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0화
* * *
상공 1만~1만2천m.
그건 우주라고 하기에도 애매했고, 지상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했다.
그 적당한 곳에 모습을 드러낸 악마들의 공세는 테라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소아귀들이 쏟아져 내려왔다. 그건 마치 붉은 소나기와 같았다.
바다에 떨어진 소아귀들은 크게 버둥거렸다.
“응애! 응애!”
놈들은 더욱더 아기 같은 울음소리를 내게 되었다. 아카타베루의 악마 세계가 발전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바다에 떨어진 소아귀들은 수영을 못하는 것처럼 굴었지만 제법 수영을 하긴 했다. 체중도 적어서 파도 덕분에 더 멀리 갈 수도 있었다. 다만, 거기까지였다. 문제는 체온이다.
하급 권속 악마인 소아귀는 아기의 형태를 닮은 시뻘건 괴물이다. 놈들은 지성 종족의 ‘아기’에 대한 심리를 자극시키는 괴물이었다. 그건 괴물이라고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만큼 지성 종족의 인식을 끔찍하게 만드는 것이 없었다.
그 아기는 사람의 자궁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아카타베루라는, 아기를 잡아먹는 악마에게서 출산된다.
아니, 그건 출산이라고도 볼 수 없었다. 그저 배설된다. 그게 더 어울렸다.
말 그대로 지렁이가 흙을 먹고 흙을 토해내는 것처럼 ‘소아귀’는 가장 기본적인 토양에 불과했다.
그런 하급 권속 악마가 바다라는 곳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는 없었다.
저체온증(Hypothermia).
덜덜덜!
소아귀는 온몸을 떨면서도 계속 헤엄을 쳤다. 뭍으로 올라가고 싶어 발악을 했다.
“응애! 응애!”
운에 기대는 모습도 보였다. 아기 소리를 듣고 누군가가 도와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헤엄치는 소아귀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였다.
붉은 물결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소아귀들은 저체온증으로 사망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시체가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죽은 소아귀들의 시체는 부패하면서 가스가 차서 다시 수면 위로 떠 오르겠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었다.
소아귀들은 권속 악마이기도 했다. 하급이지만 그건 명확하다. 소아귀들의 시체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으면서 테라에 악마의 기운이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소아귀들은 그렇게 죽어갔지만 죽지 않은 소아귀도 있었다.
그저 헤엄만 치던 소아귀 중에는 추운 것을 피하고 싶어 하는 소아귀도 있었다. 그런 소아귀는 다른 소아귀에게 찰떡처럼 달라붙었다.
서로서로 밀착하자 서로의 체온이 서로를 데웠다. 또 밀착한 곳에는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았다.
소아귀가 하나둘씩 달라붙기 시작하더니 이내 거대한 섬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남국에 똘똘 뭉쳐있는 펭귄과 같았다.
실제로도 이 소아귀들은 펭귄과 똑같은 놈들이었다. 아주 잔악무도한 놈들이다. 남의 새끼를 쪼아서 대가리를 깨버리는 것은 펭귄 사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죽은 펭귄을 여럿이서 범하는 것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것이 펭귄의 인성이다.
그 귀여움 속에 그저 숨겨져 있을 뿐이다.
소아귀는 그에 비하면 양반이다. 아기처럼 생겼지만, 전혀 아기답지 않은 모습을 지니고 있어서다.
어둠 속에서는 아기로 오인할 수 있지만, 대낮에 마주하면 누구나 비명을 내지를 정도다.
이들은 기어코 바다라는 환경에 살아남았다. 그들은 파도에 떠밀리며 정처 없이 떠돌기 시작했다. 당연히 서로 잡아먹기도 했다. 그러면서 흘린 피는 테라의 바다에 퍼져나갔다.
악마의 기운이 서서히 이 세상을 오염시키기 시작했다.
* * *
콰앙―!
육중한 소리를 내며 작은 마을 인근에 소아귀의 덩어리가 떨어져 내렸다.
구덩이가 파여 있었고, 그곳에는 소아귀의 피로 가득했다. 그 피는 서로 뒤엉겼고, 강한 바람에 물결치는 호수와 같았다.
피를 머금은 흙이 젖어가며 웅덩이 속으로 잠식되어 갔다.
철퍽!
거칠기 짝이 없는 울림 속에서 소아귀(小兒鬼)가 모습을 드러냈다.
“흐아아앙! 흐에에에엥!”
놈은 아기처럼 울부짖었다.
만약 야심한 밤에 이런 소리가 골목길에서 들려왔다면 열이면 열, 골목길로 들어갔을 터였다. 지성 종족에게 아기 울음소리는 강한 본능을 부추긴다. 이에 속은 지성 종족은 소아귀에게 기습을 당할 것이다.
같은 소아귀의 피에 잔뜩 절인 소아귀가 엉금엉금 기어서 구덩이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호흡했다.
“흡. 하. 흡. 하!”
청량한 숲의 냄새에 콧물이 절로 나왔다. 피 냄새로 가득한 곳과는 차원이 달랐다.
소아귀의 눈이 활처럼 휘었다. 곧, 껑충 뛰어서 나무에 들러붙더니 나무 위로 올라갔다.
파다닥!
그 속도가 섬뜩할 정도로 빨랐다.
하급 권속 악마라도 사람 하나 정도는 쉽게 죽일 수 있었다.
소아귀가 곳곳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소아귀가 모두 사라진 구덩이에는 지상에 추락하면서 소아귀들의 시체만이 을씨년스럽게 둥둥 떠 있었다.
둥… 둥… 둥…….
수면이 물결쳤다.
돌을 던지지 않았는데, 돌을 던진 것처럼 물결이 명확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물결은 아름다울 정도로 정석적이고, 인위적이었다.
마치 게임 회사가 그래픽을 자랑하기 위해서 만든 것처럼 인조적이었다.
아카타베루는 병신이 아니다.
그는 수많은 별을 파괴하고, 수많은 별에 간섭하며 업을 잡아먹은 찬탈자다.
대악마를 여럿 잡아먹고도 아무런 변화 없이 그대로였다면 아카타베루는 대악마라 불릴 자격이 없었다.
소아귀의 시체는 방치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방치되지 않으면 그저 다른 권속 악마의 식량이 될 뿐이지만, 방치될 때에는 다른 면모를 보인다.
소아귀의 피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뽀록, 뽀록!
거품이 올라왔다. 둥둥 떠 있는 소아귀의 시체가 가라앉았다.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이내 피가 전부 사라지고, 시체가 뒤엉켜 하나가 된 작은 묘목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묘목의 높이는 고작 60cm도 되지 않았다.
큰 구덩이 가운데에 홀로 있으니, 기괴해 보였다.
묘목의 모습도 전체적으로는 나무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지만, 실상은 소아귀의 신체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팔이었던 부분이 있고, 머리였던 부분도 얼핏 보였다. 그런 끔찍한 물건이었다.
쿠이무시노키(食い虫の木).
소아귀를 잡아먹은 나무의 본체는 뿌리였다. 그 윗부분은 급소라고 할 수도 없었다. 코뿔소로 치면 뿔이다.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곧 앙상한 묘목의 끝에 피가 이슬처럼 맺히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동안 굳고, 또 굳기를 반복하다 이내 벌집처럼 만들어졌다.
벌집의 구멍에서 벌레가 대가리를 내밀었다. 벌레는 그대로 아래로 뚝 떨어졌다. 성인 남자 손바닥만 할 정도로 큰 공벌레 같았다.
그 벌레는 곧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랐다.
소아귀의 시체는 그렇게 재활용되기 시작했다. 쿠이무시노키는 행성에 뿌리를 깊게 박고, 영양분을 빨아들여 끝없이 식인충을 생산할 것이다. 그 묘목이 커지면 커질수록 더 큰 식인충을 생산할 터였다.
* * *
지상에 도착한 소아귀들은 사방팔방을 돌아다녔다.
“응애! 응애!”
수풀에서 소아귀가 머리를 쑥 내밀며 모습을 드러냈다. 올가미에 다리가 묶인 새끼 멧돼지가 고함을 내질렀다.
“응애! 응애!”
소아귀가 이에 질세라 크게 울기 시작했다. 곧 다른 소아귀들이 모이더니, 이내 새끼 멧돼지를 향해 돌진했다.
“뀌에에에에에에에엑!”
멧돼지 멱따는 소리가 났다.
말 그대로 산채로 물어뜯겼다. 죽을 때까지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며 멧돼지의 피가 바닥에 흥건하게 퍼져나갔다.
소아귀들은 새끼 멧돼지의 모든 것을 씹어먹었다.
먹고 난 다음에는 그대로 몸을 뒤집었다. 배가 불러서였다. 하지만 그 행동은 오래가지 않았다.
소아귀가 몸을 뒤집더니 그대로 안의 것을 게워냈다.
안타깝게도, 소아귀는 항문이라는 우월한 장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처럼 먹으면 싸버리는 곳이 없었다.
그러니 먹은 것이 소화되면 다시 구강을 통해서 배변 된다.
“퀘애애애애애애액!!”
콧물까지 터져 나오며 입에서 배설물이 쏟아져 나왔다. 소화가 덜된 것도 있었다. 하지만 토사물에 관심을 가지는 소아귀는 없었다.
이 또한 아카타베루의 간사한 방식 중 하나였다.
이건 세계와 세계의 부딪힘이다. 당연히 테라는 ‘악마적인 행성’이 되어야 했다.
토사부츠토케.
토사물에는 이끼가 반나절 만에 생겨났다. 그건 대단히 붉은 이끼였다.
새벽마다 그 이끼에 이슬이 맺혔다. 피처럼 붉은 이슬은 햇볕에 기화되며 붉은 기운을 뿜어내며 사라졌다.
악마의 기운이 소아귀와 함께 퍼져나갔다.
이미 대피할 사람은 모두 대피한 제재소에도 사람은 있었다. 당연히 돈독에 미쳐 버린 제재소다.
물론 사장인 존이 나쁜 사장인 건 아니었다. 그는 무려 10억에 이 주변 벌목지를 구매했고, 내년까지 적어도 1,500그루를 벌목하지 않으면 파산할 수밖에 없었다. 파산하면 벌목지는 경매에 올라가고, 싸게 팔릴 터다.
사업하는 데 레버리지를 안 쓰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보통 그렇게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는 없었다. 특히 임업(林業)은 상상 이상으로 돈이 들어가는 산업이었다.
나무를 재단할 제재소가 있어야 하고. 기계를 보관할 곳도 필요하다. 기계가 고장이 나면 이를 고쳐야 했고, 제법 규모가 있는 제재소라면 따로 정비사를 두기도 했다. 그게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는 벌목을 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연하게도 그에게 고용된 이들도 똑같은 생각이었다.
그들도 직장이 사라지는 건 원치 않았다.
“단단히 묶었습니다. 들어 올리십쇼!”
기계가 굉음을 터트리며 묶어놓은 나무를 질질 끌어 트럭이 있는 곳까지 당겼다. 주변은 쑥대밭이 되어있었다. 나무 파편과 나뭇가지가 널브러져 있어서 폐허를 연상케 했다.
보호구가 없다면 상처를 많이 입을 정도로 나무가 빽빽하게 늘어서 있었고, 파손되어서 날카로운 부분이 툭 튀어나와 있었다.
장비 없이 작업하는 것도 무섭다.
경사는 물론이고 갑자기 바닥이 꺼지기도 했다. 그런 곳에서 나오는 소음은 당연히 대단했기에 소아귀의 관심이 안 끌릴 수가 없었다.
“응애! 응애! 응애!”
아기 소리에 무전기를 잡고 있던 존의 표정이 갑자기 심각해졌다. 그는 42세의 기혼남성이었고, 아기를 육아했던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아기의 울음 소리에 온몸이 서늘해졌다.
“작업 멈춰! 소리 꺼봐!”
그 말에 작업자가 기계를 끄고, 밖으로 나와서 외쳤다.
“하늘을 보세요! 진짜 튀어야 한다니까요! 사장님!”
“난 파산하기 싫어! 그것보다 소리 안 들려? 이 소리, 나만 들리는 거 아니지?”
그 말에 작업자가 귀를 기울이더니 이내 존과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누가 아기를 버린 걸까요?”
“이런 곳에?”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를 확인해야 했다.
그건 알량한 영웅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아기 울음소리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작업자는 총 여덟 명이었다. 많을 필요가 없었는데, 기계의 힘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여덟 명도 많은 숫자였다.
직원의 수로 존의 벌목소와 제재소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기도 했다.
“X발.”
아기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접근했다. 그곳은 철조망이 있는 곳이었다.
벌목소를 얻으면서 괴물이나 야수가 오지 못하게 마법 철조망을 쳐놓았다.
“이런 곳에 아기를 버릴 정도면 진짜 미친 거 아닙니까?”
“이런 곳까지 여자가 오겠냐? 남자 새끼가 와서 버렸겠지.”
“남녀가 뭐가 중요합니까? 그냥 개새끼지.”
너도나도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거기에 그들은 결코 안전하지 않았다.
악마 침공이 개시되었다고, 현재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 벙커로 가라고 난리를 치고 있었다.
그걸 거부하고 나무나 캐고 있었으니, 진짜 어떤 의미로 대단한 놈들이었다.
철조망에 도착한 그들은 두리번거리면서 수풀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아기 소리는 어느새 싹 사라진 상태이었다.
“아무…….”
누군가가 목소리를 내뱉자마자 수풀 속에서 소아귀가 껑충 뛰어서 그들에게로 덤볐다가 철조망에 닿았다.
파지지직!
소아귀의 몸에 전류가 통해 그대로 고꾸라졌다. 매캐한 연기가 쏟아져 나왔다.
“아기가!”
제대로 볼 줄도 모르는 놈이 헛소리를 지껄이자 존이 외쳤다.
“병신아, 아기가 아냐! 악마다!”
그 외침과 동시에 수풀에서 소아귀들이 철조망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키아아아악!!”