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화
38. 악마 침공 (2)
화산재가 마을을 덮었다.
새하얀 눈이 온 것 같았지만 그 눈에서는 악취가 났다. 평범한 화산재가 아니었다.
더욱이 레드 스카이의 땀 성분이 들어있어서 염분도 높았다. 비가 온다면, 바닷물이 침투한 땅처럼 식물이 자라지 못할 것이다.
다만 마을 사람들은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
그들은 마을 지하의 지하 대피소에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전조현상은 무려 6개월간 이어졌고, 테라는 그 긴 시간 동안 사람들을 대피소에 그저 대피시켜 놓을 수가 없었다.
증가한 인구수 때문이다.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1만 명이 살 정도로 크다. 그런 이들이 1개월 동안 대피하는 것만으로도 나라에서 1만 명을 하루 삼시세끼 30일을 책임져야 했다. 90만 인분을 만들어서 대접해야 하는 셈이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세금이 소모된다. 그러니 결국 생업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저 대피요령, 대피 훈련을 주기적으로 열면서 최선의 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악마들이 나타나자 신속하게 대피했다.
“제기랄, 이럴 줄 알았으면 철문을 더 두껍게 하는 건데.”
촌장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후회됐다.
그 후회는 대피소를 제작하는 ‘돈’ 때문에 생긴 후회였다. 그리고 그런 후회를 하는 까닭은 철판을 긁는 소리 때문이다.
끼기긱.
끼기긱.
끼긱.
그 소리는 끝없이 들려왔고, 한두 놈이 긁는 것도 아니었다. 너무나도 많은 놈들이 긁고 있었다.
그 소리에 모두가 덜덜 떨었다.
고작 1만 명을 위해서 많은 군대가 동원된다고 생각하면 웃긴 소리였다.
전선이 하나였다면 후방에 도는 부대가 이곳에 올 수 있었겠지만, 악마의 공세는 전방위적으로 일어났다.
물론 침공을 당하지 않은 곳도 있었다. 다만 자신들의 마을은 아니었다.
마을보다 중요한 것이 성과 도시였다. 그리고 인정하기 싫고, 그들은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았지만, 공장 같은 산업지역이 우선적으로 보호되고 있었다.
사람 목숨보다, 공장이 중요한 셈이다. 다만 이를 시민들은 알지 못했다. 알 방도도 없었다.
테라에는 목숨 걸고 그런 것을 찍고 다니는 양심 있는 기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산업을 국가가 관리하기 때문이다. 자본이 국가에 있다. 기자도 돈이 있어야 한다. 더 말할 가치도 없다.
언론은 돈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직종이다. 굶어 죽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굶주림이 신념을 이긴다고 말한다면, 낭만을 노래하는 자들은 돌을 던지겠지만, 공자조차도 굶주리면 남의 담을 넘는다.
“얼마나 버틸 것 같습니까? 촌장님.”
“…….”
촌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기 손으로 얼굴을 뭉개듯이 감쌌다. 자기 얼굴을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것처럼 보였다.
지독한 시간이 흘렀다.
철을 긁는 소리는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거기에 노출된 사람들은 밤잠을 설쳤다.
10일째 되는 날, 철문이 뜯겨 나갔고 틈이 보였다.
“쉬이익!”
악마의 입김이 차가운 지하 시설에 퍼져나갔다. 새하얀 김을 내뿜었다. 그만큼 지하 시설이 온도가 낮은 건 아니다. 악마의 숨결이 지나칠 정도로 뜨거웠다.
펄펄 끓는 냄비에서 나오는 김처럼, 화끈했다.
“뚫렸다!”
너도나도 고함을 내질렀다. 여자가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촌장이 뭐라고 지껄였지만, 그 고함에 파묻혔다.
통제가 되지 않았다.
그 소란에 반대편에 있는 악마들은 더욱 발광했다.
카가각… 카각!
칼날 뼈 악마. 인골흉(刃骨凶)의 손톱이 작은 틈에 끼이더니 마구잡이로 위아래, 좌우로 흔들어지며 틈을 더욱 키우려고 애를 썼다.
인골휼은 본래 엘프를 카운터 치기 위해서 탄생한 중급 권속 악마지만, 아카타베루의 침공은 무식하기 그지없는 공습 작전이었다.
권속 악마들도 엉망으로 뒤엉켜 있었으며, 아무렇게나 뒤섞여져 있었다.
“으흐흐흑.”
돈이 있어도 방어 아티팩트와 공격 아티팩트를 구비하지 않았다.
그 대가는 처참했다.
단순한 철판으로는 악마들의 공세를 영원토록 막지 못했다. 기어코 악마가 철판을 뚫고, 비집고 들어왔다.
악마의 작은 움직임에도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구심점 하나 없었다.
이곳에 용기를 지닌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싸움과 전투, 전략과 전술에 재능이 있는 인재는 모조리 테라의 선택을 받아서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재능을 가지고 있는 이라도 기회가 없어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위기가 있어야 기회가 있다. 이런 작은 마을에는 위기가 없었다.
“캬악!”
악마들이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덮쳤다.
사람들은 벽으로 내몰렸다. 싸우려고 마음먹은 이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양 떼였고, 악마는 늑대였다.
푸우욱!
“꺼… 으… 하윽…….”
악마의 뿔이 사람의 몸통을 그대로 꿰뚫으며 들어 올렸다. 양손이 코끼리의 상아보다도 굵은 뿔로 무장한 괴이한 악마였다.
꿰뚫린 인간은 끔찍한 비명도 내지 못했다.
온몸의 근육이 고통에 수축했다. 그런 상황에서 고함을 내지르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또한 뿔이 워낙 크고 굵어서 폐를 건드린 것도 컸다.
산소와 숨을 내뱉을 수 있는 장기가 다쳤으니,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고함을 내지르는 행위는 목젖에 힘을 주고, 폐에 강한 압박을 주는 일이었다. 폐에 피가 차오르는데, 산소를 크게 내뱉을 수는 없었다.
그 죽음은 지나칠 정도로 조용했다.
그저 으으, 거리면서 죽어갈 뿐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화려하고, 성대하고 자극적인 죽음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그저 보잘것없었다.
그들은 총탄에 바스러져 죽어가는 병사들처럼 허무하게 죽어갔다.
세계 2차 대전에서 죽은 이들이 5천만 명에서 7천만 명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다 죽었다고 보면 된다.
그런 잔혹한 전쟁을 아름답게 미화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나쁜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는 항상 전쟁에 낭만을 씌워 노래를 불렀다.
이들은 전쟁이 이토록 참혹한지 전혀 알지 못했다. 테라가 끝없이 경고했지만, 그들은 그저 평범한 사람이고, 내일을 준비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에, 전 재산을 쏟아부어서 피난소에 공을 들이지 않았다.
그게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죽음이었다.
1만 명이 떼 몰살당했다.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악마들은 머리를 꿰어서 자신의 전리품으로 삼거나, 아기의 시체만 따로 모아서 아카타베루를 위한 제단을 만들었다.
포식을 위해서 사람을 뜯어먹기도 했다.
꿀꺽. 꿀꺽.
쯔읍! 콰직!
피를 마시는 소리. 굽지 않은 힘줄이 뜯기는 소리. 뼈가 부서지는 소리.
그런 것들이 지하에서 울려 퍼졌다. 1만 명이 죽었지만,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그런 것을 생각하기에는 악마들의 침공은 상상 이상으로 매서웠다.
* * *
크롸라라라!
붉은 용이 숨결을 내뱉었다. 끔찍한 화염이 토해지며, 강철의 탑을 녹였다. 그곳에 발톱을 내걸며 자리를 잡은 붉은 용이 다시 한번 더 브레스를 토해냈다.
그 위에 올라탄 데몬 나이트는 조용히 사위를 훑었다.
함성을 내지르거나 고함을 지르지는 않았다. 그저 침착하게 주변 상황을 훑었다.
질량과 초월의 힘으로 파괴를 하는 붉은 용을 지키는 것이 데몬 나이트의 가장 큰 임무였다. 기수인 데몬 나이트보다 거대한 붉은 용은 가장 완벽한 파괴 병기였다.
몸길이만 해도 15m에서 20m에 달했다.
그 덩치에서 나오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는 건물을 부수기에 가장 적합했다.
강철이 녹으며, 강철의 탑이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녹아내린 곳에서 드워프 하나가 튀어 올랐다. 등에는 마법 아티팩트가 오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부유 마법이 있는 듯 아주 자연스럽게 날고 있었다.
날아오른 드워프의 몸 주위에서 화염의 구가 생성되더니 이내 길쭉해지며 그대로 쏘아졌다. 길이는 긴 창과 비슷하게 길어졌다.
데몬 나이트가 발을 문지르며 외쳤다.
“왼쪽 날개!”
그 말에 붉은 용이 왼쪽 날개를 펼쳤다. 화염 창이 날개와 부딪쳤다. 하지만 기스도 나지 않았다. 날개는 코팅된 것처럼 마법에 피해를 입지 않았다. 무형의 무언가가 날개를 보호하고 있었다.
마법 무효화의 날개를 지닌 붉은 용은 마법사에게 내리는 죽음의 용이다.
“마법이 안 통해? 이건 좀 의외인데. 저, 날개 탐난다!”
드워프는 저 날개를 소재로 방어구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들어 군침을 흘렀다. 그러고는 품에서 각성제를 한 움큼 끄집어내서 입에 털어 넣었다.
그 눈이 용광로처럼 활력이 득실거린다.
불이 지펴진 드워프는 그대로 접근전을 시도했다. 손에는 큼지막한 망치가 쥐여 있었다.
망치가 워낙 커서 무게 중심이 한쪽으로 쏠렸다. 자연스럽게 추진력에 의해서 드워프가 빙빙 돌기 시작했다.
붕붕붕!
“죽어라!”
거침없는 돌진이었다. 기세는 대단했지만, 데몬 나이트는 비릿하게 웃을 뿐이다.
“어리석다.”
실로 어리석었다. 상급 권속 악마가 그리 생각한 까닭은 단순했다.
드워프는 두 다리를 땅에 단단히 지탱하지 않았다. 그래서야 아무리 추진력이 높다고 한들, 제대로 된 충격을 주기가 힘들었다.
‘충격을 주더라도 한 번이 끝이지.’
반면, 데몬 나이트는 등자를 하고 있었다. 두 다리로 붉은 용이라는 땅에 단단히 서 있다. 그것만 봐도 승부가 어찌 될지 알 수 있었다.
쾅!
데몬 나이트의 대검과 드워프의 망치가 서로 부딪쳤다. 망치의 끝부분에서 충격파가 꽝하고 터져 나와서 데몬 나이트의 몸을 두드렸다.
하지만 데몬 나이트는 코피를 주룩 흘릴 뿐, 그 이상의 피해를 입은 것 같지 않았다.
드워프의 몸통을 대검으로 쳐버렸다.
드워프가 엉망으로 허공을 맴돌다 이내 추락했다.
그 외에도 드워프들은 데몬 나이트와 붉은 용을 잡으려고 노력했지만 허사로 돌아갔다.
애초에 강철의 탑은 말 그대로 ‘물량’을 죽이기 위한 건축물이었고, 수많은 투사체를 쏟아낸 다음에는 그리 특별한 것이 없었다.
하나의 강철의 탑에서 쏟아낸 질량 병기와 마법 병기로 수만에 달하는 악마가 죽었다. 그것으로 그들의 목적은 끝난 것이다.
그 이상으로 하려는 건 드워프들의 고집 때문이다.
“끄아앙.”
수많은 드워프가 객기를 부리다가 하늘의 별똥별이 되어서 떨어졌다. 머리부터 떨어진 드워프도 있었지만, 그들은 금방 구덩이에서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게 안 되네!”
아쉬움을 한 번 표현하고 바로 각성제를 털어 넣었다. 졸리지 않는데도 아메리카노를 습관적으로 섭취하는 현대인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밖으로 빠져나온 드워프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길도 없고, 이정표랄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폭격당한 환경만이 존재했다.
파헤쳐진 땅과 함께 부서진 나무가 보였다. 적어도 이곳은 숲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결코 숲이라고 할 수 없었다.
나무의 흔적도 재로 변해 있었는데, 조금만 건드려도 바스러질 것 같았다.
“어마어마하다.”
번쩍거리는 하늘을 보며 드워프가 혀를 내둘렀다.
하늘은 악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악마 구조물과 중력을 거스르는 괴이한 악마 건축물로 가득했다.
그 건축물은 소아귀들의 보호 속에서도 파괴되어서 아래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아마겟돈이 벌어진 것과 같은 광경이었다.
낮이었음에도 하늘은 붉었다. 그 붉은색은 드워프가 있는 곳까지 뻗어있었다. 나무의 색도 이상하게 보일 정도로 붉은색이 점령해 있었다.
빨강 색안경을 끼고 있는 것 같은 기분마저도 들게 했다.
‘아…….’
이런 전쟁에서 자신은 그저 먼지 한 톨도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뭐라도 해야 했다. 그는 전사였다.
드워프가 움직였다.
그의 목적지는 적어도 ‘전사’라면 알 수밖에 없는 집결지로 향했다. 그곳에 답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곳으로 가라는 이정표가 그에게는 있었다.
데몬 나이트가 갈라놓은 배낭을 벗어버리고, 드워프가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갔다.
그의 뒤로 수많은 유성이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