌고 왔다.
비계란 앙상한 뼈대로 이루어진 구조물인데, 건설 현장에서 높은 곳에서 작업하기 위해 세워두는 앙상한 공성 탑 같은 것이다.
이 나무로 된 비계의 아래에는 고무로 된 바퀴가 달려있었다.
“와아아악!”
그대로 밀어붙여서 보수한 성벽에 밀착시켰다.
비계는 한쪽 면만 나무판자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효과적으로 성벽에 밀착했다. 그다음에는 살짝 들어 올려서 바퀴를 빼냈다.
수십 명이 달려들었기에 가능했다.
사람의 노동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대단했다. 이런 식으로 성벽의 보수 작업은 무식하게 진행됐다.
그리고 그런 작업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세파리아스의 눈이 빠르게 성벽 주변을 훑었고, 이내 자신이 갈 곳을 정했다.
그곳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성벽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소아귀 사체로 가득 물들어 있었는데, 어쩌다가 저렇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이 때문에 미끄러워서 돌아가야 했다. 그 동선 때문에 물자가 부족해지고 있었다.
그곳으로 거침없이 도착한 세파리아스는 단번에 성벽을 뛰어넘었다.
아래에는 권속 악마들로 가득했고, 성벽에는 소아귀들이 바짝 달라붙어 있어서 본래의 색상을 잃고 그저 붉은 것으로만 보였다.
촤아악!
착지하는 세파리아스의 뒤로 성벽이 보였고, 그곳에 있던 소아귀들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싹 다 사체로 변해서 떨어져 내렸다.
파도처럼 쏟아져 내리며 권속 악마들을 밀어냈다.
소아귀 사체의 무게에 그 어떤 악마도 쉬이 버티지 못하고 주춤했다.
단 한 순간. 소음이 끊겼다.
고함을 지르던 권속 악마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고, 그 광경을 본 병사들도 그 압도적인 광경 아래 환호성을 내지르지도 못했다.
그저 경외할 뿐이었다.
촤아아아!
사체 파도가 퍼져나가며 그 높이가 줄어들고, 넓게 퍼져나가는 광경을 세파리아스가 바라보았다.
‘악마가 다양하다.’
그의 눈썰미는 악마가 세 종류로 이루어져 있음을 눈치챘다.
종류가 많을수록 번거로워진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아카타베루는 제대로 작정한 듯했다. 혹은 다른 대악마의 군세일지도 몰랐다.
“키아아아아악!”
후방에 있던 ‘겹겹 이빨 악마’가 포효하며 몸을 들어 올렸다.
사족보행하는 이 거대한 놈은 형태마저도 괴이했다. 짐승의 형태였지만 몸보다 머리가 컸다. 머리를 땅에 처박은 채로 걷기 때문에 턱 아래에는 굳은살과 상처, 흉터로 가득했고, 기동성이 매우 느렸다.
또 쓸데없는 ‘원시 주머니’ 따위를 배 아래에 걸치고 있어서 배의 가죽도 해져 있었다.
아랫배가 약점이란 소리다.
놈은 아가리를 쩍 벌렸다. 턱 속에 턱이 있었고, 그 턱 안쪽에는 또 하나의 턱이 있었다.
말 그대로 큰 턱과 작은 턱이 입 안 위와 아래에 있었으며, 아가리를 벌리자마자 이빨이 투사체처럼 쏘아졌다.
그 이빨은 사람의 이빨과는 현격히 다른 구조로, 길쭉했다. 마치 생선의 가시처럼 길쭉했다.
또 이빨을 잡고 있는 건 잇몸이 아닌 막강한 근육들이었다.
근육이 득실거리며,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는데 이 때문에 이빨들이 마치 파도처럼 출렁거리며 위치가 달라졌다.
그 괴이함은 그 어떤 생명체에서도 보기 힘든 일이었다. 설계된 생명체란 그런 것이다.
놈들의 일제사격은 으레 연례행사처럼 이어지는 것인지, 병사들은 능숙하게 몸을 숨겼다.
“새끼들아! 생선 뼈 떨어진다!”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경우도 있었는데, 시야가 좁은 놈들이 있어서 이를 알려주는 것이다.
“빌어먹을. 살코기도 안 붙은 생선 뼈라니.”
“살코기가 왜 없어? 박히면 바로 인간 고기 꼬치인데.”
“미친 소리. 킬킬.”
다른 것에 신경을 쓰고 있을 때도 시야가 좁아지기에 주변에 알리는 건 꼭 필요한 일이었다.
곧 끝도 없이 긴 가시가 쏟아져 내려왔다.
성벽에 푹푹 박혔고, 강철조차도 쉽게 뚫었다. 그 끔찍한 광경도 병사들에겐 익숙한 모양이었다.
투사체는 아무리 잘나봤자 한계가 명확하다.
아무리 대포를 쏴도 참호 속에 대포가 들어올 확률은 매우 적게 마련이다.
병사들이 만든 장애물이 그 역할을 했다.
개인 마법 방어막 또한 뭉쳐서 사용했다.
그 화력은 명중률은 형편없었지만 화망을 크게 형성했다. 이 때문에 겹겹 이빨 악마가 발사하는 이빨에 의해서 아군 권속 악마들이 되레 죽거나 다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이다! 밀어!”
병사들은 성벽 바닥에 박힌 생선 가시 옆을 망치로 쳐서 틈을 만들어 내고 잡아당겼다. 가시가 쏙 빠졌다.
괴물 놈의 이빨엔 촉이 없었기에 쉽게 뺄 수 있었다.
다만 그 길이가 짧게는 3cm~6cm, 길게는 15cm까지 다양했다.
성벽에 튀어나와 있는 겹겹 이빨 악마의 이빨을 가만히 두면 움직이는 데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다.
끝도 뾰족하고 반대편 끝도 뾰족했기에 자칫 잘못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날카롭고 단단한 이빨이 박혀 있는 땅을 걷는 건 아주 위험한 일이었다.
이 작업은 매우 능숙했지만, 그 속도는 빨라졌다가, 느려지기를 반복했다.
계속된 공성전으로 병사들의 심신이 지쳐갔다.
“빨리할 필요 없다! 확실하게 해라!”
지휘관의 음성이 들려오자 병사가 어리둥절했다.
항상 윽박지르고, 빨리하라고 외치고 다닌 놈이다. 그런데 웬걸? 지금은 영 다른 소리를 했다.
“아!”
병사는 그제야 성벽 밖으로 뛰쳐나간 세파리아스를 떠올릴 수 있었다.
이내 작업하던 것도 잊고 성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성벽 밖에는 웅장한 공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크아앙!”
“크르르!”
“아르르! 앙! 앙!”
겹겹 이빨 악마가 이빨을 사출하고 나면 항상 그다음에 들박이 악마가 성벽에 돌진한다.
성벽은 수십m에 달한다. 쉽게 넘어뜨릴 수 없는데도, 들박이 악마는 그런 행위를 끝없이 되풀이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성벽은 실제로도 무너진 곳이 많았다.
세파리아스는 무너진 성벽을 보수하는 걸 봤기 때문에 겹겹 이빨 악마가 한 짓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일제사격 이후에 성벽 타격.’
훌륭한 정공법이다.
놈들이 덩치는 가히 네발로 달리는 오우거라 할 정도로 대형급이었다. 그런 놈들이 수천 마리가 돌진하자, 지축이 크게 흔들렸다.
두두두두두……!
소아귀를 짓밟고, 하늘에서 추락해서 재수 없이 죽은 권속 악마의 사체를 걷어차고, 우직하게 돌진했다.
들박이 악마는 이마에서 돌출된 거대한 뼈로 머리의 윗부분과 정면 일부분을 보호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서 머리를 전투용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 뿔은 뒤엉키고 설켜서 하나의 ‘판’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육중한 뿔은 투구나 다를 바 없었다.
스―억.
섬뜩한 소리가 모두의 귀에 들려왔다. 적어도 세파리아스의 주변 1km 거리에 있는 이들은 모두 들었을 것이다. 단 한 걸음 차이로 이 소리를 듣지 못한 이도 있었다.
그것은 소리가 아니라 파동이어서 정말 기이했다.
들박이 악마가 가로로 절단됐다. 328마리의 들박이 악마가 한 번에 쩍 갈라지며 피를 쏟아냈다.
일시에 윗부분과 아랫부분이 나누어졌다. 말끔히 잘린 단면에서 피가 쏟아졌고, 이내 운동성에 의하여 앞몸이 앞으로 나아가며 땅에 몸을 누웠다.
두두두두… 두두두……!
“……?”
세파리아스의 표정에 의문이 깃든다.
무려 대형급 권속 악마 수백을 일시에 죽였다. 다른 성벽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아니다.
세파리아스의 눈이 아래로 향했다.
동시에 지축이 무너지며, 그곳에서 촉수가 뻗어 나온다. 촉수 곳곳에는 둥근 색의 피부색 같은 것이 들러붙어 있었는데, 그 둥근 것이 뽁뽁이 소리를 내며 촉수에서 빠져나왔다.
촉수는 성인 남성의 허리만 한 굵기였다. 그것만으로도 그 위용이 대단했다.
“씨발, 깨알 박기 새끼들이다!”
병사들이 고함을 내질렀다.
땅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촉수들이 공기압 소리를 내며 사출하는 이 공벌레들은 턱이 대단히 발달되어 있었다.
촉수는 거칠게 사방을 훑고, 공벌레들을 토해 놓고 다시 지하로 숨어 들어갔다.
세파리아스의 주변에는 오직 피만 가득했다.
사거리에 들어온 촉수는 널브러져 있었고, 공벌레 또한 반으로 쪼개져서 죽은 상태였다.
말 그대로 사체뿐이다.
일시(一時)에 그런 사체로 변했기에 비현실적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그리고 세파리아스의 사정거리는 40년 전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날 정도로 넓어졌다.
그 이유는 단순 무식했다.
첫째. 세파리아스의 팔이 길어서다.
7m에 달하는 전투 육신을 지닌 세파리아스는 그 팔 길이 또한 사람보다 길었다. 당연히 무력의 사거리 또한 길어졌다.
‘세상을 베는 경지.’
무언가를 베려면 팔과 검이 있어야 한다. 그게 무인(武人)이다.
그의 경지는 초월적이지만, 그 개념은 단순했다. 몸에 검이 없으면 사용할 수 없었다. 영향무력을 사용한 세파리아스는 항상 손에 ‘검’을 쥐고 있다.
둘째. 세파리아스의 검이 길어서다.
신장 7m짜리 전투 육신. 반신급의 육체.
인신은 초월체이나, 그 육신은 정신체이므로, 그런 육체가 쥘 수 있는 검은 상당히 길었다.
오직 영향무력을 위해서 검신만 수m에 달하는 검을 소지하는 것도 가능했다.
다만 이번 경우는 아니었다. 만에 하나를 대비해서 실제 전투도 가능한 검을 소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여겼다.
마지막으로 세월의 흐름이다.
필멸자(必滅者)의 삶을 살았던 세파리아스에게 하루라는 시간은 매우 긴 시간이다. 그리고 40년의 세월 또한 매우 긴 시간이다. 무엇보다 무한한 삶을 살기에는 유한히 산 삶이 더 많았다.
이 때문에 뼈를 깎는 수련을 해왔다.
4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드낙이라는 대척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노력한 이유도 있었다.
세파리아스를 중심으로 반지름 1km에 달하는 모든 권속 악마가 반으로 갈라져서 죽었다.
그의 주변이 피와 사체로 가득해졌다.
비상식적인 광경이었지만, 동시에 초월적인 광경이기도 했다.
피가 잔뜩 묻은 검을 내리며 세파리아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끝도 없이 몰려오는구나.’
그가 앞으로 뻗어나갔다. 피 냄새와 뒤섞인 푸른 향이 병사의 코를 간지럽혔다.
지옥도가 눈앞에 펼쳐졌다.
악마는 신을 잡아먹으려고 하고 있었고, 신은 악마를 죽이려고 하고 있었다.
땅이 뒤집히고, 베이며 큰 공간이 마련된다. 그 아래로 권속 악마들이 쏟아져 나오며 바닥을 기고 올라왔다.
하늘에서 소아귀를 비롯한 온갖 악마가 추락하며 하늘을 검게 물들였다.
붉은 용이 이를 능숙하게 피하며 숨결을 내뿜었고,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권속 악마들이 성벽을 기어오른다.
“인류를 위하여!”
“신제국을 지키자!”
“우리들의 신을… 황제를 위하여!”
“으아아아아!!”
병사가 고함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