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213화 (1,211/1,239)

1213화

39. 악마 침공 (3)

드워프 황색 구리팔은 용맹하다.

얼마나 용맹하냐면 대기권 밖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는 강철의 탑에서 뛰쳐나와서 붉은 용을 향해서 무작정 돌격을 할 정도였다.

아, 그건 만용인가?

그는 지금 집결지를 향해 찾아가고 있었다.

세상은 여전히 붉었다.

대륙 하나가 통째로 불타는 것처럼, 엄청난 산불이 일어난 것처럼, 세상은 해가 저물고 있는 상태도 아닌데도 붉디붉었다.

불어오는 바람에는 화산재도 섞여져 있었다. 하급 권속 악마 레드 스카이가 뿌리는 화산재다.

화산재는 테라의 대류 환경에 따라 사방으로 퍼져나가 테라의 녹음(綠陰)을 모두 지워 버리고 죽음의 땅으로 만들 것이다.

“에퉤퉤.”

황색 구리팔의 입 속으로 들어온 화산재는 짠맛이 낫고, 유황 냄새도 났다. 무엇보다 맛이 없었다.

원래라면 전혀 몰랐겠지만, 각성제 덕분에 몸의 감각이 인간의 감각과 비슷하게 끌어 올려져 있어서 입 속에 들어온 화산재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럼에도 황색 구리팔은 각성제에게 절을 하지는 않았다. 익숙해서 감사함까지 느끼지는 못했다.

“여기가 맞는데.”

GPS 수신기를 켠 황색 구리팔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다분히 군사적인 목표로 사용되는 산이었지만, 무지막지한 테라의 질량 병기에 의해서 싹 밀리고 남은 건 폐허뿐이었다.

집결지도 두들기는 테라의 미친 전쟁 범죄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지만, 법이 그 정도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그들의 죽음은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테라 또한 엘리트들이 많다는 점이다.

집결지는 정확하게 지하에 건설되어 있었다.

“찍찍? 드워프 형제가 왔네.”

“응?”

그 소리에 드워프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의 땅엔 윤기가 좔좔 흐르는 검은 털을 지닌 거대한 쥐의 머리 하나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뿔 쥐다.

“아이고, 이거 뿔 쥐 형제 아니신가.”

무엇이든지 만드는 걸 좋아하는 드워프는 지하자원과 깊은 관계가 있었고, 지하 연합은 당연히 지하자원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시간이 많이 흐르면서 두 종족은 든든한 형제 종족이 됐다.

“탑에 있을 사람이 여기까지 올 정도면 탑도 무너지고 있단 소리인데. 맞나? 찍찍.”

“그래. 용이 부수고 다니고 있다.”

드워프가 다가오자 땅이 푹푹 꺼져갔다.

“우하하!”

그게 재밌는지 황색 구리팔이 웃어젖혔다.

그렇게 무너진 땅에 뚝 떨어진 드워프는 통로의 한중간에 있었다. 그리 넓은 통로는 아니고 지반과 아주 가까웠기에 불안하기도 했다.

“임시로 뚫어놓은 굴이다. 드워프 형제. 불편하겠지만 조금 더 가야 제대로 된 통로가 나온다.”

그들은 엉금엉금 기어서 가기 시작했다.

황색 구리팔은 토실토실하다 못해 터질 것 같은 뿔 쥐의 엉덩이를 구경하며 열심히 몸을 놀렸다.

통로가 워낙 좁아서 이리저리 몸을 흔들며 무식하게 앞으로 가야 했다.

“후아!”

겨우 진짜 통로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은 높이만 해도 3m에 달해서 쾌적했다. 공기도 제법 잘 통해서 환기가 잘 되고 있었다.

“어느 정도나 모여있나? 뿔 쥐 형제.”

“여기는 강철의 탑과도 거리가 멀어서 드워프는 없어. 찍찍. 이상한 기대하지 말라고.”

뿔 쥐의 말에 황색 구리팔이 입맛을 다셨다.

그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더 깊은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거대한 지하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으며, 조명이 곳곳을 밝히고 있었기에 대낮처럼 밝았다.

그곳에서 마주한 이들은 대부분 지하 연합에 소속된 종족들뿐이었다. 그는 곧 적당한 계획을 듣게 됐다.

“도시를 구하러 가?”

“대피만 해서는 끝이 없지. 한 곳씩 악마를 밀어내야 해. 탑에 있는 드워프라면 다 아는 건데?”

뿔 쥐가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에 황색 구리팔이 품에서 붉은 용의 비늘을 꺼냈다.

“나를 의심하는 건 좋지 않아. 물론 가능한 일이지. 봐라. 이게 탑을 노렸던 붉은 용의 비늘이다.”

“오.”

그제야 뿔 쥐가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지하 연합은 어지간하면 피해를 입지 않거든.”

땅속은 흙으로 잘 매립이 되어있다. 그곳에 차원 이동이나 공간이동을 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지하 연합이 가장 안전하다.

공교롭게도, 지하 연합만이 이 정도로 안전했다.

그 외에 안전한 곳은 소국이라 할 수 있는 머메이드들인데, 그들은 바닷속에서 살기 때문에 악마들의 관심을 덜 받을 수 있었다.

악마들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지성 종족이었고, 지성 종족은 바닷속에 자리를 잡지 않기에, 악마들도 바닷속에 딱히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육지 위에 문명이 고도화될 확률이 높기에 육지부터 초토화시킨다. 그렇기에 바다는 자연스럽게 모두의 우선순위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완전히 신경을 거둔 건 아니다.

악마의 기운이 바다에도 잘 퍼져나가도록 소아귀가 죽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들의 사체에서 발생하는 악마의 기운은 바다를 착실하게 타락시켜 나갈 것이다.

나중에 가서는 아카타베루의 말을 듣는 바다 괴물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바다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악마들은 하늘에 엄청나게 많던데.”

“그건 우리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살아 숨 쉬는 우리들의 신께서 처리하실 거다.”

“신제국의 황제는?”

“태양 차원에 있는데, 지금쯤 돌아왔을지도 모르지.”

그리 확신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세계와 세계가 부딪히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 여파는 모든 이들의 예상을 뛰어넘고, 차원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런 상황에서 세파리아스가 차원 다리를 통해 쉽게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도시와 성을 지원해 주긴 하는데, 다른 임무를 수행하는 ‘팀’도 있다. 들어볼래?”

“어떤 팀인데?”

“놈 중에 날아다니면서 화산재를 뿌리는 새가 있다. 이건 좋지 않아. 화산재에 염분을 머금고 있어서 신속하게 처리를 해야 한다.”

“그 독수리 같은 놈을 말이지?”

“봤나 보네. 맞다. 그놈들이다. 찍찍. 우리들의 신께서 가꾸시는 이 테라를 더럽히고, 황폐화시키려는 쓰레기 같은 모―독자 놈들이다. 찍찍!”

황색 구리팔은 조금 고민했다.

“어느 쪽이든 재밌을 것 같은데.”

하늘을 나는 건 황색 구리팔이 가장 좋아하는 일 중 하나였다. 그리고 거침없이 피를 뒤집어쓰는 것도 좋아했다.

“가장 좋아하는 일과 가장 좋아하는 일 중에 하나를 고르라… 이거 고역이군! 이스핀 벌꿀 주를 마시면 바로 결론을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쉽다!”

구하지도 못할 것을 지껄였다.

“그럼 자원이 적은 곳으로 가줬으면 하는데.”

“새대가리 잡는 일?”

“새대가리 잡는 일.”

뿔 쥐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호흡을 자주 맞춘 이 집결지의 인원을 보내는 것보다는 외부 유입자원을 팀으로 만들어 밖으로 내보낼 생각이었다.

“좋아. 근데 나는 하늘을 날지 못해. 아티팩트가 있었는데, 파손되어서 버렸어.”

“그 비싼 걸 부서졌다고 버리다니.”

“돈은 얼마든지 있어. 필요한 장비를 얻고 싶은데.”

“하나 정도는 내어줄 수 있어.”

“예비도 하나 있어야 해. 내가 신용이 높거든? 형제.”

그 말에도 뿔 쥐는 요지부동이었다.

구리팔은 지위가 높지 않기에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결국 황색 구리팔은 타협했다.

그의 팀에는 인간도 있었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흘러들어온 거야?”

“길을 잘못 들어서요.”

미친놈이었다. 그래도 전신 갑주를 입고 있는 것이 드워프, 황색 구리팔의 인내심을 이끌어 냈다.

“어디서 기사를 하던 양반인가? 요즘 기사가 되면 돈도 제법 받는다던데.”

“전쟁 터진다길래 대출받아서 장만한 건데요?”

‘이 새끼… 심상치 않은데?’

평범한 놈이 아니다.

팀은 다종족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하나같이 비행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밖으로 나가서 천천히 움직였다. 레드 스카이를 보면 하늘로 날아올라서 처리를 해야 했다.

“후하하하!”

그 속에서 황색 구리팔은 모든 종족과 빠르게 친해졌다.

뱅글뱅글 회전하며 하늘을 솟아오르는 망치를 든 드워프는 레드 스카이의 중심을 뚫으며 팀에게 공헌했다.

* * *

신제국의 황제, 세파리아스는 전조 현상이 6개월 이상 계속 진행됐음에도 지지부진하자, 결국 다시 태양 식민지로 향했다.

딱 하루만 지내면서 태양 식민지에 쌓인 업무를 처리할 생각을 가졌다.

전자서류로 처리할 수 없는 것들이 있어서 별다른 수가 없었다.

미국 대통령이 화상 채널로 모든 것을 결정하지 못하고, 실무에 나서야 할 때가 있는 것처럼 신제국의 신황제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악마 침공이 개시되어 화가 뻗쳤다.

“타이밍 한번 무섭다.”

세파리아스는 수많은 운명의 갈림길 속에서도 가장 거지 같은 갈림길에 들어선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시간 선을 훑는 법을 익히는 데 노력을 해야 했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건 인간으로 태어난 세파리아스에게는 어렵고, 오래 걸리는 일이다.

“이차원의 상태는?”

“다리 일부가 붕괴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합니다. 좌표 또한 불안정하여, 움직인다고 해도 어디에 도착할지 모릅니다.”

시야조차도 변형되어 가고 있었다.

세계와 세계가 부딪치고, 융화되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차원의 상태는 썩 좋지 않았다. 반대편의 차원 문은 가깝지만 멀게 느껴졌다.

세파리아스가 짧게 한숨을 내쉬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무수한 보어리안의 군세가 함께하고 있었다.

“뀌이이이익!”

세파리아스가 뒤를 돈 것만으로도 수많은 군세가 화답했다.

이곳에서 세파리아스는 그야말로 신적 존재나 다름없었다.

수많은 이들이 그에게 도전했고, 수많은 이들이 그에게 무릎을 꿇었다.

세파리아스는 보어리안 사회를 완벽하게 지배했으며, 보어리안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겨냥했다.

그는 보어리안을 굴복시키는 정복자가 됐다.

보어리안들은 싸움을 좋아했고, 세파리아스는 악마 침공에 그들을 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드낙도 마찬가지다.

다만, 음습한 드낙은 보어리안과 상성이 좋지 않았다.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도 않는 드낙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려면 높은 지능이 요구된다. 반면 보어리안들은 보이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보어리안들은 드낙의 위대함을 깊게 깨닫지 못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지하 연합에 소속되었지만, 드낙을 신앙의 주체로 삼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 덕에 지하 연합은 태양 식민지에 최소한의 투자만 하는 실정이었다.

“500만 군대가 모였는데, 이걸 못 간다고?”

보어리안의 500만 군세.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지려 버릴 것이다.

보어리안의 키는 300cm에 가깝기에 작은 거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중급 권속 악마쯤은 찜쪄먹을 수 있었고, 많은 화력을 감당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보어리안은 다른 이들을 대신해서 죽기 딱 좋은 탱커였고, 숭고한 군인들이다. 평화를 위해서 피를 흘러야 하는 것이 군인계급이었다.

세파리아스는 궁리했다.

몇 가지가 떠올랐지만, 가장 확실한 건 영향무력(影響武力)을 통해서 무식하게 재단하는 것이다.

영향무력은 세상을 베는 힘이다.

이는 난동을 부리고, 변화무쌍한 이차원의 상태를 박살 내서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주술사와 마법사들을 불러라. 일할 시간이다.”

세파리아스는 그사이에 조용히 명상에 잠겼다.

많은 세월이 지났다. 드낙과의 무력 격차는 적었지만, 초월체로서의 격차는 서서히 벌어지고 있었다.

드낙은 수련하지 않아도 무력이 상승하는 반면, 자신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차이 때문에 세파리아스의 초월체로서의 역할은 아직도 낮은 수준에 불과했지만, 무력 자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었다.

“다 모였습니다. 신황제 폐하.”

“며칠이나 지났느냐?”

“3일이 흘렀습니다.”

이에 세파리아스가 거침없이 차원 다리를 건넜다. 이차원에 들어서자마자 공간이 뒤틀렸고, 세파리아스의 전신을 찢어발길 것처럼 치고 들어왔다.

공간의 비틀림이 베이고, 그 현상은 무(無)로 돌아간다.

곧 세파리아스의 뒤에 있던 이들이 그가 베어낸 공간에 마법과 주술을 엮으며 방벽을 전개한다.

마치 꽃이 피듯이.

세파리아스가 지나가는 길 뒤로 마법과 주술의 방벽이 전개되었고, 보어리안의 군대가 서서히 진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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